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59화
제159화
콰아아앙-!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변에 있던 낙엽들이 휘몰아치며 정경을 휘감았다.
그 세기가 얼마나 강한지 나는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눈앞의 최불룡 또한 마찬가지였다.
"익…. 씨댕 뭐야. 이거!"
그는 연신 불타는 대검을 휘둘렀지만, 낙엽에 불이 붙으며 더욱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다.
나는 양손을 교차하며 간신히 땅을 지탱했다.
"저 녀석…."
저 멀리 보이는 케레노스는 휘몰아치는 낙엽의 폭풍에도 고요히 서 있었다.
그의 뒤에 있는 거대한 마력의 꽃잎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나는 저것을 잘 알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 너무나도 선명히 남아있는 힘.
아이올로스가 친위대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바람의 정수.
그 이름 하야.
"아네모네…."
쏴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낙엽들이 흩어졌다.
그제야 나도 제대로 눈을 뜰 수 있었고, 케레노스의 뒤에는 찬란한 연녹색의 꽃잎이 일렁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진다.
"너, 이 새끼…!"
어느새 시야를 되찾은 최불룡은 케레노스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화를 냈다.
하지만 케레노스는 그저 무시할 뿐이다.
녀석은 내가 있는 곳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이제야 알겠군."
"알긴 뭘 알아 이 새끼야!"
최불룡의 대검에서 뻗어 나온 화염의 검기가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것이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케레노스가 있는 곳.
콰콰쾅!
폭발이 일었다.
하지만 그곳에 케레노스는 없었다.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죽은 건가…?"
그 순간 눈앞에 무언가 나타났다.
그것은 정말 소리 소문도 없이 나타났다.
나는 너무도 놀라 몸을 흠칫 떨며 반사적으로 발차기를 날리려 했다.
하지만 정체를 안 순간 입이 벌려졌다.
"케레노스…?"
"감사합니다. 영감님. 이 아이 덕분에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깨달음…?
무슨 깨달음을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감사하다고 하니까 무안하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그가 건네는 풍희를 받았다.
많은 힘을 써서 그런지 새근새근 잠이 든 풍희.
나는 곧장 녀석의 정보창을 열어 새로운 스킬을 확인했다.
-아네모네[액티브](영웅)(성장형)
1대 바람의 신수가 친위대를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냈던 바람의 정수.
이것을 먹으면 마력의 근원과 바람의 소통이 원활해지며 좀 더 쉽게 바람을 부릴 수 있게 된다.
바람의 숙련도에 따라 더욱 많은 마력을 바람에 담을 수 있다.
(하루 최대 2개까지 생성 가능)
(현재 꽃잎 4개, 하나당 5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성장형'이라는 것.
아무래도 케레노스의 등에 피어있는 꽃잎이 4개인 것과 관계있는 듯했다.
원래 저건 6개가 최대였으니까.
어쨌든 저 녀석이 이걸 먹었다는 건가.
재밌군.
"뭐, 뭐야. 너 이 새끼 언제 여기로 왔어. 하앙?!"
별안간 최불룡이 눈알을 부라리며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쯧쯧. 저놈은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사태 파악을 못하는 건지….
"너, 이 새끼. 아까처럼 뜨거운 맛 좀 봐라."
온몸에 하얀 불꽃을 휘감은 최불룡이 씩씩거리며 걸어왔다.
케레노스 또한 그를 향해 마주 걸어갔다.
나는 풍희를 안은 채 조용히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마 내가 나설 필요도 없겠지.
"스승님의 마지막 말씀. 바람을 만들려 하지 마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앙? 뭐라는 거야. 너 뒤지고 싶어서 환장…."
슈우우우욱!
케레노스가 한쪽 손을 뻗더니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에서 흘러나온 연녹색의 마력이 바람과 함께 뒤섞였다.
이내 그것은 어떠한 형태를 띠었고, 한눈에 보아도 그것은 엄청나게 예리한 창이었다.
케레노스가 그것을 거머쥐자, 작은 폭풍이 휘몰아쳤다.
슈슈슈슛!
"그건 마력을 이용해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마력을 운용하라는 뜻이었어. 말 그대로 바람을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지. 근데 내가 너무 어렵게 생각한 것 같아."
최불룡이 미간을 찌푸리며 대검을 꽉 쥐었다.
"이 스벌 놈이….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뒈져라!!"
달려오는 최불룡을 보며 케레노스가 양손으로 창을 거머쥐었다.
그의 뒤에 있던 꽃잎이 하나 사라졌다.
"…마지막 가르침. 제자가 확실하게 이어받았습니다."
후웅.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케레노스는 사라졌다.
정말 귀신 같은 몸놀림.
마치 바람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초감각을 시력에 집중해 간신히 그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잠시 뒤, 녀석이 나타난 곳은 최불룡의 뒤편이었다.
"어? X발. 어디 갔어. 어이, 영감! 지금 이 새끼…."
최불룡의 몸이 기운 것은 그때였다.
"뭐, 뭐야. X발. 이거 뭐야!!"
그의 다리 한쪽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이어서 반대쪽 다리가 기운다.
다음은 왼쪽 어깨에서 피가 솟구쳤고, 그의 가슴에 커다란 자상이 길게 그려졌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양다리와 양팔. 목과 명치. 쯧. 가슴과 등을 벤 것까지 생각하면 한 50번 휘두른 건가…?"
아직 초감각이 낮아서 그런지 모두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대단한 거다.
이 눈으로도 다 쫓지 못했으니까.
정말 엄청난 속도로군.
피피피피피피피피핏!
다음 순간. 엄청난 바람의 상흔들이 최불룡의 몸에 새겨졌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이제야 상처가 벌어진 것이다.
최불룡은 그저 가만히 선 채, 몸을 몇 번 움직였다.
그의 몸을 휘감은 하얀 불꽃의 갑옷은 몇 번 폭발이 일더니 사라졌다.
"어어어억…. 미…친…."
그리고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작게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잘 해결됐구만."
앞으로 케레노스한테는 까불면 안 될 것 같다.
소리 소문 없이 죽을 것 같으니까.
* * *
어스름한 공기가 달을 가리 우는 밤.
현실 시각으로 저녁 11시쯤이 되어서야 캡슐의 뚜껑이 열렸다.
하지만 캡슐과는 대조되게 소년이 일어난 곳은 꽤 허름한 집이었다.
"후우…."
그의 이름은 강유현.
가상현실 게임 아크스타에서 '베니스'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15살이고, 중학교에 다니고 있다.
어렸을 때 많이 먹지 못해서 그런지 키는 작은 편.
초등학생으로 자주 오해받곤 했는데, 강유현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차, 유영이."
강유현은 서둘러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던 여동생 강유영이 보였다.
마침 유영이가 자신을 발견했는지, 반색했다.
"어, 오빵!"
여동생은 쇼파에서 일어나더니 별안간 자신에게 폭 안겼다.
강유현은 그저 웃으며 동생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밥은…?"
"먹었엉~"
"우리 유영이 다 컸네."
"히히. 11살도 어른이양!"
"하하, 그래. 어른이지."
자신과 여동생은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흔히 TV에서 말하는 소년 소녀 가장은 바로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있지만, 강유현은 가난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15세 이용가였던 아크스타.
올해 15살이 되자마자 아크스타를 시작한 강유현은 곧장 상인이라는 직업을 골랐다.
아침엔 학교를 가고, 5시쯤 집에 돌아와 유영이의 밥을 미리 차려놓았다.
그리고 접속해서 11시까지 게임을 했다.
19세 이하는 밤을 샐 수 없는 정부의 정책 때문에 그 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반복된 생활을 한지 1년.
사람들에게 사기도 치고, 얼굴에 철판을 깔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 모든 것은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오빠, 나랑 같이 자자."
"응, 그래."
두 사람은 함께 이불을 펴고 나란히 누웠다.
불을 끄니 유영이는 어느새 꿈나라로 가 있었다.
머리만 대면 잘 자는 아이라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진다.
"으음, 된장찌개 맛있엉…."
오늘 저녁으로 해준 된장찌개가 제법 맛있었던 모양이다.
강유현은 피식 웃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포트렌에 조그만 상점을 하나 열었는데, 처음엔 장사가 안 되서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운이 좋게 입소문이 나서 조금씩 흑자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아직은 포트렌의 귀족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 같은 수준이지만, 언젠가는 그들처럼 호화롭게 사는 것이 강유현의 꿈이다.
물론, 최종 목표는 상왕(商王)이 되는 것이지만, 아직은 아득하다.
"내일은 유니온 은행에 가서 환전해야겠다."
그걸로 유영이에게 맛있는 걸 먹일 것이다.
며칠 전부터 돼지갈비가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데.
그거나 먹으러 갈까.
'근데 오늘 그 할아버지는….'
어눌한 말투를 한 하얀 옷을 입은 할아버지.
서투른 영어 발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동안 많은 사기를 치며 양심 따위는 개나 줘버렸다.
그렇게 사기당한 사람을 모른 척했고, 또는 들켜서 욕도 먹었다.
물론, 몇 번 죽임을 당하기도 했지만, 괜찮았다.
모든 것은 여동생을 위해서였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없던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그 할아버지가 했던 말 때문이었을까.
이미 자신을 용서했다는 말.
그저 사과만 받고 싶었다는 말.
진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이었으면 좋겠다고 강유현은 생각했다.
"흐음…. 일단 자야겠다."
강유현은 몸을 돌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베개는 곧 침으로 적셔졌다.
* * *
백무열과 일행들은 혹독한 사냥을 거듭했다.
그야말로 밤낮의 구분 없이 오직 사냥만을 했고, 근처에 있는 던전들과 주변의 퀘스트란 퀘스트는 모조리 받아서 수행했다.
그야말로 지옥의 스케줄.
그 결과 가공할 만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백무열은 숨을 헐떡이는 일행들을 만족스러운 미소로 보았다.
"다들 힘들었을 텐데. 아주 잘들 따라오는구나! 껄껄."
하지만 일행들의 눈 밑은 다크서클이 가득했다. 몇몇은 입을 닫지 못해 침을 흘리기도 했다.
유일하게 괜찮은 것은 손자인 백성찬 뿐.
"할아버지. 이분들은 다 저처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단련되지 않았다구요."
"다들 이렇게 커가는 거다."
"하아, 진짜 못 말리신다니까."
백성찬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할아버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뭐, 그래도 덕분에 레벨업은 많이 했지만.
"할아버지. 이제 슬슬 윈디아란 곳으로 가보죠? 자꾸 여기서 사냥만하면 이분들 쓰러지실 것 같은데요."
우리들은 윈디아를 눈앞에 두고도 들어가지 못했다.
아직 들어갈 자격이 없다나 뭐라나.
아무튼 이상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할아버지는 일행들을 혹사시켰다.
그래도 제법 강해진 것 같긴 하지만.
"그래. 이제 슬슬 가봐야지."
"오오! 정말입니까!"
"이야! 드디어 마을이다! 하하하!"
"바로크…. 기쁘다."
제일 먼저 좋아하는 건 자칭 묵찌빠 형들이었다.
그리고 서로 손뼉을 맞부딪히는 머머리와 타르모 아저씨.
"아아, 죽는 줄 알았네. 그치? 타르모."
"후우. 그래. 힘들었지만, 꽤 보람됐어. 머머리."
이 두 NPC, 아니 옆집 동네 아저씨 같은 두 사람은 그래도 나름 괜찮아 보였다.
역시 교관 출신이라 그런가.
"으어어어. 성찬아…. 삼촌 힘들다. 좀 살려줘어어…."
마침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정현이 삼촌.
어렸을 때 어렴풋이 기억이 남아있어서 좀 서먹했지만, 게임을 하며 제법 많이 친해졌다.
할아버지 말로는 날 업어줬었다던데.
진짠지는 모르겠다.
잠시 후. 우리들은 윈디아에 도착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