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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가의 여우 황녀님 (43)화 (43/123)
  • 43.

    “흑마법사라니…… 어디서 갑자기……?”

    “게다가 분명 밀거래라고 한 거죠? 지금 이게 무슨…… 설마 저 사람들이…… 아, 아니겠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던 것도 잠시 사람들은 샬롯이 여전히 흔들림 없이 가리키고 있는 검 끝에 서 있는 자들과 그녀가 한 말로 인해 무슨 상황인지 파악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향하고 그들이 방금까지 하던 행동을 모두가 목격했다.

    그 순간, 비명이나 혼란스러운 소음보다는 적막이 감돌았다.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사람들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것이었다. 그때 이질적인 음성이 공연장의 침묵을 깼다.

    “용케 알아봤네?”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지.”

    샬롯의 행동 때문에 주목받게 된 흑마법사 두 사람이 서로 농담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가벼운 말투와는 다르게 그들은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연회장 주변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비병들이 몰려와 두 사람을 둘러쌌다.

    “더는 움직이지 마라! 바닥에 엎드리고 손은 머리 위로 올려라!”

    경비병들은 그 자리에서 흑마법사들을 붙잡기 위해 경고조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에리스텔라의 얼굴은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 말을 따를 리가 없잖아.

    경비병들은 저 두 사람을 상대할 수 없었다. 시간을 버는 것만으로도 벅찰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정체를 들킨 와중에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별수 없지. 피곤해지기는 했지만 이렇게 눈에 띄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니까.”

    그들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에 대해 말을 맞춰놓기라도 했는지 망설임 없이 동시에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면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튀는 불꽃. 갑자기 주변에 있던 유리잔들이 깨지고 파편이 공중에서 불특정 다수를 노리며 뿌려지자 공연장은 눈 깜짝할 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꺄아아!”

    모두가 속수무책인 상황.

    혼란과 위험에 빠져 있는데, 에리스텔라가 그 모습을 예의주시하며 샬롯을 지켜봤다.

    그 상황 속에서도 샬롯이 그들을 바라보며 조소를 흘리고 있었다.

    “감히 내 공연을 망치다니. 이 치욕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아아…….

    샬롯이 저런 성격이라는 걸 잠깐 잊고 있었다. 에리스텔라가 짧은 앞발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예전에 누구였던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황녀 전하와 딜라일라 영애님께서는 확실히 같은 피가 흐른다는 게 느껴집니다. 특히 성격이…….’

    그때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지금 자신과 별다르지 않을 거 같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이대로 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에리스텔라가 고개를 번쩍 들어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아비규환인 상황. 온갖 비명과 울음소리가 한데 섞여 있고, 서로 도망가기 위해 밀치고 넘어트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정말로 걱정했던 상황이 펼쳐졌다.

    이대로는 안 돼. 어떡하지.

    에리스텔라가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이대로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건 무리였다. 상황을 수습하려면 역시 저자들의 발을 묶어야 하는데…….

    ‘잠깐만. 혹시…… 가능하려나?’

    번뜩 한 가지 방법이 떠오른 에리스텔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떠오른 게 있기는 한데, 그게…… 그것이…….’

    에라, 모르겠다. 일단 한번 시도라도 해 보자.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은 들지 않지만, 지금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에리스텔라가 몸 안에 쌓여 있는 마력에 집중했다.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려서……. 일단 주문을 외우고…….

    그때였다.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굵고 낮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대신, 수많은 사람의 비명 대신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배경 속 소음처럼 변해 있었다.

    “이건 뭐야? 어디서 이런 게 나타난 거야?!”

    “생뚱맞게 물고기가…… 이거, 설마 그건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다는 사람 피를 빨아 먹는다는 물고기…….”

    방금 그 말이 맞았다. 방금까지 공격을 자행하던 이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물고기떼.

    그건 에리스텔라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물고기로 특정 사람을 공격하는 게 가능했다.

    “대체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이런 시답잖은 농지거리를!”

    흑마법사들의 위협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고기들의 이빨은 마치 육식동물처럼 강력하여 그들을 물어뜯기 기 시작했다. 아득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흑마법사들이 분노하며 외쳤다.

    “으아아악!”

    “없어져! 없어지라고!”

    “대체 어떤 놈이야! 당장 없애지 않으면 가만두지…… 으아아아!!!”

    고통에 몸부림치며 흑마법사들은 결국 허둥지둥 도망쳤다. 하지만 물고기떼는 끈질기게 그들을 쫓았다.

    그들의 다리에서 피가 나고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어서 넘어질 때까지.

    ‘왜 안 와? 이쯤 시간 끌었으면 빨리 와야지!’

    에리스텔라가 초조하게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다행히 늦지 않게 기사단이 도착했다.

    “저들을 제압하라!”

    신호와 함께 기사단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그들이 흑마법사들을 제압할 수 있도록 에리스텔라가 물고기들을 마법으로 절묘하게 조절했다.

    기사단은 그 사실을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일순 만들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물고기떼가 물러난 순간 기사들은 지체하지 않고 흑마법사들을 붙잡았다.

    “이들은 더 이상 마법을 쓸 수 없으니 안심하십시오. 또한, 오늘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증언이 필요하니 추후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사단은 불안해하는 이들을 진정시킨 다음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서야 혼란스러웠던 상황이 다소 수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회의 참석자들은 도망치듯이 빠져나가기 바빴지만.

    그 와중에 에리스텔라는 자신의 네 다리를 빤히 쳐다봤다. 마력이 몸 안을 돌고 있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치 운동 직후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처럼. 오랜만에 느끼는 마력의 세찬 움직임에 에리스텔라는 감동하고 있었다.

    ‘헤헤헤.’

    물고기떼를 만들어 내 공격하는 것.

    보기에는 별거 없어 보이지만 실은 상위 마법이었다.

    상위 마법치고 효율적이지 않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동안 축적해 놓았던 마력을 사용해 해결할 수 있었다.

    ‘돼, 됐어……!’

    에리스텔라가 신이 나 깡총거렸다.

    ‘내 마력이 드디어 활약했어!’

    방금까지 어떤 상황에 무슨 분위기였는지 완전히 잊어버린 채 여우가 방방 뛰었다.

    기쁜 마음에 복슬복슬한 꼬리까지 같이 흔들었다.

    ‘역시 나는 너무 대단한 거…….’

    “연회는 이대로 끝났네. 이제 돌아가자.”

    어느새 다가온 샬롯이 여우를 들어 안으며 말했다.

    ‘어……? 연회가 끝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리스텔라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그런데 이번 연회도 이렇게 파투가 나 버린 건가?’

    어째…… 여우가 된 후로 참석한 파티에서 항상 사달이 나는 것 같다. 그 결과, 연회는 매번 흐지부지되었고.

    내가 황녀일 때도 연회를 여러 번 망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억울한데?

    ***

    뚜벅뚜벅.

    복도를 울리는 걸음 소리.

    관리가 잘되어 있는 대공가의 다른 공간들과는 달리 방치된 지 한참 된 듯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복도의 끝에는 선대 대공의 집무실이 있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단 한 번도 들어온 적 없었던 방.

    그런데 늘 굳게 닫혀 있었던 그 문을 하인리시온이 직접 열었다.

    케케묵은 먼지들.

    그 안에 방치되어 있던 서적들.

    선대 대공이 죽기 몇 년 전부터 몰두했던 연구 자료와 그가 집필한 책들이 있었다.

    평소에도 연구광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순간부터 모든 일을 뒤로하고 연구에만 몰두했었다.

    그로 인해 대공가에 불안이 퍼지고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선대 대공은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때는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예전과 같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에 하인리시온 또한 답답함을 느꼈었다.

    마침내 자신에게 끝까지 숨겨 왔던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하인리시온은, 아버지의 기행이 떠올랐었다.

    그 당시에 아버지가 무엇에 그리 집착하고 파고들었는지.

    그리고 아버지라면…….

    설사 실패했더라도 자신이 연구한 모든 기록을 정리해 놓았을 것이다.

    그 버릇만큼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으니까.

    그러니 이 안에는 오로지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진 광적인 연구 자료가 있을 것이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수많은 가설 또한 이곳에 묻혀 있을 게 뻔했다.

    ‘분명 흑마법과도 관련이 있겠지.’

    지금 자신들에게 가장 필요한 흑마법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있을 가능성도 컸다.

    하인리시온은 손을 뻗어 집무실 안에 있는 책을 한 권 집어서 펼쳤다.

    고작 단 한 장.

    방대한 책 중 겨우 한 장을 펼쳤을 뿐인데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비밀스러운 마법부터 흑마법까지. 게다가 흑마법의 성질을 이용한 변형마법을 실험한 것도 있었다.

    금기에 가까운 위험천만한 연구들. 비록 이 연구로 어머니를 구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는 건 아니었다.

    새로운 접근방식. 유의미한 효과. 어느새 책 속에 빠져든 하인리시온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렇게 한 권, 두 권…….

    닿을 듯 말 듯 정확한 내용은 나오지 않을 때였다. 선대 대공이 직접 집필한 책을 보던 도중 손끝이 멈췄다.

    ‘마지막은…… 미완성이네.’

    결국, 미완성으로 끝난 책이었지만 그 안에는 하인리시온이 계속 찾던 내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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