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장. 원흉 (4)
회의의 주된 목적은 오늘 벌어진 방송국에서의 참극에 대한 경과를 설명하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여자의 구체적인 정체라든지, 행방까지 알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지만.
불행하게도 이것까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너무나 빈약하다.
게다가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이렇게 대놓고 나와서 우리들을 협박하고 함정에 빠뜨리려 시도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이곳에 참가한 사람들의 표정은 오늘 벌어진 일이 정말로 꿈이 아닌 현실인지, 이것조차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
데이브가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평화에 너무 찌들어 살았나 보군. 위기 상황이 되어도 지금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다들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거 같았어.”
데이브의 말이 오늘따라 매우 날카롭게 다가왔다.
사실 나도 은연중에 그걸 느끼고 있었다.
평화의 시대. 물론 좋다.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된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전쟁도 없고, 다수의 사람들이 몬스터에 의해 목숨을 잃을 걱정도 없고.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잠시간의 평화가 우리들을 나태하게 만들었다는 데이브의 말에 나도 부정할 수 없었다.
회의를 나누는 와중에도 나는 데이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몬스터들이 출몰해서 회의가 소집된 적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게이트가 아니라 남은 잔여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큰 위기감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드래곤이 나타났고, 녀석이 게이트를 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오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제2의 레이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눈앞에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나하고 데이브는 눈빛과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그 사람들을 옹호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드래곤이 쓰러진 뒤로 그 누구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질 거라고 생각 못 했을 테니까.”
“너도 그런가?”
“…….”
데이브의 말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드래곤을 쓰러뜨릴 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런 녀석이 언제든 우리가 사는 세계에 나타나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걱정은 가지고 있었는데, 레이드 시대가 이대로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같이 들었지.”
데이브는 짧게 혀를 찼다.
“아무튼 그 망할 놈의 거대 도마뱀이 다시 나타난 이상, 그 자식을 쓰러뜨릴 때까지 대책을 세우든가 해야겠군.”
데이브의 말에 나는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
잠시 연예계 활동은 중단하기로 했으니까.
그 시간 동안 나는 다시 훈련을 하면서 현역 때 활동했던 감각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생각이다.
확실히 예전만큼 몬스터들과 치열하게 싸울 일이 거의 없어지다 보니까 요즘은 몸이 좀 둔해졌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이 느낌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 인류의 수호자로 불릴 만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서.
‘오늘은 훈련 각인가.’
오래간만에 땀 좀 흘리러 가 봐야겠다.
* * *
회의가 끝나고 헌터훈련소로 이동하기 위해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이때.
“태오 씨.”
이철민 소장이 나를 잠시 불러세웠다.
“네, 소장님.”
“잠깐 드릴 말이 있습니다만.”
나한테만 긴히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소장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의 연구실로 향했다.
레이드 시대가 다시 열림으로 인해 연구실도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제 레이드 시대가 끝났으니까 연구실의 존재 의의도 사라진 거 아니냐고, 폐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냐는 의견이 마구 남발했었는데.
지금은 그 주장이 쏙 들어갈 만큼 바빠 보였다.
이철민 소장의 연구실로 향하는 길에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중간에 몬스터 사체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예민한 감각을 지녔다.
각성자다 보니까, 어쩔 수가 없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이철민 소장이 이에 대한 설명을 해 줬다.
“세 번 연달아 열린 게이트에서 쏟아졌던 몬스터들은 저희의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녀석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태오 씨가 더 잘 아시겠지만…… 그래서 새로운 녀석들의 데이터를 축적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태오 씨가 쓰러뜨렸던 몬스터 사체를 몇 개 양도받아서 연구실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 거였군요.”
“예. 저도 오랜만에 맡아 보는 냄새라서 그다지 유쾌하진 않더라고요. 몇몇 비위가 약한 연구원들은 구토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자신이 속한 기관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철민 소장은 제3자처럼 그다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 이철민 소장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사람이 아니라 연구하는 기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른 연구원들은 연구소에 진하게 풍기는 몬스터 사체의 냄새로 인해 고통 아닌 고통을 받고 있는데. 정작 이철민 소장은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 되었다는 사람치고는 제법 멀쩡한 표정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이철민 소장이 안내한 곳으로 향했다.
이곳에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내가 쓰러뜨렸던 몬스터들의 사체가 진열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 봤던 이철민 소장의 개인 연구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되어 있었다.
“뭔가 엄청 살벌한 인테리어로 바뀌었군요.”
“인테리어라…… 만약에 이런 취향의 인테리어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특이 취향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냥 웃자고 해 본 말이었다.
상황 자체가 웃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건 나도 잘 알긴 하지만, 그래도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 좋을 거 같기도 하지 않은가.
이철민 소장이 내게 의자 하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거기에 앉아 계시면, 제가 재미있는 걸 하나 보여 드리겠습니다.”
“재미있는 거 맞죠?”
“저한테는 재미 요소가 다분히 느껴지긴 했습니다만. 태오 씨한테는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이철민 소장 기준의 재미라면,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아 보였다.
아무튼 뭐, 나한테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알려 주려고 하는 거니까. 재미 유무를 따질 이유가 없었다.
일단은 듣는 게 우선이니까.
“여러 가지 복잡한 이론과 용어 들이 있는데, 태오 씨는 그런 거 좋아하는 편입니까?”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요.”
“알겠습니다. 그러면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대답할 거라고 예상한 모양인지, 이철민 소장은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켜면서 나를 좀 더 앞으로 가까이 오게끔 만들었다.
“일단은 태오 씨가 드래곤을 쓰러뜨렸던 사건을 분기점으로 1차 레이드 시대와 지금 시작된 2차 레이드 시대, 이 두 가지 경우로 나눠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회의 시간에 자주 언급되었던 규정이었기 때문에 크게 낯설 건 없었다.
“1차 레이드 시대에서 출몰했던 몬스터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최대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그때 출몰했던 모든 몬스터들의 사체에서 추출한 세포 반응을 살펴봤는데, 전부 A라는 물질에 반응했었습니다.”
“공통점이 하나 있네요.”
“예. 종은 다르지만, A라는 물질에 민감히 반응한다는 점은 다 똑같죠. 하지만 2차 레이드 시대에 등장했던 몬스터들은 다릅니다.”
“다르다고요?”
혹시나 해서 이철민 소장에게 되물었다.
이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네.’라고 짧게 답했다.
“지금까지 열린 세 번의 게이트. 여기서 등장한 몬스터들의 사체에서 추출한 세포들을 가지고 A 물질과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 이전과 동일한 실험 과정을 거쳤었는데…….”
이철민 소장이 영상 세 개를 연달아 보여 줬다.
앞서 보여 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상이었다.
“반응이 없습니다.”
“신기하네요. 이렇게 되면 이 소장님이 방금 말씀하셨던 ‘몬스터들은 전부 A라는 물질에 반응한다.’라는 전제가 깨지는 거잖아요.”
“예. 1차 레이드 시대에는 거의 정해지다시피 한 법칙이 이번 2차 레이드 시대로 인해 깨지게 된 거죠.”
“이런 경우가 있을 수가 있나요? 같은 몬스터들이잖아요.”
이에 대해 이철민 소장이 들려준 말은 아주 간단했다.
“그건 저도 모릅니다.”
모른다.
사실 이게 맞는 말이다.
게이트, 몬스터, 그리고 아이템과 각성 능력 등.
인간은 이쪽 분야에 관해 여전히 문외한이었다.
기존에 쌓아 왔던 과학기술과는 전혀 다른, 이세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들이니까.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연구하고, 배우고, 그리고 알아 가야 한다.
그게 이철민 소장의 역할이다.
“그러면 2차 레이드 시대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특이 케이스겠군요.”
“그런데 여기서 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이 소장에게 ‘재미있는 사실’이라는 건, 나한테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그냥 가벼이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재미없는 이야기에는 대부분 우리 헌터들이 알아 두면 유용한 내용이 많이 속해 있기 때문이었다.
“2차 레이드 시대의 몬스터들은 A라는 물질에는 반응하지 않았지만, B라는 물질에는 반응합니다. 그것도 한 마리만 그런 게 아니라 세 번의 게이트를 통해 차원을 넘어온 모든 몬스터들이 전부 다.”
“특이한 이야기네요.”
1차 레이드 시대의 몬스터와 2차 레이드 시대의 몬스터가 서로 다른 세포 반응을 일으킨다는 건, 다시 말해서…….
“놈들이 생성된 기원이 아예 서로 다르다는 뜻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이를 통해서 한 가지 가설을 세워 봤습니다.”
이철민 소장이 모니터 화면을 다시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2차 레이드 시대에 출몰한 몬스터들은 이전에 나타났던 몬스터들과 다른 차원에서 건너오고 있다고 말이죠.”
“다중우주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모 유명 히어로 영화 시리즈에서도 멀티버스 설정이 나온 거 같은데.
다중우주론은 학계에서도 꾸준히 주장되고 있었다.
특히나 레이드 시대가 시작되고 난 이후에는 이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게 되었다.
물론 증거는 없었다.
하지만 이철민 소장이 방금 말한 것처럼 놈들이 전혀 별개의 종족이고.
만약 정말로 이번 몬스터들이 이전 차원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별종들이라고 한다면, 다중우주론에 힘이 실리는 증거가 탄생할 수도 있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그 드래곤도 제가 쓰러뜨렸던 드래곤과 같은 차원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녀석이겠군요.”
“그럴 확률이 큽니다.”
대체 각각의 차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