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140화
제140화
드러러렁- 푸우.
엄청난 코골이 소리가 메테우스 마을을 울린다.
누군가 본다면 숨이 넘어갈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할 정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마을을 휘감았고, 코골이의 주인인 케레노스의 뺨이 찰싹 때려졌다.
"단장님."
"음냐."
"단장님. 여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갑니다. 일어나세요."
실피드 기사단의 부단장 베커는 케레노스의 뺨을 찰싹 때렸다.
하지만 단장님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가 먹지도 못하는 술을 왜 이리 마시는지.
베커는 평소 금주를 철칙으로 여기기 때문에 술을 모르고 살았다.
듣자 하니 단장님이 도박으로 딴 돈을 홀라당 날렸다던데.
"흐음. 어쩔 수 없지."
베커는 하는 수 없이 케레노스를 둘러멨다.
갑옷까지 합쳐지니 무게가 제법 무거웠지만, 그래도 버틸만했다.
"휴. 제발 술 좀 끊어주십쇼. 단장님. 읏차."
단장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마신 건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아마 마지막으로 본 게 스승인 뮤겐님과 술을 마셨던 때였을 것이다.
그는 기분이 좋을 때만 술을 마시곤 했었는데, 오늘은 그 반대였던 모양이다.
"내 도오오오온. 제에엔장."
피식. 돈이 그렇게 좋은가.
하긴 기사의 월급이 조금 작은 편이긴 하지.
사실 명예를 중요시하는 기사들이었기에 많은 돈은 사치를 조장할 수 있다.
이것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이었고, 기사들은 적은 월급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뭐, 그래도 다른 혜택들이 있긴 하지만.
"으음…. 넌…."
"베커입니다. 단장님."
"아, 베커…."
술기운이 아직 남았는지, 케레노스는 입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가 등에 업힌 채 말했다.
"후우우우. 다른 사람들은…? 다들 잘 들어갔나?"
"아, 그게 말입니다."
베커가 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케레노스가 취해 잠들어 있을 때 있었던 일. 그리고 헬레나라고 불린 여인이 쓰레기촌 출신이었고, 일행을 꾸려 떠난 것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게 보고했다.
"뭐라고!!"
케레노스는 노호성을 터트리며 베커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허둥지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자신의 창을 찾기 시작했다.
"내 창…. 내 창이 어딨지?"
베커는 한쪽 구석에 세워둔 그의 창을 건네주었다.
케레노스가 딸꾹질을 하며 비틀거렸다.
"크흐음. 고맙다. 베ㅋ… 딸꾹!"
"혹시 따라가시려는 겁니까?"
"어…. 후우우우. 그래. 그게 내 임무니까."
"임무요…?"
"풍희가 곧 윈디아의 미래… 딸꾹! 니까."
베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사내였다.
자나 깨나 윈디아에 대한 생각.
비록 잭슨 님이 계시지만, 케레노스는 태어날 때부터 윈디아의 수호자였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십니까?"
"크흐으. 알지. 쓰레기촌…."
하긴 유명한 곳이니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케레노스의 마력이 들끓었다.
바람 마법 헤이스트의 전조.
연녹색의 마력이 그의 두발에 깃들었다.
그가 창으로 땅을 짚은 채 말했다.
"후우우. 여길 부탁한다. 베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래. 어이쿠. 이런이런."
케레노스가 다시 한번 휘청거렸다.
'…이거 아무래도 불안한데.'
괜히 갔다가 위험해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그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베커의 온몸을 휘감았다.
"술 깨는 약이라도 드릴까요…?"
"어… 있으면 하나 줘봐."
베커는 늘 술 깨는 약을 들고 다닌다.
케레노스의 곁을 오래 지키면서 생긴 습관이다.
그가 품에서 조그만 약병을 꺼냈고, 케레노스는 그것을 꿀꺽 꿀꺽 삼켰다.
"푸하아아. 어우. 코가 다 뚫리네."
"효과가 있는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그럼 진짜 가겠다. 베커."
"예. 무운을 빕니다."
푸화아아악-!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 케레노스는 없었다.
고개를 돌린 베커는 그가 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긴 반대 방향일 텐데."
아직 술이 덜 깬 모양이다.
* * *
"촌장…? 옆 동네 촌장이라고…?"
"그래. 이놈아."
내 말을 들은 에이단이 실실 웃었다.
아무래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 어이가 없군. 한낱 촌장 따위가 나 에이단을 막아…? 여봐라! 당장 저 늙은이도 내 앞에 꿇어 앉혀라!"
"예!"
우렁찬 병사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들이 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조셉의 말에 따르면 저들은 아마 에이단에게 돈을 받고 고용된 자들.
포트렌의 체제는 자본주의라더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
그나저나 조셉 녀석은 어딜 간 게야. 보이지도 않고.
나는 솔라를 불러냈다.
"해해. 주인아 또 만났구나! 반갑다!"
"이번에도 싸움이다."
"그렇구나. 알겠다! 흐으읍!"
[태양의 정령, '솔라'가 태양의 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
갑자기 주변의 열기가 올라간 것이 느껴졌다. 나를 에워싼 병사들이 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이봐. 조금 덥지 않아?"
"분명 겨울인데?"
"이게 무슨…."
그 사이 나는 김수정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 잭슨: 하나 둘 셋 하면 반딧불 협주곡이다.
- 크리스탈: 알겠어요. 준비할게요.
그녀와는 제법 많은 싸움을 거쳤으니 많은 말은 필요 없었다.
나는 병사들이 방심한 틈을 타, 에이단의 앞에 있던 키스와 노인에게 거미줄을 발사해 당겼다.
"셋!"
신호도 하지 않은 채 셋까지 세었고, 그들의 표정이 잠깐 당혹으로 물들더니, 이내 가볍게 안착했다.
내가 거미줄로 만들어낸 쿠션 때문이었다.
"반딧불 협주곡!"
솨아아아아-!
넓게 퍼져나간 형광의 보호막이 나를 포함한 일행들을 감싸 안았다.
당황한 병사들이 칼을 내리쳤지만, 쉽게 부서질 리가 없다.
"뭐, 뭐야 이게!"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알게 뭐야! 내려쳐!"
챙! 챙챙!
많은 병사들이 보호막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고했고, 부서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저기다! 저기에 남아 있는 놈들을 노려!"
에이단의 커다란 목소리가 보호막에 들어가지 못한 주민들을 가리켰다.
직경 100M만 보호하는 반딧불 협주곡으로도 쓰레기촌의 주민들을 모두 담을 수 없었다.
그들이 공격받기 시작하자 나는 재빨리 그곳으로 달리며 해 오름을 전개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썬 로드를 사용했다.
쿠구구구구-!
엄청난 불길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그리 오래는 끌지 못한다.
"어서들 도망가게."
"고, 고맙습니다!"
"할아부지! 꼭 이겨요!"
한 꼬마가 내게 주먹을 불끈 쥐며 응원을 보냈다.
물론, 나는 그럴 생각이다.
"덤벼라. 애송이들아."
그 한 마디에 모든 병사들이 이를 갈며 덤벼왔다.
나는 옷자락을 펄럭이며 날았고, 풍희는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며 자리를 피했다.
콰아아앙-!
한 병사가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다른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연속 공격을 퍼부었다. 병사들의 비명이 이어진다.
"크윽. 강하다."
"모두 조심해라. 강자다!"
"방심하지 마라!"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태양 속성은 방어를 무시하는 성질이 있었고, 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열전도율이 좋은 편이라, 막대한 데미지를 입힐 수 있었다.
그동안 나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꽤 강해진 상태.
한방에 한 놈씩.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뿐히 지르밟았다.
목 뒤가 서늘함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펄럭!
나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그 자리를 피했고, 콰아아앙-! 하는 지진과 함께 땅이 갈라졌다.
그곳엔 하늘에서 내려온 거한이 있었다.
아무래도 대장이 나선 모양이네.
"흐흐흐. 제법 강한 늙은이로군. 이름이 뭐지?"
"알아서 뭐 하게. 이놈아."
"하긴, 그렇지. 흐흐. 어디 내 주먹도 받아봐라!"
덩치가 내 뻗은 주먹과 내 발이 맞닿았다.
하지만 나는 당황했다.
"……!"
폭발하지 않는다.
아니,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 장갑은 대체 뭐지…?
"흐흐흐. 좋군. 좋아. 이건 폭발 장갑이라는 거다. 어떤 폭발이라도 축적하고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지. 꽤 비싼 값을 줬다고."
"…염병하고 있네."
그 말과 동시에 거한의 손이 내 다리를 붙잡더니, 나를 마을 벽 어귀로 던졌다.
제법 강한 충격에 골이 띵하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로 덩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영감은 내가 맡지. 너희 둘은 쓰레기촌 놈들을 쫓아라."
"흐흐흐. 좋아. 우리한테 맡겨달라고 대장."
"꽤 이쁜 여자가 있던데 내가 재미 좀 봐도 되겠지?"
"들키지 않게 하도록 해. 아마 이제 저들은 노예로 팔릴 것 같으니까 말이야."
"흐흐흐. 고맙다. 대장."
2명의 병사가 쓰레기촌 사람들을 뒤쫓아 갔다.
제길. 역시 저놈이 대장이 맞는 모양이네.
나는 잔해를 치우며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조금 무리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 잭슨: 수정아.
- 크리스탈: 네. 괜찮으세요?
- 잭슨: 뭐. 그럭저럭.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고, 형화무연을 써라.
- 크리스탈: 네? 그럼 아버님도 위험….
- 잭슨: 생각이 있으니 걱정마라.
그 뒤로 그녀의 답장은 없었다.
대답은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파르르르.
거대한 반딧불 두 마리가 하늘을 수놓았고, 이내 눈처럼 생긴 형광색 불빛들이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변이 요동치며 폭발이 일었다.
펑. 펑펑. 펑.
"크윽. 이게 뭐야!"
"으윽. 썅!"
"방패 있는 사람!"
병사들은 방패 주위로 오밀조밀 모여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격을 막았다.
앞에 있는 덩치도 그 폭발 장갑 인지 뭐시기로 막기 바빴고, 이걸로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내가 문젠데….
나는 인벤토리에서 오랜만에 단검을 꺼냈다.
"그림자놀이."
슈우우욱.
정말 오랜만에 이 스킬을 쓰는 것 같다.
그동안은 쓸 일이 잘 없었지만, 이렇게 회피용으로 쓰니 제법 괜찮았다.
…자주 애용해야겠군.
어느새 형화무연이 끝났고, 나는 다시 제자리에서 솟았다.
아까 마을 사람들을 쫓아간 놈들이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여기를 비우면 수정이가 있는 곳이 위험해지니까.
사실 저 보호막은 오래 쓸 수 없거든.
츠츠츳.
- 크리스탈: 아버님. 저….
- 잭슨: 안다. 조금만 버티거라.
- 크리스탈: 부탁드려요.
아마 그녀도 꽤 힘든 상태일 것이다.
저번 레무스와의 싸움처럼 반딧불 협주곡에 형화무연을 썼으니 말 다했지. 뭐.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니까.
"야 이 새끼들아! 돈 받기 싫어?! 똑바로 하란 말이야!! 어서 저 보호막을 부숴!"
에이단의 갑질이 심해진다.
차라리 저 망할 놈을 인질로 잡았어야 했나….
순간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둘러 싸여있다.
"어이. 어이. 영감탱이. 나를 잊으면 안 되지!"
그의 주먹이 내리쳐지며 폭발이 일었다.
익숙한 폭발.
그것은 해 오름의 불꽃이었다.
"네놈…!"
"흐흐흐. 이건 흡수한 걸 그대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제법 비싸단 말이지!"
이어지는 그의 공격이 매섭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움푹 파이며 그을려졌고, 나는 그의 공격을 받아치기 바빴다.
그는 내 불꽃을 흡수하고, 나도 그가 되돌린 불꽃을 다시 흡수하며 서로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렇게 5분이 지났을까.
"흐흐흐. 제법이군. 영감탱이. 죽이기엔 아까운 걸."
"개소리하지 마라. 썩을 놈아. 오늘 네놈은 제삿날이다."
아까 내게 덤비려던 병사들은 모두 보호막을 깨트리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행운은 아닌 것 같다.
바람이 불어온 건 그때였다.
"선풍!"
휘오오오오-!
갑자기 나타난 회오리바람이 거한을 집어삼키며 날려버렸다.
이건 내가 아는 바람이다.
…케레노스?
긴 창을 어깨에 짊어진 채 걸어오는 그를 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놈이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
어쨌든 다행이다.
녀석이라면 여기를 맡겨도….
"웨에에엑-!"
…착각이었군.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