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보스!"
"잘 다녀와요."
주말, 은준들이 뉴-카파로 나오는 날 그는 퉁야를 일찌감치 집에 보내주기로 했다. 정확히 날짜를 따지자면 이틀 정도 더 벤시몽에서 일을 해야 했겠지만, 당장 농장이나 저택에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평일에 도시까지 데려다주려면 그게 더 귀찮겠다는게 은준의 생각이었다.
퉁야도 그정도 계산을 모르는 것은 아니겠으나, 어쨌든 그 며칠이라도 더 일찍 짐바브웨에 있는 집에 돌아갈 수 있다니, 그 전날 다시 한번 물탱크를 채우고 저택을 돌아보았다.
퉁야가 떠나고 함께 도시로 나온 야는 먼저 성당에 내려준 터라 혼자 있게된 은준은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천천히 시장을 걸으며 가판에 걸려있던 신문을 한 부 사 들고다니다, 길 옆 신선한 쇠고기로 두툼한 스테이크를 파는 가게의 냄새에 이끌려 그 안에 들어가 주문을 했다.
너무 기름지지도, 너무 딱딱하지도 않은 스테이크는 순식간에 접시 위에서 사라졌다. 벤시몽에서 뉴-카파 까지는 차로 이동해도 4시간은 걸리는 터라, 야가 성당에 시간 맞춰 가기 위해선 새벽 일찍 출발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이 날 아침만은 달리는 차 안에서 간단하게 해결하곤 했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먹던 은준이 그런것으로 배가 채워질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침도 먹고, 방금 볶은 아프리카 커피로 차 까지 한 잔 마시며 신문을 마저 읽은 그는 또 할 일 없이 시장을 한바퀴 돌며 시간을 보냈다.
은준이 다시 차를 몰고 시간에 맞춰 성당 앞에 대기하고 있자, 잠시후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는 차 안에서 창 밖으로 야들이 언제쯤 나올까 지켜봤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돌아갈 때까지 그녀는 나오지 않았고, 은준이 이상하게 생각할 때쯤 마지막으로 성당 문으로 세 명이 더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옳지, 이제 나오는군!"
그럴리는 없겠지만, 야가 도망이라도 친 것인가 얼토당토한 망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는, 야의 모습이 보이자 언제 그랬냐는듯 차에서 내려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성당에 다니지 않는 그가 보기에도 그녀와 동행하는 이들 중 한명은 성당의 수녀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함께 나오는 걸 보면 제법 친한 사인가 보지? 배웅이라도 하려나보군."
때마침 야도 은준을 발견했는지 그와 수녀와 동생간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은준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러자 야의 동행들도 고개를 돌려 은준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아, 이분은 저흴 보살펴주시는 테레사 수녀님이세요. 그리고 이 애는 제 동생이고요. 얌이에요. 그리고 이분은 제 보스시고요."
야가 얼른 나서서 소개를 했다.
"반갑습니다. 김은준입니다."
"안녕하세요. 나눔자리에 있는 테레사라고 합니다."
"안녕. 얌이에요."
테레사라고 불린 수녀는 전형적인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 사람이었는데, 정확히 나이를추측하기는 어려웠지만 족히 사오십대는 되어보였다. 문득 테레사 수녀라고 하니 오래전 작고하신 테레사 수녀님이 생각났지만, 외양은 전혀 달라 기골이 장대했다.
'과연 수녀님에게 할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은준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테레사 수녀의 키는 남자인 은준보다 더 컸고, 수녀복으로 가렸음에도 떡 벌어진 어깨는 도무지 가려지지가 않았다. 은준은 마치 그녀가 여전사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유명한 테레사 수녀와는 적어도 겉모습은 180도 반대였다.
가까이서 본 얌은 이제 15살이 되는 여자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숙해보였는데, 과연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외모와 달리 한 손을 들어 흔들며 인사하는 뽐세나 시종일관 히쭉히쭉 웃으며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은준 본인을 살피는 모습이 과연 아직은 애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서로 소개를 마친 네명은 잠시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깊이는 깊지 않았고 길게 이어지지도 않았다. 은준은 다만 테레사 수녀가 자신을 살펴보는 기색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헤어지고나서 트럭에 올라타 벤시몽으로 가는 길에 야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는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녀님께서 조금 걱정을 하셨거든요. 이런 말씀 드리면 기분나빠하실 수 있으시겠지만..."
야가 말꼬리를 흐렸지만,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본 은준은 그녀가 채 말하지 못한 그 사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가슴이 뜨끔하여 뭐라 대꾸를 하지 못하고 말없이 차를 몰았다.
그렇지만 난관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왜 자꾸 쳐다보는거지?'
은준은 운전을 하면서 흘깃 곁눈질로 옆좌석에 앉은 얌을 살폈다. 그녀는 대놓고 고개를 운전중인 은준쪽으로 돌리곤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살펴보고 있었다. 게다가 눈이 마주친 것 같았음에도 고개를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은준의 머리속엔 의문만 짙어졌다.
그러던중 은준은 부담스러운 눈빛이 가신 것 같아 슬쩍 옆을 쳐다보니, 얌이 더이상 그를 보고 있지 않음을 알고 슬쩍 안도하였으나, 이내 헛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눈이 그의 얼굴쪽에서 사라진 것은 다행이었으나, 이번엔 그의 아래쪽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다른걸 보는 거겠지? 착각이야 착각!'
은준은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시선이 너무나 노골적이라 신경을 쓰지 않을수가 없었다. 게다가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니 어째서인지 혈류가 집중되며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다.
'헛! 안돼!'
라고 생각했지만, 터진 물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혹여 눈치를 챘을까 싶어 슬쪽 눈을 돌려 얌을 살피던 은준은 마침 그를 올려다보는 얌의 시선과 마주쳤고 얼른 앞을 향해 눈을 돌렸지만, 이미 등골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얌은 그를 보며 배시시 웃고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난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얌의 왼손이 슬며시 운전석 쪽으로 넘어왔던 것이다.
슥슥.
끼이익! 덜커덩텅!
갑작스런 트럭의 폭주에 야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꺅!"
다행히 차가 고장난 것은 아닌듯 이내 평소대로 가기 시작했으나 은준의 심장은 도깨비 방망이를 달아놓은 것처럼 쿵쾅거림이 가실줄을 몰랐다.
야가 괜찮냐는듯 쳐다보았을 때에는 이미 얌의 손은 얌전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있었다.
"괜찮으세요?"
"어어, 괜찮아, 괜찮아!"
은준은 서둘러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야의 표정을 살피는걸 잊지 않았는데, 그녀는 동생이 뭘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리던 은준은 필연적으로 옆자리에 앉은 얌과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방금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듯 그저 생글생글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끼이익!
트럭이 벤시몽 저택에 도착하자 야는 얌을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얌은 제 방에서 같이 재우도록 할께요."
"어, 그렇게해."
은준이 허락하자 둘은 곧 계단을 올라가 이층으로 사라졌고, 혼자 남은 은준은 싱숭생숭한 마음 때문에 진득하게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수선을 떨었다.
"대체 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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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옵니다. 추적추적....추적?
잠시후...
"비가 지나갔다! 비가 어디로 갔는지 추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