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고 다 젊은이 055화
제55화
"저, 전쟁…?!"
갑자기 종이 치더니 전쟁이라니,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김수정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리고 눈앞에 뜨는 창.
[오크의 습격을 막아라!]
난이도: S
윈디아의 북쪽에 살던 오크들이 전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들의 습격에 맞서 싸우며 윈디아의 병사들과 함께 오크들을 막는다면 공헌도와 함께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완료 조건: 오크 족장의 죽음
-처치한 오크의 수 : 0명
-오크 전사 공헌도 : 500
-오크 투사 공헌도 : 1,000
-오크 족장 공헌도 : 100,000
*보상: 알 수 없음
(공헌도에 따라 차등 보상)
*퀘스트 실패 시 윈디아는 오크들의 땅이 됩니다.
*8인 이상의 파티를 권유합니다.
"난이도 S라고??"
생전 처음 겪어보는 난이도에 덜컥 두려움이 들었다.
물론 보상이 무엇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오크들을 막고는 싶었지만, 문제는 자신이 직업이 성직자라는 것이었다.
'난 큰 도움이 되지 못해.'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은 버프나 힐을 해주는 정도였다.
그것도 함께하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일. 지금 자신의 주변에는 도로시와 다니엘밖에 없었다.
그때, 또 한 번 타종 소리가 들려왔다.
땅땅땅땅땅-!
이번엔 윈디아 전역을 울리는 종소리.
그 불길한 소리와 동시에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습격이다! 오크들이 오고 있다!"
김수정은 곧장 밖으로 나왔다.
이곳은 언덕이었기에 동쪽의 상황을 훤하게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오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윽고, 그들이 동문에 이르자 혼란이 일었다.
"크워어어어억-!"
포효하며 닥치는 대로 부수기 시작하는 그들.
아파트 2층 정도 되는 덩치를 가진 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오니, 공포감이 한층 배가되는 것 같았다.
어느새 옆에는 겁에 질린 도로시가 서있었다.
김수정이 외쳤다.
"어서 다니엘을 데리고 절 따라와요!"
"네…? 아, 네!"
이미 동쪽은 아수라장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꺄아아아악! 도망쳐!"
"으아악! 오크다!"
"살려줘!"
갑작스레 들이닥친 오크들 탓에 동쪽 성문은 닫히지 못한 상태였다.
그 틈으로 오크들이 들어와 난장을 피우자, 병사들의 희생 또한 커져갔다.
"크워어어억-! 죽어라!"
"죽음으로 돌아가라! 취이이익!"
"어서 공격해! 막아!"
"어서 영주성에 이 사실을 알려!"
동문의 병사들은 최선을 다해 막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오래 버티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도 안전하진 못해.'
동문과 이곳과의 거리는 가까운 편이었다.
김수정은 현재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렸다.
'케레노스.'
그녀는 빠른 속도로 두 사람에게 버프를 걸었다.
"빛의 보호, 성스러운 축복, 블레스."
이번에 레벨이 오르며 새로 배운 스킬 블레스도 마지막에 걸어주었다.
갑작스런 축복에 한결 몸이 가벼워진 두 사람은, 아까 전처럼 공포에 질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수정이 말했다.
"영주성으로 달려요!"
* * *
네덜란드 유저. 앤드류.
그는 자신의 조국 네덜란드를 닮은 윈디아를 좋아했다.
레벨은 낮지만 이곳을 기반으로 해서 길드를 만들고 사냥도 하며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다.
그렇게 평화롭던 윈디아에 갑자기 전운이 감돌았다.
[전쟁발발! 퀘스트 <오크의 습격을 막아라!> 가 시작됩니다!]
이 메시지는 자신에게만 뜬 것이 아니었다.
윈디아에 있던 모든 유저들에게 동시 다발적으로 뜨고 있었다.
그것은 그와 함께한 길드원들도 마찬가지였고, 어느 순간 주변에서 외치는 소리가 달라졌다.
"오크 잡으실 파티원 구합니다!"
"오크 원정 파티 현재 5명입니다! 어서 모이세요!"
"뒤에서 지원 사격 하실 궁수님 안계신가요? 한 자리 남았습니다!"
어느새 오우거를 잡는 파티에서 오크를 잡는 파티로 태세 전환이 된 상태였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파티를 맺은 유저들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동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함께 있던 길드원들이 말했다.
"앤드류. 우리도 얼른 동문으로 가자."
"그래, 우리도 얼른 가지 않으면 공헌도를 놓치고 말 거야."
"어서 가요. 길드장!"
칼루아, 유토, 시리아, 자이스, 유리, 코타 등등. 오늘 그들은 자신과 함께 코볼트 광산을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공헌도를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현재 이곳에 정착중인 그들에게는 천금 같은 기회인 것이다.
그들은 서둘러 동문으로 향했다.
그곳은 이미 유저들의 첫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첫 번째 오크다! 궁수 선제공격하고 마법사는 주문 캐스팅 시작해!"
피융! 피피융!
궁수들이 쏜 화살이 집을 부수고 있는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그곳은 이미 먼지가 가득 피어 있었다. 이어지는 마법이 오크에게 작렬했다.
"파이어 볼!"
"아이스 애로우!"
"라이트닝!"
먼지와 폭연이 뒤섞이며 오크가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앤드류는 속으로 생각했다.
'별거 아니네. 금방 잡겠어.'
하지만 이어지는 광경에 앤드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크르르. 인간 놈들…! 취이익!"
[Lv. 100 오크 전사]
연기를 뚫고 달려오는 오크의 레벨은 자신의 상상을 가뿐히 초월하고 있었다.
"레벨 100이라고?!"
평소 50레벨 이하의 몬스터들만 보다가 처음으로 100레벨 대의 몬스터를 마주한 앤드류는 멘붕 상태에 빠졌다.
그것은 다른 유저들도 마찬가지였고, 멘탈을 부수기라도 하듯.
오크 전사의 도끼가 앞에 있던 기사와 탱커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하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한 번의 도끼질에 앞 열에 있던 파티는 전멸했고, 비산하는 먼지 사이로 또 다른 도끼가 날아왔다.
무너지는 건물을 보며 앤드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역부족이야!"
"도망가!!"
"꺄아아아악!"
앞에 있던 파티는 어느새 흩어지고 있었다.
자신들의 차례가 되었고, 오크가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부길드장 유토가 다가왔다.
"우리 네드란 길드의 힘을 보여주자고. 앤드류."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죽을지도 몰라."
"이곳은 우리의 터전이야."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앤드류는 현실에선 굉장히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성격을 고치기 위해 아크스타를 시작한 케이스였다.
유토는 아크스타에서 알게 된 친구였고 그는 자신과 달리 자신감이 가득한 친구였다.
늘 배울 점이 많았고 네덜란드인으로서 자부심도 대단했다.
'그래. 어차피 게임인데 뭐 어때?'
앤드류가 외쳤다.
"다들 가자! 윈디아를 위하여!!"
이어지는 길드원들의 함성과 함께 달려오는 오크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오크는 만만치 않았다.
2배 가까이 차이나는 레벨의 벽은 극복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크워어어어억~!!"
성난 도끼가 움직일 때마다 길드원들이 한 명씩 로그아웃 당했다.
아무리 집단 공격에 장사 없다지만, 너무 강했다.
그렇게 오크 전사의 생명력이 반쯤 닳았을 때는 이미 길드원 중 절반이 로그아웃을 당한 상태였다.
'역부족인건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할까?'
아니.
'이렇게 도망치면 다른 녀석들 볼 면목이 없잖아.'
"죽을 때 죽더라도 발등에 할버드는 꽂아야지."
앤드류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버프들을 사용했다.
어렵게 얻은 영웅 클래스 직업인 [철혈의 워리어]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었다.
"전사의 용맹, 도끼의 메아리, 철혈의 마음."
[전사의 용맹이 공격력을 2배 상승시킵니다.]
[도끼의 메아리가 50% 확률로 방어를 무시합니다.]
[철혈의 마음이 공격속도와 명중률을 1.5배 상승시킵니다.]
"내가 명색이 길드장인데, 한방 먹이지 못하면 자존심이 안 선단 말이야."
어느새 눈앞에 휘둘러지는 도끼가 보였다.
가까스로 피해낸 앤드류는 오크의 발등에 지금 가진 최고의 공격스킬을 꽂아 넣었다.
"철혈의 단두대."
콰지직!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방어를 무시합니다.]
[대상에게 3,810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크워어어어억!"
갑자기 느껴지는 발등의 통증에 비명을 지르는 오크.
데미지가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크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크워억! 죽음으로 사죄해라!!"
거대한 도끼가 내리쳐졌다.
앤드류는 눈을 감았다.
'여기까지인가.'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폭풍창 제 2식."
갑자기 느껴지는 바람에 앤드류의 눈이 떠졌다.
고개를 돌리니 누군가 창을 회전시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는데, 그가 창을 내질렀다.
"선풍!"
휘오오오오!
피핏! 피피피핏!
창이 만들어낸 거대한 회오리가 오크의 도끼를 되돌리며 몸 구석구석을 상처 입히기 시작했다.
바람의 난도질에 오크는 비명을 질렀고, 다가온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다.
"용기 있는 친구로군. 괜찮나?"
그의 머리 위에는 케레노스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 * *
"헉, 잠깐만요."
북쪽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도로시가 숨을 헐떡였다.
그 모습을 보며 김수정이 말했다.
"괜찮아요? 미안한데 아직 더 달려야 해요. 오크들이 벌써 동문을 넘어 이곳으로 오기 시작했어요."
"허억, 알아요. 하지만. 아니, 동생이라도 먼저…."
"누나! 얼른 가자! 다 같이 가는 거야!"
"다니엘…."
우애 있는 남매의 모습은 좋았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오크 한 마리가 이곳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수정이 말했다.
"업혀요."
"네?"
"시간 없으니깐 업히라구요!"
도로시는 재빨리 등에 업혔지만, 누군가를 업고 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결국 금세 따라잡히고만 김수정.
그녀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결국 여기까진 건가."
누군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선풍!"
갑자기 날아온 회오리바람이 오크를 할퀴며 넘어트렸다.
쿠웅! 하는 소리를 내며 지진이 일었고,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냐?"
"케레노스!"
"어서 도망가.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
'우리…?'
그의 뒤에 도열해 있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민간인들을 대피시켜라! 실피드 기사단!"
"단장님의 명을 받듭니다!"
우렁찬 목소리에 순간 등골이 찌릿하며 소름이 돋았다.
이들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시와 다니엘은 이제 안전할 것이다.
케레노스가 물었다.
"영감님은?"
"오늘 등산가신다고 늦게 오신대."
"등산? 제길, 하필 이럴 때…."
"내가 연락해볼게."
"빨리 와야 해. 오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우리들로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지도 몰라."
그와 동시에 넘어진 오크 전사가 포효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일어난 녀석이 마주 달려오고 있었다.
케레노스가 창을 겨누며 소리쳤다.
"어서가! 어서 영감님을 데려와!"
"알았어! 죽지 마!!"
김수정은 달려가는 케레노스를 뒤로하며 로그아웃을 했다.
* * *
한편, 나는 조금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빠아아아아앙-!
뒤에서 울리는 클락션 소리.
우리들은 지름길을 통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로 왔는데, 골목에 갇혀버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바로 앞에 있는 한 외제차 때문이었다.
"거 앞에 안 갑니까?!"
…환장하겠네.
눈앞에 있는 외제차는 아주 교묘하게 골목을 지나갈 수 없도록 주차가 되어 있었다.
또 한 번 울리는 클락션 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손주들이 입을 열었다.
"아, 너무 진상인데. 왜 저렇게 주차를 한 거지."
"할아버지, 차 주인을 불러와야 하지 않을까요?"
손주들도 조금 화가 났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 있었다.
나도 열 받는데 두 사람은 오죽할까. 전화가 울린 건 그때였다.
수정이의 전화.
"그래. 수정아, 나 지금 좀 늦…."
- 아버님, 큰일 났어요!
"……?"
무언가 심상치 않은 낌새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 윈디아에 오크들이 쳐들어왔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