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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56화 (55/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56화

제56화

…오크들이 쳐들어왔다고?

순간, 미간이 구겨지며 주름을 만들었다.

라그너스 놈을 죽이면 고르바의 세뇌가 풀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자세히 말해보거라."

- 지금 오크들이 윈디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어요. 케레노스가 자신들의 힘으로는 부족하다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케레노스가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라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녀석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데, 그렇게 말했다면 생각보다 피해가 심각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때 보았던 오크 병사들을 떠올렸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흉악함이었다.

…내가 너무 안이했어.

그때 고르바라는 놈도 함께 처리했어야 했다.

뛰어노는 오크 아이들을 보며 최대한 그들의 평화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았다.

어쩌면 이젠 틀렸을지도.

"혹시 오크 족장도 함께 쳐들어왔니?"

- 아니요. 그런 오크는 안보였어요.

…그렇다면 승산이 있겠군.

"최대한 빨리 가마."

- 네, 아버님. 기다릴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옆에 있던 미도가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크가 쳐들어와요?"

"오크들이 윈디아를 침략했다는구나."

"네? 할아버지 지금 윈디아에 있지 않아요?"

"그래. 지금 쑥대밭이 되고 있데."

옆에 있던 정도가 끼어들었다.

"그거 큰일인데요. 오크들의 평균 레벨은 100이에요.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윈디아의 기사들로는 역부족일걸요?"

제기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시 들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뒤에서는 여전히 클락션이 연속적으로 울렸다.

차에서 내리자 빵빵거리는 소리가 멈추었고, 뒤에 있는 그들에게 잠깐 손을 들고는 앞에 있는 외제차 앞으로 다가갔다.

마침 차주의 번호가 유리창 너머로 보였다.

…X벌. 어떤 망할 놈인지 목소리나 들어보자.

나는 전화기를 들고 곧장 그곳으로 전화했다.

뚜르르르.

잠깐의 신호음이 이어지더니 누군가 받았다.

생각보다 젊은 청년의 목소리.

- 큼, 여보세요.

"혹시 XX골목에 주차한 차주 맞습니까?"

나는 초면에 반말부터 꺼내지 않았다.

물론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대화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은가.

- 예. 그런데요.

"차 좀 빼주겠습니까? 여기 차들이 못 지나가고 있는데, 살짝 뒤로만 빼주면 될 것 같소만."

-아, 난 또 경찰인 줄 알고 쫄았네. 차 번호가 뭐예요? 제 차가 여러 대라.

청년은 금방 잠에서 깬 건지 목이 잠긴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짜고짜 반말을 찍찍하기 시작했다.

"2018로 되어있소만."

- 아, 그거…. 근데 나 지금 해외라 못 빼줘.

…해외라고?

"그럼 어떡하란 거요. 난 여길 지나가야 되는데."

- 돌아가면 되잖아?

"아니, 보통 이런 경우 주차를 잘 못했으면 '죄송합니다'란 말이 먼저 나와야 정상 아니오?"

나는 끝까지 예의를 차렸다.

하지만 전화기 건너편에 있는 상대방은 그러지 않았다.

- X발 다 큰 노인네가 뭔 말이 이렇게 많아! 돌아가라면 돌아갈 것이지! 아이씨, 자다 깨서 열 받아 죽겠네. 끊어! 이 영감탱이야!

뚝-.

"허어. 이 새끼 봐라…?"

뒤에서는 여전히 클락션을 울리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무슨 상황인지 살펴보지도 않으려는 것 같았다.

아, 오랜만에 뚜껑 열리네….

어쩔 수 없이 나는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다시 차 안으로 돌아오니, 손주들이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 뭐래요?"

"이쪽으로 온대요?

나는 아까 전 그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면에서 깊은 분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는 손주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꽉 붙잡아라."

"네?"

"왜요?"

"이유는 묻지 말고 뭐라도 잡아."

손잡이를 꽉 붙드는 손주들.

그와 동시에 흰둥이의 클락션을 울렸다.

빠아아아아앙-!

뒤에 있던 차들은 내가 보복이라도 하는 줄 알고 함께 빵빵거리고 있었다.

나는 백미러로 그들을 힐끔 보고는 엑셀을 밟았다.

콱.

끼리리리리리릭!

흰둥이의 바퀴가 갑작스런 발진에 연기를 피우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손주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 뭐야?!"

"할아버지?!"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튀어나간 흰둥이는 앞에 있는 외제차의 옆을 스치며 우지끈! 하는 소리를 냈다.

그와 동시에 차가 살짝 벌어지며 사이드 미러가 떨어져 나간 것이 보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뒤에 있던 차들은 멍하니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중지를 올리며, 유유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잠시 후 도로변으로 나오자, 미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할아버지, 괜찮을까요? 저거 꽤 비싼 차 같던데…."

"저런 몰상식한 놈들이 모는 차는 똥차만도 못한 거다."

정도와 미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케레노스는 계속해서 오크 전사들과 싸우고 있었다.

실피드 기사단에겐 주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맡겼다.

그는 최전방에서 오크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돌풍!"

불어오는 바람이 일제히 부채꼴로 산개하며 오크들의 전신을 베고 지나갔다.

엄청난 공격횟수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다.

"크워억! 인간 제법이구나!"

가까스로 돌풍의 범위에서 벗어난 오크 하나가 달려들었다.

한 발자국 내딛을 때마다 땅이 울었고, 위협적인 도끼가 휘둘러졌다.

케레노스는 어느새 폭풍창의 두 번째 묘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선풍!"

츠카카칵.

거대한 회오리가 오크를 집어삼켰다.

어느새 피투성이가 된 오크는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동시에 또 다른 도끼가 날아들었다.

'…젠장. 끝이 없잖아.'

역시, 혼자서 이 많은 오크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다.

마을 사람들이 남문으로 빠져나갈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느새 그의 마력은 절반도 남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나타났다.

"패스트 힐, 블레스, 성스러운 축복, 빛의 가호."

갑자기 체력과 마력이 조금씩 회복되며 충만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아는 사람이었다.

케레노스가 입을 열었다.

"너무 늦었잖아."

"지금 와준 것도 고맙게 생각해."

"영감님은?"

"금방 오실 거야."

금방 온다는 말이 왜 이리 든든한지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감님에게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데 오크들이 달려왔다.

"젠장. 또 오네."

"잡을 수 있겠어?"

"네가 도와준다면."

"좋아. 뒤는 나에게 맡겨."

꽤나 믿음직한 그녀의 말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케레노스가 다시 창을 잡았고, 30분이 흘렀다.

"후우, 힘들어 죽겠네."

"너도 대단하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거짓말 치시네."

그녀의 말에 피식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치열했던 싸움의 흔적이 보였다.

케레노스는 입이 바짝 말랐다.

'그 활기찬 시장이 폐허가 되다니.'

자신의 고향 윈디아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파공음이 들려왔다.

아직도 불에 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부단장인가.'

"난 괜찮다. 베커. 마을 사람들은 잘 피신한 거냐."

"네, 모두 남쪽으로 피신시켰고, 일부 기사단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주님이 따라 오셨습니다."

"뭐?"

베커의 뒤에서 영주가 튀어나왔다.

"케레노스."

"아니, 영주님? 여긴 왜… 제가 마을 사람들과 있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곳은 아버님이 목숨 걸고 지킨 곳이야. 나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

'…제기랄.'

어쩌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인 칼리아 백작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윈디아를 위해 싸우다 죽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왔던 에드워드였으니 이런 반응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는 아직 어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길 오면 어떡합니까?"

"내 마음이야! 난 영주라고!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해?!"

"아니,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여긴 전쟁ㅌ…."

땅땅땅땅땅-!

'이 소리는…?'

순간, 동문을 향해 고개가 돌아갔다.

한 병사가 남은 힘을 쥐어짜며 종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뭐라고 외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았다.

"베커, 천리경."

"여깄습니다."

천리를 내다볼 수 있는 마법 무구로 보니, 병사는 바깥을 가리키고 있었다.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누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무리가 있였다.

저거 설마…?

"돌겠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불안한 표정의 에드워드가 물었다.

"오크들이 또 오고 있습니다."

* * *

아.스.라 커뮤니티가 들썩였다.

그 이유는 바로 윈디아를 강타한 오크의 침략 때문.

지금 그곳은 윈디아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 제목: 윈디아 전쟁 났다!

- 제목: 오크들이 윈디아에 쳐들어옴!

- 제목: 윈디아 지금 완전 쑥대밭됨.

- 제목: 난이도 S 랭크래!

쉬지 않고 올라오는 게시글.

그중 가장 핫한 것은 바로 퀘스트의 내용을 캡쳐한 글이었다.

순식간에 무려 수만 개의 추천이 올라간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제목: 현재 윈디아에서 진행중인 퀘스트 내용.]

난이도: S

윈디아의 북쪽에 살던 오크들이 전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의 습격에 맞서 싸우며, 윈디아의 병사들과 함께 오크들을 막는다면 공헌도와 함께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퀘스트 완료 조건: 오크 족장의 죽음

-처치한 오크의 수 : 0명

-오크 전사 공헌도 : 500

-오크 투사 공헌도 : 1,000

-오크 족장 공헌도 : 100,000

*보상: 알 수 없음 (공헌도에 따라 차등 보상)

*퀘스트 실패 시 윈디아는 오크들의 땅이 됩니다.

현재 윈디아에서 진행 중인 오크와의 전쟁 퀘스트입니다.

난이도는 무려 S 랭크로 그곳에서 다른 유저들과 파티를 맺어 싸우려 했던 저는 방금 전 오크에게 사지가 찢겨져 로그아웃을 당했습니다.

난이도 S답게 오크의 레벨은 기본 100부터 시작하구요.

아마 윈디아는 곧 멸망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밑으로 이어진 수만 개의 댓글.

- 미쳤네. 저기 원래 레벨 45짜리 레이드 하던 곳 아님?

- 맞음. 근데 레벨 100? 미쳤다.

- 지금 내 친구도 저기 있다가 오크한테 한 대 맞고 죽었다고 함.

- 윈디아 멸망하는 각인가요.

- 근데 저기 망하면 저레벨들 이제 어디서 사냥해야 됨?

- 내 말이.

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윈디아는 이제 멸망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멸망파'와 그래도 윈디아가 호락호락하진 않다고 주장하는 '비멸망파'가 나뉘어 싸우기 시작했고, 각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도 1위에 윈디아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1위. 윈디아

2위. 윈디아 전쟁

3위. 오크 침략

그야말로 윈디아는 지금 아크스타에서 가장 뜨거운 냄비와 다름없었다.

* * *

한편 이것을 기회라고 생각하는 유저들도 있었다.

그들은 바로 [무역도시 포트렌] 에 있던 유저들.

윈디아와 포트렌 사이의 거리는 뛰어가면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정도였다.

그들 대부분이 100레벨에 가까웠고, 이 소식을 들은 유저들은 파티를 맺고 단체로 윈디아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공헌도를 쌓아서 귀족이 될 기회!"

"나는 영지를 얻을 테야!"

"드디어 나도 귀족이 될 수 있는 건가!"

그들의 목적은 분명했다.

공헌도를 얻어 영지를 가지게 된다면 막대한 부는 물론, 세력을 가질 수 있기에 그들로서는 다시없을 기회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 아닌 사람도 있었다.

"대박. 저 사람 '견소룡' 아니야?"

"맞아. 요즘 중국에서 권왕으로 유명한 분이잖아!"

"8인의 초신성 중 한 명을 보게 될 줄이야!"

8인의 초신성.

그것은 최근 스타 프루츠를 먹어 성좌의 능력을 얻게 된 8인 중 한 명을 일컫는 말이었다.

견소룡은 자신을 바라보는 유저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걸었다.

[주먹성, 레이트라가 얼른 싸우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 녀석도 얼른 싸우고 싶은 모양이군.'

그가 먹은 스타 프루츠는 2등성이었다.

먹자마자 2등성에 해당하는 성좌들이 그를 주시했고, 다양한 별명을 가진 성좌들 중 가장 눈에 띈 게 바로 이 녀석이었다.

'천둥을 내지르는 자.'

이 별명을 보자마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춘권을 익혀 배우로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자신은 배우라기보다는 무인에 가까웠다.

그렇게 50대에 접어든 자신의 몸은 점점 느려졌다.

천둥보다 빠른 주먹을 내지르겠다는 어렸을 적 꿈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실감을 탈피하기 위해 아크스타를 시작했는데, 우연히 먹은 스타 프루츠에서 레이트라를 만나게 된 것이다.

"가자. 레이트라. 강자를 만나러."

[성좌 스킬, '뇌보법'을 활성화시킵니다.]

[번개의 기운이 신경을 자극합니다.]

[순간 가속력이 3배 증가합니다.]

꽈르릉-!

푸른 번개가 윈디아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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