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다음날부터 은준은 더욱 의욕적으로 농장 개발에 열을 올렸다. 아침에 일어나 달걀과 소젖을 짜는 평범한 일과는 변함 없었지만, 퉁야 그리고 쉬사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황무지의 개간 작업은 점점 속도를 붙여갔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경험을 쌓으며 익숙해지자 하나의 틀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작업의 효율성이 높아짐을 뜻했다.
"그럼 쉬사네는 퉁야씨와 같이 차 타고 가서 마을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해봐요. 조건은 동일하게, 알았죠?"
은준이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시행한 일 중 하나는 쉬사네를 퉁야나 야 처럼 직원으로 채용한 것이었다. 물론 정식으로 사업자로 등록한 것이 아니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직원이라기 보다는 개인과 개인간의 계약관계라고 하는게 옳았지만, 곧 정식으로 회사로 등록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렇게되면 야를 제외한 퉁야와 쉬사네는 회사 소속 직원으로 돌릴 예정이었다. 물론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마을 주민들은 전과 동일하게 일용직으로 고용하게 될 것이었다.
쉬사네를 일용직에서 정식 직원으로 계약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벤시몽 농장을 곡물회사로 회사를 설립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쉬사네는 도시에 유학(?)까지 다녀온 인물이긴 했어도, 따지자면 뉴-카파에 가기만 해도 그만한 인재를 찾는건 너무나 쉬운 일이긴 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야도 쉬사네에 비하면 학벌이 전혀 떨어지지 않으니 말이다. 다만 쉬사네의 경우엔 도시와 매우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유일하게 도시로 나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주변 마을과의 연결점으로 쓰면서도 학교나 도시에서 배운것이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시키기에도 편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시에서 학교까지 마쳤음에도 다시 도시와 멀리 떨어진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쉬사네의 구미에도 맞는 제안이었다.
그렇게해서 아침에 퉁야가 트럭을 몰고 쉬사네들을 데릴러 나가면 은준은 먼저 트랙터를 몰고 개간 작업을 시작했다. 퉁야의 트럭은 일종의 셔틀버스인 셈이었다. 그리고 쉬사네들과 마을 사람들이 벤시몽 농장에 도착하면 퉁야는 트럭을 쉬사네에게 넘기고 은준의 뒤를 따라 트랙터를 몰고, 마을 주민들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돌과 잔뿌리 등을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그러는 사이 쉬사네는 새롭게 계약을 체결한 마을로 트럭을 몰로가 사람들을 실어왔다.
농장은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점차 일이 손에 익으면서 익숙한 작업에 속도가 붙었고, 벤시몽 저택 앞으로는 10헥타르 단위로 옥수수밭이 들어찼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도 열흘째가 되어선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상황에서 이보다 더 크게 키워봤자 내가 감당을 못해. 사실 지금도 큰 모험이지."
옥수수 농사라지만 땅만 갈아놓은다고 저절로 옥수수가 돈이 되는게 아니었다. 봄이되면 종자를 심고, 비가 오지 않으면 말라죽지 않게 물도 줘야 한다. 슈퍼옥수수가 잡초에 강하지만, 100% 근절되는 것이 아니니 중간중간 관리도 해줘야했다. 거기에 수확은? 또 보관은? 옥수수만 심어놓으면 정부에서 때 맞춰 찾아와 친절히 옥수수까지 수확해가진 않을 터였다. 당연히 수확한 옥수수를 자루에 담아 창고에 쌓아놔야 운송트럭이 와서 실어갈 것이다.
은준은 이제 이모작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마음에 여유를 찾은 그는 일단 첫 해는 다른곳과 마찬가지로 한번만 재배를 하고 저택 앞의 작은 텃밭에다만 이모작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100헥타르면 굳이 모험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큰 이익이었다. 시험을 통해 데이터를 확보한 뒤에 이모작을 하여도 충분했다.
그리고 휴경지를 두어 지력을 회복시키려던 계획도 철회했다. 휴경지를 둘 생각은 비료나 퇴비의 구입에 관한 문제에서 나왔다. 은준이 가진 자본으론 그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탐대실이었다. 차라리 1년 옥수수를 재배해 얻은 수익의 일부를 비료 구입으로 쓰는게 더 이익이었다. 아직은 아프리카에 공산품 가격이 비싸다곤 해도 비료값이 금값이 아닌 이상 땅을 놀리지 않고 옥수수를 재배했을때 얻을 수익이 거기에 들어갈 비료값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물이지."
은준은 고민했다. 땅이 너무 넓었다. 물이 솟는 은준 소유의 샘에서 물을 떠 밭 끝에 물을 주려면 한 사람이 물동이를 지고 15분은 걸어가야했다. 한 사람이 하루종일 해서 과연 몇 번이나 왕복할 수 있을까? 또 어찌어찌 저택의 샘에서 물을 공급한다고 해도 100헥타르나 되는 밭에 전부 물을 댈 수 있을만큼 용수가 충분한지도 의문이었다.
"하늘에만 맡겨놓고 있기엔 불안하고..."
한국에 장마철이 있듯 이곳에도 우기가 있다. 은준이 아프리카에 와서 겪은 대로라면 크게 물 걱정이 안 될만큼 충분히 비가 오긴 했지만, 기후란게 가뭄이 들 때도 있고 반대로 범람하는 때가 있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이모작을 하려면 봄과 가을에도 충분히 물을 공급해줘야만 했다.
"강이 있기는 한데, 거기서부터 끌어오기엔 너무 멀군. 나 혼자 그러 대형 토목공사를 벌이긴 어려운 일이지. 그렇다고 리소테 정부에서 나설 일도 아니고."
은준이 리소테 정부로부터 옥수수를 팔기로 벤시몽 일대를 싸게 구입하였지만, 그뿐이었다. 그 다음은 은준이 해결할 일이지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랬다면 차라리 은준을 배제하고 정부소유의 농장을 세우는게 옳았다.
"저수지라도 만들어야하나? 하지만 이것도 수로 만큼이나 큰 일이긴 하지. 아니면 지하수를 찾기라도 해야할지도... 그래도 저수지가 가장 싸게 먹히겠군."
지하수를 찾고 파이프를 박아 물을 끌어올리려면 마을 사람들로는 불가능했다. 도시에서 기계를 가진 사람을 불러 써야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엔 달러가 필요했다. 리소테 왕국은 사실상 왕가의 재산으로 굴러가는 나라라고 보면 됐다. 그들이 소유한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나오는 재산으로 왕국내 물가를 조정하고 있었다. 때문에 은준이 전에 트럭을 사거나 했던 일처럼 왕국의 보조가 없는 일에는 달러가 통용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은준은 트럭을 사는데 몇천만, 몇억 리소테 랜드를 지불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리소테 랜드와 달러의 환율차가 컸다.
어쨌건 지하수를 파는건 달러가 들지만, 저수지를 파는건 마을 사람들에게 일당을 주면 되는 일이니 그 비용이 천차로 저렴함이 당연했다. 물론 사람이 손으로 삽질을 하는 일이니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이래저래 쉬운 일이 없군. 그나마 쉬운건 창고를 짓는 건가?"
은준은 100헥타르에 달하는 옥수수 밭을 만들자 더이상 밭을 개간하는것을 멈췄다. 지금 인원으론 제 때에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등의 작업을 하기 위해선 너무 커도 문제였다.
"돈을 벌면 다른 농기계도 더 사서 효율을 높여야겠어!"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 지금은 창고를 짓는게 먼저였다. 옥수수를 수확해놓고 밖에 두었다 비를 맞출순 없는 일이었다. 전량 리소에 왕국에서 구입하기로 했지만, 그들이 와서 실어갈 때 까지 보관할 창고는 필수였다.
"퉁야, 쉬사네. 앞으론 창고를 지어야해요. 물론 콘크리트로 지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일단은 원주민 식으로 하죠. 임시 창고라고 봐도 되요. 나중에 자금이 되면 크고 튼튼한 창고를 지을거니까 지금은 작게 가보죠."
"알겠습니다, 보스. 그럼 어디에 창고를 세울까요?"
"위치는 저택 반대쪽으로 해서 옥수수밭 건너편에 지으려고 해요. 군데군데 떨어트려서 짓지 말고 한데 모아서 짓도록 해요. 그리고 사이엔 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간격을 두도록 하고요. 뭐 지원이 필요한게 있나요? 쉬사네."
"아, 예. 창고야 마을에 있는 것처럼 만들면 되니 다른 재료는 주변에서 구하면 될겁니다. 하지만 옥수수 창고라면 다른 야생 동물이 들어와 훔쳐가면 안되니 문은 제대로 된 걸 달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철문까지 필요하지는 않을거에요. 퉁야, 우리가 가서 나무문짝을 사오도록 하죠. 아니면 목재를 사다가 저번처럼 판자를 이어 문을 만들어도 되겠군요."
"사람도 있고 시간도 있으니 만드는게 더 싸게 들어갈겁니다. 창고를 지을때 문틀을 짜넣고, 거기에 맞춰 목재를 가로세로로 엮어 못질을 하면 창고문으론 쓸만할 겁니다."
"흠, 그래도 창고가 한두개가 아닐테니 문도 많이 만들어야겠군요. 작업에 필요한 도구가 있어야겠어요. 이럴줄 알았다면 전에 울타리를 세울때 마련해놓는건데..."
은준이 생각하는 원주민식 창고는 흙벽으로 지은 단층짜리 창고였다. 물론 창고와 집의 차이가 없었지만, 안에 사람이 사느냐 아니면 안 사느냐에 따라 부르는 말이 다를 뿐이었다.
"어쨌건 쉬사네는 여기서 창고를 짓는걸 관리 감독 하도록 해요. 퉁야는 나와 가죠. 이번에 가면 앞으로도 쓸 일이 있을지 모르니 작은 엔진톱 같은걸 사도록 해요. 톱 달린 선반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파는질 모르겠네요."
은준은 목공소에서 봤던 큰 원형톱이 달린 선반을 생각했다. 고정된 톱날이 돌아가고 있으면 거기에 목재만 밀어 넣으면 되니 작업 속도가 굉장히 빠를 터였다. 하지만 구입도 문제고 보관도 생각해볼 문제였기 때문에 기름을 넣어 사용하는 엔진톱에 생각이 기울었다. 그래도 한가닥 관심을 끊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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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벽이란님, 정근님, 천마왕님, Brilliant님, 진찰주님, 치매드래곤로드님, 너를비평한다님, 똘랭님, 백수의 시간님, 전모삽님 안녕하세요~ 쿠폰 감사합니다 ㅎㅎ천마왕님의 댓글이 두개라 압박이...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