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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314화 (314/375)

나 빼고 다 젊은이 314화

제314화

성유계, 루페온의 막사.

"루페온 님…!"

아리에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닥에 쓰러진 루페온을 품에 안았다.

아리에스는 루페온의 가슴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에 꿰뚫린 것처럼 뻥 뚫린 가슴에선 신성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은 별이 흘리는 피였다.

"루페온 님! 정신 차려 보세요. 루페온 님!"

아리에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런 루페온을 흔들었다.

아리에스의 재촉하는 목소리에 루페온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정, 정신이 드세요…?!"

[아리에스….]

루페온이 꺼져가는 목소리로 아리에스를 불렀다.

하지만 루페온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누가…!"

아리에스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었다.

그녀는 손이 떨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연신 눈물만을 뚝뚝 떨어트렸고, 루페온은 천천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미안하다. 아리에스…. 네가 속에 간직한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구나. 난 성좌들의 왕…. 쿨럭!]

"알, 알아요. 알고 있다구요.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밖에 아무도 없어! 누가 좀 들어와!"

아리에스가 루페온의 가슴에서 흐르는 별이 더 흐르지 않도록 지혈을 하며 누군가를 찾았다.

잠시 뒤. 몇몇 성좌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기함을 했다.

"루, 루페온 님!"

"루페온 님이…!"

"뭘 그렇게 멀뚱히 서 있어! 치료계 성좌있으면 당장 불러와!"

"네!"

아리에스의 날카로운 고성에 들어온 성좌가 빠릿하게 대답을 하며 밖으로 나갔다.

막사 안엔 다시 아리에스와 루페온만이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루페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늦었…다. 너도 알지 않느냐….]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전 어떻게든 당신을 살릴 거예요. 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루페온은 꺼져가는 별의 심장을 느끼며 아리에스에게 자신을 이렇게 만든 진범의 정체를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어쩌면 다른 신들이 자신처럼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것만은 막고 싶었다.

[안…타라스다….]

"안타라스요? 설마 그 전갈 녀석이…?"

루페온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배신자가…!"

아리에스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몸을 떨었다.

전갈 궁좌의 주인이 설마 배신자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에게 신살(神殺)의 힘이 깃든 발톱이 있었다….]

신살의 힘이 깃든 발톱.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리에스의 정신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위대하신 유피테르께서 다른 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당시 황도 12궁의 대장이었던 레굴루스에게 하사한 힘이었다.

그런데 안타라스가 그 레굴루스의 발톱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레굴루스는 루시퍼라는 이름의 마왕이 되어 인간계에 있다고 들었다.

"설마, 타락…."

아리에스의 시선이 다시 루페온의 가슴으로 향했다.

벌어진 상처의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루페온을 잠식하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분명 마기였다.

아리에스는 그제야 자신이 짐작했던 것이 맞음을 깨달았다.

전갈궁 안타라스는 타락하고 만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먼저 이렇게 가게 되었구나. 미안하다.]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아리에스가 루페온에게 소리치는 바로 그때.

막사의 천막을 젖히고 들어온 누군가가 루페온의 상태에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꽃의 기운을 루페온에게 흩뿌렸다.

오색찬란한 꽃들은 루페온의 주위에 자리 잡으며 그를 감싸안아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얼마 전 성유계에 들어온 하이엘프.

꽃의 무녀라 불리며 성좌들의 치료를 담당하던 여인이었다.

"상태가 심각해요. 어쩌면…."

그녀의 이름은 플로라였다.

[여보. 대체 무슨 일인… 음!]

이어서 막사로 들어온 것은 아이올로스였다.

그는 쓰러진 루페온을 보며 신음을 흘렸다.

[아리에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루페온 님이 안타라스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그가 배신자였어요."

[음, 안타라스가 배신을….]

아이올로스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다.

플로라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마도 힘에 부치는 것이리라.

[…내 몸은 내가 잘 압니다. 이미 난 곧 죽을 몸. 지금은 그저 잠깐의 생명 연장에 불과할 것이오.]

루페온은 그렇게 말하며 남아있는 별의 힘을 쥐어 짜냈다.

현재 그의 걱정은 자신이 죽었을 때 찾아올 성좌들의 혼란이었다.

별의 왕인 자신이 죽으면 모든 성좌들의 힘이 약해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사아아아.

바로 그때. 루페온의 옆에 별의 정령 '스텔라'가 나타났다.

루페온은 스텔라에게 남아있는 별의 힘을 모두 주었다.

그 안엔 자신의 권능 또한 함께 담았다.

스텔라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고, 루페온은 그런 스텔라를 눈앞의 아리에스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아마 곧 마족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포위 됐을지도 모를 일…. 네가 남은 성좌들을 이끌고 인간계로 가야 한다….]

마치 마지막을 기약하는 듯한 루페온의 말에 아리에스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루페온은 힘없는 손으로 아리에스의 눈물을 다시금 닦아 주었다.

바로 그때.

"기습이다!"

"마족들이 쳐들어왔다!"

[…가거라. 스텔라가 선택하는 자가 곧 다음 대 별의 왕이 될 것이다. 쿨럭!]

루페온이 기침을 하며 말했지만, 아리에스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루페온은 바로 옆에 있는 아이올로스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는 부탁한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올로스는 강제로 아리에스를 기절시키듯 목 뒤를 손날로 내려쳤다.

팍!

"아…."

아리에스는 기절한 것처럼 축 늘어졌고, 아이올로스는 그런 아리에스를 바람으로 두둥실 들어올렸다.

아이올로스는 다시 루페온을 보았다.

[자네까진 못 챙겨 줄 것 같네. 미안하네.]

[…괜찮네. 어서 서두르게 친구.]

아이올로스는 이를 악물며 루페온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았고, 플로라는 그런 아이올로스를 재촉하듯 말했다.

"…어서 가요. 늦으면 여기 있는 모두 죽을 거예요."

[잘 있게.]

[…아리에스를 부탁하지.]

아이올로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플로라와 함께 막사를 빠져나왔다.

바깥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아이올로스는 마족들의 기습에 혼란스러워하는 성좌들에게 소리쳤다.

[성좌들은 모두 인간계로 퇴각하라-!]

* * *

에레보스, 제우스 길드 근거지.

카미유와 이누무시키.

그리고 백무열은 제우스 길드의 성인 에레보스에 머무르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데미안은 동대륙으로 함께 갈 병사들을 징집했고, 다른 제우스의 일원들도 열심히 레벨업에 열중했다.

마이클과 백무열은 서로의 합을 주고받으며 만전을 기하듯 훈련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누무시키는 견족 특유의 귀를 움직이며 그런 두 사람의 훈련을 아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호오. 저게 바로 인간들의 검술인가. 흥미롭군.]

이누무시키는 호승심이 이는 것처럼 옆구리에 찬 검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검성(劍聖)이자, 검성(劍星)이 된 이누무시키에게 그것은 무척이나 참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콰아앙!

백무열의 목검과 마이클의 모래검이 맞부딪히며 흙먼지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 사이에선 연신 모래폭풍이 불어닥쳤다.

[…저자는 스스로를 곤성(棍聖)으로 칭한다고 했었나. 과연 명불허전이로군.]

이누무시키는 백무열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담긴 거력을 알아보고는 또 한 번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다.

둘의 대결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숭고한 의식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누무시키는 백무열이라는 저 인간보다는 역시 마이클에게 더 눈길이 갔다.

백무열은 이미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마이클은 아직 나이도 어렸고, 더욱 발전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누무시키는 마이클이 휘두르는 검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던 바로 그때.

"아아악!"

"이놈아. 왜 그러냐! 정신 차려!"

마이클이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어진 것은 마이클의 몸 주변에서 흐르는 짙은 마기.

그것을 본 이누무시키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저 멀리 졸고 있는 카미유를 불렀다.

[카미유!]

[츄읍. 네, 네…?!]

카미유과 화들짝 놀란 얼굴로 잠에서 깨더니, 이누무시키가 달리는 방향을 보고는 진지해진 얼굴로 뛰어왔다.

[이 현상은….]

카미유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마이클 주변의 마기를 훑었다.

[성좌가 타락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이 청년의 성좌는 안타라스일 텐데, 설마 안타라스가….]

"크아아악!"

더 이상 카미유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마이클이 더욱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간신히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아내려 했지만, 그의 몸에 피어오른 마기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안타라스…!'

마이클은 쓰러지기 직전 보았던 메시지를 떠올리며 속으로 분노를 터트렸다.

그것은 정말로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전갈궁, 안타라스가 타락을 시작합니다.]

[짙은 마기가 당신을 잠식합니다.]

['안타라스'가 궁좌의 지위와 이름을 버립니다.]

'네가 어떻게…!'

마이클은 다시금 이를 악물며 통증을 참아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이대로 두면 마기에 잠식당해서 당신은 마족이 되고 말 거예요. 지금 당장 타락한 성좌와의 연결을 끊어야 해요. 괜찮겠어요?]

카미유의 물음에 마이클은 잠시 생각한 끝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안타라스의 개가 되느니, 차라리 연결을 끊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부탁…합니다."

마이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또 다른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타락한 성좌, '욕망의 파라오'가 진명을 드러냅니다.]

[마왕, '아스모데우스'가 당신을 바라보며 웃습니다.]

마왕 아스모데우스.

그것이 안타라스가 숨기고 있던 진짜 이름과 정체였다.

* * *

그 시각. 나는 어느 익숙한 절벽에 도착해 있었다.

"…여긴 정말 오랜만에 오는 것 같구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그렇다고 말합니다.]

"아빠. 여기가 어디예요?"

바로 옆에 있는 풍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자, 나는 그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곳은 언젠가 내가 불룡파 놈들이 타고 올라온 거미줄을 끊어서 몰살을 시켰던 바로 그 절벽이었다.

"넌 아직 어려서 몰라도 돼."

"치, 풍희도 다 컸거든요? 저번에보다 한 뼘이나 더 자랐다구요!"

풍희가 마치 자란 키를 칭찬해달라는 듯.

손바닥을 들어 얼마나 자랐는지 알려주며 소리쳤다.

확실히 풍희의 성장속도는 무척이나 남달랐다.

인간형에서는 한 뼘 컸지만, 실제 모습은 0.5배 정도 더 자랐다고 한다.

이젠 족제비 수준도 아니었고, 호랑이라 부르기도 미안한 수준이었다. 아무튼.

"많이 크긴 했지. 자랑스럽구나."

나는 다시금 풍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풍희는 "헤헤."거리며 배실배실 웃었다.

"따라오거라."

"넵!"

그렇게 나는 지니를 탄 채 허공을 날았고, 풍희는 자신이 가진 바람의 힘을 이용해 손쉽게 허공을 날아 나를 따라왔다.

그렇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언젠가 내가 절벽을 기어 올라가며 보았던 기사들의 조각상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한 건 거대한 철문에 양각 되어진 기사들이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모습.

주변엔 익숙한 기사들의 조각상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저번에 보았던 석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바람의 기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 잠들어 있던 바람의 왕이 깨어나 자신을 되찾는 날. 우리는 또 한 번 그와 함께 영광을 누릴 것이다.]

"……."

나는 말 없이 석판을 바라 보았다.

그때는 몰랐었지만,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을 되찾은 지금.

이곳은 내게도, 풍희에게도 무척이나 중요한 곳이었다.

조셉에게 이야기를 들은 직후.

나는 윈디아에 온 김에 반드시 이곳을 들러야겠다고 결심했었다.

바로 그때.

슈화아악-!

갑자기 거센 돌풍이 몰아치더니 주변에서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바람의 피를 이은 자여. 그리고 바람을 인도하는 자여. 무슨 용건으로 이곳을 찾아 왔는가.]

나는 목소리를 향해 소리쳤다.

"개람을 만나러 왔다!"

또 한 번 메아리가 들렸다 사라지더니, 잠깐의 사이를 두고 닫혔던 철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그리고는 아까 그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려왔다.

[들어오라. 우리 개람이 그대들을 시험할 지어니.]

"아빠. 우리 여기 들어가야 하는 거예요?"

풍희가 무서운 듯 내 뒤에 숨어서 열린 철문 너머를 보고 있었다.

나는 풍희에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 둘은 열린 문 너머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등 뒤로 철문이 다시금 굳게 닫히는 소리가 멀거니 들려오더니, 쿠웅! 옅은 진동과 함께 칠흑 같은 어둠이 달려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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