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앙상한 나무들이 가득한 한 음습한 공터에, 검은색 세단이 주차돼 있었다. 그 안의 운전자는 세헌이었다. 차분한 스리피스 슈트 차림의 그는 목을 옥죄고 있는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푸른빛을 띠는 질 좋은 타이가 그의 조끼 안에서 미세하게 흐트러졌다.
윤신에겐 출퇴근 시간이야말로 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에 운전기사를 쓰지 않는 거라고 설명했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실제로는 이런 자투리 시간에 제 조사원들을 만났다. 그가 평소 검은색 세단 외에 화려한 색의 슈퍼카를 일절 타지 않는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는 건 피해야 했다.
딱, 딱.
긴 손가락이 박자를 타듯 딱딱한 핸들 위를 두드렸다. 수 초가 흐른 뒤, 뒤쪽에서 비슷한 검은색 세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천히 다가온 해당 차량은 세헌의 옆에서 주행을 잠시 멈췄다. 지잉, 창문을 내린 세헌이 힐끗 왼편을 쳐다보았다. 옆 차 조수석의 창문도 함께 내려가더니 그를 향해 누군가 인사했다. 그러고는 납작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변호사님, 좋은 아침입니다.”
우선 그걸 받아 든 세헌은 인사 대신 넌지시 물었다.
“어디까지 들어 있지?”
“일단 수한 홀딩스 유정원 대표와 수한 갤러리 도이경 관장 최근 동선이 포함돼 있고요. 그 동선 안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간단한 정보들이 들어 있습니다. 건드렸다 탈이 날 우려가 있는 기록들은 일단 제외했어요. 재정 추이 같은 것들요. 혹시 좀 더 세부적인 자료가 필요하신 거라면…… 사실 금융 쪽은 보안이 만만치 않아서요.”
소극적으로 나오는 상대의 대답을 잘라 낸 세헌이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조사원을 바꿀 때가 된 건가?”
상대는 바로 손을 내저었다.
“못한다는 게 아니라, 쉽지가 않다는 겁니다. 조사야 할 순 있겠지만 아시다시피 수한그룹 같은 대기업은 진행비가 많이 비쌉니다. 솜씨 좋은 해커도 수배해야 하고요. 더 파 볼까요?”
“일단 이걸 훑어보고 추가로 정보가 필요하면 연락하죠. 아무튼 수고했어요.”
그가 가 보라는 듯 손짓하자, 남자가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들은 동시에 차량의 창문을 올렸다. 조사원을 태운 차가 먼저 사라지고, 남겨진 세헌은 서류 봉투 안에 든 메모리 카드를 꺼냈다. 그러고는 글러브 박스 안에 든 휴대폰 공기계에 연결해 파일 내용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아무래도 미희의 말이 마음에 걸려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수한그룹 둘째 부부의 불화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언급만 하고 넘어갔으나, 세헌은 그러지 못했다. 별사건이 아니라기엔 최근 윤신의 태도가 미심쩍었던 터다.
취득한 정보를 토대로 살펴보니 실제로 윤신 누나를 둘러싼 공기가 확실히 범상치 않았다.
특히 결혼할 때 도 교수가 추천해 함께 데리고 갔던 비서실장의 행보가 꽤 수상했다. 사망한 도 교수와 사적으로 연이 있던 명망 있는 변호사들을 물밑으로 아주 은밀히 만나고 다녔던 것이다. 재벌들이야 아예 집안에 고문 변호사들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니 변호사 접견이 특이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으나, 다른 상황들과 아울러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한에는 본가 의료 센터가 따로 있는데 은밀하게 병원을 다녀갔다. 그것도 몇 번이나.”
멀쩡히 집안 내에 의료 센터가 있고, 또 그룹에서 운영하는 대형 병원도 있는데 예전부터 잘 아는 의사가 있는 개인 병원을 찾아간 도이경 관장의 결정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미심스러운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본인의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갤러리 출입을 삼가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늘린 데다, 그 반년 전에는 동생을 도국으로 들여보냈다. 당사자인 윤신의 입으로 그게 그녀가 원했던 일이라고 직접 들은 바가 있으니 모종의 이유가 있어 그랬던 게 맞을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인가. 아니면 폭행 진단서 쪽?’
혹은 그 외의 다른 일일 수도 있었다.
마침내 불법적으로 반출한 의료 기록을 열람해 본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각하게 자료들을 뒷장으로 넘겨보던 그의 표정이 의구심에서 확신으로 변해 갔다. 확실히 부부 사이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 그리고 미희가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일 거라고 추측됐다.
‘이쪽은 확실히 바람이 난 것 같고.’
윤신의 매형인 유 대표가 어떤 여자와 함께 고급 빌라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물끄러미 직시하던 세헌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히 폭행으로 이어지기 전 협의 이혼을 하자고 우선 제안했을 텐데.’
남편이 이혼을 권했다고 가정해 보면 그 뒤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됐다. 아내는 수한 측 변호사와 면담을 하는 게 아니라 따로 대리해 줄 사람 찾아다니고, 심지어 병원에 들러 본인의 건강 상태를 증명해 줄 진단서를 수차례 끊었다. 가정을 방치한 남편과 달리 아이들과의 시간을 늘려 양육에 대한 의사를 공고히 하고, 신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최대치로 게임 판을 흔들어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뜻이다.
최근 수한그룹은 실질적인 승계 절차에 들어갔다. 장남과 차남이 힘겨루기를 하는 중이었다. 가능한 한 조용히 이혼해도 기업 내외부로 파장이 클 판에, 이런 식으로 뒤집어 놓는다면 앞으로 유 대표 쪽의 정세가 좋지 않을 듯했다.
그쪽에서 이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었다. 반드시 도 관장에게 반격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할 제물을 찾게 될 테고, 누군가는 다치게 될 터다. 그리고 그건 십중팔구 싸움을 건 쪽이 되리라. 이래서 윤신의 표정이 요사이 계속 어두웠던 모양이다.
여러 가지 상황들을 짜 맞춰 보면 얼추 답은 나왔다. 윤신의 누나는 본격적으로 남편과 싸우기 전에 동생을 도국으로 피신시켰다. 그 방패막이로 선택된 게 자신인 듯했다.
“이거 까딱하면 도국까지 엿 되겠는데.”
나지막이 혼잣말하며 손끝으로 화면을 툭, 건드린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재벌가 부부 사이의 문제에 연루된 펌의 상황을 그려 보자, 썩 긍정적인 결론이 안 나왔다.
수한그룹의 법조 업무 위임은 도국의 주 수입원 중 하나였다. 퍽 전방위적으로 사건을 수임하는 자신은 그렇다 쳐도 송 변호사를 포함한 다른 많은 파트너 변호사들은 해당 기업과의 연이 아주 깊었다. 바꿔 말하면 결코 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애초에 그래서 미희도 윤신을 받아들였던 게 아닌가.
그러니 최악의 상황에서 수한이 아닌 도 관장을 비호하는 입장을 취하면 그 연결 고리가 모두 끊길 수도 있었다. 아울러 신뢰가 목숨보다도 중요한 이 업계의 생리상, 오래 거래해 온 클라이언트의 뒤통수를 치는 모양새로 비칠 가능성도 무시 못 했다. 그럴 시 다른 기업체들도 서서히 일을 줄일 것이다. 도합 200퍼센트 손해 보는 장사였다.
〈4년 차는 어떤 바다를 찾고 싶으신데.〉
〈저를 위기에서 구해 줄 바다요.〉
언젠가 윤신과 했던 대화를 떠올린 그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졌다.
내가 널 발견한 건 줄 알았는데, 네가 날 선택한 거였나.
도윤신은 여태 마주쳤던 모든 인류들과 다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눈길이 갔던 거였다. 순간순간의 올곧고 투명한 눈빛들이 죄책감 없이 살아온 자신을 껄끄럽게 했기에 시선을 떼지 못한 것이다. 한데 어쩌면 윤신 역시 본질적으로 솔직하고 바르다는 게 조금 다를 뿐,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 같을지도 몰랐다.
끝내 상대방이 진짜 원했던 건 자신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줄 우산일 수도 있었다. 먼저 좋아하게 돼서 다가온 게 아니라, 장기짝으로 선택했기에 좋아하게 됐다고 해석해도 말은 됐다. 도윤신은 모든 게 진심인 영장류니까.
줄곧 내심 미심쩍던 부분을 불시에 확인받게 된 듯해 몹시 불쾌했다.
팍! 거칠게 핸들을 내려친 그는 고르지 못한 숨을 몰아쉬었다. 사방을 둘러싸듯 양옆으로 가득한 앙상한 나무들을 지켜보는 세헌의 눈동자가 아주 깊게 가라앉았다.
‘결국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날 이용하고 싶은 건가.’
털끝만 건드려도 바로 달려들 듯, 날카로운 눈가가 신경질적으로 빛났다.
* * *
무료 법률 상담을 마치고 본관으로 돌아온 윤신의 주머니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그는 승강기에 올라타며 메시지를 확인했다. 미희의 부탁으로 맡은 프로 보노 사건의 의뢰인이 아이의 문병 갈 날짜를 최종적으로 확정하자고 하는 내용이었다. 답장을 보내는 동안 기계는 착실하게 고도를 높여 사무실 층에 그를 내려 주었다.
땡.
양문형 문이 열리자마자 현재 시각을 확인했다. 언젠가 세헌이 했던 명령을 기억하고 있어서였다. 공익 업무 때문에 자리를 오래 비워 본인이 찾아다니는 일 없게 하라고 제게 당부했던 터라, 그 뒤부턴 시간을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쪼개 운용하고 있었다. 오늘도 다행히 세이프 구간이었다.
“프로젝트 회의는 아직 하는 건가.”
그는 사무실 층의 복도를 거닐며 대회의실 쪽을 넌지시 살폈다. 창에 비치는 모습을 통해 짐작건대 회의 자체는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 같았다.
그러나 제일 상석에 앉아 심각하게 태블릿 PC 화면을 주시하는 세헌은 뭔가 마음에 매우 안 찬 기색이었다. 여느 때처럼 무표정하긴 했으나, 매일 그를 관찰하는 윤신에겐 그 차이가 들여다보였다. 업무적인 부분 때문이었다면 세헌의 성향상 저 회의를 이미 파하거나, 못해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계속 진행한 걸 보면 다른 외적인 문제일 터였다.
‘얼굴이 안 좋네. 왜 저러지?’
걸음을 멈춘 윤신은 주변을 살폈다. 조금 더 그를 몰래 지켜보고 싶었는데, 제 방 쪽으로 가면 시야가 강제로 차단될 걸 알아서 움직임이 굼떠졌다. 어정쩡하게 사방을 둘러보다 보니 뒤쪽 탕비실이 시선 끝에 걸려 저거다 싶었다.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온 윤신은 급한 대로 캡슐 커피를 한 잔 내렸다. 평소처럼 그냥 마실까 하다가, 돌연 각설탕이 눈에 들어와 하나 집었다. 제 입 안에서 단맛이 나는 게 좋다고 했던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포장을 까 따뜻한 액체에 그것을 넣고 휘휘 저어 녹이며 먼발치의 세헌을 관찰했다. 아니, 이제부터 느긋하게 표정을 분석해 보려고 했는데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회의를 마친 그가 내부에서 빠져나왔다. 세헌은 다른 파트너 변호사들과 함께 복도에 잠시 서서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런 그의 옆에서 시니어 변호사들이 뭔가를 계속 보고하느라 바빴다.
다른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서, 시야에 세헌이 정통으로 잡혔다. 늘 제대로 받쳐 입는 질 좋은 슈트 차림이 아주 잘 어울렸다. 깔끔한 이목구비와 냉철한 눈빛에 걸맞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았다.
그는 언제 불편한 기미를 풍겼나 싶게, 노련한 태도로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중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기분 나쁜 줄 알았는데…… 또 멀쩡해 보이네.’
제 착각이 지나쳤던 건지, 강세헌의 프로 의식이 넘치는 건지 모르겠다. 전자라면 그에게 오늘 하루 기분 나쁠 만한 사건이 없었다는 뜻일 테니 차라리 다행한 일이다.
솔직히 처음에 그의 옆구리를 찔러볼 때는 누나 문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의도도 있었던 건 사실이다. 동서남북 그 어느 쪽으로도 길이 안 보였으니까.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부탁을 했을 때 세헌의 반응은 생각보다 쉽게 그려졌다.
그가 제게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제 형편을 아직 제대로 모르기 때문일 터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세헌은 사적인 감정이 본인의 경력보다 앞서는 사람이 결단코 못 됐다. 그는 제 손을 미련 없이 놓아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윤신은 그러기가 싫었다. 저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더 구체적으로 알길 원했다.
그러려면, 누나가 처한 불행은 감추는 게 맞았다.
그녀의 충고를 지켜 그에게 털어놓지 않길 잘한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강세헌이라면, 누나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 역시 언론인가.’
다만 언론이란 양날의 검이었다. 잘만 활용하면 물론 큰 도움이 될 터다. 하나 재계와 밀접하게 유착한 대다수 유력 언론사들의 정체성을 고려해야 했다. 사실만 전달해도 좋겠지만, 아마 그렇게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반격이라도 하려면 마찬가지로 언론을 수단으로 쓸 수 있을 만한 입지의 대형 로펌이나, 혹은 변호인이 사건을 맡아 주어야 했는데, 일단 자신은 그럴 만한 입지가 없었다.
‘도국은 당연히 안 나서 주겠지. 수한이 맡긴 건이 얼만데.’
심란한 마음을 안정시키는 덴 중심을 잘 잡는 강세헌만 한 게 없었다. 윤신은 외부에 시선을 계속 고정했다. 그러자 꽤 거리가 되는데도 눈길을 느낀 건지 세헌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다른 파트너들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탕비실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당황한 윤신이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그러나 이곳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었다.
“뭐야. 왜 갑자기 여기로 오는 거야.”
어찌할 바를 몰라 컵을 들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벌컥 출입문이 열렸다.
이윽고 문간에 선 그가 나오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혹시 훔쳐보고 있던 걸 들킨 걸까 당황한 윤신이 스스로를 가리키며 얼떨떨하게 물었다.
“저, 저요?”
“여기 누구 또 있어?”
“전 그냥 커피 타러 들어온 건데요.”
“이 공간의 특수성이 있는데 당연히 그랬겠지. 누가 뭐래?”
미간을 구긴 세헌이 왜 뜬금없는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시선을 보내기에, 윤신은 마른침만 삼켰다. 그러다 눈을 접어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그가 재차 손짓하곤 돌아섰다. 바로 집무실로 향하는 기색이어서 윤신도 옷매무새를 황급히 단정히 하고 머그 컵을 든 채로 그를 쫓았다.
뚜벅뚜벅 앞서 걷던 그가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비서 팀 직원이 문을 열어 주었다.
세헌이 먼저 들어가고, 비서에게 눈인사한 윤신이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갔다.
밖에서 문이 닫힌 바로 그 순간. 세헌이 문의 잠금장치를 걸고 창가 블라인드까지 척 내려 버렸다. 문 주변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윤신은 계속 갈팡질팡할 따름이었다.
“문은 왜…… 잠그시는데요?”
“너는 왜 쳐다보셨는데요. 먼저 대답하면 가르쳐 주지.”
“거긴 커피 타러 간 거였다니까요?”
“그럼 커피나 타서 나오지 왜 음침하게 훔쳐봐.”
세헌의 손바닥 위에 자신이 올라가 자발적으로 춤추고 있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윤신은 감춰서 차후에 불편해지는 대신 제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선택했다.
“표정이 좀 안 좋아 보이더라고요. 걱정돼서요.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질문을 듣자, 세헌의 표정이 계피 맛 사탕처럼 오묘하게 변했다. 얼굴만 보곤 제 말이 맞는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판별하기가 어려웠다.
침묵하던 그는 그저 잠시 윤신을 뜻 모를 눈빛으로 직시하나 싶더니, 이내 거침없이 다가왔다. 뒤이어 마른 몸을 테이블 쪽으로 몰아붙이고는 품에 완전히 가두듯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턱, 테이블을 두 손으로 지탱하며 윤신의 상체를 제 상반신으로 밀자, 필연적으로 몸이 사선으로 기울어지게 된 윤신의 목울대가 들썩거렸다.
야릇해진 분위기를 통해 대충 상상이 가는 영역은 있었지만, 언젠가 세헌의 차 안에서 했던 착각처럼 단순히 오해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탁 비서님한테…….”
“이미 여기 있어, 내가 필요한 거.”
“여긴 회사인데요.”
“싫어?”
“뭘 하실 건지에 따라 제 대답도 달라질 것 같거든요.”
“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할 짓.”
일차원적으로 해석하기가 퍽 어려운 답이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달아오른 분위기 덕분에 그 행간의 의미가 꽤 또렷하게 읽혔다. 머뭇거리던 윤신은 차분히 심호흡하곤 겨우 솔직하게 대꾸했다.
“……좋아요.”
수치를 억누르기 위해 입을 한일자로 다문 윤신은 제 앞을 점령하듯 서 있는 세헌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그의 압도적인 눈빛과 늘씬하지만 탄탄한 체격 때문인지 꽤나 위협적이었다. 생리적으로 흔들리는 속눈썹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내보이자, 세헌이 얼굴을 기울여 왔다.
쪽, 쪽. 양쪽 눈 위에 공평하게 입 맞춘 그가 윤신의 이목구비를 관찰하듯 얼굴에 집중했다. 당연하게도 희멀건 뺨에 홍조가 올랐다.
“저기, 그런데 제가 지금 뜨거운 걸 들고 있어서 말인데요. 이거 먼저 내려놓게 해 주세요.”
“조신하게 들고 있어.”
공손하게 부탁하는데도 세헌에겐 들어줄 기미가 안 보였다. 그는 도리어 윤신 쪽에서 팔을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상반신의 전체적인 움직임까지 통제하더니, 좀 더 서로의 몸을 부딪쳐 왔다.
상체만 닿아 있던 상황에서 순식간에 하반신까지 맞닿게 되자 윤신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정장 바지 아래로 서로의 성기가 접촉했다.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 크기와 양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헉, 하고 숨을 삼킨 윤신이 팔을 떨었다. 컵을 떨어뜨릴 뻔해서 겨우 손에 힘을 주었다. 그 바람에 몸의 다른 부분들에도 힘이 실려서 세헌과 닿은 자리들이 뻣뻣해졌다.
“하, 자, 잠깐만요.”
상대방이 원하는 상황을 정확히 반대로 몰아가기로 결정한 건지, 세헌은 윤신이 겨우 뱉은 말을 한 귀로 흘렸다. 그러고는 테이블을 짚고 있던 손을 끌어 올려 거침없이 윤신의 셔츠 위로 뻗었다. 그 언젠가처럼 타이의 매듭 부분에 손가락을 끼워 능숙하게 풀어 내는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낯 뜨거운 열기도 함께 묻어났다.
사락. 스트라이프 문양의 타이를 벗어 낸 그는 셔츠 제일 윗부분부터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여전히 두 하체는 바짝 닿아 있었다.
직접적으로 살갗을 만지진 않고 있지만, 그가 커다란 손으로 제 옷을 벗기고 있는 상황과 아슬아슬한 아랫도리의 접촉 때문에 윤신은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악력을 지닌 누군가에게 사로잡혀 있는 느낌이 낯설고, 불안하고, 한편으론 아찔했다. 온몸의 터럭들이 전부 곤두서는 짜릿한 기분이 치밀었다. 등 뒤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 올랐다.
“하, 읏, 수석님.”
흔들리는 손의 진동 때문에 4분의 3쯤 담겨 있던 커피의 표면이 넘실거렸다. 세헌은 고개를 기울여 컵을 쥔 윤신의 손가락 위에 입을 맞추더니 좀 더 노골적으로 옷깃을 건드렸다. 세 개까지 단추를 푸른 셔츠가 슬쩍 벌어졌다. 그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가슴팍을 매만지기 시작하자, 윤신도 더는 버티기가 힘들었다. 입술을 가르고 탄성이 새어 나갔다.
“아흑……! 아!”
결국 버티기 위해 덜덜 떨리는 한쪽 팔로 겨우 세헌의 허리를 붙들었다. 질 좋은 셔츠를 잡고 구기자 그가 탄력을 받아 좀 더 안으로 손을 넣었다.
툭, 중간쯤에 걸려 있던 단추가 떨어졌다. 윤신이 거기에 잠시 시선이 팔려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이, 자유로운 한 손으로 컵을 빼앗아 간 세헌이 그걸 대신 내려놓아 주곤 반대편 길쭉한 손가락으로 뾰족하게 선 유두를 건드렸다.
“읏, 변호사님, 아. 기분이 이상해요. 으응.”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흘렀다. 윤신이 헐떡이는 숨소리가 서로의 주변을 가득 에워쌌다.
달아오른 얼굴을 세헌의 어깻죽지에 기댄 윤신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의 상박 근육이 바짝 약 올라 있는 게 느껴졌다. 이를 증명하듯 세헌은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쪼듯이 키스하면서 손가락 사이에 유실을 끼우고 어루만졌다.
그 덕분에 온몸의 세포들이 죄다 널뛰는 듯했다. 사지가 터질 듯한 아슬아슬한 감각이 버거워 몸만 연신 바르작거렸다. 슬며시 입술을 벌리고, 홍조 띤 뺨을 실룩거리던 윤신이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다 세헌의 성기가 처음과 달리 확실히 발기했다는 걸 적나라하게 실감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천하의 강세헌이.
최고치의 명예나 권력 정도가 그를 발기하게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이 덕분에 그 강직된 성기의 윤곽 감촉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미 짜릿해서 사정할 것 같았다.
“서, 선 거 맞아요?”
아득해져 가는 의식을 겨우 다잡듯 윤신이 어렵사리 질문한 순간, 그가 돌연 야릇한 행위를 멈췄다. 뒤이어 윤신의 매끈한 턱을 붙들어 눈을 맞췄다.
세헌은 질문에 답하는 대신 그저 물끄러미 눈동자를 응시했다. 눈가에 말하지 않는 어떤 중요한 사실들이 마치 모종을 심듯 박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의아해진 윤신이 그를 불렀다.
“수석님?”
그러자 세헌이 갑자기 깡마른 몸을 제게서 떼어 내곤 한 걸음을 물러섰다. 영문을 모르는 윤신은 고개를 갸웃하는 것 외에 딱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 없었다.
“도윤신.”
또다. 그가 제 이름을 불렀다. 그럴 때마다 세헌은 본인의 안에서 무언가 소용돌이치는 듯 꽤 복잡해 보였다.
지금도 똑같았다.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넌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뜬금없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저요? 전 그냥…….”
극도의 불안을 느낄 때 옆에 있어 주는 걸 원했다. 제 누나의 일까지 도와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냉정히 생각을 거듭한 결과 이제는 맨 처음과 달리 그런 욕망들이 욕심임을 알았다.
〈누군가 본인한테 일을 시키고, 본인은 그걸 하고요. 그렇게 말씀은 안 하셨지만 이용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언젠가 탁 비서가 했던 말이 새삼스럽게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걸 보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강세헌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난 뒤 자신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는 윤신으로선 이 모든 것들을 함축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게 있긴 있어요.”
“그게 뭔데.”
“수석님이요.”
“막다른 골목에 있는 널 위기에서 구해 줄 바다가, 나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 세헌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다. 제게 다소 실망한 듯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뭔가가 그의 안에서 어긋난 듯 보였다. 한데 그저 진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을 뿐인 윤신으로선 원인을 찾기가 요원했다.
“나라면 내가 너한테 제일 안달 났을 때, 공탁을 제시하겠어. 시세 잘 고려해서 던지는 게 좋을 거야. 힌트 하나 주자면 그게 지금은 아니야.”
세 개는 풀려 있고, 그 밑에 하나는 뜯어져 버린 제 단추를 가만히 내려다본 윤신은 생각에 잠겼다.
“플라토닉은 안 하신다면서요.”
“나도 구식인가 보지. 게다가 난 몸값이 아주 비싸.”
“그건 저도 알아요.”
“그리고 너도 비싸겠지.”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곳에 들어와 꺼낸 그의 말은 모두 수수께끼 같았다. 원하는 게 무엇이냐고 묻더니, 서로의 몸값을 새삼 주지시켰다.
분명 함의가 있는 듯했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본능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건, 세헌이 지금 헤매고 있는 자신에게 충고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은 그를 무너뜨릴 카드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라는 것 같았다.
여전히 의도가 안 잡혀 혼란스러워진 윤신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사이, 세헌이 귓불 밑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언제 자신을 노골적으로 다루었냐는 듯 담백한 시선을 보냈다. 그뿐만 아니라 빼앗듯 가져갔던 머그 컵까지 다시 얌전히 손에 쥐여 주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윤신은 말로 그를 붙들었다.
“전 마음이 오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왜 별안간 단가를 책정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금세 얼마간 떨어진 자리에서 제 쪽을 보는 그의 눈매가 냉정했다.
“난 그런 감정놀음 할 시간 없어.”
윤신의 미간이 바로 구겨졌다.
“몸 놀음은 하실 시간 있고요? 시력이 안 좋으세요?”
잔뜩 흐트러진 상태의 자신을 가리키자, 세헌이 불편해하는 기색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뚜벅뚜벅 다시 다가와 윤신의 셔츠 단추를 도로 채워 주었다. 섬세한 손끝이 처음의 형태로 윤신을 되돌려 놓았다. 하지만 단추 하나가 떨어진 부분은 메꿀 수가 없었다. 그도 그게 영 마음에 안 드는지 벌어진 셔츠 위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시선을 받아 내는 윤신은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패가 상대적으로 나쁜 세헌이 강한 배팅으로 벼랑 끝 블러핑을 치고 있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그런데 자꾸만 그가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될까 봐 마음이 초조한 건 제 쪽이었다.
“사람 안달 나게 만드는 비법이 뭐예요? 기왕 육아를 할 거면 그런 걸 가르쳐 주세요.”
그는 의외로 순순히 답을 주었다.
“내가 너한테 바라는 게 없기 때문이야. 난 널 심리적으로 의지하지도, 네가 업무적으로 필요하지도 않아. 내 감정은 단순해. 그냥 널 원해. 같이 있고 싶고, 키스나 섹스 같은 게 하고 싶지. 이미 들켰으니 그건 부정 안 해.”
하지만 자신은 그와 달리 기대하는 바가 있다는 뜻이다. 아쉬운 게 있는 사람은 결국 약해지는 법이니까. 그는 윤신의 짐작이 정답이라는 듯 눈을 맞춰 주곤 덧붙였다.
“안됐지만 난 여태 네가 겪은 인간들이랑 달라. 어차피 사람들이 날 이용하는 덴 익숙해. 하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는 짓은 사절이야. 원하는 게 있으면 내 입 열리길 순진하게 기다리지 말고 네가 말해. 물론 공탁금을 걸어야겠지. 그럼 내가 판단할 거야. 합의해 줄까, 말까.”
“잠깐만요. 전 수석님 이용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외로워하면 옆에 좀 있어 달라고 한 게 그렇게 고까우세요? 아니, 그것도 안 해 줄 거면 저랑 왜 사귀어요? 최소한 저는……!”
그는 윤신이 반론을 전부 제기할 기회도 주지 않고 중간에 말허리를 잘랐다.
“난 아직 너 좋아한다고 말한 적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윤신은 발끈했다.
“수석님을 도통 모르겠어요. 제가 변호사님의 약점이 될 수 있긴 한 겁니까?”
“난 그런 거 없어.”
“앞으로도 없을진 알 수 없는 거 아니에요?”
“앞으로도 없어.”
“변호사님이 늘 이기기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패소도 가끔 하시죠?”
퍽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윤신을 보던 세헌이 입술을 달싹였다. 가끔 지기도 한다는 얘기가 듣기 불편해서인지, 아니면 그 얘기가 제 입에서 나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나 매우 열받는 기색이긴 했어도, 굳이 부인하진 않았다.
“해. 극히 드물긴 하지만.”
그 대답을 들은 자신이 뭔가 이어 답하려던 차였다. 세헌의 휴대폰이 ‘지잉.’ 하고 울렸다. 그는 화면을 힐끗 보더니 윤신의 보드라운 이마를 손바닥으로 밀어냈다.
“중요한 통화야. 방해돼. 나가.”
그러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네, 강세헌입니다.”
그가 바로 통화를 하며 야멸치게 외부 창가 쪽으로 가 버리는 바람에 붙잡을 수도 없었다. 원망스럽게 세헌의 늘씬한 뒷모습을 보다가, 안 나가고 뭐 하느냐는 양 쳐다보지도 않고 손짓하는 그 때문에 울컥했다. 결국 바닥에서 단추와 넥타이를 주워 챙기곤 빠르게 집무실을 벗어났다.
딸칵. 문이 닫혔다.
혹여 비서실에서 관심을 가질까,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는 패잔병처럼 빠르게 도망쳐 제 방으로 들어온 윤신은 깊은 숨을 뱉어 냈다. 곧이어 세헌이 다시 쥐여 준 컵을 짜증스레 내려놓고는 긴장이 풀려 늘어진 몸을 최대한 추슬러 접견용 소파에 기댔다. 마치 온몸의 핏줄들을 죄다 압박당하고 있다가 막힌 혈류가 뻥 뚫린 듯 찌릿찌릿했다. 괜히 애꿎은 목을 손바닥으로 마사지하듯 문질렀다.
“요 며칠 분위기 괜찮았는데. 갑자기 또 왜 저래. 종잡을 수가 없게.”
여태까지 윤신은 꽤 험한 꼴을 많이 봐 왔다. 물론 제 개인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마치 자신의 일처럼 변호해서 싸운 건들이 두 손으로도 못 꼽았다. 언젠가부터 삶은 늘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여겼는데, 더 복잡한 세상을 살아온 세헌에게는 그저 물정 모르는 애송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는 늘 자신을 가지고 논다.
“저 사디스트, 진짜.”
세헌이 건넨 의미심장한 말들을 떠올리자, 기분이 복잡해졌다.
아무리 이런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는 게 처음이고, 또 그래서 서툴다지만 너무 날을 세우는 건 아닌가 싶었다. 궁극적으로 서로가 원하는 건 같은 듯한데, 그가 갑자기 또 방어적으로 나오는 게 이해가 잘 안 됐다. 이미 세헌이 자신을 다치게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던 탓에 아쉬운 대로 추궁하고 싶은 욕구를 삼켜 넘길 순 있었다. 그래도 마음의 통증은 남았다.
왜 감정을 완벽히 교류하기도 전에 자신이 그에게 상처 입힐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쯤 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헌의 차가움이 자신을 다치게 했다. 그리고 그걸 겸손하게 받아들인 순간, 윤신은 제 마음이 이미 제대로 윤곽이 잡혀 있음을 함께 깨달았다.
그동안은 세헌이 신경 쓰이고, 거슬리고, 때론 아이러니하게도 제게 의지가 된다고만 여겼다. 이런 마음으로도 연애는 가능했다. 끌린다는 의미였으니까.
하나 조금만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단순한 감정이었을 리가 없는 일이다. 자신은 그간 살면서 단 한 번도 남자를 성적 대상으로 여겨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세헌과의 스킨십은 기분 나쁘긴커녕 거부감 없이 짜릿했고, 그의 존재는 제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심지어 조금 전 그의 집무실 안에선, 끝까지 허락할 각오로 덤볐던 것이다.
이미 그게 모두 증거들이었는데 낯설다는 이유로 큰 틀의 가능성에서 배제해 두고 있었다.
그걸 인지하니 그의 날카로움이 새삼 아팠다.
‘하자 있는 인간이랑 연애 좀 해 보려니까 시작부터 버겁네.’
후, 답답함을 흘려보내듯 한숨을 내쉰 윤신이 손아귀에 쥔 단추를 쥐락펴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