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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89화 (89/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89화

제89화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 '아이스 재규어'를 잡기 위해 디야의 남쪽으로 내려왔다.

우리들이 이곳에 온지 벌써 1시간이 지났다.

"뇌룡권!"

꽈르릉-!

공포를 몰고 오는 천둥소리.

견소룡의 선제공격과 함께 귀를 찢는 아이스 재규어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들은 신속히 움직이는 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어딜!"

나는 레이트라에게서 받은 힘을 통해 뇌보법으로 따라붙으며 비천기상무(飛天氣象舞)를 펼쳤다.

순식간에 태양의 보법을 밟으며 해 오름이 발현되자, 빠른 속도로 아이스 재규어의 다리를 걷어찼다.

콰콰쾅. 꽈르르릉-!

푸른 번개는 아이스 재규어를 마비시키고 방어력을 꿰뚫었다.

태양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작지만 착실하게 데미지를 누적시켰다.

나는 새삼 아이스 재규어의 방어력에 감탄하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200레벨이 넘는 녀석은 단단하구만."

아이스 재규어의 레벨은 평균 200레벨을 상회하고 있었다.

사실 재빠르기도 엄청났지만, 다행히 나와 견소룡에겐 뇌보법이 있었다.

나는 내심 그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큰 후회를 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빨리 벼락의 비각술을 익히든가 해야지. 이거야 원.

이곳에 올 때마다 그의 힘을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아이스 재규어의 발톱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사각지대에서 날아온 공격인지라 나는 반응하지 못했다.

"크윽!"

초감각 능력치가 있어도 평균적인 능력치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이었다.

차마 사도 스킬인 혜안을 쓸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들에겐 그녀가 있다.

"반딧불 협주곡!"

파아아앗-! 하는 소리와 함께 형형한 빛이 주변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만들어진 보호막이 나를 덧씌우며 아이스 재규어에게서 나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다행히 큰 데미지는 입지 않았고, 다시 생명력은 회복이 되었다.

나는 김수정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나이스 타이밍."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잘 끼어들 때 하는 말이라고 드레인이 가르쳐 줬는데.

저 뒤에 숨어서 고드름 바느질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드레인을 보니, 맞는 말을 한 모양이다.

…이렇게 또 영어 실력이 늘었군.

"이제 뒤는 제게 맡기고 공격하세요. 마지막 마무리를 하자구요!"

꽤 듬직해진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어쩐지 이제는 그녀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뛰어올라 뇌룡각을 퍼부었다.

잠시 뒤, 아이스 재규어가 쓰러졌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아이스 재규어의 가죽을 획득하였습니다.]

[아이스 재규어의 살코기를 획득하였습니다.]

[퀘스트 <아이스 재규어를 잡아라!>  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벌써 다 채웠구나."

"에? 벌써요? 너무 빠른데."

"그러게 말이야."

일행들은 너무 쉽다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저 멀리 드레인만 빼고 말이다.

"오우, 벌써 끝났나요? 모두 가죽을 내게 주겠어요?"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가죽을 내밀고 있었다.

드레인은 새로운 옷감을 만져보며 패션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어서 좋았고, 우리들은 그런 그에게 열정이 담긴 옷을 제공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돈이라도 주고 싶었는데, 그는 한사코 받지 않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야말로 진정한 장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동생이지만 존경스러운 녀석이야.

아랫사람이라고 배울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배울 것은 배우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이제 돌아가자."

"네."

"후우, 레이트라 녀석 또 시끄럽겠네."

[주먹성, 레이트라가 시시한 싸움을 싫어합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좀 더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하길 원합니다.]

…하여튼 싸움광 녀석 같으니라고.

누가 전투를 숭상하는 일족 아니랄까 봐, 맨날 싸움 타령이다.

그러고 보니, 소룡이 녀석. 레이트라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고 했었나?

"너 아직도 레이트라랑 만나지 못한 거냐?"

"네.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명상을 해보고 있습니다만, 아직…."

"흐음."

나는 턱수염을 매만지며 하늘을 향해 물었다.

"레이트라. 이유가 뭐냐."

[주먹성, 레이트라가 지금은 말해 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그건 본인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까다로운 녀석.

나도 프로메테우스의 기억 때문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성좌와의 대화는 성애자(星愛者)에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성좌들에게 받을 수 있는 권능의 힘, 즉 스킬의 강화를 위해선 대화가 필수였으니 말이다.

물론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성좌마다 각자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내가 프로메테우스와의 대화에 성공했던 것은 그의 조건에 부합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프로메테우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왜 부르냐며 말합니다.]

"내가 맛있는 거 해줄 테니까. 레이트라 녀석 입 열게 만들어."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입가에 미소를 그립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레이트라를 보며 사악하게 웃습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프로메테우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습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반격에 실패합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딱밤을 얻어맞습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멍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보던 김수정이 폭소를 터트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그녀도 성좌들의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내심 그녀가 소외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반딧불성, 카미유가 한심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봅니다.]

* * *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레이트라는 결국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진실을 알게 된 우리들은 충격에 빠졌다.

김수정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음의 문턱에 가야 대화를 할 수 있다고? 거기다가 극한의 상황이어야 해? 무슨 대화 조건이 그래?"

그녀가 하는 말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조건인데. 게다가….

[주먹성, 레이트라가 한숨을 쉽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이래서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이 녀석. 소룡이가 걱정돼서 말하지 못했던 건가.

하긴 수련밖에 모르는 외골수인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면 분명 시도를 해볼게 뻔했다.

레벨도 어느 정도 있는 녀석이 그런 짓을 반복했다가는 레벨이 떨어져 약해질 게 뻔했을 테니까.

"소룡아."

"예, 형님."

"어쩔 생각이냐."

"모르겠습니다. 한번 시도해볼까 싶기도 하고."

견소룡이 손목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자, 레이트라가 노발대발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강력하게 만류합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인위적인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오직 극한의 전투 후에만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극한의 전투라….

과연 레이트라 다운 조건이라고 해야 하나.

어쩔 수 없지.

나도 거들어야겠군.

"일단 지금은 시도하지 마라. 나중에 내가 방법을 찾아볼 테니까."

"…노력해보겠습니다."

…이 자식 지금 내 말 알아들은 거 맞겠지?

조금은 찝찝했지만, 거기까지 하기로 했다.

우리들은 계속해서 디야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잘게 부서진 눈보라가 새하얀 모래처럼 우리들을 향해 날렸지만, 솔라가 있어서 괜찮았다.

정말이지 편리한 녀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30분 정도 흘렀을까.

내 눈에 이채가 어렸다.

저게 뭐지…?

초감각으로 올라간 시력이 무언가를 짚어냈다.

저 멀리 조그만 것이 눈 속에 파묻혀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한 것 같아서 뛰어가 확인해보기로 했다.

뒤에서 김수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왔다.

견소룡과 드레인도 마찬가지.

"아버님, 갑자기 어디 가세요?"

"저기에 뭔가가 있다."

"네? 아무것도 없… 어, 진짜네? 저게 뭐지?"

조금 가까워지자 김수정도 그것을 발견한 듯했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그곳을 향해 달렸다.

일행들이 모두 따라왔고, 우리들은 곧 움직이는 물체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눈 속에 파묻힌 노란색 다리가 뒤뚱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김수정이 입을 열었다.

"어머, 생각보다 귀엽네? 이게 뭐지?"

그녀가 눈 속에 파묻힌 다리를 들어 올리자 분홍색 몸통을 가진 조그만 펭귄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귀여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웃음을 지었다.

"꺅~ 새끼 펭귄이잖아! 귀여워♡"

그녀의 말과 동시에 모두의 입가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조그만 솜사탕이 움직이는 것 같은 앙증맞은 귀여움.

하지만 나는 내심 놀라고 있었다.

황제펭귄의 새끼잖아…?

사실 몬스터라고 해서 모두가 난폭하고 사나운 것은 아니다.

동물들 중에서도 육식동물이 있고 초식동물이 있는 것처럼, 몬스터들 중에서도 나름 얌전하고 순수한 녀석들이 있다.

눈앞에 있는 황제펭귄이 그들 중 하나였다.

어느새 땅에 내려온 아기펭귄이 우리를 향해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펭펭~♡"

"꺅, 귀여워! 어떻게~♡"

아기 펭귄의 애교에 녹아버린 김수정이 앉은 자세로 펭귄과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황제펭귄은 빛나는 것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습성이 있다.

특히 아직 사춘기가 되지 않은 유아기인 분홍색일 때가 가장 심한 시기였다.

"조심…."

"어머!"

아기 펭귄이 그녀의 목에 있는 빛나는 목걸이를 빼앗은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젠장. 늦었군.

엄청난 손기술이었다.

아마 이제 자기 엄마를 향해 도망을 칠 것이다.

그럼 저 목걸이는 이제 찾지 못하겠지.

만약 강제로 빼앗으려 했다가는 울면서 엄마를 부를 것이다.

그럼 근처에 있던 '엄마 펭귄'과 결전을 벌여야 한다.

사실 찾고 싶어도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빌어먹을.

멸종 위기종이라 꺼려지기도 하고, 황제펭귄은 이곳 북극에 있는 성격 드러운 '그 녀석'의 유일한 거래자이기도 했다.

만약 물건을 빼앗기 위해 황제펭귄을 죽이게 된다면 '그 녀석'이 죽을 때까지 쫓아 올 것이다.

…아마 뼛속까지 얼려서 죽여버릴지도.

가능하다면 그와는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 녀석은 이곳에 있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성격이 드러운 녀석이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말했다.

"수정아 아무래도 목걸이는 포기하는 게 좋겠…."

폭.

응…?

갑자기 밑에서 엄청 보드라운 질감이 느껴졌다.

무언가 폭하고 안겼는데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마치 솜사탕 구름처럼 포근한 것 같은 그런 느낌… 엥?

"야, 너 왜 안 가냐…?"

아기 펭귄이 커다란 눈망울로 날 보고 있었다.

조그만 분홍색 펭귄이 애교를 부리며 입을 열었다.

"마마~♡"

내 성별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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