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41화
제141화
케레노스는 몇 번이나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하더니, 결국 바닥에 토사물을 내뱉고 말았다.
투두둑.
더러운 놈 같으니라고.
왜 하필 내 앞에서 저러는 건데.
"우웁."
나는 그의 곁으로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전투 중에 이게 뭐하는 건가 싶지만, 그래도 보고도 못 본 체하기는 조금 그랬다.
그렇게 30초 정도를 그러고 있는데, 무두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큭. 약해빠진 노인네. 이런 약골한테도 도움받는 거냐.]
'또 시비 걸 거면 그냥 입 다물어라. 짜식아.'
[취익. 저딴 놈은 한 손가락으로도 짓누를 수 있다.]
'구라치시네.'
[후후. 믿거나 말거나. 근데 구라가 뭐냐?]
'…….'
마침 허름한 건물로 날아간 덩치가 잔해를 치우면서 일어섰다.
자잘한 상흔들이 있는 것을 보니, 공격이 제법 통한 모양이다.
하긴, 이놈의 창술은 너무 빨라서 다 막기는 힘들지.
"흐흐. 재밌군. 어이 창잽이 넌 누구지?"
이름 모를 덩치가 장갑을 맞부딪히며 물었다.
그는 이 상황이 재밌는지 이죽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케레노스는 여전히 구역질 중이다.
나는 여전히 녀석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고.
"괜찮냐…?"
"후우우. 괜찮습니다. 아까 술 깨는 약을 잘못 먹은 모양입니다."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마라. 이놈아."
"후우우우. 예?"
건너편의 덩치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이빨 하나가 부러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것 같다.
"내 소개부터 하지. 난 휴톤이라고 한다. 뭐, 보다시피 돈 받고 고용됐고, 용병이라고 보면 된다. 흐흐흐."
갑자기 왠 자기소개람.
뜬금없는 인사에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어쩌라는거냐."
"큭큭. 난 강한 자와 싸우는 걸 좋아한다. 그대들의 이름을 알고 싶군. 난 내가 쓰러트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걸 좋아한다."
"…개소리 하고 있네. 곧 죽을 놈이."
"크하하하하!"
휴톤이 커다랗게 웃으며 고개를 젖혔다.
약간 머리가 이상한 놈인가 싶다.
분명 NPC가 아니고 유저인데….
멀리서 에이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간의 노기가 어린 목소리다.
"얌마! 똑바로 안 해? 돈 받기 싫어?! 엉?!"
"…아, 거 물주만 아니면 죽여버리고 싶네."
작게 중얼거렸지만 나는 휴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 그의 말에는 나도 동감이다. 당장 저놈의 머리통에 포크 숟가락을 꽂아버리고 싶었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포크 숟가락을 잊고 있었네."
인벤토리에서 그것을 꺼내려는 순간 케레노스가 말했다.
"후우우. 영감님 여긴 내가 맡을게요."
"뭐 임마?"
"아, 내가 맡는다구요."
"이눔 시키가 술 처먹더니 말이 점점 짧아지네."
"에이씨 그게 내 돈 떼먹은 사람이 할 말입니까?"
"커흠."
그건 좀 찔리긴 한다.
뭐, 그래도 갚기는 할 거다.
나는 떼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후우. 아무튼 영감님은 저 뒤쪽에나 가보슈. 아까부터 신경 쓰시는 것 같던데."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아, 그걸 아시는 양반이 내 돈으로 축제를 여셨냐고."
퉁명스러운 케레노스의 입이 삐죽거린다.
일단은 내가 물러서는 게 맞는 것 같다. 뭐, 내가 먼저 잘못한 건 맞으니까.
나는 뒤돌며 말했다.
"죽진 않겠지?"
"그럴 거면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케레노스는 손을 휘적거리며 축객령을 내렸고,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말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어버렸다.
그런데, 근처에 있던 풍희가 두둥실 떠오르더니 케레노스의 곁으로 날아갔다.
"푸우웅~"
"음? 쟤가 왜 저러지…?"
[바람의 신수, 풍희가 능력 개화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이곳에 신수를 놓고 간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호오."
예상치 못한 풍희의 행동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감탄했다.
생각지도 못한 행운.
어쩌면 한 단계 더 성장한 풍희가 강해져서 내게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어느새 케레노스의 목덜미에 안착한 풍희가 비장하게 말했다.
"푸웅!"
"어…. 넌 풍희… 영감님. 얘 뭡니까?"
"몰라. 이놈아. 그냥 니가 좀 데리고 있어라."
"아이씨. 가뜩이나 술 취해서 몸이 무거운데…. 딸꾹!"
그는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마침 휴톤도 오래 기다렸다는 듯 장갑을 맞부딪히며 걸어왔다.
"이제 볼일은 다 끝난 건가? 오래 기다렸다고."
"아, 미안. 미안. 내가 좀 취해서 말이야."
"크흐흐. 더욱 마음에 드는군. 원래 취중전투가 더 재밌지."
"아아, 동감이다."
나는 미련 없이 뒤돌았다.
그리고 아까 마을 사람들을 쫓아간 2명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폭음이 터졌다.
* * *
어스름한 쓰레기촌.
그 깊은 골목 어귀로 도망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내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조셉.
죽음의 파파라치라고 불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그가 지금 이들과 함께 뛰는 것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바로 '에이단'의 존재.
그는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 혹시나 마주치게 된다면, 일부로 잘못된 정보를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
어렵게 잡은 돈줄을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그에겐 뽑아 먹을 것이 많으니까.
그리고 둘째, 지금 쫓아오는 2명의 병사.
"거기 서라!"
"흐흐! 내가 귀여워해주지!"
미간을 찌푸린 조셉이 그들을 향해 카메라에 있는 실명 플래시를 터트렸다.
하얀 섬광이 폭사하며 그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끄악! 이런 젠장. 또!"
"내 눈! 제기랄!"
아까부터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조셉은 그들의 눈을 멀게 만들었고, 도망친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튀었다.
다행히 쫓아온 사람이 2명뿐인지라, 조셉 혼자서도 충분히 그들을 막을 여력은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다음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어서 뛰세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아조씨!"
"아조씨! 강하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여인과 두 명의 아이들이 바로 조셉이 이곳에 나타난 세 번째 이유다.
아이들은 쌍둥이였고, 그들이 위험에 빠지자 본능적으로 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같은 쌍둥이 부모로서의 동질감이랄까….
"크으윽. 네놈!"
"이 허접쓰레기 같은 놈이…."
이런. 벌써 실명이 풀린 건가.
실명은 중복될수록 그 효과가 미미해지곤 한다.
조셉은 눈앞에 있는 여인과 쌍둥이를 재촉했다.
"안 도망치고 뭐해요. 빨리 가요!"
"네, 네! 고맙습니다!"
여인은 쌍둥이의 손을 잡고 부리나케 뛰기 시작했다.
쌍둥이가 뒤돌며 귀엽게 손을 흔든다.
그 뒷모습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진다.
우리 하은이랑 하진이가 크면 저런 모습이려나.
푸욱-!
"윽…."
갑자기 날아온 단검에 무릎이 주저앉아졌다.
가상현실이지만 꽤 실감나는 통증이다.
무언가 당겨지는 느낌이 들더니, 쑤욱- 하는 소리와 함께 뒷 허벅지에 꽂힌 단검이 뽑혀 나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보니, 단검 끝에 줄이 연결되어 있다.
빌어먹을. 더럽게 아프네.
"감히 우리를 막아…?"
"쓴맛을 보여줘야겠군."
단검에 묻은 피를 핥은 한 병사가 천천히 걸어왔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다.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쌍둥이들이 안 보이는 걸 보니, 무사히 숨은 것 같은데….
그래도 좀 더 시간을 끌면 더 안전했을 텐데 마음이 무겁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어이가 없네. 기자였어?"
"……."
조셉은 대답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단검이 목에 닿으며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그 여자 어디로 도망쳤지?"
"……."
"대답할 생각이 없나 보군. 뭐, 상관없지. 난 발자국을 추적할 수 있거든. 후후."
조셉의 눈이 번쩍 뜨여졌다.
빠악!
"으악!"
재빠른 박치기로 코뼈를 때렸다.
단검을 든 병사가 코피를 흘리며 주저앉았고, 다른 병사가 발차기로 자신을 밀어버렸다.
"이 썅놈이!"
"크윽!"
흙바닥을 뒹군 조셉은 일어나려했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 생명력이 많이 닳은 상태.
이럴 줄 알았으면 방어력이 좋은 탱커를 하는 거였는데. 젠장.
"보자보자 했더니. 안 되겠군. 이봐. 켄지 내가 죽여도 상관없겠지?"
켄지라고 불린 남자가 대답했다.
"크윽. 테르만. 사지만 마비시켜줘. 마지막 목숨은 반드시 내가 끊어버리겠어. 저 개자식은 반드시 내가 죽인다."
테르만이라고 불린 남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빨리 처리하고 재미나 보러 가자고."
그렇게 말한 테르만도 단검을 뽑았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봐라. 내 단검엔 마비독이 묻어있거든."
그가 재빠르게 달려오는 그때였다.
휘리릭- 팍!
"억!"
짧은 단말마와 함께 테르만의 뒤통수에 검은 단검이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테르만은 그대로 쓰러지며 사망했음을 알렸다.
갑작스런 상황에 조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으슥한 골목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조셉.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바닥에 앉아서 뭐해? 흙 퍼먹냐?"
"아…. 어르신이군요. 살았다."
조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걱정을 한 시름 덜었다.
저분은 강하시니까.
"흐음. 다친 모양이구나. 쯧쯧. 허약하긴."
"하하…. 면목 없습니다."
마침 앞에 있던 켄지가 슬금슬금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아마 당해내지 못할 거란 걸 안 것이겠지.
"어르신. 저 자는…."
"알고 있다."
갑자기 어르신의 손에서 포크 숟가락이 나타나더니, 핑그르르 날았다.
포크 숟가락은 빠른 속도로 켄지의 뒤통수에 꽂혔다.
콕.
"윽!"
어르신은 천천히 켄지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넘어진 그의 뒤통수에서 포크 숟가락을 뽑아내더니, 그의 사지를 빠른 속도로 찌르기 시작했다.
푹! 푹푹! 푹!
"끄아아악!!"
차마 눈 뜨고 못 볼 광경이다.
누가 저 사람을 과연 요리사라고 생각할까.
포크 숟가락으로 태연하게 유저를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조셉은 훗날 기사를 내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르니까…."
찰칵. 찰칵.
조셉은 증거를 남기기로 했다.
* * *
하늘이 무너질 뻔했다.
키스와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도는 순간.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헬레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정지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키스는 에이단을 향해 달려들었지만, 그것은 너무도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에이단은 화를 터트리며 자신의 아버지와 키스를 베려고 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살았지만, 그럼에도 헬레나는 지금 벌어진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는 것은 조그만 은장도가 전부.
헬레나는 앞에 있는 형광의 보호막을 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크리스탈이라는 여자의 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본 것이다.
'분해. 너무 분해.'
생판 남인 저들도 마을을 위해 저렇게 피를 흘리며 싸우는데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헬레나는 그 부끄러운 모습에 너무도 화가 났다.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쩌적.
'안 돼…!'
마을 사람들을 지키던 보호막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저것이 없어지면 이대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노예로 팔리고 말 것이다.
에이단의 성정을 보아 몇 명을 죽여야 직성이 풀릴 터.
헬레나는 빠르게 머릿속을 회전시켰다. 그러다 품속에 있던 은장도를 꺼내 들었다.
'이거라면…!'
헬레나는 은장도를 뽑아 에이단의 목에 겨누었다. 얼마나 가까이 댔는지 살짝 데었을 뿐인데도 피가 주룩 흘렀다.
아니, 어쩌면 은장도가 그만큼 날이 섰는지도 모른다.
"헬레나…. 네년…!"
"닥쳐. 이 미치광이 살인마야. 너랑은 이제 끝이야."
"네,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어?"
"내가 죽으면 너도 죽어. 어디 갈 때까지 가보자."
은장도가 조금 더 그의 목젖으로 올라갔다.
아까보다 더 많은 피가 흘러내렸다.
당황한 근처의 병사들이 칼을 뽑으려 하자, 헬레나가 정색했다.
"무기 버려."
그 말에 병사들이 주춤거렸다.
아마, 자신보다는 에이단의 말을 더 잘 들을 것이다.
"당장 병사들에게 무기 버리라고 해. 당장!"
"그, 그. 그럴 수 없다!"
푸욱.
"끄아악!"
헬레나의 은장도가 에이단의 허벅지를 살짝 찔렀다.
그녀는 다시 재빠르게 에이단의 목으로 은장도를 겨누었고, 그의 귓가에 서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내가 말했지. 갈 때까지 가보자고. 누가 이기나 해보자."
푸우욱!
"아아아악!"
헬레나는 한 번 더 은장도로 에이단의 허벅지를 찔렀다.
공포에 젖은 에이단의 핏발선 두 눈이 병사들에게로 향했다.
"크으윽. 무, 무기 버려. 버려 이 새끼들아!! 버려!!"
"……."
하지만 병사들은 반응하지 않았다.
"보, 보수는 두 배다! 두 배로 쳐준다!!"
그 말에 한 명씩 무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헬레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돈이 최고라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