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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73화 (37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73화

제373화

[자네, 어쩌다 그런 몰골이 되었는가. 거울을 좀 보게. 지금 그 모습은….]

나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채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명은 그런 내 말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다고 여겼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닥쳐!]

돌연 이건명의 입에서 하얗고 검은 빛기둥이 뻗어 나왔다.

흑백의 빛기둥은 벼락의 힘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또 다른 힘을 함유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공간을 왜곡시키며 빛기둥이 날아들자, 나는 안색이 급변했다.

[……!]

재빨리 주변의 날씨를 한곳으로 모아 일곱 빛깔의 비천원옥으로 흑백의 빛기둥에 맞섰다.

커다란 두 힘이 격돌하자 주변에선 광풍이 몰아쳤고,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놀라운 것은 처음엔 우세를 점했던 비천원옥이 점차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지 않아 흑백의 빛기둥에서 포효가 터져 나왔고, 비천원옥이 점차 밀려나더니 기어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헛!]

대경실색한 나는 날아드는 흑백 빛기둥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음이 들려오고, 고리 형태의 파동과 함께 커다란 파공성이 귓전을 때리더니 빛을 폭발시켰다.

콰아앙!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이었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땐 이미 내 눈앞에 이건명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이미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이 실린 흑색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놀란 나는 재빨리 일곱 색의 방어막을 펼쳤고, 이건명의 검은 주먹은 그런 방어막조차 우습다는 듯 꿰뚫고 내 얼굴을 후려갈겼다.

쩌엉!

주먹에 맞는 금속음과 땅에 지진이 일며 먼지가 피어오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나는 땅에 처박힌 채 간신히 머리를 털었고, 재빨리 이건명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

[아아악!]

이건명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돌연 귓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르신, 저 강재성입니다. 아까 전 어르신의 공격에서 탈출하기 위해 이건명 씨가 가이아와 강제로 융합하려고 시도를 했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지금 보시는 것 같은 저런 모습이구요. 아무래도 불완전한 시도였기에 지금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대로 두면 폭주해서 무슨 짓을 벌일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에게 복제된 마스터키가 있으니깐요. 당장 막아야 합니다.

[강제로 융합했다고? 그럼 아까 전 그 불가사의한 힘이 가이아의 힘이란 말인가?]

-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하얀 것은 벼락의 힘이고, 검은 것은 창조와 파괴의 권능 중 파괴에 해당하는 힘입니다. 모든 것을 무로 되돌리는 완전 어이가 상실한 권능이죠.

[자네가 만든 게임인데 말이 심하군.]

- 어쨌든 시간이 촉박합니다. 혹시 숨겨둔 한 수가 있으십니까? 조금만 시간을 끌어주실 수 있으시다면 제가 마스터키로 그를 통제할 수 있는 무형의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안에 갇히면 신의 힘을 잃고 육체 또한 인간이 될 테니 훨씬 제압하는데 수월할 테지요. 정 안되면 어르신께 말씀드린 최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지만, 저도 가급적이면 그건 쓰고 싶진 않군요.

강재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가 말한 최후의 방법이란 슈퍼컴퓨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이아를 봉인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게 그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백무열의 목검이 황금 사과나무로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만에 하나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방법을 써야할 것이었다.

[아직 안 쓴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네만….]

그때. 갑자기 입구 쪽이 시끄러워지더니 꽤 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때마침 나타난 것은 백무열과 일행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백무열의 옆엔 밖에서 입구를 지키던 춘자도 함께 있었다.

이곳엔 공간의 힘을 차단하는 금제가 작용하고 있었기에, 아마 뛰어서 이곳으로 온 듯했다.

"야, 춘택아 괜찮냐!"

[여긴 뭐 하러 왔냐.]

"썩을 놈이 말본새하고는.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할 일도 없냐. 그냥 로그아웃이나 하지. 끙, 기왕지사 왔으니 어딘가에 좀 숨어있어! 너희들은 저 녀석에게 상대도 안 돼!]

나는 곧장 사뿐히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차곡차곡 구름을 밟으며 춤을 췄고, 그것은 비천기상무의 모든 춤을 연달아 추는 것이었다.

내 몸에서 아름다운 금빛 비단 실들이 뻗어 나오며 진한 단내를 뿜어냈다.

[나의 비각술을 모두 얻어 날아오르는 날….]

해와 달, 비와 구름, 눈과 벼락. 별과 바람.

오래된 날씨의 표식들이 내 주위를 맴돌며 순식간에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용솟음치는 힘에 주체할 수 없는 기운이 터져 나오며 등 뒤로 금색의 천룡(天龍) 허상이 만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내 춤 또한 끝을 맺었다.

[그대의 앞에 하늘이 도래할 것이다.]

쿠르릉!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굉음 속에서 용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금색의 천룡이 내 몸을 휘감았고, 나는 자그마한 일곱 빛깔의 여의주가 되어 그런 천룡의 입에 물려져 있었다.

등 뒤로 넘실거리며 뻗어가는 금빛 기운과 주변을 날아다니는 색색의 날씨 표식들이 주변을 맴돌며 빛을 발하고 있었다.

[크으으으.]

이성을 상실한 이건명이 그 눈부신 빛살에 인상을 썼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런 이건명을 향해 신형을 쏘았다.

금빛 물결이 강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며 이건명을 향해 들이닥쳤다.

이건명도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는지 으르렁거리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천룡을 움직여 그런 이건명과 수십 합을 겨루며 폭음을 만들어냈다.

쾅! 콰쾅!

주변은 이미 공간이 왜곡되어가며 기괴한 지형을 만들어내는 중이었다.

쿠구궁!

천룡의 입에서 쏘아 보낸 태양의 브레스가 이건명의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이아와 강제로 융합한 그에게 피해를 입히기엔 아직 부족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꼬리로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날려보냈다.

그 기세가 이 공간을 통째로 집어 삼킬만한 것이었다.

[크하아악!]

이성을 상실한 이건명이 태풍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천천히 태풍으로 손가락을 튕기며 태양, 바람, 비, 구름, 별, 달, 벼락을 거대한 폭풍 속으로 모두 흡수시켰다.

콰릉! 콰르릉!

그 모든 것을 흡수한 바람은 재앙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이건명을 막기는 부족했다.

잠깐이지만 제정신을 되찾은 그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더니 괴성을 질렀다.

[크으으. 죽어라!]

이건명의 몸에서 흑백의 조화를 이룬 회색 구슬 보호막이 커지더니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이 거대한 재앙을 다시 무(無)로 되돌렸다.

허망한 얼굴로 그것을 지켜보던 나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흐흐흐, 간신히 정신을 되찾았구나. 하마터면 도리어 내가 집어 삼켜질 뻔했어.]

이건명의 낮은 웃음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설마 이것조차 통하지 않을 줄 몰랐던 나는 이를 으득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던 바로 그때.

하늘에서 무형의 벽이 떨어져 이건명의 좌측을 막았다.

콰아앙!

커다란 지진과 동시에 무형의 벽이 연달아 떨어졌다.

쾅! 쾅! 콰앙!

그것은 이건명의 동서남북을 차례대로 막아 마치 감옥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뚜껑처럼 위가 덮였고, 동시에 새하얀 빛이 웅웅거리자 새하얀 사슬이 뻗어 나와 이건명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이건명은 새하얀 사슬에 저항했다.

때마침 그와 가까이 있었던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강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휴우, 다행히 시간을 제때에 맞췄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르신.

[고생은 무슨, 이제 그를 제압할 수 있는 건가?]

- 그렇습니다. 저 안에 갇히게 되면 태초 신의 몸을 한 그도 잠시 뒤 한낱 인간이 되고 말지요. 급하게 만든 것치고는 효과가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곧 그는 이 벽들과 함께 성유계로 공간이동될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죽게 되겠죠. 저 벽들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폭발할 겁니다.

확실히 효과는 있는 듯했다.

이건명이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사슬을 노려보며 저항하고 있었지만, 점차 힘이 빠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렇게, 이렇게 당할 순 없어. 네놈을 길동무로 삼겠다!]

이건명의 손끝에 흑백의 기운이 맺히더니 무형의 벽을 꿰뚫었다.

[……!]

동시에 멱살을 잡힌 나는 그대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형의 벽이 순식간에 복구되며 하얗게 울더니 그대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이제 그 안에 있는 것은 백무열과 그 일행들뿐이었다.

* * *

눈에 띄는 별자리들이 끝없이 하늘을 수놓았다.

새하얀 빛과 함께 전송되어 온 이곳은 성유계라는 이름을 가진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주변을 돌아본 나는 곧장 등에 꽂혀 있는 하얀 사슬이 보이자 쓴웃음을 머금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모든 힘을 제약 당하였습니다.]

[당신은 지금 일시적으로 평범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성유계의 폭발까지 앞으로 30분 남았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로그아웃할 수 없습니다.]

"흠, 그냥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야겠군. 그런데 이건명은 어디로 간 거지? 이보게 강재성 박사 들리는가?"

허공으로 소리쳐보았지만, 강재성 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약간의 착오로 문제가 생긴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이건명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나는 이건명을 만날 수 있었다.

"…왔나."

"옆에 있는 건 자네 아내인가?"

나는 이건명의 옆에 누워있는 아름다운 얼굴의 중년 부인을 보았다.

이건명이 정리해준 것인지 그녀의 손은 곱게 포개져 있었고,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해 보였다.

"내 안사람과 자네의 안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였더군."

"대충 얘기는 들었네. 나는 안사람에게서 플루토의 힘을 전해 받았으니 말이야. 두 사람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특별한 우정을 쌓았고, 후에 자네가 계획한 불법적인 실험에서 우연히 가이아와 플루토가 되어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네."

"…그랬군. 어찌 보면 우리 두 사람은 참으로 닮았네. 그려. 어쩌면 이것 또한 인연일지 모르지."

이건명은 말없이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죽은 한혜연의 시신을 향해 손을 뻗으며 검붉은 기운이 서린 빛으로 그녀를 불태워버렸다.

한혜연의 시신이 1과 0으로 이루어져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자네 지금 무슨 짓인가!"

나는 화난 얼굴로 그를 향해 냉랭히 소리치며 그의 멱살을 강하게 틀어쥐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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