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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65화 (26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65화

제265화

"구루룩?"

"고생 많았다. 잘했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 왠지 칭찬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춘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기특하다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춘자가 연신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능이 높아서 그런지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나중에 외형을 바꿀 수 있는 폴리모프를 가르치면 함께 다닐 수도 있을 테지.

생각만 해도 든든하다.

"그나저나…."

나는 영주성 바로 앞에 위치한 언덕 부근에서 메테우스의 광장을 내려다보았다.

이상하게 저번보다 사람이 북적거리지가 않았다.

마치 NPC만 남고 유저는 거의 다 빠져나간….

"아, 그러고 보니 아직 경기가 다 안 끝났겠구나."

이 시간이면 아직 골렘 공성전은 한창 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람들이 적은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경기가 어떻게 됐나 궁금한데?

나는 근처에 자리한 유저들이 모여있는 맥주집으로 들어서려다가 우뚝 멈춰 섰다.

"이런, 얼굴…."

지금의 나는 정체를 밝힌 뒤다.

얼마 전 메테우스에 유행하던 검은 늑대의 가면을 쓰는 것도 모두 사라졌다고 들었다.

정체를 숨기자고 가면을 쓰자니, 대놓고 내가 '최춘택'이라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흐음."

생각을 마친 나는 오랜만에 지정 귀환석을 들었다.

그리고 곧장 등재된 전화번호부 목록을 확인해 아렌에게 3급 마도공학 '비밀통신'을 걸었다.

뚜르르르-

두 번의 신호음 뒤에 누군가 받았다.

- 오랜만입니다. 잭슨 님.

"오랜만일세.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연락을 했네.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은가?"

- 물론입니다. 지금 오시겠습니까?

"금방 가지."

- 기다리겠습니다.

딸칵.

비밀 통신을 끊자마자, 지정 귀환석에 등록된 '아렌의 저택'으로 귀환하려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것이 있었다.

"아, 이런."

현재 지정 귀환석에는 '불칸 화산지대'가 저장되어 있었다.

대회가 끝나면 다시 그곳에 볼일이 있어서 들러야 했기에 귀환 장소를 저장해둔 것이었다.

"뭐. 상관없겠지."

나는 심장에 자리한 바람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주변의 바람이 포근하게 두 다리를 감싸 안으며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목표는 포트렌에 위치한 아렌의 저택.

바람을 타고 달린다면 그다지 오래 걸릴 거리는 아니었다.

슈슉슈슛-!

주변의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주변을 휘감더니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옅은 바람의 마력이 잔상을 남기며 흩어졌을 때.

이미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 * *

한편, 그 시각. 미도는 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마치고 곧장 팀원들이 있는 숙소를 찾았다.

"미도야!"

마침 쉬고 있었는지, 룸메이트인 임사라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TV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임사라의 눈에 담긴 걱정을 읽었는지 미도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 저 왔어요."

"몸은 좀 어때? 괜찮아?"

"그럼요. 그러니까 이렇게 왔죠."

"잘 왔어. 안 그래도 경기를 보고 있었어. 이리와 앉아."

미도는 임사라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침대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TV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치열한 골렘 공성전을 봤다.

이미 골렘 공성전은 8강전을 지나, 4강전을 치르고 있었다.

"4강전 첫 경기는 프랑스와 스페인이었어. 뭐, 당연히 프랑스는 토레즈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

임사라의 말에 미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토레즈라면 그만함 힘을 가진 강자였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싸움은 꽤 치열했어. 프랑스가 그런 회심의 한수를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 저번에 동영상으로 봤지? 그 탈모임 나이트인가 뭔가. 너네 할아버지한테 발렸던 언데드 있잖아."

"아, 기억나요. 임모탈일걸요?"

"그래. 아무튼, 그게 한층 세졌더라고. 수룡이랑 온통 뼈로 무장된 스켈레톤 기사가 싸우는데 내가 다 심장이 뛰더라."

"와, 재밌었겠어요."

"너도 봤어야 했는데."

"나중에 보면 되죠. 뭐."

미도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경기에 집중했다.

지금 싸우는 것은 영국에서 '킹 아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나무의 능력을 가진 데이비드와 중국에서 '권왕'이라고 불리는 푸른 전격의 능력자 견소룡의 대결이었다.

-아뵤!

TV 속에선 주양천이 사마귀 같은 자세를 취하며 최전방에서 영국의 적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중국은 개개인의 대인전이 정말 강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중국 무술을 쓰고 있었다.

마치 동물을 닮았다고 할까.

당장에 유명한 것 제외해도 닭이나 호랑이. 그리고 뱀을 닮은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무술도 있었다.

"에휴, 영국 쟤들은 왜 마법사 위주로 대회에 나왔나 몰라. 저러니까 매번 저렇게 발리지."

말 그대로였다.

데이비드를 제외하고 영국은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경기는 순식간에 끝났다.

골렘을 소환할 것도 없었다.

중국은 초반부터 마력 코어를 모으지 않은 채 적들을 기습해 때려잡는 작전을 취했고, 그것은 주효하게 맞아 떨어졌다.

-끝났습니다! 골렘 공성전의 결승전은 중국이 올라갑니다! 과연 스페인의 토레즈와 중국의 견소룡. 두 에이스의 대결에서 승자는 누가 될까요! 약 10분의 휴식 시간 뒤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화면이 전환되며 광고가 띄워졌다.

잘레트라는 퓨전 면도기 회사의 광고였다.

"후우. 쉽지 않네요. 내일 저런 선수들을 이겨야 된다니."

미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걱정하지 마. 너도 이제 강한걸? 자부심을 가져. 너도 한국의 스타 프루츠 능력자야."

임사라가 다부진 눈으로 미도를 응원했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미도가 마음먹고 강해지기를 다짐한다면 저기 보이는 견소룡이나 데이비드.

스페인의 토레즈 못지않은 선수가 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때 보았던 미도는 그만큼이나 강했다.

"…하지만, 그때 그건 제가 아니었어요."

그러나 미도는 자신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때의 그건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동영상으로 봤지만, 분명 자신은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빛이었다.

할아버지 말에 따르면 그것이 다빈치였다고는 한다.

아무튼 다빈치가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그때 보았던 '피의 갈망'이라는 것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다.

미도 또한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번 그런 끔찍한 모습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좀 더 강해져야 해.'

미도는 능력자가 되고 나서 좀 더 팀 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화가라는 직업이 서포터에 한정되어 있어서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 저 훈련하고 있을게요."

"벌써? 다른 애들이랑 오빠들은 결승전 보고 훈련한다던데?"

"아니에요. 저 강해질 거예요. 저번처럼 제가 아닌 모습으로 강해지고 싶지 않아요. 오빠들한테 메테우스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할아버지가 그곳의 훈련장을 통째로 빌려주신다고 했어요."

"엇, 정말?"

"네. 충분히 도움이 되는 상대들이 있을 거라고도 했어요. 할아버지도 곧 오신다구 했구요."

"오, 대박. 알았어!"

신이 난 임사라가 바깥으로 후다닥 나갔다.

이것으로 팀원들은 메테우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미도는 그 전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에게 특훈을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군지는 뻔했다.

뚜르르- 달칵.

- 그래. 미도야. 나다.

"사부님. 특훈 좀 시켜주세요. 성찬이도 불러주시구요."

- 음, 마음이 제대로 섰구나. 좋다. 곧 성찬이와 들어가마.

"감사해요. 메테우스 훈련장으로 오시면 될 거예요. 팀원들이랑 할아버지도 오시기로 했어요."

- 알았다.

전화를 끊은 미도가 다부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바로 캡슐로 뛰어가 접속을 하기 시작했다.

* * *

나는 바람처럼 달려 아렌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정문 입구에는 아렌의 집사인 알프레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계십니다."

곧장 그의 안내를 받아 아렌의 방으로 향했고, 아렌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악수를 건넸다.

그의 표정은 밝았지만, 눈 밑에 내려온 검은 그늘이 그가 굉장히 바쁜 것임을 짐작케 했다.

"바쁜 사람을 강제로 붙잡는 건 아닌가 모르겠군."

"하하, 아닙니다. 요즘 바빠지긴 했지만, 시간을 못 낼 정도는 아닙니다. 앉으시죠."

아렌의 권유에 자리에 앉자, 집사 알프레드가 머그잔을 놓고는 홍차를 채워주었다.

이상하게 담배가 땡기는 순간이다.

"여기 금연인가?"

"괜찮습니다. 피십시오. 저도 마침 생각나던 참인데 잘 되었습니다."

그렇게 알프레드가 책상 가운데 보석이 박힌 재떨이를 놓았고, 품에서 거대한 시가를 꺼내 아렌에게 건네주며 불을 붙여주었다.

나는 불 뿜기 스킬이 있기에 필요 없었다.

이상하게 내 담배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시가를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입에 문 담배의 연기를 옆으로 뿜었다.

"아닐세. 그냥 자네가 그걸 필 줄은 몰라서 말이야."

"듣자 하니 불사의 인간들 사이에서도 이걸 피는 사람이 있다더군요. 저도 애연가인 편인데, 궁금해서 한 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마침 포트렌에 에이단이 운용하던 담배 공장이 남아있더군요. 시설은 그대로 남겨두고 떠났길래 잘 됐다 싶어서 만드는 중입니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만족감이 큽니다. 하하하."

아렌이 별거 아니라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바쁜 것 같으니 용건만 말하겠네. 레슬리를 비롯한 저항군 10명과 총과 단검을 좀 빌려주게."

아렌이 눈앞의 홍차를 한 번 홀짝이더니 눈을 빛냈다.

"…암살입니까?"

"아닐세. 훈련이 필요한 친구들이 있는데, 좀 빌릴까 싶네."

"음, 그렇군요."

"그리고 저번에 준 망토 있잖나. 그거 개조를 좀 부탁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며 옆에 서 있는 알프레드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모이자, 알프레드가 눈웃음을 지었다.

능구렁이 같은 웃음이다.

"어떤 개조입니까?"

"인식 장애를 좀 더 강화했으면 싶네. 아예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말이야. 후드를 쓰면 더 좋을 것 같군."

알프레드가 아렌을 보자,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망토를 주시겠습니까?"

나는 알프레드에게 망토를 벗어주었다.

그는 마도 공학에 조예가 깊으니 금방 끝날 것이란 대답도 들었다.

그렇게 다시 방에는 나와 아렌의 차를 홀짝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저도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원래 인생은 주고받는 것이다.

나도 부탁을 하러 왔으니, 아렌의 부탁도 하나 들어주는 게 맞았다.

아렌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눈을 빛냈다.

"상왕을 한번 만나주십시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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