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L. (39/101)

6 ─L.

분명히 ‘스네이크’라고 했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미동도 없이 이쪽을 쳐다보던 장신의 사내가 자꾸만 눈앞을 스쳤다. 검은 망토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싼 채, 사신 가면을 쓰고서 이쪽을 노려보았다. 확실했다. 분위기가 똑같았다. 일순간 전신에 돋던 소름도 그것을 증명했다.

틀림없었다. 가이거 본부장 스네이크였다. 내게 말을 걸던 사내도 가이거 부장들 중 한 명일 확률이 높았다. 믿을 수 없으리만치 단정하고 지적인 목소리였다.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라비린스에서 그들은 움직임 없는 석상같이 내리 침묵했다. 그런 그들에게 목소리가, 아니, 인간의 어떤 요소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거기다가 축제에서까지 저런 차림이라니.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괜찮냐고 물으며 시치미 뚝 떼고 친절히 접근하던 그 뻔뻔함이 무섭기까지 했다. 나도 한순간 깜빡 속을 만큼 사근사근한 태도였다. 스네이크라고 부르지만 않았다면 금세 의심을 몰아내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것이다.

형광등이 갑자기 나가는 통에 잠깐 외출한 것이 화근이었다. 24시간 마켓이 스노우 화이트 근처였다. 그곳에서 형광등을 사서 돌아오다가 변태들과 마주쳤고 싸움이 벌어졌다.

얽히고설키는 와중에 형광등으로 한 놈의 이마를 갈겨 버렸다. 나도 몇 대 맞은 상태에서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리고 사신들과 재차 마주쳤다. 황당하면서도 두려웠다. 그 외에는 달리 형용할 만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갔다. 새벽 네 시를 넘는 시각이었다. 껌껌한 방에 멍하니 있노라니 한숨이 나왔다. 휴대전화를 보았다. 부재중 통화는 없었다. 마넨 경은 아직 파티 중인 듯했다.

창밖에서 불꽃놀이가 터졌다.

기분이 우울했다. 나는 축제가 싫었다.

아주 싫었다.

기분이나 전환할 겸 목욕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넨 경에게 큰 건을 던져 주겠노라고 한 내 약속을 다시 숙고했다. 솔직히 이만 때려치우고 싶었다.

라비린스에서 가이거 부장들을 마주친 이후, 지금까지의 나날을 돌아보았던 터였다. 별별 생각과 자책감이 몰려왔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는 결론만 얻었다.

하고많은 사람들 중 계약 상대로 하필 마넨 경을 고른 이유는 개인적인 이유가 컸다. 정쟁이 어떤 판인지 명확하게 알고 싶었고 엉뚱한 복수심의 발로도 한몫했다. 어차피 국민의 피를 쭉쭉 빨아먹는 흡혈귀들을 상대로 못할 짓이 무엇인가 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마넨 경의 푸들이었다. 흡혈귀의 졸개였다.

가이거 부장들…….

도무지 내가 대적할 상대가 아니었다. 힘과 두뇌를 동시에 갖춘 자들이었다. 그것도 열한 명이나 되었다. 그들과 직접 마주칠 때마다 온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건 명백한 경고였다. 본능적인 공포가 깜빡거리는 붉은 신호였다.

그런데 오늘 또 가이거 부장들과 마주치다니. 역시 하루라도 빨리 관두라는 신의 계시인가.

그래. 관둬야지.

이대로 잠적해도 마넨 경은 나를 탓하지 못했다. 괜찮을 것이다. 흡혈귀의 졸개로 십 년이나 흙탕물에서 굴렀으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만이라도 조용히 보내야 했다.

뜨끈한 욕탕 물에 얼굴을 잠깐 담갔다가 일으켰다. 머리가 엄청나게 지끈거렸다. 병마 때문에 요즘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씁쓸했다.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전속계약을 맺으면서까지, 극빈자 노릇까지 감수해 가며 조금이라도 삶을 연장하려 애썼건만,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마라타의 말대로 계약을 맺지 않고 살았으면 차라리 나았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만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미 한 번 심장발작으로 쓰러진 적도 있지 않았던가. 당시에는 마라타가 나를 돌봐 주었기에 그나마 살 수 있었다. 그 시기를 돌이키면 끔찍하기만 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더욱 끔찍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병원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그러나 현재 나는 병원비 한 푼 없는 가난뱅이였다. 헌책방을 내놓아 봤자 팔릴 리도 만무했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는 급히 가운을 걸치고 룸으로 들어섰다.

“예.”

“지금에야 돌아왔네. 아, 이것 참.”

“어떠셨습니까.”

“손바닥이 아플 만큼 악수했다네. 그 짓에 세 시간이나 넘게 걸리지 뭔가.”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럼 한번 볼까요.”

기분이 복잡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마넨 경에게 안면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 파티에서 거의 모든 귀족들과 접촉했을 터이니 이번 채집으로도 몇 달은 버틸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상황을 보며 마넨 경에게 상담 중단 의사를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울프삭부터 채집을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든 스네이크를 꿰뚫어볼 참이었다. 사력을 다하여 집중했다. 스네이크의 기운이 다소 이상했다. 예전에는 섬뜩하리만치 기운이 날카로웠는데 지금은 어딘지 우울한 느낌이었다.

검은 구름이 차츰차츰 뭉치며 글자가 새어나왔다. 그래도 스네이크가 뭔가에 단단히 골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어떤 음모일까. L……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스네이크는 가만히 있을 작자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L…… A…….

다음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Lay Arisa.

“레이 아리사?”

스네이크가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단 말인가. 본능적으로 비명이 터졌다. 공포가 등골을 싸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역시 레이 아리사인가…….”

마넨 경이 중얼거렸다. 나는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예?”

“최근 급부상한 젊은 무신귀족일세. 외국에서 살다가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릴리즈에서 벌써 한자리 꿰찼다네. 울프삭도 레이 아리사를 총애한다는 풍문이 자자하고, 가문도 좋아. 그놈과도 악수를 했으니 한번 읽어 보게.”

나는 “그렇습니까…….” 하며 멍하니 이마를 닦았다. 동명이인이었단 말인가. 그것도 잘 나가는 젊은 무신귀족이라니.

“그럼 아리사를 보겠습니다.”

나는 그를 아리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채집 결과는 예상을 상회하는 놀라움을 안겼다.

“이 사람 말입니다…… 가이거 부장들과 관련이 있군요.”

“뭐, 뭐라고?”

“좀 더 읽어 보겠습니다.”

아리사는 보통 놈이 아니었다. 야심만만하고 계산도 빨랐다. 울프삭에게 찾아가 자신을 중용해 달라고 간청했고, 울프삭은 그의 태도를 높이 사며 흔쾌히 수락했다. 게다가 황당하게도 아리사는 가이거 부장들과 관련 있는 정도가 아니라, 그 자신이 가이거 부장이었다. 울프삭이 아리사를 가이거 부장으로 앉혀 준 것이다. 가히 파격적인 조치였다.

채집 결과를 밝히자 마넨 경이 경악했다.

“자네 채집대로라면 스타소프보다 위험한 놈 아닌가.”

“덕분에 가이거의 실체에 더욱 가까워지지 않았습니까. 가이거 부장들이 아리사를 경계하나 봅니다. 업무를 보여 주지 않으며 따돌림으로 일관한다고 나오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리사는 가이거가 대단한 조직이라고 간파했습니다. 단순 왈패들이 아닌 최고의 정보조직이다, 이렇게 말입니다.”

“허허. 이거 참. 이거 참.”

“게다가…… 이 사람, 게이군요.”

“엥?”

마넨 경이 얼빠진 음성을 흘렸다.

나는 실소를 삼켰다. 아리사를 채집할수록 낯이 화끈거렸다. 이름뿐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나와 흡사했다.

“어찌 생긴 자입니까?”

“음…… 전형적인 무인 타입이랄까. 키가 백구십 가깝고 덩치도 좋고. 어디서 떨어진다는 평을 받을 용모는 아니라네. 귀부인들에게도 시선을 많이 끌고 있지. 유학파 출신이라서 언변이 세련되었고 매너도 훌륭해. 흠. 이러고 보니 나도 레이 아리사에게 꽤 시선을 주었나 보군.”

“만만찮은 인물이니까요. 그런데 이 아리사가 말입니다.”

나는 잠깐 말을 머뭇거렸다.

“스네이크와 동……성애 관곈가 봅니다. 굉장히 친근한데요.”

“뭐, 뭐?”

아리사의 심중에서 스네이크와의 하룻밤에 대한 회고가 온갖 음란한 단어로 쏟아져 나왔다. 이런 이유로 스네이크의 심중에서 그의 이름이 펄럭거린 모양이었다. 납득이 갈 만큼 화끈한 섹스였다. 들여다보는 내가 다 민망했다.

“동성애 관계인데도 아리사는 스네이크의 신상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는군요. 스네이크는 아리사와 섹스할 때도 가면을 벗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최악 아닌가. 아리사는 릴리즈에서 급부상한 인물이야. 스네이크와 단순한 친분도 아니고 동성애라?”

“아리사는 원래 스네이크를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려 했는데 스타소프 암살 후 생각을 바꿨네요. 가이거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노선을 바꿔서, 스네이크와 더욱 깊은 관계를 유지하며 울프삭의 후계자가 될 심산을 품었습니다. 가이거와 울프삭을 양손에 거머쥔다……라. 아직은 시작단계이긴 합니다만.”

“이 더러운 게이 같으니! 에잇!”

깐깐한 가톨릭다운 반응이었다. 나는 쓰게 웃었다.

저도 게이인데요…….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아리사 채집을 중단하려다가 멈칫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아리사 가문이, 건설업과 관련 있습니까?”

“글쎄? 그 가문이 건설 사업을 한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네. 부동산 투자야 많이 하겠지만서도.”

“그런데 왜 건설에 관한 글자들이 보이죠? 무슨 발전소 건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예 쏟아져 나오는데요?”

“뭔지 알겠군. 최근 정부에서 추진하는 원자력 발전소 건이 하나 있긴 하네. 발주 규모가 아주 커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 건설업체들이 달려들어 치열하게 로비를 벌이고 있다네. 아르카일 아리사 경에게도 로비스트가 접촉한 모양이로군, 흠. 그런데 레이 아리사에게까지라……. 하긴, 울프삭과 레이 아리사가 친근한 관계이니 내버려둘 리 없겠지.”

“역시 그렇군요. 아리사는 이미 ‘쿠키’를 받은 상태입니다. 그것도 상당한 액수를 챙겼군요. 그런데, 경께도 로비스트들이 접촉했네요?”

“당연하지 않은가. 병원에 있는 내내 시달렸다네. 나와 울프삭 둘 중 한쪽에게만 라운딩해도 엄청난 이익일 테지만, 아무래도 의석은 우리 문신들이 더 많이 차지하니 일번 순위로 내가 낙점되는 것은 당연하지. 뭐 어쩌겠는가.”

나는 소리 죽여 냉소했다. 마넨 경이 로비스트들과 주고받은 이야기가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내 입으로 굳이 그의 치부를 들먹일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이만 끝내지요. 아리사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습니다. 그와 다시 접촉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입니까.”

“파티 스케줄을 봐야지. 가까운 시기에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 춤의 절기 아닌가.”

“꼭 연락 주십시오.”

통화를 끝내고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끼웠다. 벌써 희미한 여명이 비치는 아침이었다. 일곱 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던지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다시 목욕을 하며 생각에 잠겼다. 아리사를 돌이킬수록 쓴웃음이 나왔다.

이 웬 웃기는 우연이란 말인가.

동명이인임에도 이쪽과는 천지차이였다. 교집합 요소인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참 하늘이 원망스러우리만치 판이했다.

스네이크와 동성애 사이라…….

미동도 없이 이쪽을 노려보던 사신 가면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참으로 의외였다. 아리사와 스네이크의 동성애라니.

아리사는 자신의 매력에 대단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쉽사리 자신의 유혹에 넘어온 스네이크를 한껏 비웃고 있었다. 그를 움켜쥔 이상 가이거는 자신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글쎄. 과연 아리사의 생각대로일까.

스네이크는 만만한 자가 아니었다. 울프삭에게서 채집한 몇 건의 사건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오싹할 만큼 비정하고, 계산속이 뛰어난 남자였다. 아리사와 육체관계를 맺은 데에는 틀림없이 어떤 계산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징조가 나빴다. 스타소프를 건드린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그냥 놔두었으면 울프삭은 릴리즈를 가까이 두며, 자연스럽게 가이거 부장들을 내쫓아 버렸을 터였다. 그러나 스타소프의 빈자리를 차지한 아리사는 외려 가이거와 릴리즈의 규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중이었다. 릴리즈나 가이거나 둘 다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양쪽 모두 제거할 수 없다면 한쪽이라도 밟아 놓아야 했다. 그것이 마넨 경이 살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나 몰라라 마넨 경과 작별을 고해야 할까.

작별하고 싶었다. ‘사랑’을 맺은 후에야 나는 마넨 경의 어마어마한 치부를 알고 경악했다. 겉으로야 푸른 로브를 질질 끌고 다니며 고상이란 고상은 다 떨어 대도, 마넨 경은 황금전쟁에 미쳐 날뛰는 흡혈귀였다. 그것이 경의 근본이었다.

문신귀족은 전통적으로 세가 강한 집단이었다. 머릿수부터 무신귀족들을 압도했다. 작위를 남발하는 탓에 공부만 그럭저럭하면 하급문신귀족 되기는 공무원 되듯 했다. 돈으로 작위를 사는 부자들도 문신귀족 쪽을 선호했다.

울프삭이 평민 깡패들을 끌어들여 가이거를 창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쪽수에서 압도적인 문신귀족들을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5년째 가이거가 날뛰었건만 문신귀족의 세는 전혀 줄어들지를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왕국 건립 후 무신귀족들은 이른바 두 번째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하여간에 이쪽이나 저쪽이나 똑같은 종자들이었다.

의석을 많이 차지한 문신귀족들은 수많은 국책사업에서 부정을 저질러 왔다. 마넨 경은 그중에서도 으뜸을 달렸다. 이번 원자력 발전소 건에서도 마넨 경은 중간에서 단단히 챙길 심산이었다. 상담을 맡은 초기 시절, 나는 마넨 경의 부정행위를 말리려고 애썼다. 소용없었다. “다 그렇고 그런 거지.”로만 일관하며 치부에 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측면에서도 내가 마넨 경에게 보답 받지 않은 건 잘한 일이었다.

나는 욕조 턱에 머리를 기댔다. 입맛이 썼지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손가락으로 욕조 가장자리를 쓸며 자동적으로 심상에 빠졌다.

메사라…….

화려한 축제의 밤이었다. 나는 축제에 나쁜 기억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엉뚱한 상상을 했다. 형광등을 사러 슈퍼로 향하는 길에 문득, 지금 내 옆에 메사라가 있다면…… 하고 상상했다. 그와 함께 지금 이 축제의 밤을 함께 거닌다면…… 하고.

언젠가 그와 함께 길거리를 거닐던 때가 떠올랐다. 메사라와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메사라는 그때 처음으로 내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그러며 장난스런 눈빛으로 내게 연거푸 입술을 부딪쳤다.

메사라는 알고 있을까. 키스할 때 자신의 습관을.

키스를 해 주며 내 귀를 부드럽게 만졌다. 거의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메사라의 키스가 그리웠다. 그러나 지금 이 밤, 메사라는 다른 사람의 허리를 끌어안고 다정한 키스를 퍼붓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상대의 귓불을 가볍게 만지작거릴지도.

싸해지는 상상이었다. 지긋지긋한 이 미련이 한심했다. 내가 그 바보 녀석을 욕할 처지가 아니었다.

내가 먼저 닫아 버린 문이다. 메사라가 누구와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메사라와 레스토랑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났다. 메사라는 어린 시절에 즐거운 추억이 많은 사람이었다. 못 말리는 악동이었다고 했다. 길거리를 쏘다니며 권투시합에 열중했다고 했다. 부모님은 착하고 평범한 분들이신데 어떻게 자기만 이런지 신기한 노릇이라며 하하하, 웃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통과한 것도 기적이었지요.」

「고등학교까지 나왔을 줄은 몰랐군요. 가정환경이 좋으리라는 건 예상했지만.」

내 말에 메사라가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어떻게 알긴요. 체격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쪽만큼 키가 크고 덩치가 좋으려면 기본적으로 부모의 관심이 없어선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어릴 적에 잘 먹어야 키도 크고 튼튼해진다는 광고도 있잖아요.」

「예…….」

메사라는 샤쉴릭을 천천히 삼키며 말을 흐렸다. 어딘지 열 받은 기색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실수를 한 것 같았다. 메사라는 곧 「그것도 다 옛일입니다.」 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옛일이라니요?」

「예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제가 스무 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셨죠.」

「……미안합니다.」

메사라는 더는 개인사를 떠들지 않았다. 나는 낭패감을 느꼈다.

본의는 아니었는데.

나는 욕조 가장자리를 느릿느릿 문질렀다. 본의는 아니었더라도 메사라가 상처를 받았다면 미안할 뿐이었다.

뜨거운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뺨을 가볍게 때리며 탁한 머리를 맑게 하려 노력했다. 정신 차리자 따위의 생각은 더는 안 하기로 했다. 오래전에 망가진 인생이었다. 한껏 그리워하고 한껏 괴로워하면 뭐 어떤가. 누가 볼 사람도, 알 사람도 없을 텐데 말이다.

춤의 절기였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일곱 번의 축제가 있었다. 일곱 번의 밤을 스치며 나는 똑같은 생각을 반복할 것이다. 메사라를 보고 싶었다.

먼발치에서라도 좋으니, 한 번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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