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39화 (39/107)

39화

은준이 보아온 야로 말할것 같으면, 그야말로 성실과 근면함의 표상이었다. 그렇다고해서 그녀가 그의 눈에 띄게 동분서주하며 먼지를 폴싹폴싹 피워대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은준은 그녀가 있는지 없는지, 그가 무언가 필요한게 없을 때에는 그녀가 먼저 그 앞에 나서는 적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준은 이곳 벤시몽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빠른 교통, 인터넷, 전화, 충분한 전기 등의 문명의 이기로 인한 편리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배가 고플땐 항상 식사와 간단한 과일같은 것들이 식탁 위에 준비되어 있었고, 그의 옷장엔 뽀송뽀송하게 마른 속옷과 옷가지들이 준비되어 옷장 바닥이 보이는 일이 없었다. 게다가 농장에 나가 일을 하기 위해 작업복을 찾을 때면, 전날 밖에서 뭍여온 흙먼지나 흙덩이는 하룻밤 사이에 어디론가 사라져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집 안도 항상 청결했다. 원래 깨끗할 때에는 사람이 신경을 안쓰기 때문에 깨끗한지 어떤지 잘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뭔가 더러운게 있을 때에는 신기할 정도로 눈에 띄여 거슬리게 되어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은준은 한 번도 그것에 대한 불평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 말은 곧 야가 항상 저택을 관리하는데 빈틈이 없었다는 말과 다름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뭔가 바라는게 많기라도 하냐면 그것 역시 아니었다. 말 그대로 있는듯, 없는듯. 누가 이 집의 주인이고, 누가 고용인인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처우에 만족하고 있는 야 였다. 그런 그녀가 거진 반년만에 은준에게 뭔가 부탁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 야를 보는 은준도 뜻밖의 이 상황에 의아해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야도 퉁야처럼 휴가를 달라고 하는건 아니겠지? 원래 계약 조건에 그런 내용은 없었지만, 같이 고용된 퉁야는 4개월이나 휴가를 가는데 자기는 안보내준다고 불평등하다고 한다거나? 만약 야가 그만 두거나 정말 휴가를 보내줘야하면, 여긴 어떡해!'

은준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야를 고용한 것은 아프리카로 날아와 한 일중 가장 잘 한 일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아프리카로 날아오기 전에 보았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 이민 한국인들이 올린 경험담을 떠올리면 야와 같은 가정부를 찾는 일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며칠 휴가를 줘야하나? 끙, 어쩔 수 없으려나. 뭐, 며칠 정도야 청소쯤은 안해도 별 일 없겠지.'

은준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는 야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어,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거야?"

일단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치미를 떼는 은준. 어차피 휴가 건은 그 혼자만의 상상일뿐, 실제로 야가 뭔가 언급을 한 적은 없었으니 굳이 그가 먼저 제발저릴 필요는 없었다. 그랬다간 괜히 야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바람만 넣어줬다가 진짜 휴가를 줘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몰랐다. 원래 거래란 아쉬운 사람이 먼저 말하는 법이란걸 은준은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 할 일은 일단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듣는 일이었다. 그 뒤는 듣고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저기, 제가 이런 말씀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는데요..."

야가 머뭇거리며 말을 길게 끌자 은준의 가슴이 철렁했다.

'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기에 저런담!'

"그래, 그래. 할 말 있으면 해봐."

"...이제 겨울이 오잖아요."

"그렇지!"

은준은 적당히 호응을 해줬다. 그렇지 않는다면 야가 본론을 언제 꺼낼지, 그것을 기다리다가 그가 속이 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 제가 부탁을 한가지 드릴께 있는데..."

야가 또 한번 말을 끌자 은준은 목이 타며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다른게 아니라, 제 동생 얌이라고 있는데요."

"그래, 알지."

얌이라면 야의 여동생으로 야보다 3살 적은 아이로, 아직 뉴-카파에서 학교를 다니며 야와 함께 지내던 그 성당에서 살고 있었다. 실제로 은준은 얌과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주말에 야를 데려다주고 또 데려오면서 창밖 너머로 얼굴을 본 적 있는 아이였다.

'발육은 아이라고 하기엔 좀 뭐하지만.'

혼혈인 야와 얌 중 야는 동남아나 동북아 쪽 동양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반면, 동생인 얌은 서양인의 피가 더 짙었는지 거의 혼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다보니 그 특성마저도 비슷해, 좀처럼 미성년자로 보이지 않을 만큼 외향적인 면은 야 만큼이나, 어쩌면 야보다 더 발육이 잘 되어있는 부분마저 있을 정도였다.

은준이 전에 보았던 얌을 떠올리는 사이 야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질질 끌던 이야기의 본론을 꺼내놓았다.

"이제 얌이 다니는 학교의 방학 시즌인데요, 얘가 방학 동안만이라도 저와 함께 있고 싶다고 해서... 물론 제가 일을 쉬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다만, 보스만 괜찮으시다면 얌을 방학 동안만이라도 이곳에서 제가 데리고 있을 수 있으면... 싶어서요."

한번 입이 터지자 자신이 말을 멈추면 은준이 안된다고라도 할까봐 서둘러 말을 빨리했다.

은준은 뜻밖의 요청에 고민에 들어갔다. 이곳의 학기제도는 한국과 약간 달랐는데, 1년중 방학이 총 4번에 걸쳐 있었고, 다만 그 기간이 한국에서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결국 한국에서 1학기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나뉜다면, 그 중간에 이곳은 방학이 한 번 더 껴있는 정도였다. 즉, 1학기 중간고사 끝나고 방학, 1학기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 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날때 한번씩 방학. 이렇게 총 4번의 방학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얌이 이곳에서 방학을 보낸다 할지라도 길어봤자 2주 정도밖에 머물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어쨌건 벤시몽과 뉴-카파를 왔다갔다 하려면 주말을 껴야 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은준이 기간이나 여러가지 얌이 이곳에 왔을때 벌어질 예기치 못할 상황에 대해 혹은 예상 가능한 상황을 생각해보는 동안, 야는 그의 입에서 안된다는 소리가 나올까 싶었는지 열심히 얌에 대한 좋은점을 이야기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가만히 있을땐 몰랐는데, 야도 입을 여니까 은근히 말이 빠르네...'

"얌은 자길 닮아서 착하고(?) 성당에서도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사고친적도 없고, 싹싹하고, 자기 일도 잘 도와줄거며, 어쩌고 저쩌고... 그러니까 여기 와서도 마을 아이들도 얌을 잘 따를거에요. 등등등!"

"아, 그러고보니 얌이 선생님이 되는게 꿈이라고 했나?"

"네,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예전에 처음 야하고 면접 볼때, 그때 야가 내게 그랬었지."

은준은 거기까지 말 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후 입을 열었다.

"혹시 말이야, 그러면 이런걸 해보면 어때?"

"어떤걸... 말씀이시죠?"

"얌이 말야, 선생님이 꿈이라면 방학때만이라도 여기에 와서 마을 아이들을 가르쳐보는거야! 어때?"

"얌이, 아이들을요?"

야는 은준이 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자 한결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겨우 15살도 안된 동생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이 선생님이라고 지금 당장 누굴 가르칠 수 있을지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자기가 못한다고 말을 하면 혹여나 보스인 은준이 얌을 데려오는 것도 반대를 할까봐 선듯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얌이 벤시몽에 오는 것은 동생이 먼저 말을 꺼낸 것이긴 했지만, 언니인 야도 지금처럼 동생과 오래 떨어져있어본 적이 없어서 어린 동생을 가까이서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준은 야가 망설이는 것 같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말을 이었다.

"거창한 건 아니고, 기본적인 읽고 쓰는 문제랑 산수 같은건 얌도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방학이 긴 것도 아니고, 또 마을 애들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 하루 한두시간쯤? 그냥 뭘 가르친다기 보다는 아이들을 돌본다고 생각하면 될거야."

"아, 아이들 돌보는 건 잘 할거에요. 지금 성당에서도 고아인 아이들은 언니나 형이 돌보거든요."

"그럼 더 잘됐네!"

"저, 그러면 얌을 데려와도 될까요?"

"응, 그래. 그렇게하도록해. 이번에 퉁야랑 나갈때 데려오도록 하자."

그렇게 일은 일단락 되었다. 사실 은준으로서는 야가 걱정했던것 만큼 얌이 보름정도 머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다. 너무 커서 딴 마음을 품을것 같지도 않고, 또 너무 어려서 사고치고 다닐 나이도 아니고. 한편으론 야를 보면 동생도 나쁜 아이일 것 같지도 않았다. 은준의 경계심이 '남성+어른'에 대해 최고조에 이른다면 그 반대인 '여성+아이'의 경우일때에는 경계 대상중 가장 수위가 낮다고 보면 되었다.

다만 그가 생각하기를, 미래의 직원(?)이라 할 수 있는 마을 아이들에게 글과 숫자만이라도 가르쳐놓는다면 몇 년 후만 되어도 유용한 인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계산이 깔려있기도 했다. 지금이야 돈이 없어 기계도 못하고 별다른 시설 없이 트랙터 두대로 옥수수 농장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앞으로까지 이러진 않을것이란게 은준의 생각이었다. 그 때가 되면 분명 여러 기계와 시설을 다루고 또 규모가 커진 농장 일을 보기 위해선 글과 숫자를 아는 이들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복리후생이지. 나야 뭐 꿩 먹고 알 먹고. 이걸로 야에게 내 점수가 좀 올랐을까?"

당연한 말이지만, 욕구를 풀지 못하고 있는 은준으로서는 여전히 야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치야님, 녹색의향기님, fldzjs12님, 마비류연마님, 천지패황님, 울퉁불퉁님, 중앙시장님, 전모삽님, 남장기바둑님, 중12님, 파블님, 에르시리나님, 안녕하세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ㅎㅎ성인노블은 음, 그쪽 묘사는 한번도 안해봐서...ㅎㅎ 그리고 나이 때문에 그냥 노블 보시는 분도 계실것 같아서 일반 노블로 연재하고 있습니다.^^야에 대한 묘사는 머라이어캐리라니요!! ㅋㅋㅋ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전에 처음 묘사때에도 동남아필이라고 했었는데 ㅜㅜ 60%는 흑인, 40%은 백인 비율로, 얌은 반대로 70% 백인에 나머지 흑인이고요 ㅎㅎㅎ 그런데 머라이어캐리가 혼혈인가요? 관심이 없어서;;;;;;

그럼 전 다음에~~ 슈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