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뉴카파로 가자-6화 (6/107)

6화

<뉴-카파에서>

사람들은 총소리가 완전히 그치고 난 뒤에야 겨우 주변을 돌아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때쯤엔 기차안에 타고 있던 안전요원인지 아니면 이런 상황을 대비해 타고 있던 경찰인지, 아직 모든게 낯설기만 한 은준의 눈에는 잘 구별이 가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나타나 죽은 사람들을 '수거'해 갔다. 은준은 혹시나 총이 없는 시체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으나 그들은 그런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원래 총이 없던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아프리카 내에 워낙 총기가 많이 풀려있어 누가 가지고있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런지도 모른다고 애써 합리화를 할 뿐이었다.

팔라보르와에 기차가 도착하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둘러 기차에서 내렸다. 아마도 이 기차에 타고 있던 광광객 대부분은 다시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오지 않을 것이다.

은준은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대합실에 있는 공중전화로 향했다. 8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이 끝나자 남아공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팔라보르와가 비록 사파리 투어나 골프장 등으로 여행객들에게 소문난 곳이긴 하지만, 한국처럼 불야성을 이루지는 않았고 기차에서의 일도 있었던지라 은준은 어둠속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어느 골목에서 검은 얼굴의 흑인이 자신을 향해 총을 쏘고 짐을 가지고 달아날 것만 같았던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안전하기는 했는데..."

은준은 신호가 가는 동안 혼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후 전화 받는 소리와 함께 중년 남성의 목소리라 흘러나왔다.

"Hello?"

갑작스런 영어에 다시 한번 이곳이 남아공이란 생각을 상기한 은준은 마찬가지로 영어로 대답을 해나갔다. 물론 그의 발음은 딱딱 끊기는 전형적인 한국형 영어였다.

"안... Hello. My name is 은준 김. 음..."

영어와 한글이 섞였다. 은준은 속으로 이것은 전부 기차에서의 활극 때문에 진정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차분하게 대화해나가자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상대편 전화기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아, 김은준씨? 반갑습니다. 저 차호중이라고 합니다. 전에 통화하셨었죠?"

"예예! 안녕하세요."

자신이 맞게 전화를 걸었다는 생각에 은준은 반가운 마음으로 상대가 보이지도 않는 전화임에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팔라보르와에 지금 도착하신건가요? 그러면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찾기 어려우니까 대합실에 앉아 계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 20분쯤 걸릴겁니다."

전화를 끊은 은준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이제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과도 연락이 됐으니 그가 오기만 하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은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혼자 온게 아닌척, 다른 외국인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자리를 잡았다.

전화에서 들은대로 20분이 지나자 은준은 왼쪽 손목의 시계와 대합실 출입구를 번갈아 살피며 한국인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중 출입구 계단을 오르는 사람 얼굴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안경을 쓰고 머리는 1/4쯤 센 중년의 남자였는데, 그의 얼굴엔 항상 미소가 걸쳐있었다.

"김은준씨! 김은준씨?"

은준이 그가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맞는가 고민하고 있을때 그는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깜짝 놀란 은준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반쯤 들어올리자 그가 반갑게 은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차호중입니다."

"김은준입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별 말씀을요. 자, 대충 인사는 했으니 차로 가십시다. 저녁 전이죠?"

"아, 예!"

"저도 아직 못 먹었습니다. 시장하셨을 텐데 일단 가서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 하지요."

원래 성격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인지 차호중은 서둘렀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면 원래 그의 성격일 것이라고 은준은 생각했다.

대합실을 나가자 길가에 세워놓은 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옜날 포니 시절의 차 처럼 각진 외형을 하고 있었는데, 앞쪽은 일반 자가용처럼, 그리고 뒷부분은 승합차같이 짐칸이 컸다. 한마디로 뒤가 큰 'ㄴ' 모양이었는데, 승합차와는 또 달라서 차체 높이는 일반 자가용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차는 먼지와 흙으로 뿌연 색을 띄고 있었지만, 그것이 원래 흰색이라는 것과 차체 중앙에 녹색의 십자가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것을 가리진 못했다.

은준이 한국에 있을 때부터 연락을 해두었던 이 차호중이란 사내는 현재 67세의 나이로 남아공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중년의 의사였다. 그는 도시가 아닌 그 외 지역의 열악한 진료 현실에 벌써 이십여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와 의료봉사를 행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차는 다시 20여분을 달려 어느 건물에 도착했다. 병원은 아니었는데, 은준은 일단 차호중 의사의 인도를 따라 삼층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거기엔 낡은 침대와 아프리카식으로 보이는 화려한 문양이 그려진 이불(?),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단단해보이는 원목 책상 위에 노트북 하나가 전부인 방이었다.

"짐은 일단 여기에 두고 식사하러 나갑시다."

식당은 바로 아래 1층에 있었다. 은준과 차호중이 자리에 앉자 익숙한듯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하얀 앞치마에 머리에도 하얀 두건을 둘렀는데 워낙 검은 얼굴이라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몸매가 아줌마 체형이라 은준이 두 번 돌아보지는 않았다.

"오는 길에 별 일은 없었나요?"

차호중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형식적인 질문이었으나 은준의 이야기를 들은 그는 깜짝 놀라며 표정을 굳혔다.

"저런! 오자마자 큰 일을 당했군요. 여기서는 그런 일은 별로 없는데. 도시 외부로 나가면 모를까... 아, 요하네스버그는 제외하지요. 거긴 요즘들어 더 치안이 안좋아서... 어쨌든 따뜻한 스프먼저 먹읍시다."

차호중에 데려온 1층 식당은 토속 음식과 함께 양식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과거 식민 시대를 지나오면서 서양인들의 생활 양식이 아프리카인들에게 깊게 스며든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 오셨으니 전통 음식을 대접해야겠지만, 오늘은 일단 익숙한걸 드시는게 낫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정말 놀랐었거든요."

음식은 금방 나왔다. 둘은 식사를 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엔 은준의 놀란 가슴을 배려해서인지 가벼운 주제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은준은 차호중에게 자신이 총기를 숨겨왔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몰랐기 때문에 그의 도움을 받을 일이 끝날때까지는 그가 한국인이라고 해도 조심할 생각이었다.

식사는 은준에게 무척 마음에 들었다. 요리 자체는 흔히 보던 은깬감자와 스프, 샐러드 그리고 고기였으나 거기에 들어간 양념이 남아공 식이라 차호중이 조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던것과 반대로, 은준은 익숙한 음식을 멋는듯 아주 잘 먹어치워 차호중의 걱정을 쏙 들어가게 했다. 약간은 신기한듯 쳐다보는 그에게 은준은 멋적게 웃었다.

"원래 가리는게 없습니다."

"하하하. 좋은 습관입니다. 앞으로 여기에서 사시려면 그게 가장 중요하죠."

다시 방에 올라와 잠시 기다리자 차호중이 흑인 남성 한명과 같이 간이침대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은준은 얼른 달려가 그걸 받아 들었다.

이것도 사전에 이야기가 된 내용이었다. 팔라보르와는 사파리와 골프 여행이 주된 관광지중 하나로, 놀러온게 아닌 은준으로서는 하룻밤 호텔비도 아까웠다. 다행히 차호중이 흔쾌히 허락하여 하룻밤을 이렇게 보내기로 한 것이다.

"오늘은 일단 일찍 잡시다. 내일 일찍 출발할 겁니다."

이른 새벽.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각, 은준과 차호중은 다시 차에 짐을 싣고 팔라보르와를 빠져나가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곳에 은준의 목적지 뉴-카파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느린곰님, 현규아빠님, 종안님, 그리고 선작하신 분들, 추천해주신 분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늦었지만 감사말씀 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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