소설리스트

46. 그렇게 살아 (46/50)
  • 46. 그렇게 살아

    진현의 기일.

    진현이 잠들어 있는 수목장림을 찾았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재현이 운전을 했고, 그 뒤에 영철과 민영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영철은 재현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었고 민영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간은 무심히도 흘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나보내야 했던 그때를 떠올리면 마치 어제 일처럼 여전히 가슴이 미어지는데, 활짝 피어 보지도 못하고 저문 꽃 같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살아온 지 벌써 14년째라니…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일에 미쳐 살았더니 손에 쥔 것은 제법 되었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한 게 아니었기에, 어떻게든 하루를 밀어내려 일에 매달렸던 것이기에, 성공 앞에서도 그저 무덤덤했다.

    가여운 내 새끼…. 그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으면 좀 더 많이 안아 줄걸.

    몸 풀고 한 달 만에 식당에 나오는 바람에 제대로 업어 키우지도 못했고, 젖도 제대로 먹이지 못해 고등학생이던 어린 고모와 환갑의 할아버지 손을 빌어 자랐다.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해 준 게 없어서 미안했다.

    누굴 닮아 그리 잘난 건지, 진현은 저 혼자 알아서 쑥쑥 자랐다. 한국에서 최고라는 대학에 철썩 붙은 걸로도 모자라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 동네에서 제일가는 수재였다.

    군대 있을 때 한 번도 면회를 가 보지 못해 마음 한편이 무거웠는데, 오히려 그런 자신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보내던 살갑고 다정한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바쁘다는 이유로 답장 한 번 보내 주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게 참 생각할수록 미안했다.

    식당 일에 바쁜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해,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을 살뜰히 돌봤던 정 많고 따뜻했던 아이.

    동생 낳아 주기만 하면 자신이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타 준다더니, 그 약속을 정말로 지킨 착한 아들이었다.

    늦게 본 동생을 너무 예뻐해서 동네 사람들이 전부 다 기특하게 여길 만큼 우애도 깊었다.

    어딜 가도 예쁨받고 사랑받던 내 새끼….

    그런 아이를 정작 자신은 그만큼 사랑해 주지 못하고, 예뻐해 주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 진현을 떠나보낸 뒤로 가슴에 나 버린 커다란 구멍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민영은 운전 중인 재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지난 14년 동안 고통 속에서 뒹구는 사이,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나의 귀한 자식….

    재현은 단 한 번도 투정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라 주었다. 제 형이 제 눈앞에서 죽었는데 본인도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힘들었을까…. 하지만 재현은 단 한 번도 그날의 자기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속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을지, 혼자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지, 열여덟 어린 나이에 피붙이를 잃고 부모 품을 떠나 타지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한 번쯤 힘들단 소리를 할 만도 한데 독하게 견뎠다. 저거 언제 철드나, 걱정하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재현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다.

    자책감에 사로잡혀 진현의 사고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며 울던 재현의 뺨을 때린 후, 민영은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홧김에 상처 입은 자식을 벼랑 끝까지 몰아세운 자신의 한심한 모습에, 너무나 창피하고 죽고 싶을 만큼 미안했다.

    그날 그렇게까지 몰아세우지 않았다면 재현이 해외로 떠날 결심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였어야 했는데,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멀리 보내 버렸다.

    미안했단 말조차 하지 않은 엄마를, 재현은 묵묵히 견디며 기다려 주었다. 형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늘 애쓰고 있었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린 아이는 진현뿐만이 아니었다.

    그런 재현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허락을 구했지만, 민영은 선뜻 그들의 사랑에 축하를 보내 주지 못했다.

    혜운을 봤을 때 좋았던 기억이나 행복했던 기억만 떠오른다면 참 좋겠지만, 아팠던 기억과 그날의 슬픔도 함께 떠올라 괴로웠다. 그것이 앞으로 계속 반복될 거라 생각하니 암담했다.

    혜운은 자신이 친자식 이상으로 아꼈던 아이고, 아주 많이 예뻐했던 아이였음에도 그런 마음을 내려놓는 일은 생각처럼 쉽게 되질 않았다.

    하지만 민영은 오랜 고민 끝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결심했다.

    재현이 또다시 무작정 견디고 기다리게 만들 순 없었다. 이미 재현은 충분히 견딜 만큼 견뎠고,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니까.

    이제는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원 없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어쩌면 이 결정은 두 사람이 만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 순간, 이미 정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재현과 혜운, 두 아이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함께 나고 자라면서 그 마음이 자연스레 남녀 간의 사랑으로 변했고, 결국 이렇게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혜운을 보면 진현의 기억으로 조금 힘든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무게라고 생각했다.

    간신히 다시 만나 사랑을 키워 가는 두 아이에게,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만큼 마음이 짠해지는 그 아이들에게 그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먼 길을 돌아 이제 겨우 다시 만난 그들에겐 매 순간이 흘려보내기 아까운 시간일 것이다.

    항상 내 마음이 상할까 봐 늘 마음 졸이고 있는 두 아이가, 자신의 축하를 받으며 더욱더 견고한 사랑을 이뤄 낼 수 있다면 이제는 그 손을 잡아 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두 사람이 지쳐 버리기 전에 말이다.

    민영은 대시보드 위에 붙어 있는 재현과 혜운의 사진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혜운은 같은 파트에서 근무하는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결혼식장은 하객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혜운은 인파를 헤치고 신랑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뒤, 먼저 도착해 있던 팀원들이 앉아 있는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선배.”

    귀에 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곳엔 무영이 서 있었다. 그는 비어 있던 혜운의 옆자리에 앉아 오랜만에 만난 팀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혜운도 무영이 본사로 이동한 후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만난 참이었다. 근무 환경이 좋은 건지, 그는 훨씬 더 멋있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선배는 더 예뻐졌네요? 배 아프게.”

    “너도 얼굴이 폈다. 일하기 좋은가 봐?”

    “내 홈그라운드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거드름을 피우는 무영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먼저 나왔다.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그의 모습이 왠지 반가워서였다.

    그때, 신랑이 먼저 새하얀 버진 로드 위를 씩씩하게 걸었다. 혜운을 비롯한 팀원들은 신랑을 향해 휘파람을 불고 손을 흔들며 격한 환호를 보내 주었다.

    “우진이 턱시도 진짜 잘 어울린다. 원래 저렇게 멋졌나?”

    “그러게. 인물이 훤하네. 앞으로 턱시도 입고 출근하라고 해야겠다.”

    다른 팀원들의 대화를 듣고 웃던 혜운은 고개를 돌려 입장을 준비 중인 신부를 보았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던 신부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고, 신부 아버지는 그런 딸의 손등을 다독이며 긴장을 풀어 주었다. 다정한 부녀의 모습에 혜운은 슬쩍 웃었다.

    “선배는 언제 결혼할 거예요?”

    주변이 소란스러운 틈에 파고든 무영의 질문에 혜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연애 좀 더 하고. 네가 먼저 하는 게 빠를 수도 있어.”

    “난 평생 혼자 살 건데?”

    “거짓말 치고 있네.”

    “진짜에요. 실연의 상처가 아물 기미가 안 보이는 게, 아무래도 아무도 못 만날 거 같아요.”

    혜운이 눈을 흘겼지만 무영은 연신 웃기만 했다.

    “그러니까 그 남자랑 헤어지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해요.”

    “박수나 쳐.”

    때마침 신부가 입장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근데 오늘 왜 남자 친구랑 같이 안 왔어요?”

    “어. 따로 일이 있어서.”

    오늘 진현의 기일이라 부모님과 함께 수목장림에 다녀온다고 했다. 시계를 보니 지금쯤이면 돌아왔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걸 보면 본가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선배 결혼할 땐 절대로 나한테 연락하지 말아요.”

    “왜?”

    “술 먹고 가서 깽판 놓을 수도 있거든요. 이건 진심이에요.”

    무영이 그럴 사람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줍지 않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던진 말이었다. 부담 갖지 않게 하려는 그의 노력에, 혜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할진 모르겠지만, 알았어. 꼭 그럴게.”

    혜운의 대답에 무영이 손을 내밀었다. 혜운은 무영의 얼굴과 손을 차례로 보곤 그의 손을 잡았다.

    “이렇게라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선배.”

    무영은 혜운에게 그 말을 남긴 채,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 미소가 왠지 모르게 씁쓸해 보였지만 혜운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기에 머지않아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을 좋아했던 일은 지나가는 추억이 되고, 그렇게 자연스레 잊힐 것이다.

    혜운은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었다.

    * * *

    민영은 경선을 만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았다.

    14년 전 동네를 떠난 뒤 이곳에 온 건 처음이었다.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그대로인 것 같아서 동네를 둘러보는 내내 기분이 묘했다.

    “차 한잔합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경선은 향긋한 페퍼민트 차를 내주었다. 민영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깊게 숨을 들이쉬며 차 향기를 만끽했다.

    “사는 게 왜 그리 정신없고 바쁜지…. 자주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선생님.”

    “아이구, 죄송할 것도 많네. 오히려 연락이 없으면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구나, 하고 마음이 놓이는걸? 괜찮아, 괜찮아.”

    차 한 모금과 그녀의 따스한 말 한마디에 온몸에 온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 민영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 두고 경선을 바라보았다.

    “이 동네 오랜만이지?”

    “네. 14년 만이네요.”

    “하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나?”

    경선은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보는 듯, 눈을 깜빡이며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선생님한테 드릴 말씀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작게 한숨을 몰아쉰 민영은 준비했던 말을 가만히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였다.

    경선에게만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다. 혹시나 자신이 잘못될까 봐 늘 노심초사하는 가족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었기에, 가장 믿고 의지하던 경선을 찾은 것이다.

    혜운의 외할머니이긴 하지만 그녀라면 자신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기까지 조금은 망설였지만, 오히려 오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살던 곳이라 그런지, 아니면 아픈 기억만큼 좋았던 기억이 많아서인지 정확하게 알 순 없었다.

    “선생님도 얘기 들으셨죠? 재현이랑 혜운이 만나고 있는 거요.”

    “응. 지난겨울에 들었어. 자네도 그즈음에 들었지?”

    “네. 얘기 듣고… 아직까지 시원하게 허락해 주지 못했어요. 저 때문에 애들이 눈치를 많이 봐요.”

    “자네한테도 시간이 필요했겠지. 혜운이 보면 진현이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본인 마음이 가장 무거웠겠네?”

    “그래서 그 착해 빠진 것들이… 제 마음 편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경선이 민영의 옆으로 다가와 와 앉더니,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나도 자식 먼저 앞세운 사람이라… 자네 마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 당연히 아프지, 아프고말고. 시간이 10년, 20년 지나 봐라. 그게 어디 가나…. 그건 평생 가슴에 묻고 가야 해. 나도 지금껏 그러고 살아.”

    “선생님….”

    “그렇게 힘들고 괴로워도 내가 이제껏 버티고 살았던 이유는… 우리 혜운이, 그 녀석 키워야 하니까. 나는 자식을 잃었지만, 그 아이는 엄마를 잃었잖아. 나마저 세상에 없으면 그 가여운 거, 천애 고아가 되니까… 이 악물고 버텼어. 독하게 참았지.”

    지나온 시간들을 꽤 담담하게 말했지만, 경선의 목소리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꾹 감기도 하고, 한숨 끝에 입술을 질끈 깨물기도 했다.

    “떠난 자식… 너무 가엽고 가슴 아프지만, 살아 있는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 살아 있는 내 자식도 너무 안쓰럽고 딱하잖아. 나 속상할까 봐, 엄마 보고 싶단 말 단 한 번도 못 했던 아이라… 나는 떠난 내 새끼보다 혜운이가 더 마음이 아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재현이가 딱 혜운이 같았다.

    본인 아프고 힘든 것보다, 부모 눈치 보느라 마음 놓고 형을 그리워하지도 못했다. 본인에게도 애틋했을 형인데, 자신의 탓이라는 자책감을 안은 채 살아왔다.

    그걸 알면서도, 민영은 내 고통이 더 크고 아프다는 핑계로 재현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었다.

    “제가 너무 어리석었어요, 선생님. 너무… 한심하게 살았어요.”

    민영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 내며 경선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민영을 따뜻하게 안아 주며 가만히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그렇지 않아. 자네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어. 내가 알아. 내가 다 알아. 나는 자네가 조금만 덜 아파했으면 좋겠어.”

    “죄송해요, 선생님…. 제 그릇이 이것밖에 안 돼서….”

    모두를 아프게 했다. 모두를 힘들게 했다. 지치게 만들었다.

    자신을 스스로 고통 속에 가둔 채, 고통을 붙들고 있었다.

    이기적인 행동에도 모두들 자신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너무도 미안했다.

    민영이 고개를 들고 손으로 눈물을 닦아 내자 경선이 손수건을 건네주었다.

    “앞으로 제가 잘할게요.”

    “이 사람아, 지금보다 어떻게 더 잘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대로, 그렇게 삽시다. 응?”

    이제 겨우 다시 만나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더 큰 사랑이 뿌리 내리고 단단해지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현에게 못해 준 것들에 대한 후회는 잠시 마음속에 넣어 두고, 긴 시간 동안 곁에서 함께 힘든 시간을 보냈던 가족들과 나중에 후회하는 일 없도록 살아 보고 싶었다.

    더 이상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지 않고, 그저 사랑하고 아껴 주면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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