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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215화 (21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215화

제215화

미도의 유튜브 방송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청자들이 궁금한 것을 채팅창에 올리면 다크울프가 답하는 형식이었고, 대답하기 곤란한 것은 그가 알아서 걸러냈다.

가령 레벨이 몇인지 라던가.

국적이 어떻게 되냐는 것들.

그리고 제일 많았던 질문은 역시 가면을 벗어달라는 요청이었다.

하지만 다크울프는 끝끝내 가면을 벗지 않았다.

미도 또한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그저 때가 되면 알아서 벗을 것이니 채근하지 말아 달라고 했기에 굳이 억지로 떼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재 두 사람은 메테우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 만났던 중앙 분수대에 마주 보고 섰다.

방송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고 그녀는 다크 울프에게 손을 내밀었다.

"방송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그렇고 시청자들도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아니오. 나도 즐거웠소."

"정말요? 그렇다면 다행인걸요."

미도가 싱긋 웃었다.

그녀는 정말 즐거웠다.

처음에는 홍대거리를 걷는 연예인들처럼 유저들에게 둘러싸여 걷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면서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그의 전화번호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까….

"미도 누나!"

"……?"

꽤 친근하고도 익숙한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동생인 정도 또래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조금 익숙하다.

"성찬이? 네가 여긴 웬일이야?"

"지나가다가 따라왔죠. 방송 잘하던데요?"

"당연하지. 임마. 누나 베테랑이야. 으흐흐."

미도가 웬 아재나 낼 법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백성찬도 한층 더 예뻐진 미도를 보며 씩 웃었다.

'언제 봐도 예쁘단 말이야. 이 누나는.'

지금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할아버지인 백무열의 부탁 때문.

이렇게 때를 맞춰 올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옆에 서 있는 다크울프.

진짜 정체는 칠순을 앞둔 노익장인 최춘택 할아버지가 불러서였다.

마침 그에게서 귓속말이 도착했다.

- 잭슨: 어서 오거라.

- 레이벨트: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 잭슨: 무열이 놈은 아직 연락 없지?

- 레이벨트: 네. 계속 귓속말이 안 되네요. 요즘 캡슐 밖에서도 식사를 거르시고 사냥만 하세요. 걱정이긴 한데. 뭐, 알아서 잘 하시겠죠.

- 잭슨: 흠, 세상의 서쪽 끝이라면 분명 거기일 텐데…. 일단 알겠다. 너무 걱정 마라. 내가 가볼 테니까.

- 레이벨트: 네.

- 잭슨: 그리고 미도에게 말조심하는 거 알지?

백성찬은 우두커니 서 있는 다크울프, 아니. 최춘택을 바라보았다.

팔짱을 낀 모습이 무척이나 위압적이었다.

- 레이벨트: 그, 그럼요. 걱정 마세요. 입도 뻥끗 안 할게요.

- 잭슨: 오냐. 믿으마. 미도를 부탁한다.

- 레이벨트: 넵!

기합이 바짝 들어간 차렷 자세를 한 백성찬은 결기 어린 목소리로 귓속말을 마무리 지었다.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손녀인 미도 누나에게 정체를 숨기는 것인지.

'혹, 무슨 잘못이라도 하신 걸까.'

그런 그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난 이만 가보겠소."

"엇, 벌써요?"

벌써 간다는 다크울프의 말에 미도가 이유 모를 섭섭함을 느꼈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 여기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까?

아니, 그래도 이렇게 예쁜 자신을 밀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 보여도 어디 가서 외모로는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그래, 달라고 하자.'

그렇게 결기 어린 다짐하는 순간.

"받으시오. 선물이오."

"네…?"

미도가 당황 어린 표정으로 내민 것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미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건…?"

"그대의 할아버지에게 나와 전화를 하고 싶다고 들었소. 이걸 통하면 현실은 아니더라도, 게임 속에서 나와 개인적인 연락을 취할 수 있을 거요."

"하, 할아버지가요…?"

"그렇소. 받으시오."

미도는 아침에 신경질을 냈던 할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을 느끼며, 그가 내민 것을 공손하게 받아들었다.

[포트렌 귀족 전용 - 지정 귀환석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녀는 지정 귀환석의 정보창을 보며 속으로 엄청 좋아했다.

사실 귀환석은 굉장히 구하기 힘든 것 중 하나였다.

고레벨 유저들 사이에서도 귀하디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귀환서가 없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포탈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마법사를 파티에 끼워 다니기도 했는데, 미도는 이제 그런 것들에 대해 자유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 수고하시오."

"아, 넵! 안녕히 가세요!"

미도가 공손하게 90도 인사를 했다.

그와 동시에.

우우우웅-.

다크울프 주변에 마력이 일렁이더니, 허공에 타원형의 포탈 게이트가 생성되었다.

미도를 포함한 주변의 유저들은 그 모습을 선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포탈로 넘어간 다크울프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렇게 그가 없어지자,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하나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반대쪽 포탈이 열렸다.

약간의 이질적인 느낌과 함께 땅에 발을 디딘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 짓도 힘들구만. 힘들어."

계속 정체를 숨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

물론, 끝까지 속일 수 있으리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정체를 드러내야 할 테니까.

하지만 날카롭게 찔러오는 시청자들의 질문은 제법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끙. 기자 놈들이 분명할 게야."

추측하건대, 채팅을 했던 이들 중에도 분명 기자들이 존재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내게 말을 걸 수 있는 놈은 조셉 뿐이거늘….

"에휴. 내 복이지 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오랜만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상쾌한 공기와 짙은 아이올리아 향이 코끝을 찔렀다.

이곳은 오랜만에 찾아온 윈디아.

피해 복구를 많이 한 윈디아는 어느 정도 예전의 모습을 되찾은 듯 보였다.

"잘해놨네."

곧장 영주성으로 향했다.

나를 알아본 경비병이 화들짝 놀라며 거수경례를 했고,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은 나는 에드워드가 있는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걸으면서 손녀인 미도에게 주었던 것이 생각났다.

…이제 날 채근하진 않겠지.

사실 아렌에게 받은 것은 저항군의 망토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아렌에게 지정 귀환석을 하나 더 줄 것을 요구했고, 그는 흔쾌히 그것을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미도에게 주어 화를 풀어볼 요량이었는데, 잘 될지는 두고 보면 알 것이다.

"흠, 근데 스타 프루츠도 줄 걸 그랬나."

그 생각도 안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의 보는 이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손녀를 쫓아다니는 기자 놈들의 꼴을 보기가 싫었다.

"그래. 나중에 주자. 나중에."

그렇게 어느새 에드워드의 집무실에 이르자, 바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야?"

"접니다."

"잭슨?"

"네. 들어가겠습니다."

"잠, 잠시만 기다려!"

우당탕탕.

문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소란이 잠잠해지자, 제법 근엄한 척하는 에드워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드, 들어와."

꽤 그럴듯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끼익.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소파에 다리를 꼰 채 차를 홀짝이는 에드워드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직 채 정리하지 못한 서류와 책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마침 문 근처에도 책이 하나 있길래 집어 들었다.

-충성스러운 기사로 만드는 100가지 방법.

"……."

"자, 잠깐. 그게 왜 거깄어?"

헐레벌떡 달려온 에드워드가 내 손에 있는 책을 낚아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나는 이어서 땅에 떨어진 또 다른 책을 집어 들며 중얼거렸다.

"남자가 기사를 할 때…. 영주학개론…. 어떻게 기사로 만들 것인가…. 사랑과 충성 그 미묘한 차이…. 영주와 기사의 연결고리…."

"그, 그만 읽어!"

얼굴이 시뻘게진 에드워드가 땅에 떨어진 책을 한 아름 들어, 구석에 우르르 내려놓았다.

대충 보아도 전부 누군가를 기사로 만드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설마, 아직도 날 기사로 만들 생각인 건 아니겠지?

대충 정리를 마친 에드워드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있잖아."

"예."

"내 기사 할래?"

"싫습니다."

"아아아아악!"

에드워드가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울분 섞인 비명을 질렀다.

* * *

어느새 날이 저물고 밤이 찾아왔다.

그 사이 백무열과 마이클은 더욱 깊은 숲으로 이동했다.

원래라면 피로도 느끼지 못하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하는 백무열은 이런 어둠 속에서도 태연히 사냥을 감행했겠지만, 옆에 있는 마이클은 그렇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백무열은 모닥불을 피웠고, 마이클 또한 말없이 전투식량을 입에 넣었다.

두 사람은 아까부터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걷고만 있었다.

침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대체 정체가 뭘까.'

마이클은 한때 랭킹 1위 검사로서, 다양한 검의 고수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그는 '검호(劍豪)'라는 칭호를 획득했고, 오르카 왕국에서도 그는 꽤 좋은 대우를 받았다.

오르카의 왕이 기사단장이 되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대신 떠나지 말아 달라고 성 하나와 영지를 하사받았고, 귀족의 지위도 얻었다.

제우스 길드는 그곳을 기반으로 탄탄한 세력을 보유 중이었다.

마이클은 검집만으로 화려한 검기의 향연을 만들어내던 아까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빈틈없는 검세는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검성이 틀림없어.'

오르카 왕국에서도 검성(劍聖)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기만 했다.

누군가는 먼 동쪽에서 만났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인간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모두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마이클은 그 말을 믿지 않았고, 그는 언젠가 돌아다니다 보면 만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현실이 되려 한다.

"혹시 검성이 아니십니까?"

"검성? 그게 뭐냐. 검정은 안다 내가."

"모르는 척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제 눈을 속일 순 없으니까요."

"웃긴 놈일세. 그래. 뭘 봤는데?"

"검을 보았습니다."

"…호오. 네놈도 검을 좀 아는가 보지?"

백무열은 눈앞의 마이클에게 강한 호승심이 일었다.

얼굴도 모르는 녀석이지만, 아까 그에게서 훌륭한 쌍검술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보다는 많이 못하지만.

'꽤 쓸 만했지.'

그가 휘두르는 두 자루의 쌍도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몬스터를 베어나갔다.

물론, 백무열도 그에 지지 않기 위해 검집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섞지 않았음에도 호흡이 좋았다.

마치 처음 춘택이를 만났을 때처럼.

'이런 놈은 춘택이 이후로 처음인데….'

그렇기에 더욱 싸워보고 싶었다.

백무열은 타닥거리는 모닥불을 쑤시며 불을 키웠다.

"부족한 실력입니다. 가르침을 좀 주십시오."

"뭐야?"

백무열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를 봤다.

얼굴도 모르는 놈이 갑자기 가르침을 달라니 수상쩍어진 탓이다.

"네놈의 뭘 믿고?"

"전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전 그저 이곳에 조그만 구슬 조각을 찾으러 왔을 뿐입니다."

"구슬 조각…?"

"그렇습니다."

백무열이 잠깐 턱수염을 쓸며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그는 인벤토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까 이 녀석을 만나기 전 몬스터 하나를 죽였는데, 비슷한 것을 하나 얻었던 것 같다.

"혹시 이거냐?"

백무열의 손에 쥐어진 구슬 조각이 영롱하게 빛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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