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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63화 (16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63화

제163화

부리나케 도망친 키스는 낚싯대를 챙겨 메테우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향한 곳은 언제나 즐겨가던 뉴케멘 강가.

오늘 키스는 이곳에서 낚시대를 던지며 세월이나 낚을 생각이었다.

그가 길가의 돌부리를 걷어차며 투덜거렸다.

"으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

진료를 빙자한 간지럼 고문을 받았던 며칠 전의 기억.

그때만 떠올리면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린다.

문득 처음 영감탱이를 마주쳤을 때가 생각났다.

물론, 자신이 먼저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는 자신을 보자마자 '썩을 놈'이라고 불렀다.

그날은 물고기가 별로 안 잡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랬던 것인데, 어쩌면 악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그래.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야."

그 영감이 촌장으로 부임하고 나서는 되는 일도 안 되는 것 같다.

원래 이곳 메테우스.

아니, 그 이름이 지어지기 전부터 자신은 이곳에서 임시 촌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도 아니다.

"후우. 헬레나도 이곳이 마음에 드는 눈치던데…."

어쩌면 이 악연이 꽤 오래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헬레나가 그 영감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라나 뭐라나.

"에휴. 내 팔자야."

어느새 뉴케멘 강가에 도착한 키스는 낚싯대를 드리웠다.

늘 자신이 자리를 잡던 상류와 하류 사이에 위치한 중간 자리.

이곳은 상류에서 내려오는 은어와 하류에서 치고 올라오는 장어가 만나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물론, 이런 자리를 알 수 있게 된 것도 매일 이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웠기 때문이다.

"……."

그렇게 앉아 있기를 1시간.

이상하게 입질이 오지 않는다.

왜지. 이유가 뭘까.

보통 앉아 있으면 10분에 한 번은 입질이 오는 자리다.

근데 지금 1시간을 앉아 있었는데도 입질이 없다.

뭐지 대체.

"오늘 뭔가 꼬이는 기분인데."

자신은 타고난 운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는 편이다.

포트렌의 카지노에 가면 늘 따기만 했으니까.

뭐, 물욕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딴 돈은 나눠주는 스타일이라 여자들이 꼬이긴 했지만, 그래도 늘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이상하게 운이 안 좋은 날은 딴 돈을 모조리 잃어버리기도 했다.

"아이씨, 오늘이 그날인가."

분명하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참아왔던 불행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날.

왠지 모르게 불길함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그 증거다.

늘 불행이 찾아오기 전엔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으니까.

"후우. 오늘 그냥 접고 잠이나 잘까."

하지만 그때였다.

별안간 낚싯대의 줄이 팽팽해지더니, 끝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제법 큰놈이다.

키스는 낚싯대를 세차게 끌어당겼다.

"이이익…. 어후. 힘이 무슨."

키스는 더 힘차게 당겼다.

하지만 갑자기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리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으윽. 아우야."

엉덩이를 문지르며 낚싯대를 보니 부러져 있다.

저 멀리 낚싯대 윗부분을 물고 달리는 물고기가 보인다.

"아, 저거 찌는 선물 받은 건데?"

하필이면 찌를 물고 가버렸다.

아무래도 저건 되찾아야 할 것 같다.

헬레나가 낚시할 때 쓰라며 손수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끙, 진짜 되는 일이 없네."

키스는 곧장 풀숲으로 들어갔다.

이미 찌는 하류 쪽으로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앞질러 갈 수 있는 방법은 풀숲을 가로질러 가는 방법뿐이었다.

슬슬 달이 뜰 시간이니 빨리 찾아야만 한다.

아니면 영영 찾지 못하고, 헬레나에게 구박을 들으리라.

"에휴. 되는 일이 없네. 없어."

그렇게 한참이나 풀숲을 해치며 가던 도중.

갑자기 맛있는 냄새가 났다.

킁킁. 익숙한 냄새.

물고기를 굽는 냄새다.

마침 배가 꼬르륵거렸다.

으으윽, 배고파. 누구일까.

혹시 마을 사람이면 하나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까?

'그래. 먹고 사는 게 먼저지. 아직 찌는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괜찮을 거야.'

키스는 맛있는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불길이 보이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키스는 그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렇게 풀숲을 열고 인사를 하려는 순간.

빠아악-!

세상이 어둠에 잠겼다.

* * *

"커흠. 이거 사람이었네…?"

백무열은 무안함에 볼을 긁적였다.

풀숲을 해치고 나온 것이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종종 이렇게 불을 피워서 음식을 구우면 나타난 건 몬스터뿐이었으니까.

그래서 확인하지도 않고 목검을 휘둘렀는데 사람이었다.

그보다 피가 엄청 흐르네.

어후. 이걸 어쩐다.

"커흠. 포션이 어딨더라. 험."

없다.

평소에 자신은 포션을 잘 먹지 않는 편이었다.

몽둥이의 가호로 모조리 두들겨 패면 쉽게 죽일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사각지대는 일행들이 맡아주었기 때문에 자신은 일부러 들고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아마 갖고 있을 만한 놈은….

"정현아. 포션 좀 있냐?"

"어…. 네. 하하. 좀 남았네요."

멍한 표정을 짓던 최정현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그리고 피를 철철 흘리는 사람.

아니, 자세히 보니 NPC였네.

아무튼 입에 포션을 흘려 넣었다.

그런데 최정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거 포션만 가지고는 안 되겠는데요…?"

"…큼큼."

"할아버지. 너무 세게 휘두른 거 아니예요?"

손자의 일침에 더 무안해졌다.

하지만 뭐 어쩌란 말인가.

그쪽에서 튀어나온 저 사람이 잘못이지.

"난 너희들을 지키려 했던 거다. 어험."

얼굴에 철판을 깔고 돌아보니, 다른 녀석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

모두 눈이 쭉 찢어진 것이 한심하다는 표정.

이놈의 시키들이 며칠 풀어줬더니 기어오르네.

"…뭘 그렇게 꼬나보냐. 머리 밀려 볼텨?"

오랜만에 마력 이발기를 꺼냈다.

위이이잉-!

언제 들어도 마음에 드는 소리다.

손자와 정현이를 제외한 일행들은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다른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짜식들. 까불긴.

"아무래도 메테우스라는 곳으로 옮겨서 치료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차피 가야되는 곳이니 이참에 지금 움직이시죠. 삼촌."

"큼, 어쩔 수 없지. 다들 채비해라."

일행들이 분주하게 각자의 짐을 들었다.

백무열은 저 멀리 보이는 메테우스로 시선을 옮겼다.

"있다가 보자. 춘택아."

* * *

[바람의 신전의 공사 진척도 59%]

헬레나와 헤어진 김수정은 바람의 신전의 공사가 진행 중인 곳으로 왔다.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공사를 시작한 지가 이곳 시간 기준으로 한 달 가까이 된 것 같은데,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그래도 현실과 비교하면 많이 빠른 편이다.

역시 게임 세상이라 그런가.

"흐음. 이 정도 속도면 한 2주는 더 걸리겠는데…. 아버님께 그렇게 말씀드려야 하나."

김수정은 곧장 귓속말 창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오, 여기 아주 일하기 좋은 곳이 있군."

"이보게들 우리 여기서 일 해보는 게 어떻겠나."

"좋군. 신전이라니. 난 꼭 이런 걸 꼭 한번 지어보고 싶었어."

"하하. 어서 가자고. 몸이 근질근질해."

갑자기 나타난 중년 남자들.

그들은 아까 전 헤어졌던 쓰레기촌의 주민들이었다.

헬레나의 말에 따르면 '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는 흙수저를 지닌 최하층 계급.

그들은 자손 대대로 귀족들을 위한 노동자로 살아왔다고 한다.

오직 전투를 제외한 다른 분야, 특히 노동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고 헬레나가 말해주었다.

"한번 지켜볼까?"

김수정은 자리에 선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쓰레기촌에서 온 그들은 다짜고짜 엄청난 속도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망치와 정을 몇 번 두드리니 금새 돌이 다듬어졌고, 삽질을 몇 번 했더니 순식간에 고운 모래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기존에 일하던 남자들의 2배의 짐을 드는 그들을 보며 김수정은 경악했다.

"맙소사. 저게 말이 돼?"

[반딧불성, '카미유'가 엄청난 속도라며 감탄합니다!]

만약 저 속도로 일이 진행된다면 바람의 신전은 그야말로 뚝딱 지어지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저들은 한 명이 아니다.

우르르르-

또 누군가 나타났다.

"오, 여기 몇 명이 일하고 있는데?"

"야. 여기 일하기 좋다."

"보수도 괜찮은데? 가자."

또 다른 이들이 추가되었다.

김수정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엄청난 NPC를 마을에 들인 것 같은데…. 하하."

그녀는 귓속말로 보내려 했던 내용을 수정했다.

2주가 아니라 1주.

아니, 만약 저기서 사람이 더 붙는다면 당장 이틀 안에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다시 귓속말을 보내려는 그때.

"크, 크리스탈 님 계십니까?!"

"……?"

자신을 찾는 남자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었다.

아마 메테우스의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데, 그의 뒤로 업혀있는 사람이 있었다.

익숙한 얼굴.

"어…?"

김수정은 그곳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키스?! 뭐야. 피를 왜 이리 흘리지? 이 사람 왜 이래요?!"

[반딧불성, '카미유'가 두부 손상이라고 말합니다.]

머리를 다친 건 알고 있다.

그런데 어째 키스는 계속 머리만 다치는 것 같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빨리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합니다.]

갑자기 거대한 반딧불 하나가 나타나더니, 키스의 머리에 신성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아마 카미유도 응급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저기 혹시…?"

갑자기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자신을 부른 것은 키스를 업고 있는 남자.

그런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혹시…?"

김수정의 의문에 이름 모를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시네요. 인사는 나중에. 우선 이 사람부터 살리시죠."

"아, 넵."

김수정은 남자를 진료 보던 곳으로 이끌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고, 일행들이 꽤 많았다.

특이한 것은 대머리 두 명과 어린 남자가 한 명. 그리고 할아버지가 한 명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할아버지도 왠지 익숙하지만, 김수정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누가 뭐래도 지금은 환자가 먼저니까.

"여기에 눕혀주세요."

"네."

키스가 푹신한 침대에 눕혀졌다.

그리고 뒤에 있던 일행들이 한마디씩 했다.

"누나, 이 사람 잘 부탁해요. 할아버지가 실수로 이렇게 만들었거든요."

"커흠. 뭐, 그런 얘기까지 하고 그러냐. 성찬아."

"거, 아가씨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우린 나갑시다."

"잘 부탁합니다."

"바로크…. 믿는다."

"음, 머리털만 없으면 참 잘생긴 청년인데. 아쉽군."

"쯧. 그러게. 저런 저주스러운 머리털을 가지고 있다니."

참 시끌벅적한 일행들이다.

일행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고, 김수정은 마지막으로 아까 키스를 업고 온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이름 모를 그는 자신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김수정도 따라 고개를 숙였고, 이내 환자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형화의 눈."

[성좌스킬, '형화의 눈'을 발동합니다.]

[밤눈이 밝아지고 시력이 1.5배 좋아집니다.]

[살아있는 모든 대상이 형광으로 보입니다.]

[약간의 투시 효과가 있습니다.]

김수정은 곧장 키스가 다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번에는 가벼운 외상에 부위도 작았다면, 이번에는 부위도 넓고 상처도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이물질이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미간을 찌푸립니다.]

"이건…."

가시다.

너무 조그매서 잘 보이지 않을 정도. 그것은 아주 위험한 위치에 있었다.

조금만 파고들었어도 뇌를 찌를 뻔했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위험하다.

혹 남아있을 가시의 독이 뇌로 침범할 수 있으니까.

이건 직접 째서 꺼내야 한다.

"후우."

김수정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말했다.

"카미유. 내가 저번에 연습했던 거 기억나?"

[반딧불성, '카미유'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걸 해야 할 것 같아."

[반딧불성, '카미유'가 그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알아. 그래도 어차피 이대로 둬도 죽고 말 거야. 하지만 이 사람은 헬레나의 소중한 사람이잖아? 그렇다면 난 최선을 다해보고 싶어. 너도 그렇지 않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다시 메시지가 뜬 것은 그때였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당신의 방식이 맞는 건지 확신이 없다고 말합니다.]

"응, 그럴 거야."

[반딧불성, '카미유'가 하지만 믿어보겠다고 말합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꼭 살리라고 말합니다.]

"고마워. 꼭 살릴게."

김수정은 신성 형화 침술을 전개했다.

거대한 반딧불이 나타나 허공에 형화의 빛들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기다란 침이 되었다.

원래는 그것으로 끝났어야 했지만, 평소보다 더욱 많은 빛을 부여받았다.

[성좌스킬, 신성형화침술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합니다.]

계속해서 모이던 형화의 빛들은 어느새 침이 아닌 다른 모습이 되어갔다.

그것은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들이었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혹시나 저번처럼 혈액 공포증이 나타나 손을 떨진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믿어보겠다.

이젠 나 자신을.

그리고 스스로를.

그녀가 반딧불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메스."

김수정의 손에 야광색 메스가 쥐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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