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
걱정했던 것보다도 훨씬, 식은 완벽하게 끝났다. 기자들의 난동도 없었고, 내게 토마토 같은 걸 던지는 불청객도 없었고. 그냥 모두가, 신기할 만큼 나와 차도헌의 결혼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형수님, 결혼 축하드립니다!”
“저 짐승 같은 놈, 잘 좀 길들여주세요. 성질이 얼마나 더러운지-,”
이어지는 피로연에서 차도헌은 유독 바빴다. 눈을 빛내며 내게 달려드는 그의 친구들 무리를 막아내는 데에 혈안이 될 정도였다.
“내 거 건드리지 마.”
그는 나를 품에 안은 채 친구들을 향해 으르렁대기까지 했다. 훅 퍼지는 그의 극우성 알파 페로몬에 진저리를 치며 자리를 피하는 친구들을 뒤로, 내 뺨이 달아오른 것을 확인한 그가 피로연이고 뭐고 다 제치고 곧장 공항으로 향하겠다는 것을 막느라 나 또한 바빴다고 볼 수 있겠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도해영 님.”
“감사해요, 윤 비서님.”
내내 식전까지 차도헌을 도왔던 윤 비서님은 피로연에서야 겨우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주마등처럼 그간의 일들이 눈앞에 그려지는 통에, 훌쩍이는 나를 가볍게 안아준 윤 비서님의 다정한 포옹이 이어졌다.
그런데, 마구 벅차오르려던 눈물은 단숨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늘 억제제로 완벽하게 알파 향을 숨기는 윤 비서님에게서 오늘따라 익숙한 향이 났는데, 그건 분명-,
“…언제부터예요, 윤 비서님?”
오윤주의 것이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우리 도헌 씨는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여요.”
당황하는 윤 비서님의 반응을 보자니 제대로 짚었나 보다. 어서 진실을 토해내라는 내 눈빛에 그는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내게 속닥거렸다.
“얼마 안 됐습니다. 저번에 도해영 님 생일 파티 했을 때, 밤이 늦어 데려다드린 후부터….”
“그날부터요? 왜 얘기 안 했어요!”
“아시지 않습니까, 대표님께서 아시면….”
이 둘도 꽤나 국경을 넘는 사랑과 같은 걸 하고 있구나, 나는 웃음을 삼키며 위로 차원에서 윤 비서님을 끌어안았다. 아니, 끌어안으려 했다.
“한 번 했으면 됐잖아. 왜 자꾸 딴 놈 품에 안기려고 그래?”
내 몸을 가두듯 끌어안은 품 안에서 익숙하게 맡아지는 내 알파의 페로몬. 그것도, 질투에 활활 불타는 짙은 향의 페로몬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대표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곧 출발하셔야 할 듯합니다.”
“그럼 갑니다. 우리 허니문 가 있는 동안에는 윤 비서가 알아서 전부 다 처리하고. 믿고 부탁하는 거 알지, 윤 비서.”
“대, 대표님!”
돌연 사색이 된 윤 비서님과 한창 파티가 진행 중인 피로연을 뒤로, 내 몸을 가뿐히 안아 든 차도헌은 대기 중인 밴을 향했다.
커다란 트렁크 두 개를 실은 밴, 아늑한 뒷좌석에 타자마자 다급하게 입술을 붙여오는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자 차도헌은 돌연 풀 죽은 강아지가 됐다. 귀가 접힌 것마냥 귀여운 그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참으려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디 가는 건지 말해줘. 안 그럼 키스 안 해 줄 거야.”
단호하게 내뱉는 목소리 뒤에는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결혼을 준비하던 몇 달 전부터 당장 결혼식이 끝난 지금까지도 신혼여행을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신랑은 나밖에 없을 거야.
“깜짝 선물인데.”
“배를 타고 가는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지는 말해줘야 할 거 아냐.”
“…놀랍게도, 둘 다 타.”
능글맞게 웃으며 내 뺨 위로 키스를 퍼부어대는 그의 품 안에서 나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밴 안, 이브닝 예복을 그대로 입은 채 설레는 마음을 가득 품은 나는 첫 비행의 두근거림을 뒤로 하고 몰려오는 수마에 눈을 붙였다.
“해영아. 비행기 타러 가야지.”
“나…, 비행기… 처음 타….”
잠에 취해 아무 말이나 웅얼대는 내 이마 위로 입맞춤 내려앉았다. 허리를 가볍게 쓸어주는 그의 손길에 겨우 잠에서 깬 나는 비척비척 걸으며 정신없이 비행 절차를 밟았다.
어떻게 좌석까지 왔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제대로 졸아 버린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린 곳에는 창문 너머 보이는 몽글몽글한 구름과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식사 트레이가 있었다.
피로연에서도 거의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해서 공복으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영 입맛이 없었다. 배가 고프지 않다며 기내식을 반납하려는 내게 한술이라도 뜨라는 그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수저를 들어 수프를 한술 떴다. 뭉근하게 게살과 달걀이 풀린 수프라면 입맛이 돋지 않을까.
하지만 이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나 보다.
“-우욱!”
속이 뒤집어지는 것처럼 욱 올라오는 구토감에 입을 틀어막는 내 곁에서, 차도헌은 내 등을 쓸어주며 생수통을 건네주었다. 나를 살피는 그의 걱정 섞인 목소리엔 당장 이 비행기를 돌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헌 씨, 나 괜찮-, 우웁!”
그가 건넨 생수를 채 입가에 가져다대지도 못하고 다시금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나는 문득 머릿속에 번개가 친 것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구태여 날짜를 계산할 필요도 없었다. 손목 안쪽에 코를 바짝 대어 깊숙이 피어오르는 체향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바로 판판한 아랫배 위로 손을 올렸다.
내가 일련의 행동을 마치는 동안 곁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차도헌은, 내 손이 아랫배 위로 향하는 순간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해영아.”
마주친 시선에, 그의 얼굴엔 환희가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금세 두 뺨을 푹 적시는 눈물 위로 한껏 입을 맞춰준 그는 행복에 벅찬 웃음을 터트리며 조심스럽게 내 배 위로 손을 얹었다.
마치 생명이 자라나고 있는 곳을 지키겠다는 것처럼 그의 커다란 손이 내 아랫배를 전부 덮었다. 그 위로 살며시 손을 겹쳐 올린 곳에는 행복한 웃음이, 그리고 사랑이 듬뿍 배인 입맞춤이 있었다.
“사랑해, 해영아. 사랑해….”
맞닿은 입술 사이로 그는 쉼 없이 내 이름을 속삭였다. 달콤한 목소리만큼 달콤한 그의 입맞춤에 녹아내리며 나는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기적처럼 희망이, 우리에게 선물처럼 내려온 순간이었다.
***
거의 호텔 안에서만 지내던 허니문이 끝나자마자 향한 병원에서는 이제 막 6주에 접어드는 아기의 모습을 보여주며 임신을 확인시켜주었다.
“축하드립니다, 6주 되셨네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초음파 사진, 아직 형체를 제대로 구별도 못 하지만 그래도, 배 속에 소중한 선물이 있다는 확실한 증표였다.
그렇게 아기 초음파 사진 한 장 들고 곧장 달려간 곳은 따스한 햇살 아래 온기를 잔뜩 머금은, 마담이 잠들어있는 곳.
“…마담 손주 봐. 신기하지. 이제 할머니 된대요, …엄마.”
커다란 담요를 펼쳐놓고 그 위에 털썩 앉아 같이 듬뿍 내리쬐는 햇살을 맡고 있자니 그땐 왜 그렇게 어둠 속에서만 살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직감이 들어. 왠지 도헌 씨 닮은 남자애일 것 같아요. 도헌 씨는 자기 안 닮았으면 좋겠다는데, 낳는 건 나니까 도헌 씨 닮게 낳을 거야.”
이제 와 마담과 이런 시간을 갖는 게 한편으론 심장이 아릴 만큼 슬프면서도, 그래도 분명 어디선가 내가 잘살고 있나 지켜볼 것만 같아서. 마담이라면, 분명 그럴 것 같아서.
“자주 올게요. 오늘은 급하게 와서 준비를 못 했는데, 다음에는 마담 좋아하는 음식 잔뜩 싸 갖고 올게.”
살살 불어오는 바람은 커다란 매화나무를 부드럽게 흔들어댔다. 녹빛을 가득 머금은 마담의 위로 새하얀 눈발처럼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여쁜 순간이 금방 눈앞에 떠오르곤 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아기가 꽃잎을 잡으러 아장아장 걷고, 그 뒤를 따라 보폭을 맞춰 걷는 차도헌과 나의 모습이.
“…빨리 보고 싶어.”
아직 판판한 배를 서툴게 문지르다 터져 나오는 웃음 사이로 먹먹한 울음이 터져나갔다. 눈물은 힘들고 슬플 때만 나는 건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차도헌을 만난 후로는 행복할 때에도 눈물이 났다.
온기가 묻어나는 다정한 손길로 뺨을 어루만져주는 차도헌의 품속에서 나는 가만가만 아랫배를 쓸어보았다. 여기에, 우리 아기가 있다. 사랑의 결실로 맺은 소중한 아기가….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너무 행복하면 오히려 현실감을 잃어버린다는데, 지금 내가 딱 그랬다. 다시금 습관처럼 카디건 호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어 사진을 꺼내 보았다. 이렇게 자주 들여다봐서야, 분명 오늘 막 받아온 사진인데 벌써부터 모서리가 해질 것만 같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흑백 초음파 사진을 눈앞에 바짝 갖다 댄 채로 나는 불퉁한 목소리를 냈다. 분명 의사 선생님이 알려줬었는데, 바보 같은 나는 반나절도 못 지나 깡그리 까먹고 말았다.
입술을 댓발 내민 채 한참을 헤매고 있는 내 곁에서 차도헌은 웃음을 터트렸다. 잔잔한 봄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칼 위로 잘게 입맞춤을 남기던 그는 내 시선을 좇아 사진 위로 몸을 기울였다.
“여기.”
그의 손가락이 단번에 짚은 곳은 자그마한 흰색 얼룩이었다. 아까 병원에서 설명을 들을 때에도 그저 둥그런 얼룩으로 보였었는데, 이제 와 자세히 들여다보니 쪼그만 새싹이 올라오는 콩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이제 외웠어. 새싹처럼 생긴 얼룩 찾으면 돼.”
“‘새싹’?”
내 암기법에 의문을 표한 그는 다시금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단번에 위치를 짚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 콩에서 쪼그만 새싹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눈을 반짝이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내게 차도헌은 사진을 내려놓곤 나와 시선을 맞춰왔다. 이제 그의 얼굴은 마치 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처럼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기까지 했다.
“…새싹.”
“왜, 왜 그래?”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반응 앞에서 나는 다시금 사진을 집어 들었다. 혹시 내가 이상한 무늬를 가리켜 우리 아기라고 칭했던 걸까?
하지만 사진을 샅샅이 살피던 것도 잠시,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내 얼굴에도 놀라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 태명, 새싹이로 할까?”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5월,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가 바람결에 따라 찬란히 꽃잎을 흩날리고 따스한 연노랑 빛 햇살이 부드럽게 온몸을 감싸는 봄날.
우리에게 선물처럼 내려온 지 42일이 되던 날, 새싹이의 태명은 그렇게 탄생했다.
***
“나 조카 생기는 거예요? 어떡해, 나 눈물 날 것 같아요.”
산더미처럼 쌓인 디저트 박스를 정리해 넣는 윤 비서님을 뒤로, 이건 지금 당장 맛봐야 한다며 복숭아 타르트를 빼내온 그녀는 우리의 임신 소식에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왜 말 안 해줬어요? 미리 이야기 들었으면 내가 이렇게 빈손으로 올 일도 없었잖아요!”
“윤주 씨 바쁘다고 들어서…, 그리고 딱히 빈손으로 온 건 아닌 것 같은데요.”
해외 출장을 마치자마자 한달음에 우리 집으로 달려온 그녀는 내가 곧잘 먹던 디저트 카페의 모든 메뉴를 쓸어온 상태였다. 이미 빼곡히 들어찬 냉장고에 그녀가 사온 디저트 박스들을 정리해 넣느라 진땀을 빼는 윤 비서님과 차도헌, 두 남자의 모습에도 오윤주는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3단 케이크를 사 왔어야 했어요. 어쩐지 쇼케이스에 있는 그게 자꾸 눈에 들어오더라니.”
“안 그래도 돼요, 난 윤주 씨가 나 보러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운 걸요.”
큼직하게 잘라낸 타르트 조각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나는 밝게 웃었다. 새콤달콤한 복숭아가 부드러운 크림 사이로 층층이 쌓인 타르트는 그녀의 말대로 이맘때 즈음의 봄날 홍차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최고의 디저트였다.
“내 애정을 과소평가하는 거예요? 안 되겠어, 다음 주에 축하용 케이크 주문해서 올게요. 딸기 잔뜩 올라간 걸로.”
케이크용 초를 타르트 위에 가지런히 꽂고는 촛불을 붙여줄 때까지도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던 그녀였지만, 촛불이 꺼지자마자 그녀는 맹렬한 기세로 케이크 제작 주문을 넣겠다며 내게 일렀다. ‘소박한 타르트’로 축하하는 건 그녀에게 있어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나 보다.
“어머, 그럼 그게 태몽이었나 봐요.”
“태몽이요? 윤주 씨 무슨 꿈 꿨는데요?”
“얼마 전에 꿈에 해영 씨가 나왔는데, 새하얀 복숭아 한 바구니를 다 먹더라고요.”
그 꿈이 생각나 복숭아 타르트를 사 왔는데, 이렇게 경사스러운 일이 생겼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며 그녀는 다시금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보였다.
“심장 소리는 들었어요?”
“다음 주에 들으러 오래요. 7, 8주차에 잘 들린대요.”
그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초음파 사진을 감상하고 있는데, 복숭아 타르트의 상큼한 향 사이로 그보다도 더 매력적인 알파 향이 다가왔다. 이미 타르트를 두 조각이나 해치운 내 접시 위로 세 번째 조각을 올려준 차도헌은 내 머리칼 위로 가볍게 입맞춤을 남겼다.
“신혼부부 집에 너무 오래 눌러앉아 있는 것 아닙니까, 오윤주 씨.”
하는 행동과 내뱉는 말이 그야말로 언행 불일치를 이루고 있는 차도헌의 싹수없는 태도에 오윤주는 고개를 작게 저으며 내 손을 꼬옥 붙잡았다.
“해영 씨. 내가 늘 말하는 거 알죠, 까딱하면 우리 집 와요.”
“절대 오윤주 씨에게 갈 일은 없을 겁니다.”
“꽤 자신만만하게 구네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라는 말은 못 들어봤나 봐요?”
“그쪽이야말로.”
여전히 서로를 내키지 않아 하는 두 사람이 상대를 향해 으르렁대는 모습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가족이라는 거, 나는 죽을 때까지 가질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내 곁엔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선물 같은 가족이 생겼다.
어느새 정리를 마친 윤 비서님까지 합세해 열띤 논쟁을 펼치는 그들을 뒤로 나는 아랫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작게 속삭였다.
“…새싹아, 빨리 보고 싶어.”
따스한 봄바람처럼 어여쁠 네게 아름다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 우리에게 선물처럼 나타난 너와 함께할 모든 순간을 고대하면서, 사랑으로 가득한 날들을 꿈꾸면서.
***
새싹이를 품은 후로, 정말 선물처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첫 심장 소리를 들었던 날, 그의 품에 안긴 채 낮게 속삭이는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었던 밤. 조금씩 불러오는 둥그런 아랫배를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과 온 얼굴 위로 쏟아지는 애정이 듬뿍 담긴 입맞춤.
병원에 갈 때마다 받아오는 새싹이의 초음파 사진과 그 옆으로 애정을 담아 꾹꾹 눌러 쓴 일기로 가득 채워지는 산모 수첩도, 가족 같은 사람들을 모두 불러 함께 새싹이의 콩닥이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눈물짓던 저녁 파티도.
“사랑해.”
매일같이 사랑을 속삭여도 하루가 부족했다. 아침에 그의 품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다시 그의 품에 안겨 잠들 때까지, 나는 전신을 뒤덮는 행복감에 푹 파묻혀져 있었다.
행복하기만 해도 이렇게 바쁠 수 있구나, 그의 품에 뺨을 부비며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새싹이를 위한 방을 꾸미고, 함께 뛰어놀 정원에 꽃을 심고, 아기 요람을 함께 만들고… 앞으로도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는데, 시간은 어째서 자꾸만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이제 계절은 봄과 여름을 훌쩍 지나 단풍이 예쁘게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이 됐다. 새싹이를 만날 겨울까지 정말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자꾸만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렇게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쏜살같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내가 미처 붙잡을 수조차 없게, 아주 아주 빠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