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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87화 (287/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87화

제287화

그때쯤 나는 백무열과 함께 헤스페리데스가 있는 곳에 도착해 있었다.

역시나 도착하자마자 반기는 것은 커다란 구름의 결계였다.

저번에 백무열이 얘기해줬던 것처럼 헤스페리데스는 그 모습 그대로 존재했다.

"이거 어째 더 단단해진 거 같은데."

백무열이 들고 있는 목검으로 구름의 결계를 두들기며 말했다.

아니, 어쩌면 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한 번의 침입을 허용하고 도망까지 쳤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도둑이 들어왔는데 보안이 강화된 거야 당연한 게지."

"흠, 그런가. 근데 여긴 빛이 안 솟아올랐군."

백무열이 주변을 둘러보며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 사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여기쯤엔 하나 있을 줄 알았는데, 저번에 백무열이 먹었던 1등성의 스타 프루츠가 전부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아까 우리가 지나쳐온 활화산에 하나씩 있었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

아까 이곳으로 오면서 마주친 빛기둥의 개수는 총 4개였다.

불칸 화산지대의 동서남북에 자리한 총 4개의 화산.

그곳의 꼭대기에 영롱한 하얀빛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나저나 서쪽이라면 분명 그 존재가 있는….

"일단 들어가 보자고."

그 말과 동시에 백무열의 목검에 빛이 아른거렸다.

한눈에 보아도 헤라클레스의 성좌 스킬인 몽둥이의 가호였다.

이놈은 아까 가기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오자마자 화끈하게 사고를 저지르네.

"흐읍!"

콰아아앙-!

엄청난 거력이 담긴 백무열의 목검이 전방의 결계를 강하게 때렸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결계는 멀쩡했다.

우우웅-!

그저 진동이 생긴 것처럼 떨리기만 할 뿐.

"뭐야. 저번이랑 같은 강도로 때렸는데…?"

나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백무열을 옆으로 밀쳤다.

"나와봐."

"어? 어어."

백무열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 자리엔 내가 섰다.

나는 곧장 흑야의 화살을 사용했다.

슈슈슈슛-!

까만 밤이 오른손에 아른거리며 깃들었고, 동시에 차가운 냉기가 주변을 휘돌았다.

이어서 흑야의 화살이 기다랗게 벼려지자, 나는 백무열에게 말했다.

"좀 떨어져 있어."

"그래. 잠시만."

백무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뛰어갔다.

흑야의 화살의 폭발 반경을 익히 알고 있는 백무열은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곧장 들고 있는 흑야의 화살을 결계에 냅다 꽂았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찢기는 듯한 소리가 났다.

쒸아아악-!

이어진 것은 흑색의 고드름의 폭풍.

그것은 결계를 무차별적으로 때리고 또 때리더니, 이윽고 마지막은 흑야와 냉기가 만나 하늘로 솟구치며 이어진 거대한 원형의 폭풍이 전방을 집어삼켰다.

콰콰콰콰-!

마치 기차가 폭발하는 듯한 연쇄 폭발이 수차례 결계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이 끝나고 연기가 걷혔을 땐….

"열렸네."

결계는 들어오라는 듯 활짝 문을 열고 있었다.

어느새 백무열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야, 들어가는 건 좋은데 조심해. 아까 말했지? 그 세 자매는…."

"거 참. 괜찮다니까 그러네. 아직도 무섭냐? 쯧쯧. 겁쟁이 놈…."

그렇게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결계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진 모르겠는데, 굳이 표현하자면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느낌이다.

넘지 말라고 하니까 더 넘고 싶은 거랄까?

아무튼 표현하자면 그렇다.

"쯧. 아무 일도 없구만. 뭐가 무서워서…."

바로 그때였다.

"헤-라-클-레스으으으-!"

천지가 요동치는 듯한 고함이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이어지는 건 자그마한 지진이었다.

드드드드.

저 멀리 몬스터 떼가 물밀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

"……!"

나와 백무열은 동시에 당황했다.

아니, 좀 더 당황한 쪽은 백무열이었다.

아니, 헤라클레스인가?

츠츠츠츳-!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당황을 금치 못합니다.]

지금 나와 백무열은 오랜만에 성단(星團)으로 연결된 상태였다.

하늘에 있는 헤라클레스의 당황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그만큼 헤라클레스는 지금 목소리의 주인공을 무척이나 무서워하고 있었다.

대체 둘이 무슨 관계였던 거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렇게 목소리의 주인공이 도착했고, 예상대로 한 명이 아니었다.

"네놈…!"

"안녕? 구름 수염 인간아?"

"기어이 여기까지 왔군."

마치 거인을 마주하는 듯한 기다란 신장의 여인들은 각양각색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말한 저 여자는 아마 '라레투사'일 것이다.

백무열의 말대로 가장 적대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으니까.

"너-!"

라레투사가 구름으로 이루어진 신기한 검으로 백무열을 겨누었다.

그녀는 온몸을 각양각색의 구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마치 구름의 전사 같다고나 할까.

백무열이 흠칫거리며 목검에 손을 가져갔다.

당장에라도 공격을 한다면 반격을 할 기세였다.

"헤라클레스의 후인! 저번엔 잘도 도망갔겠다!"

라레투사가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우리는 순식간에 몬스터떼에 둘러싸였다.

당장에 느껴지는 라레투사의 기세도 그렇고, 다른 세 자매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어쩌면 여기서 죽을지도 모르겠다.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땀을 삐질삐질 흘립니다.]

나는 조용하게 중얼거리듯 헤라클레스에게 물었다.

"…헤라클레스. 둘이 무슨 관계냐."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말을 망설입니다.]

"…네가 말을 해줘야 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다."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당신을 믿어도 되는지 묻습니다.]

"믿어도 좋다. 원한다면 스틱스강에 맹세라도 하지."

망설이던 헤라클레스는 잠깐의 고민을 마쳤는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몽둥이성, 헤라클레스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이라고 말합니다.]

"……."

"……."

이런 미친.

나와 백무열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사랑했던 사이였는데, 절대로 좋게 헤어졌는 건 아니란 말이잖아?

그건 지금 눈앞의 라레투사의 반응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여전히 검을 겨누고 있는 라레투사에게 다가갔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뭐, 솔직히 말하면 나는 괜찮겠지만, 백무열까진 장담 못 하겠다.

그래도 해보는 데까진 하는 수밖에.

"라레투사."

"…넌 누구냐.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지?"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화르륵-!

난데없이 나타난 솔라의 눈동자에 푸른 기운이 맺혔다.

그것은 솔라에게 강림한 프로메테우스였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자신의 존재감을 발산합니다!]

콰아아아-!

갑자기 불어닥친 불바다가 주변의 몬스터들을 감싸듯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삽시간에 불바다에 포위된 나도 당황했다.

뭐야,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건데.

[라레투사.]

"누, 누구세요?"

[큰아빠다.]

"네?"

라레투사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 * *

서울 강남, 유니온 스퀘어 경기장.

-작년에 이어 또 한 번의 영광을 미국이 가져가는군요. 과연 대단합니다!

-역시 세계 랭킹 1위는 그냥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이번 경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마이클은 여전히 세계 최고였습니다.

-견소룡 선수는 또 어떻습니까. 마이클 선수에 비해 절대로 뒤지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최춘택 선수와 함께 새롭게 발굴해낸 인물이 아닌가 싶군요. 최춘택 선수와 마이클 선수가 결승에서 만나길 내심 바랐는데 그게 조금 아쉽습니다.

-하하.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 아쉬운 부분이에요.

영광의 금메달을 거머쥔 것은 미국이었다.

짝짝짝짝!

기다란 함성에 이은 박수 소리가 끊임없이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장장 한 시간에 걸친 혈투를 벌인 자랑스러운 두 선수에 대한 치하와 노고.

또는 존경과 감사였다.

견소룡은 축하를 하듯, 마이클의 손목을 잡고 번쩍 들어주었다.

와아아아-!

마이클은 그런 관객들을 향해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견소룡은 자리를 피해주려는 듯 금세 내려갔다.

그런 견소룡을 향해 마이클은 눈짓으로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중국은 이번 월드 대항전에서 최종 3위를 해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작년에 아무런 메달도 따지 못한 것에 비하면 충분히 좋은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은메달은 정말 예상치도 못한 나라.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이었다.

이는 모두 최춘택과 백무열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노인들이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후우. 그래도 어떻게 1등을 하긴 했네.'

이번 승리를 통해서 마이클은 다시 한번 건재함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이로써 그토록 냉정한 아버지도 좋아할 만한 성과일 것이 분명했다.

'보고 계십니까. 아버지. 제가 이겼습니다. 1등이라구요.'

쉬운 승리는 아니었다.

견소룡의 뇌전은 마이클의 모래에는 통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상성에서 이기고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백색의 뇌전은 모래를 새카맣게 태우며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마지막에 승부수를 띄워서 카운터를 치지 않았다면, 지금 패배한 것은 자신이었으리라.

그만큼 견소룡의 한 수 한 수는 치명적이고 날카로웠다고 할 수 있었다.

마이클은 손을 흔들며 사라지는 견소룡과 중국 선수들의 등을 보았다.

'어쩌면….'

집착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항상 1등을 고집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렇게 이기고 나면 늘 기쁘지가 않았다.

간신히 쫓기다가 숨을 고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쨌든 자신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싸운 기분이었다.

마치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한 싸움을 했던 것처럼.

'…허무하군.'

그렇다고 신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이클은 나름대로 신념을 가지고 이번 싸움에 임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우승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공허해.'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괴리감을 느끼며 마이클은 다시금 자신을 돌아봤다.

이번에 다시 게임 속으로 돌아간다면 마이클은 이 공허함부터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했다.

* * *

파르타 공국 서쪽에 자리한 망자들의 땅.

이곳엔 수많은 언데드들이 무리지어 살았다.

이곳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렸는데, 망자들의 땅이 가장 많이 불린 이름이었다.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의 땅이라고도 부르기도 하고, 또는 검은 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파르타 공국은 이런 언데드들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경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라 자체가 요새화가 된 것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

그만큼 파르타 공국과 언데드들은 앙숙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망자들의 땅에 발을 딛고 선 남자가 있었다.

"…여긴 언제나 땅이 습하군."

루이 카셀이 질척거리는 검은 대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기분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네크로멘서들에겐 성지라고 불리는 곳으로, 급이 낮은 네크로멘서는 발을 디디는 순간 오히려 죽음의 기운에 잡아먹히고 힘을 빼앗기고 마는 곳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가진 죽음의 힘이 많다면 더욱 많은 힘을 쌓을 수 있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곳은 루이 카셀만의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연구소가 되기도 했고, 훈련장이 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직업인 '리치왕의 후예'를 얻은 곳도 이곳이었다.

"…하아."

루이 카셀은 하늘을 올려보며 깊은 회한에 빠졌다.

월드 대항전은 끝이 났다.

우승은 미국.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프랑스의 흑장미로 불리던 자신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TV나 신문을 보면 프랑스 매체는 자신을 깎아내리기 바빴으니까.

'고귀한 흑장미의 추락은 얼어 죽을.'

루이 카셀은 PVP에서 탈락하자마자 대기실로 돌아왔다.

팀원 중 한 명에게 미국이 우승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머리도 식힐 겸 접속한 것이었는데, 오히려 더 화가 나는 것만 같았다.

"하등한 놈들. 네 녀석들이 뭘 알아. 뭘 아냐고. 마이클, 견소룡, 최춘택. 이놈들…."

그렇게 루이 카셀은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새로운 언데드 연구에 매진하며 죽였다가 되살리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하면 좀 더 정순한 죽음의 기운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언데드의 성능 실험을 위해선 파르타 공국에 공격 명령을 내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던 와중에도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있었다.

"근데 저게 뭐야?"

아까부터 시선을 잡아끄는 어두운 빛.

그것은 수십 개가 넘었다.

도대체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을 정도.

망자들의 땅 주변을 둘러싼 모습이 마치 결계와 같았다.

어쨌든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곳은 언제나 밤이었기에 마치 고향의 별이 땅에 맺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벅저벅.

"……!"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이곳에선 생전 처음 들어보는 발소리가 루이 카셀의 귀에 들려왔다.

그렇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바로 뒤돌았다.

'한 명이 아니야…?'

어마어마한 죽음의 기운을 풍기는 놈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모두 나보다 강해. 이토록 진한 죽음의 기운이라니…!'

그렇게 다가온 무리는 어느 순간 거리를 두더니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런 무리 속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모두 흑색의 후드를 쓰고 있었기에 얼굴은 알 수 없었다.

"그대가…. 네크론인가…."

마치 죽음을 선고하는 듯한 나른한 목소리.

지옥에 온 것만 같은 오싹함이 루이 카셀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그렇다. 너흰 누구지…?"

그럼에도 루이 카셀은 겁먹지 않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썼다.

어쩌면 자신의 전유물인 이곳을 빼앗으러 온 자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기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얼굴이 없는 남자는 그런 루이 카셀의 태도를 짐작하듯 말을 내뱉었다.

"경기 하지 않아도 좋다. 우린…. 적이 아니다…."

"적이 아니라고? 그럼 뭐지?"

루이 카셀의 물음에 남자가 대답했다.

"우리는 판도라의 추종자들…. 그대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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