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도대체 어느 시점에서 그놈한테 미친 건지 모르겠네.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공일이 자기를 이용한 걸 모르니까.”
무명의 과거사를 듣게 된 서인은 귀를 의심했다. 제 인생을 망가뜨리고 손에 피를 묻히게 한 놈을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니. 이토록 멍청하고 한심할 수가 없었다.
“그놈은. 그날에 바로 뒤진 거야?”
“그래, 규칙대로 처리했지. 그 당시 무명이가 그놈 정도는 했으니.”
서인은 이미 한참 전에 죽은 놈을 만나기 위해 사는 무명을 패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일에 집착하는 것도 다른 놈이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그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마저 싹 사라졌다. 작업장을 일찌감치 철거한 게 신의 한 수였다.
우선 무명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자 주원이 그를 붙잡아 세웠다. 돌려줄 생각이 없다고 몇 번을 더 말해야 알아듣나 싶어 서인이 짜증스레 손을 뿌리치며 인상을 썼다.
“선 넘지 마.”
선을 넘고 있는 건 누가 봐도 서인이다. 남의 중요 직원을 멋대로 데려가 가둬둔 것도 모자라 돌려달라는 말에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다.
주원은 제 일을 방해하는 서인의 행동이 당혹스러웠다. 웬만하면 넘겨주겠다만, 무명이 혼자서 쳐 내는 작업량을 무시할 수 없고 그를 따르는 직원들이 있으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달 뒤에 있을 축제 생각은 안 하나? 안 그래도 일손 부족한데, 얼굴 한 번 안 비치면서 뭘 안 돌려주겠다고 난리야?”
서인도 마켓에서 열리는 축제의 규모를 알고 있다. 정기적으로 고기를 구매하는 사람은 물론 VIP까지 오는 자리인지라 그 시기에는 주원까지 바빠지고는 했었다.
“…….”
“설마, 걔한테 무슨 마음 생긴 건 아니지?”
주원은 성난 영감처럼 입을 다물고 서 있는 서인에게 물었다. 싸구려는 안 먹는다, 때 탄 건 역겹다고 떠들어대던 그가 구르고 구른 무명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영 수상했기 때문이다.
“헛소리하지 마! 그냥 좆 집이야. 축제까지만 쓰고 내놔. 그 후론 내 거야.”
말하는 것 치고는 아직 무명과 한 번도 잔 적이 없는 서인은 주원의 눈을 피했다.
마음이 생긴 게 아니냐는 질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좋아하는 마음은커녕 징징거리고 기본예절도 없어서 피곤하기만 했다.. 분명 손해 보는 게 많은데도, 서인은 자신이 왜 무명을 놓지 못하는지 몰랐다.
결국, 무명을 축제 동안까지만 빌려주기로 한 서인은 도망치듯 연구소를 나섰다. 차에 올라탄 그는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에 잠시 눈을 붙였다.
♦ ♢ ♦
“…잘 안 되네.”
무명은 서인이 구해다 준 재를 가지고 열심히 술을 만들었다. 기존에 쓰던 것과 달리 더 견고하고 속도가 빠른 기계였지만 무명의 손에는 잘 맞지 않았다.
마켓에서 지급한 것도 그리 구형은 아니었는데, 몇 년간 손에 익은 기계가 아니라 그런지 영 불편했다.
“하….”
일하면 할수록 집중도는 떨어지고 옛 작업실을 향한 그리움만 커졌다. 의뢰도 함께 처리하고 있었는데, 대상이 몸을 바르작거리고 끙끙 앓는 모습에 흥분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예전처럼 발기한다거나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은 없었다.
작업실의 그리움과 서인의 얼굴만 둥둥 떠다녀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공일이 형 만나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해 무명은 살인과 고문, 작업량을 채우는 데에서 오는 만족감에 잠깐 제가 왜 일하기 시작했는지를 망각했다. 작업장이 철거되고 서인도 곁에 없으니 그제야 본 목적이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다시 열심히 해보기 위해 기계를 작동시키려는 순간 저 멀리에서 서인의 차가 보였고 그는 다짐이 무색하게 급히 뛰어나갔다.
“형!”
서인은 피범벅이 된 장갑과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제게 다가온 무명을 한참이나 말없이 응시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뻐서 마주 보면 잠시 할 말을 잃을 정도이긴 했다.
서인은 말 없는 저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무명에게 난데없는 질문을 했다.
“명아.”
“네?”
“명이는 형이 왜 좋아?”
서인은 무명에게서 제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했다. 외모나 몸 말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묻자 무명이 고민도 하지 않고 많은 이유를 쏟아냈다.
“잘생기고 다정하고, 저를 예뻐해 주시고 귀여우시고 멋있으시고 착하시고 그냥 형 자체가 좋아요!”
“…….”
“형은요? 형은 제가 왜 좋으세요?”
무명은 식사예절을 지켜라, 일을 그만두어라, 같은 내용이 아닌 새로운 주제에 눈에 띄게 들떠 있었다. 서인은 역으로 돌아온 질문에 당황해 손등으로 무명의 뺨을 툭툭 치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얼굴.”
“앗…. 그게 다예요?”
무명은 대놓고 서운한 티를 냈다. 예전에는 예쁘다는 말에 쑥스러워하며 좋아했는데, 이제는 더 표현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제가 서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대충 생각해봐도 족히 다섯 개는 넘었는데, 서인은 얼굴 하나뿐이라고 하니, 만약 얼굴이 예쁘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아찔했다.
“읏!”
“몸도 그럭저럭.”
서인은 무명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입술을 삐죽 내밀자 가슴을 세게 움켜쥐며 이유를 추가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은 예쁘장한 얼굴과 탐스러운 몸 밖에 없었다. 주원에게 그를 좆 집이라고 표현했으니 얼굴과 몸만 마음에 들면 된다만 이상하게 실망한 얼굴에 가슴이 쓰라렸다.
“…감사합니다.”
잠시 울적해 있던 무명은 이유가 뭐가 됐든 서인이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는 밖에 서 있는 서인의 손을 잡고 별장으로 잡아끌었다. 옷을 두껍게 입었다고 한들 날이 추우니 서인을 오래 세워두고 싶지 않았다.
“작업은 다 끝나 가?”
“네! 형 덕분에요. 이제 두 병만 채우면 돼요. 감사합니다!”
무명은 급히 기계를 끄고 주변을 정리했다. 서인이 먼저 나가 차에 올라타자 그는 혹시나 버려질까 봐 물건을 대충 처박고 따라 나갔다.
집으로 돌아온 서인은 열심히 작업하던 무명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저 혼자 신경이 곤두섰다. 돈도 안 되는 궂은일을 하는 게 전부 공일인지 뭔지 하는 놈을 위한 짓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냥 확 죽었다고 말해버릴까 고민하던 서인은 괜히 자극해 무명이 흥분하면 일을 그르칠 것 같아 은근히 떠보았다.
“근데, 전 작업장이 약속의 장소라는 말이 무슨 뜻이야?”
“아…. 그거요.”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를 슬그머니 꺼내자 무명이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서인은 그가 사실대로 털어놓든 숨기든 기분이 나쁜 건 똑같을 것 같았다. 주인인 저를 놔두고 다른 남자를 마음에 둔다는데 흔쾌히 넘어가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이공일이라고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형이 있는데요, 일이 많아서 잠깐 다른 나라에 가 있어요.”
“…….”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유치한 표현이 이렇게 듣기 싫을 수 있을까. 서인은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 관리를 하며 최소한의 호응을 해주었다. 다 듣고 와서 아는 이야기였지만, 당사자의 입에서 듣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제가 주어진 작업량을 다 채우면 공일이 형을 만나게 해준다고 했어요.”
“그 작업장에서?”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전 그 작업장에서 만나고 싶었어요. 공일이 형이 선물해 준 곳이라서…. 그런데, 그런데 이제는 없어져 버렸으니까, 흐…. 제가 작업을 느리게 해서 그런 거예요. 수장님께서 화가 나서셔, 흐으, 윽….”
공일을 언급할 때부터 글썽이던 무명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참아보려 어깨를 들썩이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도 견뎌내기 힘든 슬픔이라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했다.
“허.”
서인은 기가 찼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다른 남자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우냐고 다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작업장은 내가 철거했고 그 남자는 이미 죽은 지 오래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그 남자가 너한테 그렇게 중요해?”
“당연하죠….”
당연은 무슨.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해야 옳았다.
서인은 어쩌면 공일이 남의 손에 죽은 게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가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있었더라면 무명이 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혼자 이상한 상상을 한 서인은 자존심이 상해 괜히 무명을 노려보았다. 작업장에 관한 애착도 모두 공일이라는 남자를 향한 그리움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늘 작업은 어땠어? 오랜만에 했잖아.”
화가 났지만, 티를 내는 것보다 더 추한 건 없다. 서인은 전혀 타격이 없는 것처럼 무명의 하루를 물었다. 공일 때문이든 뭐든 그렇게 바랐던 작업이니 도움을 주어서 감사하는 말 정도는 돌아오리라 믿었다.
“예전 작업장에서 했을 때보다 집중이 안 됐어요.”
“…….”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거슬렸다. 서인은 무슨 좋은 대답을 들으려고 물었나 싶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무명은 작업장이 망가진 것 때문에 아직도 기분이 좋지 못했고 입맛도 없었다. 서인이 같이 슬퍼해 주지 않으니 삐친 것도 여전했다.
“기계도 제가 쓰던 게 아니라서 조금 불편하고…. 그냥 다시 돌아가면 안 될까요?”
“이제 없는데 어딜 돌아가?”
아니나 다를까 무명은 서인이 작업장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또 돌아가자고 졸라댔다. 참아보려 했는데, 오늘 작업이 영 불편했고 서인이 곁에 있지 않으니 마음이 콩밭에가 있었다.
무명은 징징대는 것을 멈추고 서인을 소파에 앉힌 뒤 또박또박 제 의견을 전했다.
“형이랑 같이 있었을 때는 작업이 잘 됐는데, 형이 없으니까 자꾸 형만 생각나고 잘 안 돼요. 그냥 연구소라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어, 안 돼.”
징징대지 않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다. 서인이 단호하게 거부하자 무명이 입을 삐쭉 내밀고 한숨을 푹 쉬었다.
“공일이 형은 제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줬었는데….”
“…….”
서인은 저와 근본도 없는 남자를 비교하는 무명을 죽일 기세로 노려보았다. 참아주는데에도 정도가 있지 비교하는 것도 모자라 짜증까지 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인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 정도로 화가 났지만, 정작 무명은 그를 화 나게 할 의도가 없었다. 그냥 잘 몰라줘서 미안하다며 감싸 안아주기를 바랐다.
“공일이 형은 손으로 밥 먹어도 화 안 냈는데! 다정했는데….”
그래도 그렇게 말하기에는 좀 부끄럽고 들어주지 않을 것 같아 괜히 공일을 들먹였다. 무명은 화가 난 서인의 눈치를 살피며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지자 그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사과했다.
“형을 화나게 하려던 게 아니라….”
“나 참고 있으니까 그냥 입 다물어.”
쥐어박고 싶은 충동을 뒤로한 서인은 무명에게서 등을 돌리고 숨을 내쉬었다. 더 들어봤자 때리기만 할 것 같아 자리를 피하려 하자 무명이 달려와 손목을 붙잡았다.
“아니, 형은 왜 제 마음을 몰라주세요!”
속이 답답한 건 무명도 마찬가지였다. 어리숙한 데다가 제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잘 모르는 그는 서인이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랐다. 어렵게 공일의 이야기까지 꺼내도 들어주지를 않으니 억울하고 화가 났다.
“아…. 씨발, 그럼 네 맘 잘 알아주는 놈 찾아 가.”
“네?”
“이공일인지 뭔지 그 새끼 찾아가라고.”
화가 난 서인은 무명의 등을 거칠게 떠밀며 문을 열어젖혔다. 간다는 사람 붙잡는 법 없는 그는 주원과 한 약속도 있고 이참에 버릇을 고쳐놓자 싶어 무명을 내쫓았다.
“형? 형!”
“난 손해 보는 짓은 안 해, 얼른 꺼져. 평생 사람이나 써는 노예 새끼로 살든지 말든지.”
분노에 손이 떨리고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뭘 해도 안 된다면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이 옳았다.
맨발로 쫓겨 난 무명은 서인의 말을 더듬어보다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공일이 형은 다른 나라에 있는데요? 다른 나라로 가는 법도 모르고 아직 작업량도 못 채워서 만날 수가 없는데….”
악의가 없어서 더 화가 났다.
서인은 현관에 서 있는 무명이 넘어지거나 말거나 막무가내로 밀치며 아예 밖으로 내보냈다. 바닥에 무릎을 찧고 곤두박질친 그가 신음하며 울먹여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형!”
한참을 노려보다가 문을 잠가버리자 무명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서인을 불러댔다. 혼자 작업을 하던 별장에서도 그가 곁에 없으니 불안했는데, 쫓겨난 지금은 더 그랬다. 그때는 몇 시간 후에 본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형, 형!”
무명이 문을 두드리다 못해 부술 듯이 내리치자 얼마 안 지나 서인이 부른 보안팀 직원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무명에게 인사 포함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않고 연행하듯이 거칠게 다뤘다. 평소의 서인이라면 무명에게 한 번쯤은 더 기회를 주었겠지만, 지금은 정해둔 선을 한참을 더 넘었기에 애절한 부름에도 문을 열지 않았다.
“아, 싫어, 싫어! 놔! 다 죽여버릴 거야! 형! 형!”
강제로 끌려온 무명은 서인이 보낸 검은 차에 올랐다. 가지 않겠다고 벽에 머리를 찧고 몸을 붙든 보안팀의 팔을 마구 깨물었다. 무명은 대욱도 그렇고 서인이 보낸 사람은 대부분 저를 다치지 못하게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마구 발악했다.
“아!”
항상 그래왔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서인이 말을 안 듣고 일이 커질 것 같으면 적절히 제압해도 된다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보안팀이 제압에 있어 자유롭다는 것을 모르는 무명은 계속 발버둥을 치다가 목덜미를 강하게 얻어맞았다.
“으, 으윽….”
순간 눈앞에 새카매지고 몸이 휘청였다. 보안팀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무명의 팔다리를 묶었다. 무명이 아무리 체력이 좋다고 한들 여러 명이 달라붙으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끙끙 앓으며 버티던 그는 차 창문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기절했다.
♦ ♢ ♦
무명이 눈을 뜬 것은 그로부터 4시간 후였다.
목덜미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킨 그는 그새 익숙해진 서인의 집과 다른 분위기에 화들짝 놀랐다. 그 후 찾아온 것은 역겨운 기름 냄새였다.
“우욱! 뭐야, 왜 이러지?”
그간 시원한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던 서인의 집에 익숙해져서 기름 냄새가 역하게 느껴졌다. 예고도 없이 제 일터에 오게 된 무명은 풀이 죽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서인과 함께 돌아가기를 바랐지 이런 식으로 혼자 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서인이 화가 났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즐겁게 웃으며 일할 의욕 따윈 생기지 않았다.
“총관리자님!”
무명을 오랜만에 본 노동자가 급히 달려왔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신세 한탄을 늘어놓은 그는 살코기를 발라낸 잔해물을 보여주며 칭찬을 바랐다. 이게 무슨 냄새인가 했더니 제때 버리지 않고 모아둔 잔해물이 부패한 악취였다.
“이걸 왜 모아둔 거야?”
“총관리자님께 치, 칭찬받고 싶어서요…. 저 이제 소, 손질 잘하죠?”
미친 짓이다. 주원이나 고위관계자가 알게 된다면 총관리자인 무명이 혼날 일이었다. 아랫것들을 통솔하기 위해 주어진 자리이니 사소한 문제까지도 그가 알아서 관리해야 했다.
“빨리 가서 버려!”
칭찬은커녕 무명은 노동자의 어깨를 거칠게 밀어내며 목이 터질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혹시나 고위관계자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살펴보며 마구 화를 냈다.
서인이 없어 일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는 별개로 맞고 싶지 않은 몸이 절로 움직였다. 그 밖에도 그가 해결해야 하는 일은 많았다.
“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망가진 사이클을 원래대로 돌려놓은 무명은 주원에게 복귀 인사를 올리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주원을 존경하긴 해도 그가 무서운 건 어쩔 수가 없어서 발걸음이 무거웠다.
“무명입니다….”
문 앞에서 서성이다가 노크를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벌컥 열렸다. 아버지 다음으로 무서운 주원이 무명을 위아래로 훑으며 픽 웃었다.
“오랜만이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원의 뒤를 흘끔 바라본 무명은 땅으로 기어들어 가기라도 할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방 안에는 고위관계자들과 그들의 장난감인 노동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들어 와.”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리 없는 무명이 불안에 떨었다. 그는 차라리 죽기 직전까지 폭행당하길 바랄 정도로 방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울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끌려들어 간 무명은 온몸을 떨면서도 울음을 참아냈다. 아무리 두려워도 주원의 앞에서 울거나 말을 더듬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님께서 화가 많이 나셨던데.”
“네? 악!”
주원은 무명이 대답하기 무섭게 그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무명은 뺨을 얻어맞고 나서야 제가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랑한다는 단어를 내뱉은 무명은 치미는 토기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서인의 소식에 미쳐서 울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반문 금지 규칙을 어기고 말았다.
“야, 옷 벗고 이리 와.”
주원은 깔끔하게 뺨 한 대로 마무리했지만, 다른 고위관계자들은 무명의 잘못을 엄하게 다뤘다. 무명이 빠르게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마자 고개가 사타구니로 처박혔다.
“명이 사랑 좀 받아야겠네, 빨아.”
무명은 이 끔찍한 벌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혀를 움직였다. 사랑이야 많이 받아봤지만, 입으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그는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며 괴로워했다.
“하아, 흐….”
“아, 더럽게 못 하네.”
억지 구강성교를 시키던 고위관계자는 제대로 잘 해내지 못하는 무명의 혀를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피우고 있던 담배를 가져다 대려 했다. 무명은 혀가 담뱃불에 지져지고 싶지 않아 어눌한 발음으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죄송하다가 아니지 않나?”
“사, 사랑합니다.”
“그래, 그거야.”
“네, 네. 사랑해요, 사랑해요….”
유사성행위를 강요하는 건 서인과 같았지만, 무명이 느끼는 공포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다리 사이에 머리를 조아리고 앉아 사랑을 외쳐댔다. 빨고 또 빨고 나서야 행위를 끝마친 무명은 몸을 덜덜 떨며 인사했다.
“수고했으니까 밥 먹어야지.”
“…….”
무명은 테이블에 놓인 맛있는 음식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먹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음식에 손을 가져다 댄 그는 예고도 없이 뺨을 처맞았다.
“악!”
“어디서 손을 대?”
얼굴을 얻어맞기 무섭게 발치로 음식들이 떨어졌다. 배가 고프면 기어 와서 먹으라는 말에 무명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다시 끔찍한 고문을 받고 나서야 제가 서인에게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 아니라고 했지!”
“사랑,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배불리, 배불리 감사히 먹겠습니다.”
무명은 눈물이 잔뜩 고인 눈으로 인사하며 음식을 핥아먹으며 신음했다. 서인은 잘못을 빌고 끌어안으면 금방 행위를 멈추고 칭찬도 해주었는데, 고위관계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아, 사,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무명은 평소보다 더 허겁지겁 먹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내일도 와야 해. 알았지?”
“아윽! 네, 알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음식을 퍼먹다가 머리채가 붙잡힌 그는 그만 처먹고 나가라는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옷을 찾았다.
“안 나가?”
“나가겠습니다, 나가겠습니다!”
또 맞을까 겁이 난 무명은 급히 방을 뛰쳐나왔다. 저보다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에게 오물로 범벅된 나체를 보인 그는 수치심과 충격에 물든 얼굴로 욕실로 몸을 숨겼다.
“흐으, 흐, 아아…. 아아아! 형, 흐…. 형….”
난데없이 사랑을 복습하고 저보다 계급이 한참은 낮은 놈들에게 나체를 보인 것이 끔찍했다. 제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도 짚이는 게 없어서 억울했다.
가장 소중한 공일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그가 만들어준 작업장도 철거하고 심지어는 서인까지 빼앗겼기에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해, 흐으, 흐….”
무명은 그러면서도 마켓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평생 나고 살아온 장소였으며 꽤 높은 직위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직급이 높아지면 그 누구도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고 제 말이 곧 법이 된다고 공일에게 교육받았기에 죽어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하, 하아…. 나도 대표가 되면, 대표가 되면 형이랑….”
무명은 제가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서인을 다시 만나 특별 대우를 받겠다며 다짐 아닌 다짐을 했다.
무명은 씻고 나와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무섭게 일을 시작했다.
축제 시즌이라서 고기를 몇백 킬로씩 나르고 포를 뜨는 등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원래 행사가 있을 땐 그가 가장 바쁘긴 했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어지러울 정도로 움직여도 물건이 계속 몰려왔다.
“하아, 헉….”
이상하게 저만 움직이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쯤 저 멀리에 앉아 음료와 과자를 집어 먹고 있는 부하들이 보였다. 분명히 고기 손질을 맡겼을 터인데, 제 명령을 듣지 않고 놀고 있다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내가 일하라고 했잖아!”
부하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고 온갖 수모를 겪은 무명은 손부터 나갔다. 그는 놀고 있는 제 부하의 머리통을 때리고 발로 짓밟으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아, 악!”
“왜 일 안 해! 왜 안 하냐고 있냐고! 내가 만만해!?”
“수, 수장님께서 하, 하지 말고 쉬, 쉬라고 하셔서!”
노동자는 무명보다 더 심하게 말을 더듬으며 사랑하니까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무명은 주원이 휴식시간을 주었다는 말에 더 따지지 못하고 그저 부들부들 떨었다. 행사 시즌인데, 다들 바쁘게 움직여도 모자랄 시간에 왜 쉬는 시간을 준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달려가서 묻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는 차마 고위관계자들에게 대들거나 따지고 들지 못했다. 대신 죄 없는 부하에게 화풀이하며 제 억울함을 달랬다.
“저, 저 총관리자님!”
“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일 처리를 하던 무명은 샤워실이 고장 났다며 한자리에 모여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동자들을 발견했다.
샤워실은 수도가 배배 꼬이고 꽉 막혀 물난리가 나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물이 줄줄 쏟아져 내렸고 샤워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사방팔방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샤워실 사용한 사람이 누구야?”
무명이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고작 샤워실 문제로 시간을 낭비해야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모, 모르겠습니다….”
샤워실 담당자가 쪼르르 달려 나와 모르겠다며 죄송하다고 빌었다. 담당자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고 따지고 들어도 그는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무명은 고작 샤워실 하나 관리를 못 해서 저를 다시 구렁텅이로 집어넣는 관리자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그는 죽상이 된 채로 고위관계자들의 방으로 가 상황을 보고했다.
“샤워실이?”
“네….”
“그건 총관리자인 네가 관리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별것도 아닌 일로 날 귀찮게 해?”
무명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검지로 가슴팍을 미는 관계자에게 잘못을 비는 수밖에 없었다.
“아, 아악! 읏….”
무명이 잘못한 게 아닌데도 무명의 잘못이 되는 환경이었다. 그는 무명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붙잡아 노동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부하들 앞에서 폭행당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긴 했지만, 고위관계자가 무서워 소리는 내지 못했고 눈만 열심히 부라렸다.
“가서 큰 수조 가져와.”
“수, 수조, 저, 저요?”
관계자는 아무에게나 수조를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고 멍청하게 되묻는 노동자들에게는 가차 없이 손찌검했다. 차라리 맞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던 무명은 날아드는 손길에 잔뜩 겁을 먹었다.
그는 술을 제조할 때 가끔 사용하는 대형 수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은 작업할 시간도 아닌데, 왜 수조를 가져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관계자는 잔뜩 겁먹은 무명의 머리통을 후려치며 그대로 욕조 속으로 처넣었다. 커다란 욕조를 샤워실 안으로 가져온 노동자들은 하나둘 자리에 앉아 무명이 당할 일을 구경하고 있었다.
수조에 물이 점점 차오르자 무명이 까치발을 들었다.
“공동욕실을 망가뜨린 게 누구인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제대로 관리를 못 한 관리자 탓이지.”
“사, 사랑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노동자 대부분은 무뚝뚝하고 제 할 일을 척척 해내는 무명을 동경하거나 부러워했다. 그런 위상 높은 무명이 수조 안에 갇혀 엉엉 울고 있노라니 지금껏 쌓아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렸다.
그는 큰 키와 긴 팔다리를 이용해 수조를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흐, 컥! 싫어!”
무명은 가슴께까지 차오른 욕조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얼굴을 처박고 물을 들이켜기 시작했다. 익사하기 전에 모두 퍼마셔 벗어나자는 생각뿐이었다. 고통받는 자신을 부하들이 보든 말든 이제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사랑해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차오른 물이 목 언저리까지 찰랑거리자 이제는 수조 안을 두드리는 소리조차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수십 개의 눈이 제게 꽂혀 들자 무명은 머리를 감싸 쥐고 넓은 수조 안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자, 곧 행사 있는 거 알지?”
“네, 네!”
관계자는 물이 턱 끝까지 차오른 것을 보았음에도 무명을 꺼내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이런저런 규칙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VIP가 찾아올 것, 고기는 최상의 상태로 구울 것 등등 지금 하지 않아도 될 말이었다.
“만일 너희들이 실수하게 된다면 총괄이 벌을 받는 거야. 알았나?”
“네, 네 아, 알겠습니다!”
그는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노동자들을 무르고 발끝을 들고 발악하는 무명의 머리를 짓누르며 킬킬댔다.
살고자 올라오면 짓누르고 숨이 넘어갈 때쯤 머리채를 꺼내주는 고문 행위는 10분 이상 이어졌다.
“컥, 컥!”
무명이 힘이 빠져 더는 반항하지 못할 때가 되자 물이 점점 빠져나갔고 그대로 주저앉은 그는 몸을 끌어안고 울었다.
“형, 흐, 형, 형, 살려주세요, 흐으, 도와주세요, 안아주세요, 흐윽….”
그제야 서인이 듣고 싶어 했던 말들이 술술 흘러나왔다. 남 앞에서 그를 찾는 것만큼 서인에게도 그대로 표현하면 될 일인데 무명은 그 간단한 것을 못 해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다.
언제나 공일을 찾았던 그였는데, 지금은 서인의 이름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연신 불러댔다.
“미워, 흐, 미워!”
무명은 이 와중에도 저를 혼자 보내고 구해주지 않는 서인을 원망했다. 보고 싶다고 빌면서도 원망하는 이상한 상황이었다. 그는 제 몸보다 몇백 배는 더 큰 수조를 밀어내며 낑낑댔다.
“들어와서 이거나 옮겨!”
무명은 문밖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겁먹은 얼굴로 서 있던 이들은 하나둘 들어와 수조를 옮기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어찌나 무서워하는지 황급히 뛰어나가던 한 노동자가 무명의 발등에 샤워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죄,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
정신이 불안하고 극도로 예민한 무명에게는 사과가 들리지 않았다. 되려 저를 비웃으며 무시한다는 환청이 들렸다. 그는 제 발 위에 샤워기를 떨어뜨린 노동자의 얼굴에 샤워기로 물을 뿌리며 주먹질을 해댔다.
“네가, 감히! 나를! 나를! 내가 누군데! 내가 누군데! 나는, 나는!”
서인이 하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무명이었지만,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얼굴만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서인처럼 모두를 제 발밑에 두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 무명은 샤워기 호스로 노동자의 목을 칭칭 감아 힘을 주어 짓눌렀다.
“크, 큭! 깨, 케, 엑! 에!”
질식하기 직전의 노동자는 사지를 발발 떨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피가 통하지 않는 얼굴이 점점 보랏빛으로 물들어도 무명은 호스를 놓지 않았다. 내세울 건 없지만, 내세울 주인이 있는 그는 서인의 이름을 들먹이며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형이 여기 오면 너희들은 다 끝이야! 그 사람이 누군지 알아! 알기는 해!? 밥도 주고 씻겨주고, 다 줬어! 알아? 하아, 하아…. 무려 대표님이라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온 무명은 음지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서인에 관한 정보를 술술 읊어대며 마치 그 직위와 사회적 지위가 제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서인이 매번 얼굴을 꽁꽁 싸매고 가명을 쓰는 이유가 무색해질 만큼 생각 없는 행동이었다.
“…초, 총관리자님, 주, 죽었어요. 그, 그만 하세요, 그만….”
“닥쳐!”
무명은 모두가 저를 비웃고 조롱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수조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물에 젖은 몸을 닦아준 죄 없는 노동자를 발로 차며 샤워기 헤드로 머리를 마구 내리쳤다.
“죽어! 죽어! 죽어! 다 죽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나를 건들고도 무사할 거 같아? 넌 이제 끝이야! 끝이야! 끝이야!”
노동자들은 폭력적으로 돌변해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 그를 바라보며 서로를 끌어안고 벌벌 떨었다. 몇십 년간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치지 말라고 세뇌당한 탓에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도 달아나지 못했다.
“너야 그런 취급 많이 당해봤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야. 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거든!? 알아?! 알아, 알아, 알아!?”
무명은 서인이 했던 말들을 그대로 내뱉으며 닥치는 대로 노동자들을 패 죽이기 시작했다. 욕실을 피바다로 만든 그는 겁먹은 노동자들이 제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무차별적인 살인을 마쳤다.
“내 말 안 듣고! 나를 무시하면 너희들도 이렇게 되는 거야. 알았어?”
“네, 네네, 네!”
고위관계자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면 그보다 약한 사람들을 거느리는 것이 옳았다.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야 손해 보지 않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무명은 폭행과 성적 학대를 당하고 나서는 항상 노동자들을 괴롭히며 나름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 ♢ ♦
“초, 총관리자님, 검사 부탁드립니다….”
무명이 삐뚤어진 권력을 내세운 이후로 마켓 내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무명이 쳐다만 봐도 발작하듯 떨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린 후 제게 살갑게 대하던 부하마저 죽였다는 것을 알고 조금은 우울했던 무명은 어느새 저를 떠받드는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심지어는 서인과 조금은 동등하지 않나 싶은 단계까지 이르러 있었다. 도를 넘은 학대가 안 그래도 정상이 아닌 무명을 더 미치게 했다.
“휴대전화 좀 가져와.”
“네, 네!”
무명은 전화만 가능한 휴대전화가 아닌, 검색이 가능한 기기를 찾았다. 더 똑똑해지기 위해 서인에 대한 것도 검색하기 위함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받아 든 그는 키패드를 한참이나 노려보며 서인의 이름을 입력하려 애를 썼다.
노동자의 도움을 받아 포털 사이트에 서인의 이름을 검색한 무명은 신약 개발 소식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잔뜩 쓰인 글을 읽게 되었다.
[SI 신약 개발사업단은 보건복지부와 국립임신센터의 다양한 지원을 받아 여러분의 귀중한 임신후보물질이 비임상과 임상시험을 거쳐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신약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임신의 안전성을 위해 불철주야 연구와 개발에 힘쓰고 계신 여러분의 고민과 애로사항을 해결해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의 연구 개발 활동에 도움이 필요하신 사항이나 건의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주시길 바랍니다.]
나머지는 전부 영어로 되어있어서 무명이 읽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한글로 쓰인 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그는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사이트에 기재 된 글을 외우기 시작했다. 서인과 다시 만나면 아는 척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가봐.”
“네, 네!”
전부 제가 부족해서 서인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무명은 작업실 안에서 글을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보고 싶고 품에 안겨 엉엉 울고 싶었다. 그저 같이 작업실로 돌아와서 오순도순 살고 싶을 뿐인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지 몰라 속이 상했다. 서인이 좋고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기쁜데 일도 놓을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아….”
무명은 제가 서인에게 느끼는 감정을 좋아한다는 표현 말고 더 예쁜 단어로 표현하길 바랐다. 서인은 얼굴과 몸이 좋다고 간단하게 대답했지만, 무명은 그 이상이었기에 다시 만나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었다.
“형을 보면 심장이 뛰고 지금도 형 밖에 생각이 안 나고…. 화내는 모습을 보면 무섭지만, 다정할 땐 성기가 간지러워….”
무명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부끄러운 말을 중얼중얼하며 있는 그대로 검색했다. 수십 개의 글 중 제 증상을 간추려 찾아낸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휴대전화가 서인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역질이 치미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다시 검색해보아도 한 곳도 빠짐없이 무명의 증상을 짝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사랑이란 학대와 세뇌일 뿐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떨리는 손으로 힘겹게 사랑을 검색한 무명은 대문짝만하게 나온 사전적 의미를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거짓말이야!”
그는 당연히 믿지 않았다. 피가 터질 때까지 폭행하고 억지로 성기를 애무하게 하는 그런 학대를 사랑인 줄만 알고 살아왔던 무명이 사랑의 뜻을 쉽게 받아들일 리 없었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문장이 그를 무너지게 했다.
무명은 검색결과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모두 저와 같은 증상을 앓고 있었기에 혼란스러웠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몰라서 머리가 복잡하고 속이 울렁였다.
“우욱, 흑…. 컥, 컥!”
결국, 먹은 것도 없이 위액만 잔뜩 게워낸 무명은 입을 대충 닦아내고 최근 검색어를 눌러 서인의 사진 입을 맞추며 엉엉 울었다. 당장에라도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흐윽, 흐….”
눈을 뜨기도 힘들 정도로 펑펑 울던 그는 휴대전화를 작업실 구석에 숨겨둔 채로 베개를 껴안고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속이 꽉 막히다 못해 목구멍에 쇳물을 쏟아붓는 듯한 고통에 침대 위를 마구 뒹굴었다.
“형, 으으으….”
무명은 서인을 떠올리며 슬피 울었다. 이렇게 힘든데 그가 곁에 없어서 서럽고 마음이 아팠다.
♦ ♢ ♦
무명은 다리에 힘이 풀려 우스꽝스럽게 떨리는 와중에도 맞지 않기 위해 장갑을 끼고 작업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동물 가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년 준비하던 행사인데 이번에는 즐겁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돼지, 닭, 소, 오리, 양 등 고기 재료의 모습을 띤 가면을 만지작거리며 설렌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초, 총관리자님께서는 이곳에서 먼저 고르시면 됩니다. 수장님께서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사랑을 받으시는 건가요?”
무명은 사랑받는 게 부럽다며 요령을 알려달라고 조르는 노동자를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랑, 사랑. 그는 혼란스러웠다. 제 주변인들은 모두 사랑을 수장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인터넷 속 사람들은 사랑을 소중하고 깨끗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믿고 따르는 서인 역시 사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아끼는 듯했기에 더 복잡했다. 공일이나 서인이 정의를 내려준다면 그 말을 믿을 수 있는데,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기에 무명은 마음고생을 했다.
“토, 토끼 가면도 있네요.”
“줘.”
“초, 총관리자님께서 토, 토끼요? 아니, 좀 더 조, 좋은 걸 할 수도 있는데….”
노동자는 권력의 상징인 사자 가면을 쓰라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해댔지만, 무명은 전혀 관심 없다는 얼굴로 최약체인 토끼 가면을 쥐고 사라져버렸다.
“배고파….”
토끼 가면을 품에 안은 그는 배를 움켜쥐고 허덕였다. 마켓에 돌아온 이후로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주지 말라는 서인의 명령임을 알 리 없는 무명은 상품 조달이 늦어 주원이 제게 화가 나 내리는 벌이라고 생각했다.
“빨리해야지….”
그는 축제 준비를 모두 끝낸 뒤 바로 상품을 조달하기로 하고 고기를 옮겨 담는 궂은일을 이어나갔다.
“하아, 하아….”
노동자들이 남긴 음식들을 먹고 버틴 무명은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살이 훌쩍 빠졌다. 매일 밤 잠들면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 정도로 힘든 한 달을 보낸 그에게 연말 행사가 다가왔다. 무명은 호랑이와 사자, 표범 가면을 쓰고 온 VIP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
한구석에서는 직원 전용 행사도 열리고 있었고 무명이 좋아하는 생필품도 살 수 있었는데, 그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머릿속에 온통 서인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토끼 가면을 쓴 그는 술과 고기를 보고 있는 VIP에게 다가가 밝게 인사하며 상품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레드 마켓의 총관리자입니다. 이 고기는 제가 직접 손질했습니다! 도축 적령기보다 조금 더 지난 재료로 만들어진 고기지만, 허벅지가 탄탄해 그 어떤 것들보다 훨씬 좋은 육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없는 소개였다. 무명은 감정 없이 국어책을 읽듯 소개하며 억지로 웃었다. 고기를 사 가든가 말든가, 팔아봐야 어차피 행사 땐 수익이 떨어지지 않으니 별 의미도 없었다.
“토끼네?”
한 달간 굶어서 힘도 없고 삶의 의지도 없는 무명은 멍하니 설명을 이어나가다가 익숙한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낮으면서도 다정한 것이 딱 서인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격하게 뛰었지만, 서인이 VIP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행사에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가면을 벗겨보거나 소리치지는 않았다.
“네, 토끼입니다…. 제가 방금 구운 고기인데 한 번 드셔보세요.”
남자는 특이하게 동물 가면으로 눈만 가린 게 아닌 새카만 가면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가면에 무명이 조금 더 친절하게 굴었다. VIP 중에서도 가장 높은 사람이 아닐까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래, 맛있네. 마무리될 때쯤에 다시 사러 올게.”
무명에게서 받은 고기를 조금 떼어먹은 남자는 다 씹어 넘기기도 전에 인사하고 사라져버렸다. 더 말하지 않고 급한 것처럼 사라져버리니 무명은 그의 정체가 더 궁금했다.
“형이랑 똑같은 냄새 나….”
술 냄새가 많이 나긴 했지만, 서인의 냄새임이 확실했다. 매장 쪽으로 시선을 돌린 무명은 긴 다리와 예쁜 손을 가진 남자를 쳐다보다가 고기를 굽던 집게를 내려놓고 미행했다. 당연히 서인이 아니겠지만, 심장이 뛰어서 얼굴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무명은 경매를 진행 중인 무대 앞에선 그를 문 뒤에 숨어 훔쳐보았다.
“입찰은 이곳에 행차하신 귀중한 손님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며 직전 입찰하신 손님보다 최소 1천만 원 이상 높은 가격에 진행하셔야 합니다. 한 번에 최대 2천만 원까지 입찰하실 수 있지만, 마지막 1분 안에는 입찰 제한 가격이 없습니다.”
무명은 경매 상품을 흘깃 훔쳐보며 남자를 힐끔댔다. 무식한 철창 속에 든 상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그는 남자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미행하는 거 포기했어? 대놓고 따라오네.”
“악!”
숨을 죽이고 조금씩 다가가던 무명은 남자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자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얼어있는 그를 제 옆으로 잡아당기고 다시금 경매에 집중했다.
“경매 마감 가장 근접한 시간에 최고가로 입찰하신 분이 낙찰되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낙찰받으셨다면 오늘을 충분히 즐기신 뒤 회신해 주시면 됩니다. 다음 날 동이 틀 때까지 연락이 없으시면 블랙리스트 회원으로 간주하며 향후 경매에 입찰하실 수 없습니다. 낙찰받으신 제품은 단순 변심으로 인해 반품이 불가하니 심사숙고하여 경매에 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경매 담당자는 매년 행사에 참여했다면 다들 아는 규정을 간략히 설명하고 창살 위에 덮여있던 검은 천을 걷어냈다.
창살 안에는 개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남자는 그들을 보고는 목덜미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짐승이 갇혀 있어도 안타깝고 마음이 아픈 작은 공간에, 사람이 갇혀 있었는데도 구경꾼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작은 철창,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목소리, 여기저기 멍 자국이 가득 한 얼굴. 철창 안에 갇힌 상품은 온전한 곳이 없었다.
“자, 성 기능도 아주 뛰어납니다. 한번 사용해보실 분 계신가요?”
고상한 척 입을 다물고 있던 손님들은 성 기능을 시험해볼 수 있다는 말에 열광하며 너도나도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담당자가 그중 한 명을 선택해 철창에 갇힌 상품을 거칠게 잡아끌어 냈다. 발악하는 상품의 사지를 결박한 뒤 걸치고 있던 속옷을 끌어 내렸다.
“아, 아아, 아아아!”
속옷이 속수무책으로 끌어 내려지자마자 홀의 상황은 끔찍해지기 시작했다.
무명은 언제나 그랬듯 보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았다. 뒤이어 사람들이 열광하는 소리와 애완 인간의 비명이 들려왔다.
“…역겹네. 이러라고 참여하라고 한 건가?”
남자는 헐떡이며 성욕을 푸는 손님들의 행동에 인상을 쓰고 경매 홀을 벗어났다. 무명은 VIP라면 모두 좋아하는 경매 코너를 역겹다고 표현한 남자의 뒤를 슬금슬금 따라가며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왜 자꾸 따라와, 토끼야?”
“…….”
술에 취해 어눌한 발음과 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무명은 검은 가면의 남자가 서인임을 확신했다. 가면을 벗고 품에 안기려던 그는 저 멀리에서 고위관계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서인을 모르는 척했다.
“무시해?”
무명도 무시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당장 매달려 안아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는데 관계자가 무서워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는 저를 토끼라고 부르는 서인을 피해 관계자에게 인사한 뒤 도망쳤다.
작업장으로 들어온 무명은 제게 말을 붙여오는 부하들을 무시하고 눈물을 훔쳤다. 서인인데 안길 수 없는 것도 속상했고 그가 자신을 모르는 척하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첫 만남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서인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건 언제나 제 몫인 것 같아 기분이 좋지 못했다. 저 혼자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눈물이 났다.
“흐, 흑….”
부하들을 무르고 구석에서 흐느끼던 무명은 작업장 문이 벌컥 열리고 빛과 함께 들어온 검은 마스크를 보고는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다고 숨어지는 게 아닌데, 토끼 가면을 쓰더니 머리만 숨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토끼처럼 굴었다.
“야.”
“흐, 형아…. 왜, 왜 나 모, 모르는 척….”
무명은 서러운 나머지 서인을 형아라고 부르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감정이 격해지니 서인이 지적했던 나쁜 버릇들이 쏟아져나왔다. 평소엔 형아라고 부르지 않고 말을 더듬지 않기 위해 언제나 주의했는데,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따라와.”
“서인이 형 맞아요? 네?”
“씨발, 그럼 누구겠어? 다른 새끼이길 기대했냐?”
놀란 무명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느냐며 가면을 벗기기 위해 손을 뻗자 서인이 거칠게 쳐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취한 그는 배로 더 과격했다. 무명의 손목이 새빨갛게 되어도 놓아줄 생각도 하지 않고 상스러운 욕을 하며 지하실로 끌고 들어갔다.
“흐윽, 흐….”
서인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무명의 옷을 마구 잡아 뜯기 시작했다. 어차피 끝낼 거 먹을 건 먹고 끝내야 덜 억울할 것 같았다.
“형! 싫어, 아!”
서인은 무명의 썩어 빠진 정신머리를 고쳐놓기 위해 무려 한 달간 마켓에 가둬놓고 고문했다. 식사를 챙겨주지 말라고 명령한 것도 그였고 폭행하고 괴롭히라고 명령한 것 역시 그였다.
제집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각인시켜주기 위함이었는데, 무명은 예상과는 달리 멀쩡했다. 조금 마른 것만 빼면 더 잘 지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형, 싫어, 싫어요! 무서워요!”
그런 것들은 참고 또 참아 눈감아줄 수 있어도 저를 알아보고도 모르는 척 도망쳤다는 게 가장 괘씸했다.
또 주원의 말대로 그를 찾는 사람도 많았다. 개중에는 가슴이나 엉덩이를 훔쳐보며 제 성기를 쭈물거리는 놈도 있었다. 모두 무명과 같이 성욕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놈들임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불쾌했다.
“싫어!”
복잡한 감정이 펄펄 끓어올라 머리가 뜨끈했다. 그런 데다가 무명이 싫다고 반항까지 하니, 눈앞에 칼만 있었다면 죽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형, 싫어, 싫어요! 무서워요!”
“입 다물어.”
그를 향한 제 분노가 질투임을 꿈에도 모르는 서인은 신경질적으로 가면을 벗고 무명의 바지를 끌어 내렸다. 놀란 무명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바지를 붙잡자 되는 대로 손을 휘두르며 마구 폭행했다.
“싫어! 싫어요!”
무명은 한 달 내도록 고위관계자에게 추행과 희롱을 당한 데다가 새로운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이런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아래를 핥는 건 죽어도 싫어서 서인의 성기가 징그러운 지렁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아, 아악!”
또 입에 쑤셔 넣겠지, 또 뺨을 때리겠지 하는 생각에 겁을 먹고 있던 무명은 서인이 반쯤 발기한 성기를 손으로 두어 번 쓸어올리더니 제 구멍에 침을 뱉고 귀두를 난폭하게 비벼대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항문에는 무언가를 삽입하는 게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했던 무명이었기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서인은 그가 팔다리를 흔들며 저항하거나 말거나 마른 구멍을 짓누르며 성기를 욱여넣기 시작했다.
“아, 아파! 아, 아악! 아! 악!”
“윽…. 힘 안 빼?”
“악!”
간신히 귀두가 삽입되었는데, 그마저도 빡빡한 탓에 움직일 수 없었다. 서로 아프기만 한 행위였다. 서인이 볼기짝을 세게 내리치자 무명이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나는, 흐, 윽! 보고 싶었는데, 흐, 보고 싶었는데!”
그제야 서인이 원하던 것과 가까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서인이 뭘 바라는지 모르는 무명은 꾹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내며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뭐?”
“형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흐윽, 일 더 열심히 했어요! 행사만 끝나면 보러 가려고 했는데! 흐윽, 흐…. 형은 왜, 왜 나한테 아프게 해요! 나는 계속 사랑 당했는데, 형은 오지도 않고 그러면서 아프게 하고….”
공일을 찾아가라면서 쫓겨난 것도 억울했지만, 언젠가 다시 찾아올 서인을 기다리며 인내하고 또 인내했는데 상황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몰랐다. 서인은 화난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았고 얼굴을 숨기고 다정하게 대해주지도 않았다.
무명은 혼자 기다리고 혼자 좋아한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절망적인지 모르는 그가 미웠다. 서인이 질투를 모르듯이 무명은 이런 감정을 잘 몰랐다.
“나한테 잘해주면 되잖아요! 으, 흐…. 얼굴 예쁘다는 거 이제 싫어요! 아, 아니 좋은데…. 좋은데, 그거 하나만, 그거 하나만 보고….”
무명은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억지로 몸을 돌려 서인을 바라본 그는 서인이 무심하게 제 얼굴만 바라보고 있자 배로 더 서글프게 울었다.
“지금도 아무 말도 안 하잖아요…. 흐아, 아….”
이렇게 어렵게 말하는데도 변명도 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말도 해주지 않다니. 무명의 시선에서 서인은 그 누구보다 더 잔인한 사람이었다.
“후…. 일어나.”
서인은 무명의 말에 그 어떤 답도 해주지 않고 다른 소리를 했다. 고집을 피우려던 무명은 이대로 그가 떠나버리면 평생을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잠자코 명령을 따랐다.
“바지 입어.”
울고 반항하느라 힘도 없는데, 입혀주지 않는 것도 역시 서운했다. 한 번 울적한 감정이 고개를 들자 여태까지 참아왔던 것들이 줄줄 흘러나왔다.
“너무해, 미워….”
조심스럽게 투덜대보아도 서인은 안아주거나 달래주지 않았다. 화가 난 건지, 뭔지 좀처럼 읽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가 찢어진 항문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한숨을 쉬자 무명이 급히 바지를 올렸다.
“일해.”
바지를 올리라기에 같이 갈 줄 알았던 무명은 서인이 그대로 지하실을 나가려 하자 황급히 따라붙었다. 또 이렇게 가버릴 거면 왜 왔냐고 묻고 싶었다. 무명에게 붙잡힌 서인은 그의 얼굴을 똑똑히 보며 말했다.
“더 예의가 없어졌네. 이제 그만할 거니까 이거 놔.”
“제가 왜 이러는 건지 형은 모르세요?!”
서인은 잘한 것도 없는 주제에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는 무명이 우스웠다. 한 달을 고생시켜도 답을 모르는 그의 머리를 후려치고 발로 밟아주고 싶었다.
“대답해줘요! 형은 어른이잖아요. 어른이면….”
“그러는 너는 애야?”
“…….”
스무 살이면 어리긴 해도 제 의견을 똑똑히 전하지 못할 나이는 아니다. 게다가 무명이 해야 할 말이 난도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지 않고 제 곁에만 있겠다고 말하면 모두 해결될 일인데 뱅뱅 돌아가는 그가 답답해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너 법적으로 성인이야. 그러면 네 의견 정도는 똑바로 전달할 수 있어야지. 내가 다 해주기를 바라면 안 돼. 네가 무슨 강아지도 아니고. 아, 아니다. 요즘은 동물들도 똑똑해서 너보다는 낫겠다.”
강요해서 듣고 싶지도 않다. 억지로 시켜봤자 마음이 따르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또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게 뻔했다. 서인이 일부러 멍청이 취급하며 비난하자 무명도 발끈했다.
“그럼 그냥 아가 할게요, 그럼 그냥 명이는 아가 한다고요! 아가 안 낳아요. 형이 나 키우면 되겠네요!”
무명은 서인이 왜 저를 버렸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서인은 사랑해달라고 말하지 않는 그의 고집을 받아줄 수 없었다. 서로 마음은 같지만,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다. 고문당한 무명만큼 서인도 만만찮게 지쳐있었다.
“삼인칭 하지 말라고 했지. 그건 애들이나….”
“그래요, 그러니 아가 한다고요! 아가! 아가! 아가! 아가!”
“할 말이 그게 다야?”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달라고 하세요!”
서인의 눈에는 그가 대들고 저와 맞먹으려 드는 거로 보이겠지만, 무명은 그렇지 않았다. 누구보다 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고 서인에게 안겨 뽀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듣고 싶은 말이 있으면 요구하라는 것도 진심이었지만, 소통이 되지 않고 자존심이 센 서인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았다.
“씨발, 지금 나보고 구걸하라는 거냐?”
되려 무명에게서 사랑을 갈구하는 미친놈 취급을 받은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그런 뜻이 아니라! 아, 맞다!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임신의 안전성을 위해 불철주야 연구와 개발에 힘쓰고 계신 여러분의 고민과….”
화를 내기보단 서인이 원하는 말이 뭔지 고민해보던 무명은 그를 만나면 들려주려던 기업소개를 달달 외웠다. 한참 전에 한계였던 서인은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더는 반응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형! 왜, 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도대체 뭘까. 무명은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계속 말을 걸어왔다.
보고 싶었다고 할 때 표정이 조금씩 풀리는 것을 눈치챈 무명은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술에 취한 사람이 걸음은 또 왜 이렇게 빠른지 따라가면서 말하니 숨이 찼다.
“공일이 형보다 서인이 형을 더 좋아해요!”
서인이 문을 열고 나가자 무명이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그가 듣길 바라는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이 극에 달하자 좋아한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막 내뱉고 본 무명은 잠시 부끄러워하다가 우뚝 멈춰선 서인의 허리를 껴안았다.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공일이 형보다 서인이 형이 더 좋아요!”
어쨌든 이 말이 통하는 것 같으니 무명은 멈추지 않고 고백했다. 계속 말하다 보니 부끄러운 것도 잘 모르겠고 서인의 귀가 붉게 달아오른 것이 귀여워 보였다.
“좋….”
“알았으니까 그만해.”
서인은 아무도 듣지 않는데 무명의 입을 틀어막고 점점 더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조금 전과 같이 행동은 폭력적이었지만, 표정은 달라서 무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뭘 웃어 또.”
“행사 준비하는 내내요, 형 만나러 가는 생각만 했어요.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고…. 지금처럼 이렇게 가슴에 비비고 싶었어요.”
무명은 서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며 어리광을 피웠다. 서인이 듣고 싶었던 말은 복종하겠다는 뜻이 강했는데, 무명이 내뱉은 말은 고백에 가까웠다. 그런데도 그는 기분이 풀리다 못해 자꾸 웃음이 샐 정도로 좋아하고 있었다. 물론 본인은 드디어 무명을 소유했기에 기분이 좋은 거라고 믿었다.
“그럼 이제 같이 즐기다가 갈까요?”
“좋아.”
서인은 드디어 몸까지 허락한 무명을 붙잡고 지하실 밖으로 나왔다. 같이 생필품도 고르고 고기와 술도 사면서 놀자는 뜻이었던 무명은 서인이 아예 마켓을 벗어나 차에 올라타자 급격히 불안해했다.
“어디, 어디 가는 거예요?”
“즐기자면서.”
“여길 나가면 행사에 참여할 수 없는걸요? 그리고 저는 아직 가면 안 돼요. 혼나요, 사랑 당해요….”
허락한 줄 알았던 서인은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무명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진심인가 싶어 되묻자 무명은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같이 이것저것 사고 부스도 구경하자는 말에 서인은 할 말을 잃었다.
“…….”
마켓 측에서 몇 년간 그렇게 와 달라고 부탁해도 참여하지 않던 행사에 온 이유는 무명을 보기 위함이었지 그깟 물건을 사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걸 알 리 없는 무명은 속 좋은 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됐어. 안 가도 돼.”
어쨌든 한 달간 빌려주긴 했으니 약속을 어긴 건 아니다. 서인은 무명이 내리지 못하게 차 문을 잠가버리고 안전띠를 해주었다.
“안 돼요, 저 그동안 많이 혼났단 말이에요….”
무명은 또 고위관계자들의 성기를 애무하고 싶지 않았다. 해도 서인의 것을 하는 편이 백만 배는 더 나았다. 또 오늘 행사에서는 성인식도 함께 진행되기 때문에 끝까지 남아 있고 싶었다.
“그리고 성인식도 하는데….”
말이 좋아 성인식이지 실상은 성폭행이다. 성인이 되면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로 속여 VIP 손님들에게 성 접대를 시키고 돈을 받는 그런 더러운 의식이었다.
어른이 된다고만 들었지 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무명은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굉장히 아쉬워했다.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은데, 서인이 기다려 줄 리가 없으니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대로 차가 출발하자 무명은 아쉬움에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런 그의 반응을 살피던 서인은 저 역시 성인식을 할 줄 안다며 무명을 달랬다.
“형이 대신해줄게.”
“네? 형도 성인식 할 수 있어요?!”
“어.”
어차피 무명은 멍청하리만큼 단순하니 케이크에 촛불 하나만 붙여줘도 좋아할 놈이다. 서인은 집에 가서 대충 먹고 싶은 음식들과 빵, 사탕 등 그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준비하고 섹스할 생각이었다. 성인식의 꽃은 성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직접적인 삽입은 안 할 테니 무명도 이제는 받아줘야 할 타이밍이었다. 서인은 성인식을 할 생각에 배시시 웃는 무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같이 웃어주었다.
“섹스 한 번 하려고 별 지랄을 다 하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온 서인은 각종 케이크와 적당량의 음식을 준비해놓고 무명을 기다렸다. 초를 꽂고 앉아있자 무명이 저 멀리서부터 빠르게 달려왔다. 두 뺨이 붉고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성인식이 어지간히도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케이크다!”
“그래, 케이크.”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고 가운도 부드러운 데다가 케이크까지 있으니 무명은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성인식이 이렇게 좋은 걸 줄은 몰랐다고 떠들어대던 그는 서인의 가슴팍에 이마를 비비며 배시시 웃었다.
“형, 좋아요! 감사합니다!”
“…….”
촛불을 불고 음식을 먹으며 분위기를 잡으려 했던 서인은 무명이 붉어진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며 웃자 몸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순식간에 흥분했다.
“먹어도 되는 거예요?”
“응….”
오랜만에 치즈케이크를 맛본다는 기대에 부풀어있던 무명은 더욱더 부풀어있는 서인의 성욕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신음인지 대답인지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는 말에 신이 난 그는 손가락으로 생크림을 찍어 눈을 질끈 감고 입안에 넣었다.
“하….”
뜨끈하고 말랑한 것이 분명히 입에 넣은 건 맞는데, 맛이 느껴지진 않았다. 호기심에 눈을 뜬 무명은 서인이 슬슬 제 위에 올라타기 시작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형?!”
“먹어. 얼마든지.”
먹으라고 하면서 서인은 무명의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중의적인 표현을 알아듣지 못한 무명은 어떻게든 생크림을 핥아먹으려고 힘겹게 손을 뻗었다. 서인은 크림으로 범벅된 무명의 손을 가운 허리끈으로 묶고 그의 입술을 게걸스럽게 빨았다.
“우, 읍….”
짧은 키스 한 번에 생크림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잊어버린 무명은 기분이 좋아 눈만 빠르게 깜빡였다.
서인은 무명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고 서랍에서 미리 준비해뒀던 젤과 자그마한 바이브레이터, 유두 클립을 꺼내 들었다. 언젠가 제 성기를 삽입해야 하니 미리 큰 딜도로 길을 들여놓는 게 좋겠지만, 흉물스럽게 생겨서 무명이 매우 놀랄까 봐 자그마한 것으로 선택했다.
“흐으, 웁…. 아, 읏, 아….”
무명은 혀끝을 세워 입술을 쿡쿡 찔러오는 서인을 받아들였다. 오랜만에 하는 키스에 그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흐르는 타액을 받아마시며 부르르 떨었다.
“혀 움직여 봐.”
“우, 으응…. 이렇게요?”
“그래, 잘한다.”
눈을 슬그머니 뜬 무명이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애들 장난 같아서 서인에겐 별로 자극도 오지 않았다.
“키스는 여전히 형편없네.”
“으응….”
“그런 주제에 질질 싸기나 하고.”
함께 즐기는 게 목적이긴 했지만, 삽입하지 못하니 제가 좀 더 쾌감을 느끼고 싶었던 서인은 아직 한 것도 없는데 제멋대로 사정한 무명을 조롱했다. 풀어헤친 가운 사이로 젖은 성기가 빼꼼 삐져나왔다.
“아, 아!”
서인이 성기 끝을 손가락으로 툭 치며 웃자 무명의 허벅지가 떨리고 온전히 고된 노동으로 생긴 근육들이 움푹 팼다. 한 번의 사정으로 힘이 빠진 그는 노곤한 얼굴로 서인을 힘겹게 올려다보았다.
“자면 안 돼.”
풀이 죽은 무명의 성기와는 달리 서인의 것은 당장에라도 삽입할 수 있을 정도로 빳빳이 힘 받아 있었다.
그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무명의 턱을 감싸 쥐고 입술을 집어삼켰다. 잠들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던 무명은 입안으로 미끄러진 뜨거운 혀가 입천장을 훑고 안쪽 볼을 쿡쿡 찌르자 급히 목에 팔을 감싸며 흐느꼈다.
“흣, 아아!”
힘들어하는 것 같기에 잠시 숨 쉴 시간을 주자 무명이 다시 잠에 빠져들려 했다. 겁주지 않으려 했던 서인은 자꾸만 졸아대는 그의 성기를 움켜쥐고 바이브레이터의 케이블을 칭칭 감았다.
“뭐예요, 이거 뭐예요?!”
“말하면 알아?”
서인은 낯선 물건을 경계하는 무명에게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대로 전원을 켰다. 아니나 다를까 손만 닿아도 자지러질 정도로 예민한 그가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신음했다.
“아아! 아, 흐, 아! 형, 형! 이거 이, 상…. 이, 흐! 아아!”
사정 후 늘어져 있던 성기에 다시금 피가 몰렸다. 천장을 보고 누운 무명은 성기에 달라붙어 진동하는 물건을 떼기 위해 가운 허리끈을 풀어내려 했지만, 서인에게 저지당했다.
“볼만하네.”
손목이 결박된 그는 성기에 붙은 장난감을 떼어내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과 흐르는 침이 서인을 자극했다.
“형…. 이거 이상해요, 흐윽…. 어떡해, 어떻게 해야 해요…. 읏….”
“무서워?”
“응, 응, 무서워, 무서운데…. 찌릿찌릿하고 자꾸, 자꾸 만지고 싶은데 만지면 안 돼요? 흐으…. 형이, 그때 알려준, 아아, 아…. 자, 자위하고 싶은데….”
무명은 고통 같은 경우에는 일반인보다 몇 배는 더 참아낼 수 있었지만, 성적인 쾌감은 전혀 견디지 못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허벅지를 배배 꼬며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다. 장난감을 떼어내고 싶은 그 몸부림이 서인에겐 더 큰 자극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 미치겠네….”
평소 서인은 무명이 똑똑하게 굴었으면 했는데, 이상하게 이런 면에서는 무지한 게 몇 배는 더 흥분되었다.
“무서워할 거 없어. 형이 옆에 있잖아.”
“형은, 으응, 으…. 이런 거, 많이 해 봤나요? 으….”
“그래, 그러니 다치게 할 일 없어. 걱정하지 마.”
“윽….”
서인은 성 경험이 많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무명을 열심히 달랬다. 몸이 거부감을 느끼면 자그마한 바이브도 받아내지 못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싫어….”
그러나 진정은커녕 무명은 성 경험이 많다는 말에 기분이 상해 입술을 비쭉 내밀고 신음을 참았다. 눈치 빠른 서인이 그 변화를 모를 리가 없었다.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질 않나, 질투하질 않나. 정말 따먹지 않고선 배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이것들이 다 남이 썼던 거예, 요? 흐으, 읏, 아아…. 이상….”
물론 아니다. 지금까지 서인의 섹스는 오로지 성욕을 풀기 위함이었기에 이런 장난감을 쓸 이유가 없었다. 그저 무명에게 어울릴 것 같아 하나둘 준비해둔 물건이었는데, 그는 질투하는 무명이 귀여워서 거짓말을 했다.
“누, 누가 또 이걸 썼어요? 으…. 나, 나는 형이랑만, 이런 게 처음인데, 형은 왜…. 아, 아읏!”
질투가 폭발한 무명은 서인에게 대들다가 유두에 클립이 집히자마자 고개를 젖히고 비명을 질렀다. 그를 소파에 기대어 앉힌 서인은 유두 체인을 둥그렇게 꼬아 그사이에 제 성기를 욱여넣었다.
“으, 으으, 아파! 아파!”
체인이 그리 길지 않은 제품이라 무명의 유두가 억지로 잡아당겨 졌다. 손가락을 걸고 움직여도 아픈데 그사이에 성기를 집어넣자 상체를 꼿꼿이 세우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무명이 비스듬히 상체를 일으키고 고통을 최대한 피하고자 가슴을 앞으로 내밀자 서인의 성기가 입술 끝에 닿았다.
“끝에만 조금 빨아볼래?”
“…싫어, 아파, 아파! 흐으….”
“아프다면서 좆은 왜 세워. 말이 안 맞잖아, 명아.”
“으아, 아! 아파, 으응! 아아아….”
덥석 물것을 기대했던 서인은 저 혼자 토라져 있는 무명이 고개를 휙 돌리자 제 손으로 성기를 쥐고 움직였다. 체인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분주하게 흔들리며 유두를 자극했다.
“우, 움직이지 마세요, 아파! 아파아!”
“형도 손목 아파아….”
서인은 꼬리를 늘이는 무명의 말투를 흉내 내며 오른손으로 기둥을 훑고 남은 한 손으로는 귀두 끝을 문지르며 자위했다. 그 자극적인 모습을 아래에 깔려 지켜보는 무명은 미칠 지경이었다.
“흐, 커…. 징그러워요….”
“…….”
징그럽다는 말에 약간 서운했던 서인은 무명이 무의식적으로 입을 벌리는 것을 보고 다시 흥분했다. 한 손으로 하기엔 버거우니 귀두라도 입에 머금고 있으라며 성기를 들이밀었다.
“싫어요….”
“좋으면서 자꾸 고집을 부리네.”
여성기와 남성기가 다르긴 해도 현재 무명은 구강성교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두들겨 패서 억지로 넣어도 반항할 만큼 큰 거부감이었다.
“…….”
나름 무명을 배려하던 서인도 그가 어울려주지 않자 심통이 났다. 그는 서랍 안에 든 여러 성인용품을 뒤적이며 어떤 제품을 사용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흐, 형…. 간지러워요….”
아래는 간지럽고 가슴은 아팠다. 잔잔한 진동에 신음하던 무명은 눈앞에서 흔들리는 서인의 것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발버둥 치며 피하는 과정에서 입술에 성기가 닿자 서인이 짧게 신음했다.
“윽!”
“…….”
굳게 다물린 입술, 살짝 찌푸려진 미간 등 서인의 다른 모습에 무명도 같이 흥분했다. 몸에 힘을 풀자 무슨 실례라도 한 것처럼 정액이 줄줄 샜다.
“흐, 으….”
작은 변화에 사정한 무명이 벌벌 떠는 사이 서인은 손가락을 젤로 적시고 그의 뒤를 풀기 시작했다. 검지로 주름을 문지르다가 살살 밀어 넣자 무명이 인상을 썼다.
“인상 펴야지. 너 앞으로 뒤로만 가야 해.”
서인은 성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손가락을 움직이며 무명이 느낄 지점을 찾아 더듬었다.
“이, 이상해요! 하나도 안 좋아요! 이상하다니까요!”
무명은 좋고 싫음이 확실했다. 이물감이 역겹다며 구멍에 힘을 주고 손가락을 밀어내려 했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자주 밀어내고는 했는데, 서인은 그럴 때마다 상대의 목을 조르거나 뺨을 내리쳐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 박아달라면서 뒤를 풀고 오지 않는 게 불쾌했기 때문이다.
“으, 싫어!”
그런데 무명의 뒤를 풀어주는 건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밀어내는 것 역시 내벽이 손가락을 오물오물 씹어먹는 것 같아 기꺼웠다.
“내가 너를 많이 예뻐하기는 하는가 보다.”
“우욱, 윽!”
“길 들 때까지 좆은 안 넣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여기에 그걸 넣는다고요? 다시는 오므라들지 않을지도 몰라요!”
“칭찬 고마워.”
서인은 겁을 내는 무명을 보고도 장난스레 웃으며 젤 튜브 입구를 삽입하고 망설임 없이 짜 넣었다. 어찌나 힘을 주는지 튜브가 구겨져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젤을 뱉어냈다.
조잘조잘 떠들던 무명도 젤이 구멍으로 밀려들어 오자 놀라 발버둥 쳤다. 그래 봐야 손이 묶여있어서 크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서인은 그가 구역질하는 틈을 타 손가락보다 조금 굵은 기구를 망설임 없이 쑤셔 넣었다.
“아아, 아…. 으응, 으….”
무명은 흥분한 서인의 얼굴을 보느라 제 아래에 무엇이 틀어박혔는지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 여전히 손가락이 박혀있으리라 생각한 그는 움직이기 시작한 기구가 가져다줄 쾌감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곧 좋아질 거야.”
“아으읏! 아! 욱, 읍….”
서인은 다시금 성기 위에 체인을 걸치고 무명의 유두를 매만졌다. 꾹 참던 무명은 이러다가 제 유두가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서인의 물건을 입에 쑤셔 넣었다.
“아, 명아, 좋다….”
서인은 무명의 머리채를 부드럽게 움켜쥔 채 축축한 입으로 박혀 들어간 성기를 살며시 움직였다. 깊이 넣으면 유두가 당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무명은 익숙하지도 않은 주제에 성기를 뿌리 끝까지 삼켰다.
“우욱, 욱….”
“아, 왜 잘해, 그렇지. 눈 뜨고 나 봐.”
서인은 안 그래도 힘들어하는 그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혀를 내밀고 귀두를 감싸 핥는 서툰 혀 놀림에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눈 떠, 나 보라고. 형 봐.”
서인은 눈을 뜨라고 하면 움직임을 멈추고 움직이라고 하면 눈을 감아버리는 무명을 급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무명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이내 성기를 툭 뱉어버렸다. 그는 무릎을 세우고 몸을 일으킨 채로 서인에게 말을 걸려다가 성기에 뺨을 처맞고 뒤집어졌다.
“안 때린다고 했으면서….”
“좆이 때린 걸 어떡해?”
서인은 조금만 더 빨아주면 사정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입을 멈춘 무명 탓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가 허덕거리는 것을 본 무명은 자꾸만 손을 풀어달라고 칭얼거렸다.
“손?”
“풀어주시면 다시 입에 넣을게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 무명이 당당하게 요구했다. 서인에게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냥 쑤셔 넣는 방법도 있는데, 그의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도 못했다. 괜한 심술을 부리려던 서인은 저 역시도 한계임을 자각하고 손목을 풀어주었다.
“자, 이제 어쩔 건데.”
무명은 입으로 하는 게 싫긴 했다. 그래도 억지로 하는 것보단 조금 편한 자세로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벌떡 일어나 서인을 소파에 앉혔다.
“어, 어? 뒤에 뭐가 있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서인의 손가락인 줄만 알았던 무명은 계속되는 이물감에 놀라 뒤를 더듬었다. 서인은 그가 삽입된 기구를 빼내지 못하게 손을 잡아당겨 제 가슴 위에 가져다 놓았다.
“만져봐.”
“가슴을요? 부끄러운데….”
“고기라고 생각해.”
고기라고 생각하라는 말에 무명이 가슴을 더듬었다. 고기로 사용하기엔 맛이 없을 것 같은 가슴이었다.
점점 아래로 내려온 그는 서인의 성기 크기만큼 입을 벌려 두툼한 귀두를 물고 머리를 내렸다. 반만 머금어도 턱이 아픈데, 서인은 다 삼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 반 밖에 안 물었잖아.”
“우우욱, 흐, 우웁!”
뜨거운 성기가 입안을 가르고 들어와 목젖을 마구 짓이겼다. 서인은 혹시나 무명이 토를 할까 봐 다른 곳에 신경을 집중시키고자 엉덩이에 삽입한 기구의 전원을 켰다.
“컥!”
서인은 성기를 받느라 피가 몰린 얼굴과 생리적인 눈물을 줄줄 흘리는 무명의 몸을 정성껏 쓰다듬어주었다. 괴로워하는 모습에 신음이 샜다.
“흐으, 큭, 으….”
서인은 무명의 입가에 남은 흉터를 문지르며 귀를 매만져주었다. 몸이 전부 예민한 무명은 별거 아닌 자극에 허리를 튕겨가며 반응했다.
“후, 우웅…. 읍….”
그러나 그런 기분 좋은 신음마저도 살덩이를 문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젖은 입술 사이로 성기가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던 서인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 기구의 세기를 높였다.
“아으, 아으읏! 아, 응! 으읏!”
무명은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눈을 까뒤집고 벌벌 떨었다. 신음하느라 뱉어낸 서인의 성기는 번들번들 젖어 타액과 정액을 줄줄 흘렸다.
“하… 이렇게 일찍 간 건 처음인데…. 명이가 잘 빠나보다, 응?
서인은 제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고 있는 무명의 목을 아프지 않게 감싸 쥐었다. 무명은 기구를 멈춰달라는 요구도 하지 못할 정도로 느끼며 몸을 경련했다.
“아아, 아아아, 아! 으응, 흣, 아! 시, 싫어! 싫, 흐…. 으으으….”
전립선을 단숨에 찾아 찌르기 시작한 장난감에 무명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 시트를 쥐어뜯었다. 서인은 제 성기에 대고 신음하는 무명에게 당장 삽입하고 싶은 욕구를 억지로 참아 눌렀다.
“명아, 고개 들어 봐. 형 좆 터지겠다.”
무명은 급기야 성기를 침대에 비비듯 허리를 흔들며 몸을 꺾었다. 서인은 추어올린 엉덩이를 후려치며 기구를 더 깊게 삽입했다.
“아, 아아, 학!”
“엉덩이 처맞으면서 느껴?”
서인은 후려친 볼기짝을 마음대로 벌리고 주무르며 잇자국을 냈다. 엉덩이에 남은 자국을 문지르던 그에게 무명의 신체 어딘가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들었다.
제 허벅지에 남은 각인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테니 무명의 몸에도 그에 맞는 각인을 새겨 주고 싶었다. 볼 때마다 저를 떠올릴 수 있게 되도록 눈에 띄는 부위가 좋을 거 같았다.
“아읏, 하…. 아, 아….”
“일어나.”
서인은 온몸을 떨며 침을 줄줄 흘리는 무명을 앉힌 뒤 무릎을 세워 구멍이 드러나게 했다. 기구의 케이블이 빠져나오자 서인이 그 끝을 지그시 누르며 더 자극을 주었다.
“빼줘?”
“우, 흐, 으…. 흑, 네…. 네에, 에…. 제발, 제발, 빼주세요, 형…. 흐윽, 아아읏!”
말은 빼주겠다고 했지만, 손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서인은 자그마한 손잡이에 검지를 걸고 장난감을 푹푹 쑤셔 넣었다.
안 그래도 전립선을 뭉개던 것이 그의 힘을 받자 역방향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무명은 앞을 축축이 적시더니 화장실이 가고 싶다며 침대 위를 기기 시작했다.
“그런 거로 막아서 되겠어?”
그는 소변이 급하다며 성기를 틀어쥐고 엄지손가락으로 구멍을 막았다. 그래 봐야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손 안 치우면 다른 거로 막는다?”
“흐으, 으…. 읏, 싫어, 싫어요…. 으으, 하아…. 아아, 아….”
“싸고 싶으면 싸도 돼.”
무명은 배뇨감에 배를 감싸 쥐고 몸을 배배 꼬았다. 서인이야 소변이 아닌 것을 알지만, 무명은 뒤에 무언가 넣은 것도 처음이니 전립선을 지속해서 자극해 사정하다 보면 나중에는 물 같은 액을 토해낸다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흐읏, 으…. 제발, 놔주세요, 으으, 으, 놔주세요.”
그는 이마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온 힘을 다해 장난감을 밀어냈다. 제 몸을 짓누르고 있는 서인을 쳐낼까 고민은 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흐으, 흐아아! 아, 아! 아아, 아….”
“…….”
무명은 엉덩이에 힘을 주고 구멍 속에서 끈질기게 움직이던 장난감을 뱉어냈다. 뱉어내면 제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리라 믿었던 그는 머리를 젖히고 헐떡였다. 그러나 장난감이 빠져나가도 소변을 볼 것 같은 이상한 감각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을 안 듣네.”
서인은 여전히 성기에서 손을 놓지 않는 무명을 보며 혀를 찼다. 싸라고 해도 싸질 않으니 아예 못 싸게 만들고 싶었다. 그는 미리 소독한 요도 스틱을 꺼내 젤을 발랐다.
“…그, 그게 뭐예요?”
“곧 알게 되니 명이는 계속 좆이나 붙잡고 계세요.”
무명은 몸이 극도로 달아올랐다는 것도 잊고 윗부분이 하트 모양으로 된 젓가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레 겁을 먹고 발버둥을 치면 다칠 수도 있으니 서인은 그의 눈을 안대로 가려주었다.
“흐, 형….”
“명이가 싸기 싫다고 했으니까, 안 싸게 도와줄 거야. 손으로 안 잡고 있어도 돼.”
서인은 힘을 주면 다칠 수도 있다고 미리 일러두고 무명이 놀라지 않게 목과 허리를 문질러주며 조금씩 밀어 넣었다. 제 것에도 넣어본 적이 있어서 능숙히 삽입할 수 있었다.
“하, 하으….”
무명은 소스라치게 놀라 시끄럽게 비명을 질렀다. 서인은 끝까지 삽입하고 나서야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어주었다.
“빼면 안 돼.”
그는 요도 스틱이 삽입된 성기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딜 보나 하트모양 젓가락을 쑤셔 넣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서인은 놀란 무명을 뒤로하고 기구로 인해 조금 벌어진 구멍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아, 아아! 뭐야, 싫어, 싫어!”
서인의 혀가 닿자 무명은 기구를 삽입했을 때보다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서인도 큰맘 먹고 입술을 가져다 댄 건데 무명은 마치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처럼 발악해댔다. 서인이 두 다리를 붙잡아 어깨에 걸고 망설임 없이 잡아당기자 무명의 하체가 붕 떠올랐다.
“싫어, 싫어!”
잔뜩 겁을 먹은 그가 서인을 밀어내려 했다. 서인은 근육이 잡힌 묵직한 허벅지를 짓누르며 구멍에 얼굴을 처박았다.
“흐으, 읏….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아아, 으응….”
서인 역시 처음 애무하는 부위였기에 그리 능숙하지는 못했다. 조금 벌어져 있던 것이 예상치 못한 자극에 놀랐는지 입을 앙다물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혓바닥으로 구멍을 부드럽게 핥아 올리자 무명이 비명 같은 신음을 냈다. 젖은 구멍이 혀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뻐끔거리자 서인이 구멍에 대고 웃어댔다.
“흐, 흐, 흐아! 아, 하지 마, 간지러워요! 아아!”
앙앙거리며 신음하던 무명이 구멍을 크게 움츠렸다. 기껏 풀어놓은 것이 닫히자 서인이 혀끝을 세워 본격적으로 구멍을 탐했다. 주름을 하나하나 펴듯 핥아주자 간지럽다고 버둥거리던 무명이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흐으, 흐….”
항문뿐만 아닌 음낭도 터뜨릴 것처럼 세게 쥐었다가 아기 다루듯 부드럽게 문지르자 무명의 허리가 튀어 올랐다.
“무서워, 무….”
“괜찮아.”
“아응, 흥…. 아아, 아, 좋아, 이상해, 좋아, 좋아아….”
무명은 오늘따라 쾌감에 솔직했다. 싫다고 빼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다리를 활짝 벌리고 허리를 흔들기 바빴다. 간혹 뒤를 입으로 애무해주는 사람이 있다기에 한 번 해봤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역겨울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곳에 손 한 번도 대보지 않은 서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무명은 눈이 풀려 입술을 파르르 떨며 서인의 머리를 짓눌렀다.
“으응, 흐으, 흑…. 이, 이상해, 으흑, 흑…. 만지고 싶어, 쌀래, 쌀래….”
싸기 싫다고 해놓고 이제는 더 못 버티겠다며 성기를 쥐고 마구 흔들기도 했다.
징그럽다고 만지지도 못하던 때와 달리 난폭하게 움직이는 손짓에 서인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평소와 달리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고 욕정 하는 모습에 목을 조르고 괴롭히고 싶은 이상한 충동이 들었다.
성이 난 성기와 바짝 일어난 핏줄, 되는대로 처박고 싶어 하는 허릿짓에 머리가 울리고 손이 저렸다.
“하아….”
그래 봐야 제게 박힐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생각하니 배로 흥분되었다. 허벅지든 뒷구멍이든 저는 무명에게 어디든 내어 줄 생각이 없었다. 서인은 평생 박아넣을 수 없는 주제에 허리를 흔드는 그가 우스웠다.
“하, 으응, 아, 응, 아! 좋아, 좋아아…. 형, 나, 나, 싸요! 나 오줌, 흐으…. 오줌….”
“응.”
서인은 일부러 더 큰 소리를 내며 구멍을 핥았다. 뾰족한 혀끝을 안으로 쑤셔 넣자 무명이 자지러지며 허락도 없이 요도 플러그를 뽑아냈다.
“아, 아아! 아, 흐, 아아아! 읏! 허, 헉, 어, 윽….”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서인은 무명이 감당할 수 있는 쾌감만 줄 생각이었는데, 뭣 모르는 그가 제멋대로 빼버리는 탓에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비명에 놀란 서인이 몸을 일으키자 무명이 하체를 높이 쳐들며 울었다.
“괜찮아?”
귓가에다 대고 속삭이는 순간 무명이 사정했다. 여러 번 사정해 묽은 액이 얼굴에 튀어 가슴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왜 함부로 뽑아, 뽑기는. 아직 안 끝났어. 정신 차려.”
서인은 딱 한 번 사정했을 뿐 아직 만족하지 못했는데, 무명은 축 늘어져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이성을 쏙 빼놓는 쾌감에 지친 그는 이미 까무룩 기절해버렸다.
“명아?”
서인은 엉망으로 젖은 시트와 군데군데 튄 무명의 흔적을 멍하니 내려다보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반응 없는 섹스에 흥분하기는 해도 흥미는 없었기에 그는 잠든 무명을 힘겹게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멍들었네.”
서인은 손자국이 남은 무명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의식이 돌아온 무명은 힘없이 눈만 깜빡였다.
서인은 그런 모습에도 흥분해 성기를 빳빳이 세웠다. 사정 한두 번으로 나가떨어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 삽입 없는 성행위에 만족하지 못했다.
“졸려요….”
무명을 다리 사이에 앉히고 욕조 등받이에 기대어 앉은 서인은 엉덩이골 사이로 성기를 문질렀다. 그의 가슴팍을 베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이상한 느낌에 몸을 일으켰다.
“힘들었어?”
“응….”
무명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서인이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자 기분 좋은 힘듦이었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다.
“더할까?”
“잘못했어요….”
얼마나 힘들면 잘못했다고 말할까. 서인은 아직 성욕을 해결하지 못했지만, 무명이 정말로 지친 것을 보고는 그를 더 건드리지 않고 씻겨주었다.
♦ ♢ ♦
“있잖아요, 형….”
“말해.”
아침 7시, 무명은 출근 준비하는 서인을 졸졸 따라다녔다. 허리도 아프고 찢어졌던 구멍도 아팠지만, 꼭 묻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식사가 준비된 식탁에 앉은 그는 젓가락을 매만지며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이제 서로 좋아하는 거죠?”
우선 가장 중요한 건 서인과의 관계였다. 키스도 했고 엉덩이도 성기도 만졌으니 무명은 다시 한번 확인받으려 했다.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뜸을 들이나 했더니 고작 마음확인이라니. 서인은 기대감에 부풀어있는 무명을 향해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앞에 반찬 그릇을 놓아주었다.
“배가 별로 안 고파요….”
“너 좋아하니까 밥 먹어.”
좋아한다는 말에 설레긴 했다만, 무명은 그간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해 음식에 대한 집착이 평소보다 더 심해져 아예 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또 손으로 퍼먹고 이곳저곳 묻혀 서인을 피곤하게 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배가 안 고플 리가 없는데. 그동안 밥 못 먹었지 않나?”
“네?”
안 그래도 서인에게 듣고 싶었던 게 많았던 무명은 제가 잘 챙겨 먹지 못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며 캐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네? 네?”
“그렇게 말라놓고 모르길 바랐어?”
그는 분명 서인이 마켓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을 경매하는 걸 보고도 놀라지 않은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의심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행사에는 누가 초대했어요? VIP만 올 수 있는 곳인데….”
“홍주원.”
“…….”
주원과 가까운 사이니 행사에는 당연히 참여할 수 있을 테고 지하실의 위치도 알려면 알 수 있었다.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무명은 철창 안에 갇힌 상품을 떠올리고는 다시 한번 질문했다.
“그럼…. 경매 물품은요? 그거 보고 안 놀라셨어요? 형 그런 거 무서워하시잖아요….”
“아, 묻고 싶은 게 뭔데? 돌려 말하지 마.”
서인은 무명이 말을 뱅뱅 돌리자 짜증을 냈다. 그는 마켓에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걸 묻든 솔직히 대답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무명의 아지트에 잡혀 있을 때나 연기를 했지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무명이 더는 저를 떠나지 못하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연구소의 원래 이름을 아세요?”
“레드마켓.”
“…….”
“그리고 나 네가 썰어낸 고기 먹어. 네 작업장도 내가 철거했고. 더 알고 싶어?”
배신감을 느끼고 지랄발광할 가능성이 크기야 했다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 밝히는 게 편했다. 서인은 묻지 않은 것까지 대답해주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거짓말!”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던 무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는 가정집에 있는 게 이상했던 큰 냉장고를 열어 안에 든 고기를 확인하더니 그대로 주저앉아 소리를 질렀다.
“형, 거짓말이에요!”
세계 곳곳에 팔려나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땐 언제고 무명은 서인이 본격적으로 고기를 소비하고 있음을 부정하려 했다.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싫었고 아니기를 바랐다.
“거짓말 아냐. 기뻐할 줄 알았는데.”
놀라긴 해도 이렇게까지 싫어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서인은 조금 당황했다. 사람을 죽이고 고기를 판매하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럼 우리 집, 작업장에 있었을 때부터 내가 마켓에서 일하는지 알았겠네요!?”
“어떻게 몰랐겠어?”
“말도 안 돼. 그럼 형도 VIP 회원이에요? 네!?”
서인은 VIP 등급에 속해있냐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고기를 하도 많이 사들여 소비량으로는 VIP급이었지만, 회원보다는 마켓의 공동 주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뭐예요?”
“쉽게 말해서 너희 수장이랑 같은 위치.”
“아니에요! 아냐, 아니야…. 그럼, 그럼 형이 해결해준다던 상품들도!?”
VIP가 아니라는 말에 화색이 돌았던 무명은 이어진 서인의 말에 분노했다.
주원과 같은 위치인 게 존경스럽기도 했지만, 그는 서인이 단순 연구소에 자주 드나드는 대표님 정도이길 바랐다. 레드 마켓이라는 이름 자체도 모를 줄 알았는데, 마켓의 또 다른 주인이라니. 끔찍했다.
“그래, 내가 주문자였어.”
“…왜, 왜 나를 속였어요?”
“속였다고? 물어보지 않은 걸 말하지 않았다고 속인 게 되나? 내가 주문 취소해서 널 도왔는데, 그런 건 생각도 안 해?”
“…그렇지만! 읍!”
서인은 억울해 미치려고 하는 무명의 입에 달걀부침을 넣어주었다. 그가 씹어 삼키며 다시 말을 하려 할 때마다 음식을 넣어주며 말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서인이 멸치볶음을 그릇에 옮겨주고 장난스레 웃자 무명은 화가 나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미소에 홀려 넋을 놓았다.
“침 닦고.”
무명은 충격과 배신감에 눈물을 글썽였다. 서인의 말처럼 먼저 물어본 적도 없었고 제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본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팠다.
“형, 흐…. 저는, 저는….”
“명아, 그만해. 형 머리 아프려고 하는데.”
“…….”
슬프고 억울하니 사과하며 달래 달라고 말하려던 무명은 머리 아프다는 말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했다. 서인은 아플 것 같다는 말로 죄책감을 심어주다가 이제는 대놓고 무명을 탓했다.
“형이 말했지? 형이 아픈 건 다 무명이 너 때문이라고.”
“잘못했어요….”
“네가 자꾸 울고 소리 지르니까 피곤하다. 너 성격 좀 이상해. 도대체 왜 우는데? 뭐가 서러운데.”
무명은 서인이 남에게 굽힐 일이 없다는 건 알지만 적어도 사과 정도는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게 제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무명은 너 때문에 아프고 너 때문에 힘들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봐도 너는 형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좋아해요!”
“그럼 앞으로 형이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마.”
“네, 네….”
무명은 결국 마음속 응어리와 불만을 제대로 토해내지도 못한 채로 복종했다. 서인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눈물을 훔치는 그를 성의 없는 말로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명이, 형이랑 연애하니까 어때.”
“연애요?”
연애는커녕 무명을 움직이는 예쁜 섹스 장난감 정도로 사용하고 있는 주제에 서인은 뻔뻔한 얼굴로 듣기 좋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래,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사이.”
“형이 저랑 그런 사이가 돼 주시는 거예요!?”
무명은 아끼고 좋아하는 사이라는 말에 언제 울었냐는 듯 설레했다. 서인이 저를 속였고 예전부터 고기를 먹어 왔던 사람이라는 것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싫어진 건 당연히 아니었다.
“어.”
가만히 앉아 서인의 대답을 기다리던 무명은 그가 긍정하자 자지러지게 좋아했다. 아끼고 좋아한다니. 서인과 제가 그런 사이가 되었다니.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아서 신음이 나오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좋아해요, 서인이 형이 제일 좋아, 좋아해요.”
이 순간만큼은 주원의 허락 없이 마켓을 나온 것도, 서인이 고기를 먹는 것도 다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게 오늘부로 서인의 애인이 된 무명은 앞으로 더 행복한 일만 가득하리라고 굳게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