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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162화 (162/375)

나 빼고 다 젊은이 162화

제162화

헬레나가 꺼낸 것은 흙색을 띤 수저였다.

말로만 흙수저, 흙수저라는 소리를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얼핏 보면 진짜 흙으로 빚은 것 같다.

"호호. 창피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동수저 밑에는 흙수저라는 게 있어요. 이건 정말 가난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수저죠. 저희처럼 쓰레기촌의 주민들은 모두 갖고 있어요. 물론, 저희 마을 출신이 아닌 사람도 이걸 가진 사람은 많지만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헬레나를 보면서, 김수정은 무안해졌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걸 물어봤나 봐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어차피 유명한 이야기인걸요."

두 사람은 하하호호 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함께 자리를 옮긴 곳은 메테우스의 서쪽.

김수정은 그곳에 헬레나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이 머물 공간을 지정해주었다.

"앞으로 여기가 머무실 곳이세요. 아버님이 이곳에 자리를 주라고 하셨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마음에 들고 말구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 정도면 저희한테 너무 과분해요."

[반딧불성, '카미유'가 그들의 검소함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확실히 이들은 검소한 것 같다.

메테우스는 윈디아와 비교하면 아직 새발의 피 수준.

건물들도 낮은 편이고, 사실 시설이 그리 좋은 편도 아니다.

하지만 쓰레기촌에서 살아왔던 그들에겐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네.

"좋아하셔서 다행이네요. 아 참, 제가 있는 곳은 저쪽이에요. 와보셔서 아시죠? 저기서 진료를 보고 있으니까. 아픈 분들이 있으면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 데려오세요. 공짜로 봐 드릴게요."

"어머, 공짜요? 정말로요…?"

"그럼요. 마을을 발전시키려고 고생하시는데, 당연해 공짜로 해드려야죠."

"어머, 호호. 정말 감사해요. 안 그래요? 키스?"

헬레나가 옆구리를 콕콕 찌르자, 키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어, 그, 그래…. 조, 좋지."

김수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간 왜 저러나 싶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키스는 저곳에 안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며칠을 결박당한 상태로 간지럼 고문을 당했던 곳인데, 좋아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왜 그래요?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요? 저기서 진료 좀 받을래요?"

"어어? 아, 아니. 하하. 난 그냥 배가 좀 아파서. 습관성 배탈이 있거든."

"어머, 진짜 안 좋은 것 아니에요? 크리스탈 님 키스 좀 봐주시겠어요?"

장난기가 발동한 김수정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그럴까~요~? 어디 보자~"

"으아아아악!"

키스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두 사람은 폭소를 터트렸다.

* * *

[제목: 다크울프가 촌장으로 있는 마을 후기.]

안녕~ 아.스.라 커뮤니티 친구들. 난 이번에 윈디아를 구한 '다크울프'가 촌장으로 있다는 마을을 와봤어. 와본 느낌은 그냥 생각보다 작다는 거였어. 아직 빈 건물도 많고, 그닥 볼 거는 없다는 느낌? 바람의 신전도 공사 중이고, 그냥 뮬란을 처음 봤을 때 그런 기분이야. 아무튼 어떤 여자 유저가 왔는데, 꾀죄죄한 NPC들 엄청 데려오더라. 아쉽게도 다크울프는 보지 못했어. 뭐하는지 모르겠네. 근데 지금 글 쓰고 있는데, 기자들 쫓겨나더라. 겁나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

좋아요 18,352개.

└기자들 하드캐맄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걔네는 왜 맨날 쫓겨나냨ㅋㅋㅋㅋㅋㅋㅋㅋ

└오, 신기해. 나도 가보고 싶다.

└나 지금 여기 있는데. 다크 울프 못봄. 어디서 뭐 하는 거지ㅠ

└맞아. 나도 사인 받으러 왔는데 없더라.

……

최정현은 일행들과 함께 메테우스라는 마을로 향했다.

생각보다 위치는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커뮤니티에선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각종 후기와 사진들이 기자와 유저들을 통해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는 현실에서도 접속할 수있지만, 이렇게 게임 상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다.

그는 글을 읽으며 작게 감탄했다.

"아~ 여기가 그 다크울프가 촌장으로 부임했다던 거기였구나. 좋아요 개수 엄청 많네. 나도 유명해지고 싶다."

유명해지면 광고도 들어올 것이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다.

요즘 TV만 틀어도 나오는 것이 아크스타 랭커들의 광고였으니까.

소문으로는 그 수익이 광고로만 수십억이라던데.

엄청 부럽다. 제길.

"근데 기자들은 왜 쫓겨났대. 흐흐."

"뭘 그렇게 실실 쪼개냐."

"아, 삼촌. 아.스.라 커뮤니티라는 건데 아세요?"

백무열이 물음표를 띄웠다.

"아니, 모르는데. 그게 뭐냐."

"음, 쉽게 말하면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에요."

"사이트? 사이트는 또 뭐냐."

"…아, 맞다. 삼촌 2G폰 쓰시죠. 인터넷이요. 인터넷."

"아~ 인트넷(?). 허허. 난 그런 거 잘 모르잖냐."

백무열은 기계에 대해서는 영 젬병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그 스마트인지 뭐시기 하는 폰을 안 쓰고 아직까지 오래된 핸드폰을 쓰고 있었으니까.

뭐, 그래도 자신은 이게 편하다.

"그 인트넷 어떻게 접속하냐."

"인터넷이에요. 삼촌."

"쯧. 그거나. 그거나. 아, 어떻게 드가냐고."

"먼저, 설정에 들어가 보세요."

그렇게 30분을 그 인트넷인지 뭔지랑 씨름했다.

하지만 역시 못해먹겠다.

시부럴. 더럽게 어렵네.

"에이, 못해 먹겠다. 이런 건 허접들이나 하는 거여."

"하하. 나중에 천천히 알려드릴게요."

"됐다. 이 녀석아. 차라리 안 하고 말지."

심통이 난 백무열은 근처에 있던 나무 그늘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느새 포만감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식량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포만감이 너무 잘 떨어진달까.

"좀 쉬다 가자. 포만감이나 좀 채울 겸."

그 말과 동시에 일행들이 주저앉았다.

그들은 익숙한 듯 쉬면서 각자 할 일을 했다.

머머리와 타르모는 일부러 그늘이 아닌 햇빛에 가서 앉았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햇빛을 받으면 식물들처럼 머리카락이 자랄 수 있을 것 같단다.

하여튼 웃기는 놈들이다.

고개를 돌리니, 묵찌빠 삼형제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묵찌빠를 하고 있다.

무슨 의미를 두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꽤 재밌어 보인다.

바로크 녀석은 또 졌는지 딱밤을 맞고 있고, 남은 두 사람이 엄청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재밌나.'

손자는 건너편에 흐르는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있었는데, 뭐하는 건가 살펴보니, 칼로 물 베기를 하고 있다.

"성찬이 쟤는 왜 저러고 있을까요?"

마침 옆에 앉은 최정현이 묻자, 백무열이 대답했다.

"아마, 수련일 거다. 저렇게 발 담그고 들어가서 목검으로 물고기를 잡곤 했거든. 여름방학 때."

"아, 맞다. 삼촌이 성찬이를 가르치셨죠?"

"그렇지. 뭐."

두 사람은 한참이나 그 모습을 지켜봤다.

문득, 최정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도 심심하니까. 같이 하고 올게요."

"그래. 맨손으로 물고기나 좀 잡아 와라. 구워 먹게."

"알겠습니다~"

최정현이 멀어지자, 백무열은 심심해졌다.

마침, 주변을 보니 꽃들이 제법 이쁘게 피어있다.

"흐음. 어디 보자."

[슬라임이 핥은 끈적한 투명 이슬 풀]

등급: 일반

지나가던 슬라임이 핥았던 평범한 풀이다. 시간이 지나 접착성이 생겼다. 오래 쥐고 있으면 달라붙으니 조심해야 한다. 풀을 조금 떼어 접착제로도 이용할 수 있다.

-30초 동안 말리면 꽤 강한 접착제로 쓸 수 있다.

-손에 달라붙지 않게 조심할 것. (떼어내기 굉장히 힘듦)

"오, 이런 게 있었나?"

심심하니까 꽃이나 좀 주워야겠다.

참고로 자신의 취미는 꽃꽂이다.

"무슨 꽃들이 있으려나. 오, 이건 처음 보는 거군."

백무열은 주변을 배회하며 각종 꽃들을 수집했다.

이렇게 쉬는 동안 종종 꽃을 주운 적이 있긴 한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주워본 건 오랜만이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칭호, <꽃을 든 남자>  를 획득하였습니다.]

[꽃을 들고 있으면 공격력이 1% 상승합니다.]

[꽃을 들면 수 속성에 대한 5%의 내성을 가집니다.]

[더 많은 꽃을 수집할수록 위의 수치가 늘어납니다.]

[식물 계열의 몬스터에게 선공을 당하지 않습니다.]

[부직업을 얻어 꽃집을 열 수 있습니다.]

[엘프들을 만나게 되면 호감도가 빠르게 상승합니다.]

"오호."

꽃을 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제법 괜찮은 칭호였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꽃집을 열 수 있다는 것.

옛날에 꿈이 꽃집을 여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구만. 하하하."

백무열은 계속해서 꽃을 주웠다.

그러다 문득,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꽃을 목검에 붙이면 어떻게 되지?"

분명 칭호는 꽃을 들어야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무기랑 같이 들어선 안 된다는 말은 없었다.

"한번 해봐야겠구만."

곧장 아까 얻은 투명한 이슬풀을 꺼냈다.

그건 접착제로도 이용할 수 있으니, 여러 가지 꽃들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흑단나무 목검에 하나씩 꽃을 붙이기 시작했다.

제일 좋아하는 해바라기를 하나.

그리고 화려한 백합을 하나.

유통기한 다 되어가니 시들기 전에 붙여야 할 가시 장미가 하나.

그렇게 많은 꽃을 붙였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흑단나무 목검은 꽃이 덕지덕지 붙은 꽃다발로 둔갑이 되어 있었다.

"어디 쥐어볼까나."

[칭호, <꽃을 든 남자>  가 발동합니다.]

[일시적으로 수속성 내성이 5%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공격력이 1% 상승합니다.]

[꽃이 시들면 효과는 사라집니다.]

"이야. 되네. 크하하하."

백무열은 호탕하게 웃었다.

어쩌면 자신은 천재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갑자기 메시지가 떴다.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당신이 꽃을 머리에 꽂길 바랍니다.]

"음, 넌…?"

설마 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대체 이놈은 뭐 하는 놈이지.

정현이한테 물어볼 걸 그랬나.

"안 한다. 이놈아. 그건 여자들이나 하는 거지. 쯧."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당신의 여장을 원합니다.]

"거, 되게 끈질긴 놈이네. 너 뭐하는 놈이냐?"

[몽둥이를 좋아하는 성좌가 여장을 하면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에휴. 됐다. 안 하고 말지."

백무열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고, 일행과 백무열은 모닥불에 앉아 물고기를 구워 먹었다.

"할아버지. 먼저 드세요."

백성찬이 물고기를 내밀자, 백무열은 기분 좋게 받았다.

"고맙다."

백무열은 한입 크게 물고기를 베어 물었다. 냠냠.

물고기를 먹는 건 처음인데 진짜 맛있는 것 같다.

짭조름한 게 아주 제대로 구워졌다.

"맛있구나. 다들 들어라."

그렇게 일행들이 물고기를 베어 물기 시작했고, 모두가 맛있다며 엄지를 들었다.

"삼촌. 근데 목검에 그건 뭐예요?"

최정현이 묻자, 백무열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거? 심심해서 그냥 해본 거다."

옆에 있던 백성찬이 물고기를 오물거리며 말했다.

"할아버지. 취미가 꽃꽂이예요."

"아~ 그래?"

최정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묵찌빠 형제가 차례대로 말했다.

"이야, 영감님 반전 매력 있으시네."

"근데 생각보다 이쁜데요?"

"바로크…. 꽃 좋다. 이쁘다."

빡빡이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남자가 무슨 꽃이냐는 표정을 하면서.

짜식들 있다가 뚝배기 좀 터트려야겠군.

그런데 그때였다.

파스슥.

뒤쪽에 있는 풀숲이 흔들렸다.

'몬스터인가?'

백무열은 꽃다발….

아니, 목검을 집어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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