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은준의 아버지는 얼마 되지 않아 전화를 받아들었다. 한국과 은준이 있는 곳과의 시차는 대략 7시간 정도로 한국이 더 빨랐다. 은준이 서둘러 전화를 건 것이 외려 한국에 있는 그의 아버지에겐 낮 시간에 전화한 셈이 된 것이다.
"어허허! 아들, 어쩐 일이야?"
갑작스런 전화였지만, 외지, 그것도 바다 건너 아프리카에 가있는 둘째 아들의 전화에 은준의 아버지는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아버지, 별일 없으셨죠? 진지 잡수셨어요?"
은준은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무리 아버지라 할 지라도 대뜸 돈달라는 소리를 할 만큼 정신이 나간 것은 아니었다.
"밥? 난 먹었지. 아들도 먹었고?"
"예, 저도 먹었어요. 저, 그런데..."
"그래. 굶지는 말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굶으면서 하면 안된다. 다 먹고 살려고 일하는 건데 일 때문에 굶으면 안되지."
"그럼요. 절대 안 굶어요. 그건 그렇고..."
"젊었을때 잘 먹어야해. 젊을땐 젊은 혈기가 있으니까 아무렇지 않은데, 나이들면 다 티가 난다. 그리고 힘 쓰는 일 일수록 더 그렇고. 어렵지? 원래 농사라는게 다 그런법이야. 요령이 있어야하는거지, 힘으로만 하려고 하면 몸 다쳐! 느긋한 마음으로, 당장 못 끝내더라도 차근차근 해나가면 다 되는 거니까 너무 서두리진 말고."
"알겠어요. 그리고 기계로 다 하니까 힘 쓰는 일은 없어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어려운 일은 사람 써서 하니까 걱정 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
"그래. 젊었을땐 사서도 하는게 고생이야! 안하던 고생 아프리카 까지 가서 하려니까 힘들지? 허허허! 어이구, 국제전화요금 많이 나온다. 네 어머니도 별 일 없고, 나중에 형 한테나 한 번 전화해라. 몸 조심하고, 밥 굶지 말고? 알았지?"
은준의 아버지는 얼마 되지도 않는 돈으로 타지에 나가 고생할 아들 생각에 걱정부터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국제전화요금이 많이 나올까 얼른 할 이야기를 하고 끊을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은준은 애가 탔다. 그렇다고 중간에 아버지 말씀을 끊을 정도로 가정교육을 허투로 받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다 결국 그의 아버지가 아예 전화를 끝을 것 같자 급한 마음에 소리쳐 아버지를 붙들었다.
"아빠! 아빠! 잠깐만요! 아, 뭐가 그리 급해요. 전화요금은 걱정 마시고, 저도 할 이야기가 좀 있어서 전화했어요. 지금 좀 시간 되세요?"
"응? 그래. 할 얘기가 뭔데 그러냐?"
"그러니까요..."
은준은 막상 돈을 융통해달라는 이야기를 할 생각을 하자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부자 관계라도 한두푼 이야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을 떠난지 두달도 안된 상황이었다. 한국을 떠날때 적금 2천만원에 집값 8천만을 합해 총 1억을 들고 떠났는데 한달여만에 돈을 달라는 이야기가 쉽게 나올리 만무했다.
"이쪽은 잘 되가고 있어요. 저번에 땅하고 집 산 이야기는 했죠? 이번에 그 땅 개간하기 시작했거든요. 트랙터도 두 대나 샀어요. 뒤에 다는 것만 갈면 쟁기도 되고, 로타리도 칠 수 있고, 짐도 나르고 별게 다 돼요."
"그래? 그게 쉽지 않을거다. 그리고 농기계는 관리를 잘 해야해. 땅파고 돌 나오는거라 기계가 금방 고장나. 한국은 수리센터에 가져가면 금방 고치는데, 거긴 어떨지 모르겠다."
"네. 그건 알아서 할께요. 근데 제가 오늘 얼마나 로타리 쳤는줄 아세요? 10헥타르나 했어요. 한번 일직선으로 가는데 30분이나 걸리는데 확실히 아프리카가 땅이 넓은게 지겨울정도였다니까요?"
"10헥타르? 어허허! 아들이 땅 부자네!"
10헥타르면 3만평이다. 은준의 아버지가 생각하기로 3만평이면 땅 부자 중에서도 부자였다. 은준의 형 몫으로 돌아갈 땅이 5마지기인것을 생각하면 20배가 넘는 넓이였다. 그러니 은준의 아버지로서는 아프리카까지 간 아들이 10헥타르나 되는 밭을 소유했다고하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그 땅만 해 먹어도 굶어죽지는 않겟다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라니까? 저번에 말씀드렸었잖아요. 내 땅이 2000헥타르나 된다고. 이정도면 작은 시(市) 만한 크기에요. 그런데 아버지."
은준은 슬슬 돈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게 입이 쉽게 떨어질 리 없었으니, 절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있잖아요. 제가 이걸 좀 크게 해보려고 하거든요? 요즘엔 농사도 기업형 농업이라고 공장처럼 크게 하잖아요. 한국에선 농사져서 먹고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여기와서 보니까 그렇지도 않은게 한국같지 않고 땅이 커서 농사를 크게 지면 돈좀 만지겠다 싶어요."
"그건 그렇지. 농사도 사업도, 크게 할 수록 고정비용으로 들어가는 비율이 적게 들어서 이윤이 커지는거지."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계산을 해보니까 이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제가 하려는건 옥수수 농사인데 이게 톤당...."
은준은 말문이 트인김에 얼른 자신이 계산해본 메모를 쳐다보며 그것을 전화에 대고 읊었다. 헥타르당 생산량이 몇 톤이오, 옥수수 가격이 톤당 얼마에, 초기 비용으로 얼마가 있으면 다음번 농사때 얼마를 생산해낼 수 있다, 등등등.
"..."
"그러니까 아버지 이게요, 처음에 확 투자를 해서 크게 옥수수를 심으면 그 이익이 엄청나다니까요? 이거 10헥타르 해봤자 3천만원이잖아요? 그럼 요즘 신입들 연봉정도는 되요. 먹고살기는 하겠지만, 정말 먹고만 살 수 있는 정도잖아요. 그런데 이것도 트랙터만 몇 대 더 있으면 연봉이 곱절로 확확 튄다니까요?"
"..."
"트랙터 한 대에 해봤자 얼마나 해요. 여기서 중고지만 사보니까 한대에 5백만인가 6백만원 밖에 안하더라구요. 그런데 그거 두대만 있으면 3천만원이에요. 2천만원이 남는거죠. 거기에 트랙터 네 대를 2천만원이라고 치면, 이익이 4천만원이고, 1억을 투자하면 와! 2억이 남네? 1억 빚 값고도 2억이 남는다니까요?"
"..."
은준은 아버지가 아무말 없이 조용히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더욱 신명이 나서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줄도 모르고 그가 생각한 장미빛 미래에 대해 떠들어댔다. 얼핏 들으면 정말로 이루어질 것 같은 소리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한참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은준의 아버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
"네? 네! 아버지. 말씀하세요."
"다 좋아. 다 좋은데, 처음에 기업형 농업이라고 했지? 그 말은 그게 일종의 사업이라고 봐도 된다는 뜻이냐? 그렇다면 보자. 사업을 시작할 때는 자본금이 필요하다는건 알고 있지? 네게는 네 말대로 1억을 가져간게 자본금이라고 볼 수 있겠구나. 그런데 지금 그걸 거의 다 썼고, 다른 사람에게 투자를 받아서 자본금을 늘리고 싶다는 이야기겠지? 맞지?"
"...예."
"네 말도 맞다. 자본금이 적어서 사업을 작게 시작하면 이윤도 적을 수밖에 없겠지. 반면 대기업처럼 자본이 많으면 그만큼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많이 만들어 많이 팔면 돈 또한 많이 벌 수 있을거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업에 성공했을때 이야기다. 너도 한국에 있을때 많이 듣지 않았니. 아버지 친구들쯤 되는 사람들, 퇴직금 털어다가 사업 시작했다가 쫄딱 망하고, 응? 그래도 모잘라 평생 대출금 갚아 산 집까지 빚으로 날아가고."
"..."
이제는 반대로 은준이 말을 잊었다.
"그게 왜 그런줄 아니? 사업이란게 돈만 투자한다고 성공하는게 아니다.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어도 충분히 연구해도, 그때그때 상황이란게 달라서 한 순간의 실수로 망하는게 바로 사업이다. 그러다 네 말처럼 은행에서 대출이라도 받아 투자했다면 그 담보로 잡은 것은 그대로 은행에 넘어가는거고."
"..."
"그런데 넌 이제 하루 밭을 갈아보고는 네 손 안에 돈이 있는것 처럼 그렇게, 응? 네가 그 일을 몇 년쯤 하고, 네 말대로 그렇게 수익이 났다면 나도 네 말마따나 투자를 해 줄수도 있다! 아버진 연금도 나오고 퇴직금도 있으니 나중에라도 먹고 살 방법은 있다 이 말이다. 하지만 겨우 하루 일 해보고서는 벌써 다 된겄처럼, 그건 아니지."
"..."
"내 말은 1년쯤 지나고 결과가 나와 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아들, 아들이 이제 몇 살이지? 앞으로 몇 년이나 일 할 것 같아? 1년쯤 기다린다고 땅이 바다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네 말대로 된다면 1년 뒤에는 이 아버지한테 손 벌리지 않아도 네가 필요한 돈이 생기지 않겠니?"
은준은 아버지 말씀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10헥타르, 열흘이면 100헥타르의 옥수수밭을 만들 수 있다. 열흘이 뭔가! 어차피 이번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심을 농작물이 없으니 가을내 밭을 개간하면 더 만들 수 있을 터였다. 100헥타르만 되어도 은준의 예상대로라면 1년 뒤에는 6억이 넘는 돈이 수중에 들어올 것이고,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 말대로 굳이 남에게 손 벌릴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아들이 이제 몇 살이지? 조급해 할 필요 없다. 아버지 또래도 80까지 산다더라. 네 때 쯤에는 100살도 꿈이 아니야. 그중에서 1년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이 아버진 네가 좀 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물론 네가 졸업하고 쉰 기간도 있고 지금 당장 수입이 없으니 조급한 마음을 가지는걸 이해 못 하는건 아니다. 그렇지만 조급한 마음에 첫 단추를 잘못 꿸까봐 걱정도 되는구나. 아버지 말 이해 하지?"
은준은 좀 더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곰곰히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새 활화산처럼 들끓었던 머리는 차갑게 가라앉은 뒤였다.
"그래, 아버지 말씀이 옳아. 내가 지금 이룬게 뭐가 있어? 이 땅도 이 집도 전부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산 것이지, 내가 가져온 2천만원으로 이 땅을 살 수 있었을까? 준승이를 부른다고?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그것도 내가 여기서 성공한 뒤야. 지금 준승일 아프리카로 불러봤자 걔가 뭘 믿고 여기까지 올까. 또 은행은 뭘 믿고 돈을 빌려주고.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전부 내 상상에 불과할 뿐인데. 다른 사람이 볼땐 내 땅은 그저 황무지일 뿐인데."
은준은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 적어도 1년! 아무런 성적 없이는 누구도 그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가족이라서 더 냉정해져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1년 뒤, 그의 말대로 은준이 성공적으로 벤시몽을 일궈낸다면 아쉬운 소리 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스스로 힘으로 더 크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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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님, 천마왕님, 치야님, 진찰주님, 정근님, 똘랭님, 책사랑요님, 백수의시간님, 양구리공작님, 암향무님, RainBow님, 라파엘대천사님 안녕하세요설 잘 지내셨나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옆 동네(음,, 이렇게 말하는 것도 조아라 정책에 걸리는걸까요?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슴다)에서 주 연재 작품이 있어서 동시 연재를 하다 보니 빨리 올리질 못하네요. 시간이 부족합니다 헉헉!
그러니 이것만 글이 올라오길 기다리지 마시고, 다른 재미있는 글 보시다가 이것도 올라오면 덤으로 읽고 가시길 바랍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