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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다 젊은이-44화 (43/375)

나 빼고 다 젊은이 044화

제44화

라그너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긴 놀랄 만도 했다.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건 저놈이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그것은…!"

"그래, 자이언트 킹 스파이더는 내가 때려잡았다."

녀석과 싸우던 순간이 떠오르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이었지.

8개의 다리, 8개의 눈.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나에게 거미는 혐오 그 자체였다.

"크으윽! 이노오옴!! 용서하지 않겠다!!! 키이이이잇!!"

"좋은 게 있으면 나눠먹고 해야지 이놈아. 쯧쯧."

"닥쳐라! 절망의 늪지대!"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라그너스가 절망의 마법을 방출했다.

발밑에 보이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기운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한번 본적이 있었기에 재빨리 자리에서 뛰어 올랐다.

콰득- 콰드드득-

"워매, 염병할 꺼."

땅을 뚫고 올라오는 엄청난 수의 손들을 보니 모골이 송연하다.

다시 한번 드는 생각인데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둠의 화살."

"음!"

콰아앙!

갑자기 날아온 날카로운 피사체가 내 가슴을 때렸다.

나는 폭발의 여력으로 윈디아의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버렸다.

제법 강력한 공격에 나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끙."

"영감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내가 너무 방심했나.

그동안은 너무 쉬운 상대를 만나왔던 모양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싸움에 능숙한 것이 분명했다.

나는 전력을 다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최고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슥. 스슥. 스슥.

옅은 잔상을 남기며 움직이자 놈이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나타난 곳은 퀸 스파이더의 오른쪽 다리.

나의 다리와 놈의 다리가 만나 폭발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영혼 갈취."

…뭐?!

순간, 오싹한 소름과 함께 나타난 라그너스가 오른쪽 어깨를 부여잡았다.

나는 녀석에게 뒤를 붙잡힌 채,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 했다.

"크아악!"

[영혼 갈취에 당하였습니다. 생명력을 1초당 0.5% 빼앗깁니다.]

엄청난 흡수력이었다.

순식간에 122 가량의 생명력을 흡수당한 나는 잠깐이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발차기의 궤도를 바꿔 라그너스에게 휘둘렀지만, 그곳엔 이미 라그너스는 없었다.

…피했다고?

"어둠의 화살!"

다행히 이번엔 맞지 않았다.

뒤에서 들리는 녀석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재빨리 놈과의 거리를 벌렸다.

…이놈, 강하다. 반응 속도가 보통이 아니야.

믿을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늙고 힘들어 보이는 몸으로 자신의 공격을 모두 읽고 있었다.

설마하니 나만큼 노익장을 과시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킬킬킬. 과연 대단하군. 킹 스파이더를 처치할 만한 실력이야. 하지만 퀸 스파이더의 내단을 섭취한 나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을 거다."

퀸 스파이더의 내단…?

뭔가 이름이 비슷한 게 킹 스파이더의 내단이랑 연관이 있어보였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몸에 좋은 것은 틀림없었다.

저 빌어먹을 놈이 내 공격을 피한 걸 보면 말이다.

"혼자 먹으니깐 좋냐?"

"시끄럽다!"

라그너스가 다시 절망의 늪지대를 시전했다.

아까 겪었던 공격인지라 쉽게 피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시이이이익!!!"

이 망할 거미 놈이…!

앞발로 사정없이 내려찍기 시작하는 퀸 스파이더.

녀석의 앞발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콰앙! 콰앙! 콰앙!

땅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피어올랐다.

녀석이 라그너스와 협공을 펼치기 시작하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왔다.

"니미럴."

나는 그들의 공격을 피하는 것만도 숨 차, 진땀을 흘렸다.

정말 엄청난 연속 공격이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솔라를 소환하라고 말합니다.]

제길,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솔라!"

"주인아! 솔라가 왔다!!"

[사도 버프를 받았습니다.]

[30분 간 모든 능력치가 20% 증가합니다.]

[제1사도, 프로메테우스가 솔라의 몸에 빙의합니다.]

"영감! 라그너스는 내가 맡을 테니 저 거미를 처리해!"

어느새 솔라에게 빙의한 프로메테우스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이놈아! 이런 버프는 진작 줄 수 있으면 좋잖아!"

"나도 자주 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말과 동시에 라그너스를 향해 돌진하는 불덩어리.

라그너스는 갑자기 다가오는 불덩어리를 보며 당황하는 얼굴이었다.

"키잇! 어둠의 화살!"

콰쾅!

잠깐 솔라의 불꽃이 사그라지더니 금세 다시 타올랐다.

"큭! 그렇다면 더욱 큰 화염으로 집어 삼켜주마. 화염의 격노!"

라그너스의 뒤로 솔라만한 불덩어리들이 일제히 생겨나고 있었다.

마치 솔라의 형제들을 보는 듯한 모습에 나는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라그너스가 지팡이를 내리자 불꽃의 형제들이 날았다.

콰아앙!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속되는 폭발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의 화염 앞에 모든 것은 재가 될 것이다! 킬킬킬!"

…멍청한 놈.

화아아아아악!

폭연을 뚫고 아까보다 열 배는 커진 솔라가 튀어나왔다.

자신이 먹었던 불꽃 덩어리를 한꺼번에 토해내는 듯.

엄청난 크기의 화마가 라그너스를 덮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공격에 몸이 굳어버린 라그너스는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쿠아아아아앙!!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대상에게 13,021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폭발이었다.

로크산맥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 엄청난 폭발에 주변에 있던 윈디아의 기사들은 날아가버리고 나 또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영주님을 보호하라!"

폭염의 열기에 거미줄이 풀린 케레노스가 주변의 기사들을 향해 외치며 에드워드를 감쌌다.

우리나라에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주변에 있던 나무들은 이미 불에 타 잿더미가 되고 있었다.

라그너스가 피를 토했다.

"쿨럭! 이…럴수가! 어둠의 장막으로 몸을 보호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퀸 스파이더의 위에 있던 라그너스는 어느새 땅으로 내려와 있었다.

녀석이 몸을 비틀거리자 3분의 1이나 닳아 있는 생명력이 보였다.

아무래도 치명상을 입은 모양인데… 저놈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네놈뿐이겠지?"

"시이이이잇!!"

엄청난 폭발에 몸을 움츠렸던 퀸 스파이더가 크게 울부짖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폭발 소리에 지지 않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듯.

하지만 내겐 귀여운 모습일 뿐이었다.

"네놈 다리는 무슨 맛일지 궁금하구나."

나의 비웃음에 화가 났는지 퀸 스파이더가 앞발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볍게 피한 나는 녀석의 품으로 파고들며 아까 공격하려다 실패했던 다리에 분노의 발길질을 날렸다.

콰아아앙!

갑작스런 공격에 몸이 주춤하는 퀸 스파이더.

"시이이익!"

…확실히 킹 스파이더보다 강하네.

방어력도 높았고, 생명력도 많았다.

공격속도와 반사 신경 또한 남다르고, 전체적인 능력치가 한수 위였다.

스파이더맨 칭호로 인한 50%의 추가 데미지가 있음에도 생명력은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이걸 시험해봐야겠군."

그 말과 동시에 나는 뛰어 올랐다.

퀸 스파이더의 앞다리가 내리쳐졌기 때문이다.

엄청난 공격력에 땅이 쩍쩍 갈라졌지만 그곳에 나는 없었다.

이미 나는 퀸 스파이더의 앞다리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시이이이익!"

퀸 스파이더는 화가 났는지, 곧장 반대쪽 앞다리를 내질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썬 로드."

화르르륵!

마치 시동을 걸듯, 순간적으로 커졌다가 사라진 태양의 불꽃이 양발에서 포효했다.

발을 감싸고 있던 태양이 더욱 뜨겁게 타올랐고,

[태양의 에너지가 50 소모되었습니다.]

[15초간 이동속도가 2배로 증가합니다.]

[태양의 길을 걷는 동안 발걸음에 화염이 충만합니다.]

퍼어어어엉-!!!

요란한 폭발 소리와 함께 나는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을 공격하려 했던 앞발은 저만치 뒤에 있는 상태!

태양의 힘이 심장에 활력을 불어넣으며 뜨겁게 펌프질을 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대상에게 540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540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540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상이 상태이상 '화상'에 걸렸습니다.]

[대상에게 1,080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54의 화상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엄청난 속도로 뜨기 시작하는 메시지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치솟는 화염의 기둥들이 0.5초마다 지속적인 태양 데미지를 입히며 퀸 스파이더의 온몸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시이이잇! 시이이이잇!!"

퀸 스파이더는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팔을 흔들어 자신을 떨어뜨리려 해보았지만, 이미 나는 몸통 위를 달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썬 로드는 발걸음을 많이 디디면 디딜수록 많은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스킬.

오로지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파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차이가 나는 스킬이었다.

벌써 10초가 지났는데 녀석의 생명력은 절반이 닳아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지옥행 폭주기관차!

누군가 이런 기차를 한번 타보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극구 사양하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며칠 전 드레인에게 기분 좋을 때 하는 영어에 대해 물었던 것을 떠올렸다.

드레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워후-!!"

[대상에게 1,080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080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080의 태양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이프리트의 저주가 대상의 남아있는 생명력 5%를 태워버립니다.]

[대상에게 10,540의 화염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5초의 시간이 끝나고, 불꽃이 튀는 소리와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뒤는 그야말로 불의 지옥이라고 할 만 했다.

퀸 스파이더는 불의 지옥에서 몸부림치고 있었고, 나는 퀸 스파이더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대박."

손녀에게 배운 최고의 찬사였다.

"시이이이잇…! 시이이잇…!"

퀸 스파이더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화마와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

녀석의 생명력은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50%를 지나 40%.

30%.

20%.

급기야 10% 이하까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위력이었다.

그렇게 모든 불길이 차츰 꺼져갔고, 나는 구워지고 있는 퀸 스파이더를 향해 걸어갔다.

"당분간 거미 반찬이겠군."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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