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54화
제154화
그 무렵 나는 코인 환전소에 도착했다.
에이단은 내가 돈을 더 쓰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나는 약속이 있다는 핑계로 헤어졌다.
아마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폭염 심장도 무사히 얻었겠다.
이곳에 볼일은 없으니, 빨리 사라지는 게 좋았다.
지금 내게 남은 것은 548코인.
달러로 환산하면 5480만 달러나 남아있다.
마침 환전소의 주인이 큰 가방을 내밀었다.
"여기 환전된 달러입니다. 정말 아울루를 안 쓰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음, 괜찮습니다."
그는 아까 전 키스에게 살살하라고 얘기했던 남자였다.
지금 그가 말하는 아울루는 바로 '인식'과 '추적' 마법이 걸린 부엉이.
쉽게 말하면 거리가 먼 사람에게 돈을 안전하게 배달해주는 부엉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없다.
여기는 조금만 방심해도 눈뜨고 코 베이는 곳이니까.
중간에 누가 이 큰돈을 훔쳐가면 어떡하란 말인가.
"정말 안 쓰시겠습니까? 1코인밖에 안 하는데요. 아울루는 계속 한 주인만을 따르기 때문에 제법 유용합니다. 대여가 아니라 영구적으로 드리는 거니까요."
"아, 영구적으로 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음, 제법 구미가 당기긴 한다.
1코인이면 저 부엉이를 꽤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나는 말했다.
"하나 구매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그를 따라 옆방으로 들어서니, 새장에 갇힌 다양한 부엉이들이 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놈으로 골라보시지요."
나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커다란 부엉이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났다.
각각의 부엉이들은 여러 색깔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붉은색, 녹색, 푸른색, 보라색 등.
가운데 있는 검은 동공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눈을 자랑했다.
"음, 누구를 고른…."
푸드드득!
"어이씨! 깜짝이야!"
바로 옆에 있던 하얀 부엉이가 갑자기 날개를 푸드득거렸다.
안 그래도 어두운데 놀래키니까 더 무섭다.
빌어먹을 놈 같으니라고.
나는 조용하라는 듯 새장을 쾅쾅 두드리며 시위했다.
"놀랬잖아. 이 녀석아."
"구욱-."
어휴. 무섭게도 생겼네.
괜히 산다고 그랬나….
그렇게 나는 어둠 속을 더 걸었다.
뒤에서는 계속 환전소 주인이 따라오고 있었다.
마침내 끝부분에 다다르자, 환전소 주인이 말했다.
"마음에 드시는 녀석이 있으십니까?"
"음…."
아까 보았던 부엉이를 차례대로 떠올려봤지만, 마음에 드는 녀석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돌아가면서 한 번 더 봐야겠다.
"돌아가면서 한 번 더 보도록 합시다."
"뭐, 그러시죠."
그렇게 입구로 돌아가면서 좌우를 살피던 중, 나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뭐야. 내가 뭘 본 거지.
지금 나는 한 부엉이 앞에 서 있다.
그것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크기의 부엉이.
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부엉이였다.
뒤에서 환전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 녀석은 안 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들어온 녀석인데 기형이라 그런지 눈동자도 이상하고, 아직 어려서 크기도 많이 작습니다. 아마 곧 죽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부엉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맙소사. 이게 여기 있다니….
눈앞의 부엉이의 눈은 특별했다.
보통은 다양한 색상의 눈동자와 가운데 동공이 검은색인 것이 대부분인데, 지금 부엉이는 그 반대였다.
눈동자가 검은색이고, 가운데 동공은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그 동공의 모양 또한 특별하다.
바로 초승달 모양.
나는 이 부엉이를 아주 잘 알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기억에도 아주 또렷하게 남아있으니까.
"이 녀석으로 하겠습니다."
"예? 이건 안 사시는 것이…."
"아닙니다. 꼭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배달은 괜찮습니다. 제가 손으로 들고 가면 되니까요."
"뭐, 정 그러시다면…."
환전소의 주인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새장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혹시 모르니까 그에게 돈을 좀 더 얹어줬다.
1코인이 아니라, 무려 8코인을.
"어이쿠, 이렇게나 많이 주시면…."
"팁입니다. 제가 오늘 잭팟을 터트리니 기분이 좋아서요."
"큼. 뭐, 그러시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걸로 혹시나 그가 변심을 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8코인이면 싼 거다.
아니, 진짜로 많이 싸다. 거의 거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이 초승달 눈동자를 가진 부엉이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폭염 심장보다 더 말이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큼. 어서 인식 마법을…."
"아, 제가 정신이 없었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가 손에서 마력을 쏟아내더니, 나와 부엉이를 연결지었다.
그리고 잠시 뒤, 메시지가 떴다.
[이름 없는 부엉이가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했습니다.]
[지금 당장 이름을 지으시겠습니까?]
"음, 뭐라고 짓는다…."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별안간 귓속말이 왔다.
- 드레인: 브라더. 나 좀 도와줘요.
* * *
드레인은 방금 브라더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그는 암시장에 있는 옷감을 보기 위해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현재는 골목 뒤에 숨어서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진정이 되지 않는다.
쿵. 쿵.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진다.
'…설마 여기서 만날 줄이야.'
드레인은 다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아까 전 발견한 그 남자.
아니, 소년을 노기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저번에 자신에게 사기를 쳤던 '베니스'라는 소년.
아직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염색된 코볼트 가죽을 유니콘의 가죽으로 오해했던 기억.
그것은 무려 30만 달러였고, 돈이 부족해 20만 달러에 여러 가지 희귀한 아이템과 옷을 얹어주며 샀었다.
물론 지금은 갑자기 2000만 달러라는 큰돈이 생겼지만, 그때 그 허탈감과 상실감을 드레인은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넘겨주었던 옷과 아이템을 저렇게 당당하게 팔고 있다니…!'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는 말은 저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그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입양한 아들이 떠올랐지만, 지금 드레인이 그를 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유해진 소년의 차림새.
베니스는 포트렌의 암시장에서 당당하게 간판을 걸고 장사하고 있었다.
그 이름하여 '베니스의 잡동사니'.
주변의 병사가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돈을 주고 고용한 모양이다.
당장 가서 따지고 싶어도, 드레인의 힘으로는 저 병사들을 이길 요량이 없다.
- 잭슨: 왜, 무슨 일 있냐?
휴. 다행히 답변이 왔군.
아마 그라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브라더는 강하니까.
- 드레인: 내가 저번에 사기당했던 거 기억나요?
- 잭슨: 그래. 기억나지. 근데 그게 왜?
- 드레인: 그때 그 사기 친 녀석을 찾았어요.
그 말과 동시에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드레인은 초조했다.
아마 브라더가 거절한다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없기 때문에.
한 1분이 지났을까.
다시 귓속말이 왔다.
- 잭슨: 거기가 어디냐.
"예스! 예스!"
드레인은 두 주먹 불끈 쥐며 강한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 드레인: 여기가 어디냐면….
* * *
모든 일을 끝마친 나는 카지노를 나왔다.
지금 내 얼굴은 아까 대여소에서 빌린 검은 늑대의 가면을 그대로 쓰고 있었는데, 이것은 에이단이 내게 선물로 준 것이다.
또 줄 테니 또 도박하러 오라나 뭐라나.
아무튼 상술 같아서 다시는 안 갈 거다.
키스는 아까 그 여인들이랑 희희덕거리길래 그냥 돌려보냈는데, 녀석은 좀 더 있다가 가겠다고 했지만 내가 으름장(?)을 놓았다.
당장 돌아가지 않으면, 헬레나에게 지금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했더니, 녀석은 하얗게 사색이 되어서는 부리나케 쓰레기촌으로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한참 동안 웃었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웃기는 놈이라니까.
"구욱-!"
지금 내 어깨엔 부엉이 한 마리가 앉아있다.
인식 마법이 걸려있어서 도망갈 염려는 없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이 녀석이 좀 더 자라면 나를 주인으로 받들 수 있을까.
"이거 줄 테니까. 말 좀 잘 들어라. 알았지?"
"구우욱!"
나는 아까 그 환전소 주인에게 받은 먹이를 녀석에게 던져주었다.
그는 팁을 받았으니 먹이는 무료로 나누어주겠다고 했었다.
뭐, 나는 기쁘게 받았다.
곧장 인벤토리에서 생닭을 찢어 녀석에게 주었고, 이름 없는 부엉이는 맛있게 생닭을 먹었다.
아직은 어려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으니 괜찮겠지.
"구루우우욱~"
"녀석. 맛있나 보네."
나는 녀석의 콧잔등을 쓸었다.
지금은 곤충이나 생닭을 먹지만, 조금만 더 자란다면 아마 몬스터를 먹을 것이다.
그것도 본인이 직접 잡아서.
내 기억이 맞다면 이 녀석이 성년으로 자랐을 때, 한쪽 날개만 무려 3미터가 넘는다.
"진짜 신기하군. 어째서 헤카티아나의 레추자(lechuza)가 여기 있는 거지."
달과 마법의 여신 헤카티아나.
그녀는 대륙의 모든 마법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하지만 달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그녀는 암흑과 저주 계열의 마법을 좋아한다.
그래서 보통 흑마법사들이나 마녀, 세계수의 사서들이나 섬기는 여신이었다.
뭐, 다들 분야는 달라도 '마법'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인 이들이니까.
"레추자가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은 특별한 달이 4가지나 겹쳐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특별한 달의 조건은 이러하다.
엄청 커다란 달인 슈퍼문.
달이 푸르게 물드는 블루문.
피처럼 붉게 물든 달인 블러드문.
12월 25일에 뜨는 럭키문.
즉, 말하자면 이 4가지가 모두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레추자의 알은 그 4가지 달의 정기를 동시에 받아야만 비로소 깨어난다.
내가 알기론 그 주기가 120년은 되는 걸로….
"구우우욱-!"
이름 없는 부엉이가 내 어깨에 올라와 날갯짓을 했다.
아무래도 더 달라는 모양이다.
"자, 오늘은 이걸로 끝이다. 많이 주면 안 된다고 했으니."
"구우욱~"
나는 생닭을 좀 더 꺼내 녀석에게 주었다.
진짜 잘 먹네.
"네가 정말 레추자라면 난 진짜 행운아이긴 한데…."
본디 레추자는 헤카티아나가 타고 다니던 부엉이다.
마법의 여신이 타고 다니는 부엉이답게 각종 마법도 쓸 수 있다.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냐고 묻는다면, 유피테르가 저 녀석을 탐냈는데 길들이는 것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한 것이 레추자는 달의 마력을 타고 났다.
오직 달의 여신인 헤카티아나의 말만 듣는 것이다.
"흐음…. 이 녀석이 크면 내 말을 잘 들을지 모르겠네."
지금은 황금색 초승달의 동공을 하고 있지만, 크면서 점점 눈동자도 변해간다.
반달, 보름달 이런 식으로.
물론 보름달은 성년이라는 뜻.
그때쯤이면 말을 들을지, 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곧장 녀석의 정보창을 열었다.
[Lv. 5 이름 없음][아울루]
등급: 일반
포트렌의 카지노 1층에 있는 코인 환전소에서 기르던 아울루. 보통 아울루는 한 명의 주인을 섬기며 따른다.
주로 물건 배달을 주 업무로 하며, 자랄수록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다.
-현재 걸려있는 마법 : 인식, 추적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보가 있습니다.
"흠. 프로메테우스가 깨어 있었다면, 통찰로 진짜 정보를 봤을 텐데 아쉽군."
뭐, 어쨌든 프로메테우스는 깨어날 것이다.
그래도 아직 시간은 좀 남았지만.
그렇게 드레인이 말한 약속장소에 도착했고, 나는 레추자를 하늘로 띄워 보냈다.
아마 휘파람을 불면 다시 날아오겠지.
골목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라더. 여기예요!"
나는 그곳으로 걸어갔다.
"여기서 뭐 하냐?"
"쉿. 저길 봐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웬 상점이 있다.
그 이름은 베니스의 잡동사니.
아무래도 저 상점에 드레인이 말한 사기꾼이 있는 모양이다.
그때였다.
"자, 넌 이거를 저쪽으로 옮기고, 넌 이걸 저쪽으로 옮겨."
별안간 꼬마 한 놈이 상점에서 나오더니, 듬직한 NPC들을 이리저리 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코웃음을 쳤다.
"웃기는 놈일세. 뭐하는 꼬마지."
"저놈이에요."
"뭐?"
"저 보이가 나한테 사기 친 놈이에요."
"엥???"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사기를 당했다고 듣긴 했지만, 설마 그게 어른이 아니라 저런 꼬마 놈이었을 줄이야.
"부끄러워서 그동안 말 못 했어요. 후우. 이제야 말하네요."
"…뭐 이해는 간다만, 그래도 미리 말했어야지. 난 어른인 줄 알았잖냐."
어른이었다면 몇 대 쥐어 박았을 테지만, 꼬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보아하니 초등학생이나 이제 막 중학교 들어간 놈 같은데….
"브라더. 도와줄… 수 있죠? 약속 했잖아요."
"흐음."
이미 약속을 해버린 상태라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걸 어떻게 한다….
아. 그렇지.
"그놈을 불러야겠군."
"네? 누구요?"
"우리한텐 그놈이 있잖냐."
"그러니까 누구요?"
"기다려봐."
나는 곧장 귓속말 창을 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