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93화
제293화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이것은 라레투사가 주었던 종소리였다.
딸랑-!
다시 한번 종이 커다랗게 울렸고, 거대한 원숭이의 움직임이 멈춘 것은 그때였다.
[…그건?]
이곳을 내려찍으려던 거대한 발이 거두어졌고, 동시에 어둠처럼 찾아오던 그림자도 거두어졌다.
하늘만큼 높이 치솟은 거대한 원숭이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의문이 뒤섞인 듯한 물음이 위에서 들려왔다.
[…그 종, 어디서 났지?]
그제야 나는 멍하게 짓던 표정을 풀 수 있었다.
순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설마, 지금 눈앞의 이 원숭이가 바로….
화륵!
옆에서 솔라가 다급하게 나타났다.
"아틀라스. 나의 동생아."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콰아아-!
솔라의 몸에 강림한 프로메테우스는 여지없이 자신의 힘을 개방시켰다.
주변 일대에 태양의 힘이 가득했고, 그것은 곧 자신의 동생을 찾은 형의 애절함과 격한 감정이 뒤섞인 외침이었다.
[…형? 형이 맞는 거야? 프로메테우스 형?]
"그래. 나다. 아틀라스. 오래 기다리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아아, 진짜구나! 형-!]
프로메테우스는 솔라의 모습을 한 채 커다랗게 몸을 부풀렸고, 그런 아틀라스는 떠오른 채 다가오는 프로메테우스의 얼굴을 마주했다.
프로메테우스의 손이 아틀라스의 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둘은 서로를 향해 펑펑 울며 목놓아 울었다.
그야말로 눈물겨운 가족 상봉.
아니, 형제 상봉이었다.
"…라레투사의 종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군."
나는 펑펑 우는 형제의 뒷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쨌든 아틀라스가 지금 왜 저런 모습인지 나도 알 길이 없지만, 우리 우선은 눈물겨운 형제의 상봉을 지켜보도록 하자.
"동생아! 흐어엉-!"
"형! 흐어어엉-!"
…짜식들 콧물은 흘리지 말지. 콧구멍이 큰 건 형제가 똑같구만.
* * *
포트렌 항구에서 출발한 여객선.
미도는 김현우, 은정혁, 박태현을 비롯한 이카루스 길드원들과 함께 파르타 공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쏴아아-!
거친 파도가 뱃머리 너머로 물보라를 뿌려댔다.
"이젠 멀미 안 해?"
미도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말을 걸어온 것은 김현우였다.
언제나 자상함이 넘치는 그는 멀미로 고생했었던 자신을 걱정해준 것이다.
"응, 이젠 괜찮아."
"다행이네."
미도는 마탑의 텔레포트를 이용해 곧장 파르타 공국으로 향하는 화산지대에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마력석이 보충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저번처럼 비행정을 이용해 하늘로 이동하려 했었는데, 이번엔 비행정이 고장이 나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뱃길을 이용해 파르타 공국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직 연락이 안 돼?"
"응. 뭐, 괜찮으시겠지.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저녁이랑 아침밥도 챙겨 드셨다더라고. 엄마한테 쪽지 남겨놨으니까 곧 보실 거야."
"그럼 정말 별일 아니신가 보네. 너무 걱정하지 마."
"응. 안 해."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미도는 이곳 세계의 시간으로 사흘이나 연락이 되지 않은 할아버지가 걱정되었다.
도대체 어디길래 귓속말이 되지도 않는 지역이란 걸까.
'스승님도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고 하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할아버지 얘기를 하는 백무열은 무척이나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뭐, 아크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니 또 두 분이 싸우셨나 보다 하며 짐작만 할 뿐.
'뭐, 한두 번도 아니니까.'
어쨌든 화해를 할 두 사람인 걸 알았기에 미도는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지금은 아크스타그램이나 조금 할 생각이었다.
포트렌에서 파르타 공국까지 배로 가려면 무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리므로 아직 3일이나 더 남은 탓이었다.
"난 잠시 들어가 쉴게."
"그래. 들어가. 난 바다 좀 보다 들어갈게."
"응. 그래."
미도는 김현우를 남겨두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선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도착을 기다리며 잠을 자고 있었는데, 미도는 그중 이카루스 길드원들이 자는 구석으로 가서 대충 앉았다.
바닥이 축축한 것이 아직 바닷물이 마르지 않은 것 같았다.
바로 옆엔 박태현이 침을 흘리며 자고 있다.
미도는 그만 실소가 터질 뻔했다.
'크흠. 어디 확인이나 해볼까.'
억지로 웃음을 참은 그녀는 곧장 아크스타그램을 열었다.
최미도(22세)[한국]
[게시물 4][팔로워 5,873][팔로잉 128]
-큐티, 섹시, 깜찍한 미도스타그램♡
이제 자신의 팔로워는 6,000을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아직 할아버지의 2만에 가까운 팔로워를 따라잡기엔 무척이나 모자란 수준이었다.
사흘이라는 시간 사이에 벌써 3배 이상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와, 이거 반칙 아니야?"
미도는 괜스레 투덜거리며 자신이 올린 게시물을 확인했다.
[(사진)메테우스 별빛 야경.jpg]
[(사진)자랑스러운 이카루스 길드원들.jpg]
[(사진)비행정 왔는데 수리 중이라 못 타서 슬픔.jpg]
[(동영상)배 타서 신난 귀여운 미도.avi]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최근에 올린 동영상의 반응이 궁금했다.
배를 타서 신난 자신의 모습을 김현우가 동영상으로 찍어 준 것이었는데, 미도도 귀엽게 나와서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동영상이었다.
[(동영상)배 타서 신난 귀여운 미도.avi]
♡현재 5,118명이 좋아합니다.
@최미도_ 신난다♡
#포트렌항구 #파르타공국가는중 #할아버지만나러
#천하무적이카루스 #총출동 #가즈아
#귀요미 #미도스타그램
-댓글 2,667개 보기
"오, 여태 올린 거 중엔 가장 반응이 핫하네?"
아무래도 동영상으로 올려서 그런 걸까.
예상외로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미도는 곧장 댓글을 열어 눈팅을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하나하나 답변해주는 것도 재밌었는데, 팔로워 수가 늘어나다 보니 모두 답변해주기가 무척이나 곤란했다.
아아, 인기녀의 삶이란 이토록 피곤한 것이구나.
역시 자신의 미모는 삶을 너무 피폐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좋아요도 확인해봐야지."
댓글을 대충 훑어 본 미도는 곧장 누가 자신의 게시물을 좋아하는지 확인했다.
일종의 관심병이랄까.
무튼 자신도 이런 공주병 기질을 알고는 있지만, 굳이 모른 척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이쁜 것이 맞으니까.
적어도 얼마 전 유니온에서 주최한 파티에서 만난 레이나 말고는 꿀리는 사람이 없다고 미도는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바스트는 밀리지 않으니까.'
나름대로 상체에 자부심을 가지며 한참을 확인하던 미도는 어느 한 지점에서 손을 멈추었다.
"……."
[제임스 리(이은성)님이 당신의 게시물을 좋아합니다.]
"…음."
갑자기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아크스타그램은 서로 팔로워가 안 되어있어도 다른 사람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가능했는데, 얼마 전부터 그는 자신의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누르고 있었다.
"짜증나게 뭐야."
괜히 미도는 짜증이 솟구쳤다.
막말로 하면 전 남친이 자신의 게시물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상하게 미도는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어쩌면 아직 미련이 남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느꼈던 감정을 미도는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 그를 보며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이젠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젠 무던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떡하지.'
미도는 괜히 저려오는 팔을 주물럭거렸다.
어떻게 해야 될지 선택 장애가 생길 때마다 하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에이, 모르겠다.'
미도는 제임스에게도 팔로우를 걸어버렸다.
어차피 그때 만난 이후로 해야 할 말도 있었고, 풀어야 할 것들도 많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라면 정면 승부로 가는 게 최선이리라.
"……."
그리고 그런 미도의 바로 건너편.
후드를 뒤집어 쓴 채 잠든 척하고 있던 제임스도 마침 자신에게 온 팔로우 신청을 보고 있었다.
[최미도 님이 당신과 맞팔을 하였습니다.]
제임스는 아무도 모르게 자그마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한 줄의 메시지가 이토록 반가운 줄이야.
'…최미도.'
제임스는 건너편에서 안절부절 손톱을 물어뜯는 미도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얼마 전 마이클이 에레보스 성에 도착한 직후.
성이 안정되자 데미안은 자신을 세상 밖으로 떠돌게 했다.
그는 자신에게 혼자 세상을 돌아다니며 스타 프루츠를 찾아오라는 비밀 임무를 내렸고, 혹시나 다른 유저가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죽여서라도 뺏어오라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첫 목적지는 바로 북극이었다.
그는 잠시 뒤에 정박할 섬의 항구에서 배를 갈아타 바로 북극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와 난 이미….'
물론, 그때 당시의 두근거림을 제임스 또한 느꼈다.
그것은 분명 아직까지 남아있는 설렘이라는 감정이었고, 또한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미련하지만, 그녀의 게시물을 훔쳐보고 좋아요를 눌렀던 것이다.
정말이지 전 남친으로서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최미도 님이 당신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
뭐, 그래도 일단 서로 좋아요를 누르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제임스는 남몰래 올라가는 입꼬리를 억지로 내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앗-!"
미도의 놀라움이 뒤섞인 비명이 선실 내부를 가득 울렸다.
그녀의 비명에 안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뒤척거렸다.
바로 옆에서 자던 박태현도 침을 닦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츄릅. 아이, 진짜. 좋은 꿈 꾸는 중이었는데, 뭔 일이야?"
하지만 미도의 눈은 여전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더욱 커지며 휘둥그레진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지금 연달아 올라오는 실시간 게시물에는 믿을 수 없는 말들로 가득했다.
"파, 파르타 공국이-!"
* * *
꿈만 같았던 형제의 상봉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틀라스는 먼저 자신이 원숭이로 변한 경위부터 설명했다.
긴말은 필요 없었다.
프로메테우스가 가이아로 인해 스타 프루츠에 봉인되어 사라진 직후.
유피테르는 구름을 훔친 아틀라스가 괘씸하다며 원숭이로 모습을 바꾸어버렸고, 그 뒤로 이곳 영혼의 미궁에서 인간계의 하늘을 떠받치며 영혼들의 형벌을 결정하는 일을 지난 500년간 해왔다고 한다.
다시금 두 형제가 유피테르를 향해 복수심이 커지는 순간이었다.
"크으윽. 유피테르…!"
솔라의 모습을 한 프로메테우스가 사방으로 태양의 힘을 발산하며 분노를 터트렸다.
그런 프로메테우스를 진정시키는 것은 동생인 아틀라스의 몫이었다.
[진정해. 형. 난 그래도 이 생활에 나름대로 만족해.]
"만족하긴 뭘 만족해? 정말 만족해? 네 딸들을 100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게 좋다고? 이렇게 하늘을 들고 있는 고문 같은 생활을?"
[…….]
아틀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무언의 긍정이었다.
[조카들을 만났나 보네. 어때, 걔들은 많이 컸어?]
아틀라스는 괜히 화제를 돌렸고, 프로메테우스는 못마땅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심호흡을 했다.
"…후우. 많이 컸드라. 특히 라레투사는 아주 듬직하게 잘 자랐어."
[하하, 그 아이가 좀 대장 기질이 있긴 하지.]
아틀라스가 웃을 때마다 그가 들고 있는 하늘이 들썩거렸다.
[아, 잠깐만. 먼저 영혼들을 입장시켜야 할 것 같아.]
그 말과 동시에 어디선가 한 무리의 구름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뭉쳐지더니, 마치 무언가를 태우려는 것처럼 넓게 펼쳐졌다.
그 위에 아까 미궁을 통과하며 보았던 여러 영혼들이 넘실거리며 올라탔다.
이어진 것은 구름이 아틀라스의 뒤편에 있는 명계의 입구로 향하는 것.
멀어지는 구름을 보며, 나는 생각이 난 듯 외쳤다.
"아틀라스!"
[…어, 왜 그러지?]
아틀라스는 이제 내게도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봉인을 풀어주었고, 이렇게 만나게도 해주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보다는 프로메테우스가 믿을 수 있는 인간이라고 말해준 것이 컸다.
어쨌든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구름의 정령, 지니(Jinny)는 어디 있지?"
[음, 어, 그게….]
아틀라스가 한 손으로 하늘을 떠받치며 볼을 긁적거렸다.
뭐지 이 반응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