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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90화 (90/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90화

제90화

얘가 왜 이래…?

갑자기 나보고 마마라니?

순간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무래도 눈앞의 이 펭귄은 나를 자신의 엄마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도 아니고, 엄마라니.

내가 엄마라니?!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당신의 성전환을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이게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냐…?

갑자기 내 성 정체성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던 김수정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버님을 엄마로 착각하고 있나 봐요."

"근데 왜 하필 엄마인거냐."

"그 이유를 모르세요…?"

"넌 아냐?"

"그럼요. 알죠."

내가 모르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다니 의외였다.

김수정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지금 입고 계신 옷이요."

"옷…?"

나는 지금 입고 있는 정장의 겉면을 훑었다.

짙푸른 색깔에 노란색과 주황색이 조화롭게 어울린 옷.

아까 전 드레인이 조금 더 멋있게 손을 봤다며, 내게 건네주었던 황제펭귄의 정장이었다.

드레인이 리폼하며 손을 본 것이었는데, 아까 전 나는 멋있게 바뀐 정장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던 것이 떠올랐다.

잠깐만. 그럼 혹시….

"설마 이 옷 때문이라고?"

아래에 있던 새끼 펭귄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 보고 있었다.

마치 내게 잘했다고 칭찬을 받기 위한 기대감 어린 눈빛. 나는 차마 녀석의 동심을 파괴할 수 없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새끼 펭귄이 얼굴을 부비며 애교를 부려왔다.

"뀨우♡"

…귀엽긴 엄청 귀엽네.

아마 현실에서 이런 애완동물을 기를 수 있다면 엄청난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곳은 가상현실이었다.

김수정의 옆에 있던 케르가 다가와 새끼 펭귄의 얼굴을 핥는 것이 보였다.

생각보다 사이가 좋은 둘의 모습에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케르도 얘가 마음에 드나 봐요."

"오우, 큐트한 펭귄이 내 옷의 가치를 알아보는군요."

"정말 귀여운 녀석입니다. 수련을 시켜야겠군요."

…아니, 수련은 왜 시키는 건데.

나는 견소룡이 수련을 시키겠다고 데려갈까 봐 선수를 쳤다.

"이 녀석은 내가 보호하마."

"그게 좋겠어요."

"오홍홍. 이렇게 큐트한 펭귄과 함께라면 새로운 패션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 같군요. 나도 좋아요."

"…알겠습니다."

견소룡이 입맛을 다시는 것이 보였지만, 어쩔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펭귄은 지금 나만 따르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같이 지내려면 이름을 지어줘야겠는걸."

"뽀노 어때요?"

"뽀노?"

"네. 뽀노노랑 닮았으니까. 뽀노!"

"흠, 뭐 나쁘진 않구나. 그럼 이제 네 이름은 뽀노다."

그렇게 새로운 일행이 합류했다.

* * *

한편, 게임에 접속한 백무열은 튜토리얼을 치르고 있었다.

조그만 요정이 나타나서는 고블린을 소환했고, 마침 무기 중에 목검이 있어서 그걸 들고 모조리 패버렸다.

10마리 남짓 나오는 것이 몸풀기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는 구슬에 손을 올리고 천성(天星)을 부여받고 있었다.

[별의 제단이 당신을 시험합니다.]

쿠구구구구.

'진짜 실제 같네. 허허.'

잠깐이지만 요동치는 대지를 느끼며, 백무열은 마른침을 삼켰다.

잠시 뒤, 그의 천성이 선택되었다.

7개의 별 중 주황색을 띄는 빛이 그를 향해 날아들었다.

[당신의 천성(天星)은 '차가운 자비의 군주'입니다.]

[힘 능력치 +10이 올랐습니다.]

[민첩 능력치 +10이 올랐습니다.]

'흠, 다른 정보도 한번 찾아봐야겠군.'

그렇게 여러 가지 튜토리얼을 진행하며 게임에 적응을 마친 백무열은 드디어 마을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선택한 곳은 '오르카 왕국'이었다.

춘택이가 여기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튜토리얼을 종료합니다.]

[튜토리얼 보상으로 마른 빵 10개를 획득하였습니다.]

[시작의 마율 '뮬란'으로 이동합니다.]

슈우우욱-!

정경이 무너지며 온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눈을 감았다 뜨자 그가 서 있는 곳은 유럽의 작은 시골 마을처럼 사람이 북적이는 분수대가 있는 곳이었다.

"고블린 잡으며 레벨업 하실 분 구합니다!"

"온갖 무기들 수리해드립니다. 수리비 단돈 2달러!"

"버프가 필요하신 분 저에게 오세요! 무료 버프 드립니다!"

'흐음, 여기가 춘택이가 말했던 그 마을인가?'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NPC라는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뒤섞이며 살아가는 사람들.

가상과 현실이 만나 한마음 한뜻을 이루고 있었다.

'우선 춘택이 말대로 그 촌장이라는 자를 만나봐야겠군.'

"여기서 남쪽에 있는 산으로 가랬나…?"

백무열은 그날 술자리에서 춘택이 해준 얘기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근데 남쪽이 어디지?"

* * *

백무열은 젊은이들에게 물어서 어렵게 남쪽에 스미르 산이란 곳을 오를 수 있었다.

지저귀는 새소리.

푸르른 나무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

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들인지 귀와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 들었다.

"저기인가 보네."

저 멀리 조그만 망치 그림이 그려진 집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곳은 춘택이가 말했던 대장간이라는 곳의 생김새와 일치했다.

'그리고 촌장이 살고 있는 곳이지.'

춘택이는 그곳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대라고 했었다.

그러면 아마 도움을 줄 것이라고.

사실 친구 이름을 파는 것이 썩 내키진 않지만, 그도 이렇게 했었다고 하니 안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어떤 무기를 얻게 될지 기대되는군."

백무열은 대장간을 향해 성큼 걸어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오시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얼마 없는 백발을 휘날리며 망치질 중인 덩치 좋은 노인이 있었다.

백무열은 한눈에 그가 이곳의 '촌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자가 첸이로군.'

춘택이가 얘기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나이답지 않은 울긋불긋한 팔 근육.

그리고 대머리에 가까운 머리카락 숫자…. 이건 좀 안타깝군.

아무튼 백무열은 기침을 하며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게나. 처음 보는 자로군. 혹시 모험가인가…?"

"그렇습니다. 무기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껄껄. 물론이지. 날 따라오게."

그는 옆에 있는 방으로 움직였다.

백무열도 그를 따라갔고, 그곳에 있는 것은 벽에 걸려있는 온갖 종류의 무기였다.

첸은 백무열을 힐끔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몇 달 전 생각이 나는구먼. 껄껄."

"……?"

"마음에 드는 무기를 골라보게. 쓸 만할 거야. 그리고 날 찾아오게나."

다짜고짜 자신을 보며 웃는 그를 보며 백무열은 미친놈인가 싶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춘택이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무기를 잘 고르는 것이 중요했다.

'어디 보자….'

벽에 걸린 무기들은 많았다. 녹이 좀 슬긴 했지만, 각종 장검류를 비롯한 단검류. 그리고 철퇴와 망치 종류도 있었고, 방패도 걸려있었다.

그 옆엔 활과 창이 있었고, 또 그 옆엔 아까 튜토리얼에서 설명을 들었던 지팡이 종류들이 있었다.

"저걸 휘두르면 마력이 소모되며 마법탄이 나간댔나?"

문득 호기심이 생긴 백무열은 조그만 지팡이를 하나 들고 아무 곳을 향해 휘둘러보았다. 그러자.

펑-!

우당탕! 탕탕!

"…어?"

약간의 마력이 소모되며 진짜로 마법탄이 나왔다.

비누방울 같은 모습이었는데, 생각보다 생생한 느낌에 모골이 송연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지만.

마침 소란을 들은 첸이 문을 벌컥 열었다.

"무슨 일인가!"

그와 눈이 마주친 백무열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벽에 있던 무기들이 모조리 땅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것은 부서져 있기도 했다.

"큼, 미안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나가게."

[뮬란의 촌장 '첸'의 호감도가 대폭 하락하였습니다.]

* * *

"오, 대단하군. 생각보다 빨리 왔어."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굴라' 특제 마력 포션을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아이스 재규어를 퇴치하라!>   완료]

…흠, 다이베우스의 호감도가 소폭 상승했군.

레벨도 올리고 마력 포션을 받고 나쁘지 않은 보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는 다이베우스에게 물었다.

"혹시 몬스터 종류와 퇴치 수를 더 늘리고 싶은데 가능한가?"

"음? 가능은 하지만 그대들이 벅찰텐데…? 이곳 북극의 몬스터들은 생각보다 강하단 말일세."

그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안다.

하지만 괜찮았다.

우리는 무려 3명의 성좌가 함께하니까.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다이베우스를 비웃습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어서 싸움거리를 달라며 번개털을 뽑습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자애로운 미소로 아래를 내려다봅니다.]

…정확히는 '신' 하나와 '성좌' 두명이지만.

다이베우스가 말했다.

"이상하게 누군가 쳐다보는 기분이 드는군."

응, 쳐다보는 거 맞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묘한 압박감이 들어. 이상하게 그대들의 말에 신뢰가 가는 것 같아. 왠지 내가 주는 임무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 같군."

그 순간, 엄청난 퀘스트 창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

나는 모조리 읽지도 않고 수락을 눌렀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흠, 어디 보자. 아까 보았던 킹콩 설인에 아이스 골렘도 있고, 아까 잡았던 프리져 타우루스도 있군.

근데 이건…?

[반복 퀘스트 - 서리 오크를 퇴치하라!]

그것을 보는 순간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 기억 속 그들과 이곳 북극의 수인들은 비록 사는 곳은 다를지라도 서로의 땅을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처럼 냉전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 기억이랑 조금 다른 모양인데…?

"다이베우스. 서리 오크들과 사이가 안 좋나?"

"그렇네."

"왜지? 원래는 사이가 좋지 않았나? 아니, 좋지 않더라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인간인데 잘 알고 있군. 그래. 원래 그들과 우리는 한 땅에 살고 있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공존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100년 전 그들이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지."

100년 전?

잠깐 100년 전이라면 혹시…?

"마을이 갈라진 것과 관련이 있나?"

"맞아. 이곳의 낮과 밤을 담당하시던 두 분이 갈라지시며, 이곳의 일족들도 갈라졌지. 전력의 분산이라고 할 수 있어. 서리 오크들이 그 틈을 노리고 조금씩 세력을 확장하고 있네."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서리 오크들은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는 벽에 돌을 던지며 균열을 더 크게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진짜 야비한 놈들이네.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서리 오크들도 한번 퇴치해보지."

"정말 고맙네."

서리 오크들은 이곳의 최남단에 있었다.

아마 걸어서 갈려면 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할 것 같았다.

오래 걸리기도 하고….

일단 퀘스트는 받아놓고 정 안되면 취소를 하는 방법을 써야겠군.

그때, 다이베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내 뒤에 숨어있는 뽀노를 향해 있었다. 작은 펭귄은 다이베우스를 향해 한껏 애교를 발사했다.

"뀨♡"

생각지도 못한 귀여움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하마터면 마음을 빼앗길 뻔했다.

젠장. 자꾸 이러면 정드는데….

"황제펭귄의 새끼가 아닌가! 이 귀한 생명을 어디서…?"

"오다 주웠네."

"…그리 쉽게 찾았다고?"

"그래. 눈 속에 파묻혀서 알짱거리길래. 우리가 빼내 주었지."

"허어. 그런데 주변에 어미 펭귄은 없던가…?"

"없던데? 날 마마라고 부르더군."

"…그러고 보니 자네 몰골이 어미 펭귄 같긴 해."

나는 뒤에 있던 드레인을 째려보았다.

그는 실실 웃고 있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폭소를 터트립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함께 배를 잡고 웃습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오래 참았다며 배를 잡습니다.]

이것들을 확….

김수정과 견소룡도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손이 입에 가 있는 걸 보니, 아마 몰래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젠장. 벗어버릴 수도 없고….

벗어버리기엔 생각보다 옵션이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입고 있었다.

나는 진지하게 그냥 입지 말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다이베우스가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이상하군. 보통 '새끼 황제펭귄'은 어미와 1km 떨어져 있어도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그래? 그런 습성이 있었나?"

…이건 처음 듣는 얘기군.

"그래. 그런데도 자네를 보고 어미라고 따른다면 그 근방에는 어미가 없다는 얘기인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다이베우스의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세상에 자식을 버리고 가는 어미가 어디 있단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기던 다이베우스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한 가지 부탁을 더 해야겠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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