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93화
제193화
메이븐을 통해 스톤 스킨 마법서를 싸게 구입한 나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3층을 더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성에 차는 마법서는 볼 수 없었다.
중급 이상의 마법서들도 있긴 했지만, 차라리 솔라나 풍희가 성장해 가르치는 것이 더 강력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나마 내가 대지 마법을 눈여겨본 것은 하늘의 날씨가 아닌 땅을 이용한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포트렌의 마탑 4F에 입장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4층으로 올라왔다.
메이븐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각종 마법 장비들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마법사뿐만 아니라, 마법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이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쓸만한 아이템을 하나 찾아볼 생각이다.
물론, 있을 때 얘기지만.
"쭉 둘러보시죠."
"으음, 그래."
메이븐의 안내에 따라 각종 마법 아이템들을 둘러보았다.
가격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고, 싸지만 성능이 좋은 것들도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내 눈에 차는 것은 없었다.
죄다 희귀 등급이나 고급 등급의 장비들뿐이었으니까.
"끙."
"마음에 드는 것들이 없으십니까?"
"장비들의 질이 너무 떨어지는군. 영웅 등급 이상의 장비는 없나?"
"영웅 등급의 장비요?"
내 말이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메이븐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그가 다시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마탑의 보물창고란 곳이 있긴 합니다만, 이곳은 포트렌이라 가격이 좀 많이 쎈 편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네. 안내해주게나."
"뭐, 보시는 것 정도는 괜찮겠죠."
아무래도 그는 내가 돈이 없어 보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굉장한 착각이다.
카지노에서 잭팟을 터트렸던 사람이 바로 나니까.
아직도 내 인벤토리엔 5천만 달러가 넘게 남아 있다.
어제 메테우스에 2천만 달러를 넣어놓고도 이 정도 남았다니, 새삼 감개가 무량하다.
메이븐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거대한 포탈의 앞. 그곳엔 한 NPC가 창을 든 채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메이븐. 마법 장비를 구경하러 왔나?"
"그래. 하사르. 얼굴은 여전하네."
하사르라고 불린 남자가 피식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너도 여전하군. 옆에 분은 누구시지?"
"귀한 손님이야. 내 친구의 아버지셔. 구경을 하시고 싶은 모양이야."
"아아, 그랬군. 주어진 시간은 알고 있겠지?"
"그래. 30분이지?"
"들어가면 카운트 다운이 시작될 거야."
"나도 알아. 들어가시죠."
곧장 메이븐의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약간의 붕 뜨는 느낌과 함께 바닥이 느껴졌다.
동시에 눈앞에 뜨는 메시지가 아른거렸다.
[포트렌 마탑의 보물창고에 입장하였습니다.]
[3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밖으로 나가지는 마법이 걸려있습니다.]
[남은 시간 29:56]
하사르라는 NPC가 말했던 주어진 시간이 이거였던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급스럽게 전시된 마법 장비들이 가득 있었다.
과연 마탑의 보물창고라 불리는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주어진 시간은 딱 30분입니다. 그 안에 빨리 보고 나오도록 하죠."
"그러세나."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냥 나올 생각은 없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찬찬히 아이템을 고르기 시작했다.
* * *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겨울바람이 미도의 뺨을 때렸다.
지독한 한파는 목도리를 했음에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계속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으으으. 추워라아아."
올 여름은 유독 태풍이 많이 왔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기압이 변했다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상청에서는 사상 최대의 한파가 몰아칠 것이라고 예고했다.
과연 그 말대로 엄청난 추위가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아으, 짜증 나아아아. 뭐가 이렇게 추운거야아아아."
그녀는 아침부터 약간의 짜증이 밀려온 상태였다.
일찍 일어나 할아버지에게 다크울프의 번호를 받으려고 했는데, 언제 들어가 버리신 건지 할아버지는 이미 캡슐 안에서 아크 스타를 하고 있었다.
물론 비상벨을 눌러 할아버지를 호출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다크울프는 콜로세움에서 만나게 될 예정이었으니까.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게 더 보기 좋은 모습 같기도 했다.
'근데 다크울프는 어떻게 성좌들의 정보를 다 알고 있는 걸까?'
결국, 어젯밤 그녀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의문뿐이었다.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성좌의 정보를 알고 있는 다크울프의 정체.
그것 때문에 밤잠을 계속 설치고 말았다.
커뮤니티에서는 마이클 못지않은 강자라고 사람들은 떠들어대고 있지만, 미도는 어쩌면 마이클보다 그가 더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이렇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사실 그는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었으니까.
'근데 나한테는 되게 호의적이란 말이야.'
커뮤니티에서도 제법 유명한 사건이었다.
모두가 보는 카메라에 중지를 든다거나, 기자를 납치해 벼랑에 묶어놓았다는 일화.
신문 1면에도 난 내용이라 꽤 오랫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고 들었다.
그녀는 그날 콜로세움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유튜브 방송을 권유했었는데, 너무나 선뜻 허락해서 사실 조금 놀란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자신의 과제를 도와준 것 또한….
"아, 혹시?"
미도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치더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저 멀리 단골 캡슐방이 보였다.
그녀는 더욱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중얼거렸다.
"틀림없어. 날 좋아하는 거야."
그녀는 꼭 그에게 말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할아버지 같은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마탑의 보물창고에서 나온 나는 곧장 숙소로 향했다.
마침 돌아오니, 춘자가 파이어볼 습득을 완료한 상태였고, 지금 눈앞에서 춘자가 파이어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구루우우욱."
춘자가 날갯짓을 하며 가슴팍에 만든 불꽃의 구체를 솔라를 향해 날리듯 펼쳤다.
파이어볼은 솔라를 향해 날아가더니 자연스레 흩어지며 흡수되었다.
명중률이 한층 좋아진 것이 보이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잘했다. 춘자야."
"구루루룩."
머리를 쓰다듬자 춘자가 기분 좋은지 얼굴을 부빈다.
그 모습에 한껏 볼을 부풀린 솔라는 질투하듯 외쳤다.
"주인아! 나도 쓰다듬어 달라!"
"그래 솔라도 고생 많았다. 이제 들어가서 쉬려무나."
"해햇. 알겠다. 주인아! 또 보자!"
금세 기분이 좋아진 솔라는 불꽃과 함께 흩어졌다.
나는 곧장 춘자의 정보창을 살폈다.
[Lv.16 춘자][부엉이]
등급: 일반
포트렌의 카지노 1층에 있는 코인 환전소에서 기르던 부엉이.
보통 부엉이들은 한 명의 주인을 섬기며 따른다. 주로 물건 배달을 주 업무로 하며, 자랄수록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다.
-현재 걸려있는 마법: [인식],[추적]
-사용 할 수 있는 마법: [파이어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보가 있습니다.
정보창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만족의 미소가 지어졌다.
춘자의 레벨은 5레벨이나 오른 상태.
이제 20레벨까지는 4레벨 남았다.
20레벨부터 슬슬 생닭을 끊고 사냥을 시킬 생각인데, 왠지 파이어볼 하나 가지고 싸우려면 조금 힘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풍희야~"
약간의 산들바람이 불더니, 풍희가 하늘에서 뿅하고 나타났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까끌한 혀로 볼을 할짝거렸다.
"허허, 안 본 사이에 제법 컸는걸?"
풍희는 환계에 가 있는 동안 제법 많이 먹었는지, 덩치도 제법 불어나 있었다.
그래봐야 중형 견 정도의 크기였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장족의 발전이다.
사실 성체로 자라려면 아직 한참은 더 커야 한다.
상태창을 보니 레벨도 많이 올랐고, 바람으로 공격하는 법도 좀 많이 깨우친 상태였다.
"풍희야."
"푸웅~?"
"춘자에게 바람 다루는 법 좀 가르쳐볼래?"
"푸우우웅?"
풍희가 아래에서 푸드덕거리는 춘자를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춘자는 처음엔 경계했지만 내심 좋아하는 눈치였다.
하긴 같은 여자니까 통하는 게 있겠지.
나는 저번에 솔라에게 했던 것처럼 풍희에게 바람을 가르치라는 명을 내렸다.
둘은 곧장 욕실에서 수업을 시작하는 듯했다.
"푸우웅. 풍. 푸푸푸풍~"
"구룩. 구룩. 구루룩."
뭐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잘되어가는 것 같다.
춘자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 내 기분이 더 좋군.
"그럼 나는 이거나 배워볼까나."
곧장 마탑에서 사온 스톤 스킨 마법서를 꺼낸 나는 의자에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책을 덮자 메시지가 떴다.
[하급 대지 마법, '스톤 스킨'을 익혔습니다.]
[당신은 몸의 일부를 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음, 한번 써볼까. 스톤 스킨."
나는 속으로 팔을 돌로 만든다는 생각을 하며 스킬을 사용했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팔이 회색의 돌이 되었다.
만져보니 강도는 돌 그 자체.
과연 만족스럽다.
"후후. 그 두 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지는군. 그리고 어디 보자…. 그게 어딨더라."
나는 다시 인벤토리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까 마탑의 보물창고에서 무려 5백만 달러나 주고 구입한 반지.
사실 이걸 구입할 때 메이븐은 엄청 뜯어말렸었다.
저주받은 반지라나 뭐라나.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만, 내게 이 저주는 소용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깄군."
[솔로몬의 반지]
등급: 전설
전설의 대마법사이자, 마법도시 오즈의 9번째 군주였던 '솔로몬' 왕이 100년간 모태솔로인 이유를 알지 못해 만든 반지.
그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다고 전해진다.
반지에 있는 기능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한이 서렸는지 잘 알 수 있다.
첫사랑의 마음을 알지 못해 죽을 때까지 평생을 그리워하며 이것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액티브]판결의 눈: 현재 대상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이성'을 한 명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대상을 커플로 판결할 경우, 대상의 모든 능력치를 20% 감소시키는 저주를 뿜어냅니다.
-[액티브]우정의 동반자: 우정을 나눈 단 한 명의 전우를 소환합니다. 단, 동성만 가능합니다.
현재 등록된 전우: 없음
-[패시브]동정의 통한: 이 반지를 끼는 동안 솔로를 유지할 경우 지식 능력치가 꾸준히 증가합니다.
커플의 애정행각을 보아도 지식 능력치가 증가합니다.
단, 커플이 되거나 이성과 키스를 할 경우, 그동안 쌓은 능력치는 모두 사라집니다.
반지를 강제로 뺄 경우 솔로몬 왕의 5가지 저주를 받으며 고통 속에 죽어갑니다. (캐릭터를 삭제하기 전까진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패시브]커플 지옥, 솔로 천국: 함께하는 파티원이나 이끄는 병사들이 솔로인 경우, 그들의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허허.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런 흉흉한 걸 만들었을꼬."
다시 보는 것이지만, 절로 혀가 끌끌거린다.
메이븐이 날 막았던 이유는 반지에 있는 '동정의 통한'이라는 패시브 때문이었다.
언뜻 보면 지식이 꾸준히 오르는 아이템이니 굉장히 좋아 보이지만 그만큼 감내해야 할 것들이 굉장했다.
일단 억지로 뺄 경우 캐릭터를 삭제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게 그랬고, 커플이 되거나 연인과 키스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랬다.
이곳 아크스타에서 많은 젊은 유저들을 봐왔던 나는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아이템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이건 뭐 거의 고자로 살게 하는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한텐 소용없지."
지금 내 나이에 연인을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다.
연인과의 키스는 더더욱 할 일이 없고.
그렇다면 이 반지는 내게 저주가 아닌 축복을 주는 반지나 다름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더더욱 마음에 드는 건 대상이 가장 관심 있는 이성을 알 수 있다는 것. 나는 이걸 미도에게 써볼 작정이었다.
"후후. 아주 마음에 들어."
나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