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286화
제286화
미국과 중국의 결승전은 무척이나 치열했다.
세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나라답게 미국은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났고, 중국도 그 못지않게 뛰어났다.
이번에 새로이 대표팀에 오른 중국 선수들은 미국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훌륭한 대인전 기량을 가진 중국은 선수층이 두터웠다.
삐이이-!
[유저 '데미안' 님이 로그아웃되었습니다.]
[다음 출전 선수를 등록해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지금.
가장 첫 번째로 출전했던 데미안이 중국 선수 2명을 로그아웃시키고 장렬하게 로그아웃을 당했다.
그는 가히 미국의 주장다운 다채로운 플레이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아메리카의 두뇌'라는 별명을 가진 그가 처음부터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데미안은 언제나 뒤에서 팀원들에게 전략과 전술을 구가하는 쪽이었으니까.
"…내 차롄가."
마이클이 다른 미국의 선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들 모두 자신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 또한 계산에 있던 일이다.
데미안은 처음부터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고, 자신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중국은 어차피 견소룡말고는 별 볼 일 없어. 그러니 최대한 간결하고 빠르게 적들을 로그아웃시켜. 네가 나서면 어쩔 수 없이 저쪽도 견소룡이 나올 수밖에 없을 거야.'
데미안은 그렇게 말하며 뒤를 맡기고는 첫 번째 주자로 미련이 없이 나섰다.
그가 포탈에 들어서기 전 했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정보국에 있는 인맥에게서 연락이 왔어. 속보로 알려진 유니온의 이벤트는 가짜야. 그 빛들은 스타 프루츠에서 나는 빛이야. 난 가장 먼저 나가서 탈락할 거야. 그리고 바로 대기실에 가서 접속해 할 수 있는 인원을 총동원해서 스타 프루츠를 모을 생각이야. 이건 내게 맡기고 넌 그저 대회에만 집중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데미안은 포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이클은 데미안의 말을 되새기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세상은 다시 한 번 떠들썩해지리라.
'스타 프루츠라….'
더욱 방심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스타 프루츠의 빛이 하늘로 치솟았다면 수많은 능력자들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
그중엔 제임스 같은 재능있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데미안은 스타 프루츠를 모으는데 필요하다며 제임스를 데려갔다.
그래서 오늘의 에이스는 자신뿐이었다.
'뭐,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마이클은 포탈로 몸을 옮겼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눈을 떴을 땐 주변의 정경이 모두 뒤바뀌어 있었다.
"후우."
이상하게 긴장이 된다.
결승전이라 그런가?
[중국의 선수가 교체됩니다.]
바로 그 순간.
건너편에 있던 중국의 선수가 갑작스레 교체되었다.
그를 보는 순간 뛰던 심장도 착 가라앉았다.
두 선수 사이엔 차가운 기류만이 가득 흘렀다.
저벅저벅.
견소룡이 걸어왔다.
"반갑소. 마 공자. 견소룡이라 하외다."
견소룡이 자신을 향해 공손하게 포권을 쥐었다.
중국의 예법을 공부한 적 있는 마이클이었기에 그를 향해 똑같이 포권을 쥐었다.
과연 견소룡은 최춘택을 이긴 강자답게 어마어마한 기도를 품고 있었다.
겉모습도, 외양도, 마치 벼락을 닮아있는 모양새.
패도적인 강함을 추구하는 무인의 정점처럼 보였다.
"잘 부탁드리오."
"저야말로."
마이클은 등 뒤에 멘 쌍검 두 자루를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고, 견소룡도 가볍게 두 주먹을 쥐고 앞으로 뻗었다.
두 사람 사이엔 카운트 메시지가 나지막하게 내려앉았다.
* * *
불칸 용암지대, 남쪽 용암 호수 부근.
"뭐? 그 미친 여자들을 만나러 갈 거라고? 너 진짜 미쳤냐?"
놀라움과 경악이 뒤섞인 백무열의 음성이 용암 호수를 쩌렁쩌렁 울렸다.
다행히도 주변에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 미쳤다. 그러니 좀 조용히 말해. 시끄러워 죽겠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그러니까 네 말은 그 헤스페리데스인지 뭔지 하는 그 황금 사과가 있는 거기에 다시 가겠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게 뭐 어때서."
"아니, 그 세자매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니까? 특히 그 라레투사라는 여자는…."
"시끄러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그냥 따라와. 하여간 아주 걱정은 태산이에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뒷짐을 지고 앞섰다.
나와 백무열은 용암 호수 옆을 걸으며 계속 투닥거렸다.
늘 이 녀석과 함께 있으면 이렇게 싸우는 것이 일상이다.
젊은 시절엔 그렇게 무뚝뚝해서 재미없었는데, 다 늙고 나니 이렇게 말이 많아질 줄은 나나 백무열도 짐작 하지 못 했다.
"됐고, 속도 좀 높이자. 빨리 가야 해. 시간이 별로 없어."
"아니, 대체 뭐가 그렇게 급해서…."
"풍희야~"
바로 옆에 마력이 작게 소용돌이치더니 바람의 신수 풍희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푸우웅~"
"허허. 하루가 다르게 크는구나. 또 컸니?"
이제는 호랑이만큼 덩치가 커진 풍희가 새하얀 얼굴을 부볐다.
레벨도 어느덧 200에 접어들었고, 춘자도 그 못지않게 성장을 이루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가 성장하는 것뿐.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구름의 정령이 필수다.
"올라타."
"여기에 올라타라고?"
"그래. 네 녀석은 느려터졌잖아."
"끙."
백무열이 하는 수 없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풍희의 등에 올라탔다.
커다란 족제비에 올라탄 백무열의 꼴이 제법 볼만했다.
풍희는 여전히 "푸웅~" 하며 방긋방긋 웃었다.
"야. 손가락 두 개 들어봐."
"이렇게?"
백무열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검지와 중지를 세워 브이를 했다.
그런 그의 옆에선 나는 허공을 조작해 스크린샷을 찍었다.
찰칵!
이른 바 기념사진이란 거다.
"지금 뭐하냐."
"뭐하긴. 기념 사진 찍지."
"아니 그러니까. 그걸 갑자기 왜 찍냐고."
"왜 찍긴. 네놈 꼴이 하도 웃겨서 찍는 거지."
"뭐? 너 일로 와 봐. 이 자식. 몽둥이찜질 맛을…!"
"가자 풍희야."
"푸웅~♡"
난데없는 돌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쉬이잇!
그것은 모두 내 다리와 풍희에게서 불어오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풍희였다.
쿠아앙-!
거센 폭음과 함께 풍희가 번개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 저쪽이 아닌데. 아 몰라. 따라잡으면 되지 뭐."
콰앙!
나 또한 터져 나온 폭음과 함께 바람의 길을 타고 풍희를 뒤쫓았다.
순식간에 따라잡은 나는 풍희에게 소리쳤다.
"풍희야! 이쪽!"
"푸웅!"
풍희의 다부진 대답이 이어졌고, 그렇게 나와 풍희는 빠르게 헤스페리데스라고 명명된 대지로 길을 잡았다.
길잡이는 당연히 내비게이션이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길을 안내하는 중입니다.]
"너무 빠르잖아아앍…!"
백무열의 고성은 덤이다.
* * *
헤스페리데스 정원, 구름의 신전.
아이글레, 에리테리아, 라레투사 세 자매는 언제나와 같은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흐음~♬ 흠~♪ 흠흠흠~♬"
아이글레는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권능인 '수호의 구름'을 사용해 결계를 다듬었다.
저번에 있었던 인간의 침입 이후로 꽤 많은 구름의 손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와 유일한 소통이 가능한 이 구름의 신전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다.
만지작만지작.
마치 찰흙을 빚는 것처럼 아이글레는 결계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녀는 아이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앉아! 일어서! 다시 앉아-!"
그리고 에리테리아는 '현혹의 구름'이라는 권능을 이용해 이곳의 몬스터들을 조련하고 있었다.
저번에 인간들이 너무나 쉽게 몬스터들을 도륙하는 것을 보고는 경각심이 든 탓이다.
그녀 또한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구름의 신전을 잃는 것은 싫었다.
그렇기에 같은 이유로 아이글레와 함께 근처에서 몬스터들의 조련을 더욱 노련하게 하기 위한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캬르릉…."
늑대를 닮은 몬스터가 에리테리아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현혹의 구름이 잘 통하지 않자, 에리테리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앉아."
"크릉…."
"앉으라구 했다-!"
에리테리아가 라레투사가 만들어준 구름의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짜악-!
사실 소리만 요란하지, 구름의 채찍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다만 대상을 정말 죽일 각오로 휘두르면 이만큼 아픈 것도 없었다.
"깨갱!"
어쨌든 지금 에리테리아는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으므로, 방금 전 휘두른 채찍은 꽤 아팠을 것으로 사료 되었다.
늑대를 닮은 몬스터가 깨갱거리며 재빨리 앉았다.
에리테리아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과일을 따서 하나 던져주자, 늑대를 닮은 몬스터는 맛있게 먹었다.
쫘압쫘압. 쩝쩝. 찹찹.
에리테리아는 갑자기 배가 고파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글레!"
"으응?"
구름을 매만지고 있던 아이글레가 순수한 눈을 하며 뒤돌았다.
정말이지 말똥말똥한 눈이었다.
"라레투사 언니는 아직 공방에 있어?"
"응~ 벌써 한 달째 저러고 있어~"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아이글레의 말끝이 자꾸만 올라갔다.
하지만 에리테리아는 아니었다.
라레투사는 구름의 공방에 박혀서 한 달째 나오지 않았다.
다음번에는 꼭 침입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기와 갑옷을 제대로 만들겠다나 뭐라나.
"아,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짜증나!"
세 자매 중 가장 손재주가 좋은 라레투사였다.
따라서 그녀는 요리실력도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신의 피를 이은 세 자매는 굳이 많이 먹을 필요 없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는 과일만 먹어도 굶어 죽지 않았다지만, 그렇다고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욕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하아, 한번 틀어박히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에리테리아가 한숨을 푹 내쉬자 아이글레가 위로의 한마디를 건넸다.
"에리테리아야, 그럼 내가 요리해줄까아~?"
"…아니, 그건 사양할게."
참고로 아이글레의 요리 실력은 최악이다.
소금과 설탕의 차이를 모를 정도랄까.
어쨌든 아이글레는 요리를 하면 안 된다.
절대로.
"그럼 에리테리아가 해볼래~?"
"내가?"
"응~ 해본 적 없잖아~"
아, 그랬었나?
에리테리아는 지난날들을 되짚어보았다.
확실히 아이글레나 라레투사가 요리를 한 적은 있어도 자신이 요리를 한 적은 없었다.
'뭐, 요리가 별 게 있겠어. 맛있어 보이는 몬스터를 현혹해서 끓는 물에 들어가라고 명령하면 되겠지.'
누가 들으면 굉장히 오싹하고 살벌하다고 했을 말을 에리테리아는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찌릿-!
아이글레와 에리테리아의 머리가 동시에 지끈거렸다.
"……?"
"……!"
아이글레와 에리테리아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동시에 구름의 신전 안으로 뛰었다.
도착한 곳은 가운데 자리한 수정구슬이 있는 곳.
헤스페리데스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구슬이었다.
"침입자 맞지…?"
"잠깐만."
에리테리아가 구슬을 조작해 좀 더 확대를 했다.
그러자 좀 더 선명하게 침입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들은 결계를 두들기고 있었다.
침입자는 저번에 얼굴에 구름을 두르고 있다며 신기하게 보았던 인간이었다.
"저 인간은 그때 그…."
"저번에 그 인간인 것 같은데? 구름을 얼굴에 묻힌 인간 말이야."
"그래. 이번엔 구름을 얼굴에 묻힌 인간이 둘이나 있네."
또 다른 한 명은 이름 모를 인간이었다.
어쨌든 둘 다 얼굴에 구름을 묻힌 것은 같았다.
심지어 다른 인간은 머릿결도 새털구름처럼 찰랑거렸다.
어쨌든 침입이라니 괘씸하기 그지없다.
"누가 침입을 했다고…?"
바로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글레와 에리테리아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라레투사야~"
"언니 왔어?"
그곳엔 구름의 무기와 갑옷을 온몸에 치렁치렁 장식한 라레투사가 눈에서 불을 켜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