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34화 (234/250)

제61장. 원흉 (3)

하늘에서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차라리 눈이나 비였더라면 참 좋았을 텐데. 흉측하게 생긴 괴물 놈들이 우수수 떨어지니까, 외관상으로 굉장히 안 좋아 보인다.

계속해서 몬스터를 썰어 가면서, 보스 몬스터가 어떤 놈일지 빠르게 찾아내려고 했다.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전부 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안 보이는데?’

보스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 방송국 내부로 쳐들어가고 싶지만, 그렇다고 이 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나 혼자서 방송국으로 이동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더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내가 몬스터들의 어그로를 적극적으로 끌고 있으니까 이 정도 피해로 그치고 있는 거지, 나조차도 없었더라면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이 되었을 것이다.

일단은 잡몹부터 빠르게 제거하기로 했다.

이때.

“……?”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아주 잠깐, 미세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 순간.

쿠웅! 소리와 함께 묵직한 무언가가 내 바로 앞에 떨어진 듯한 소리가 났다.

만약에 내가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내디뎠더라면, 이 일격에 허무하게 당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고 죽을 정도까지는 아닌데.

뭔가에 유효타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뭐지?’

분명 나를 공격한 놈은 있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여전히 잡몹밖에 보이지 않았다.

잡몹이 가한 공격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위력적이었다.

저 정도의 공격력을 지닌 잡몹이라면, 지금 여기 있는 민간인들뿐만 아니라 헌터들조차도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잡몹이 그렇게까지 강한 존재는 아닌데.

‘내가 잘못 본 건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다시 한번 바뀐 공기의 흐름에 나는 내가 느낀 이 위화감이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몸을 옆으로 돌리자, 묵직한 무언가가 나와 아주 가까운 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방 한 방이 굉장히 위력적이다.

여러 차례 보이지 않는 공격이 나한테 가해졌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녀석의 공격은 내 머리카락 하나 스치지 못한 채 계속해서 헛스윙으로만 끝났다.

이로써 깨달을 수 있었다.

‘투명화 마법이라도 사용했나 본데.’

이전에 등장했던 두 번째 게이트에서 투명화 스킬이 패시브로 장착되어 있는 갑옷을 두른 몬스터를 상대한 적이 있었다.

내가 상대한 건 아니고, 데이브가 일대일로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면서 고전 아닌 고전을 겪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 녀석은 갑옷이 아니라 자신의 몸 자체를 감출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 같다.

‘이런 놈들이 제일 상대하기 어려운데.’

인간은 상상 이상으로 시각에 많은 것들을 의존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보이는 게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특히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는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그런데 이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적을 만났다면, 과연 쉽게 상대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놈이 가한 공격들을 무의식적으로 피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긴 하다.

내가 자랑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웬만한 헌터였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즉사했을 것이다.

그만큼 상대하기 어려운 놈이 튀어나왔다.

‘녀석이 보스 몬스터일 가능성이 크겠네.’

이런 녀석을 상대할 때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지난번에 특수 범죄자가 마나 폭탄 테러를 일으키려고 했을 때 내가 사용했던 탐지 방식을 꺼내기로 했다.

마나를 최대한 옅게 주변에 퍼뜨렸다.

마나 탐지망에 녀석이 걸려들었다.

놈의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한 나는 최대한 모든 감각을 집중시키면서 녀석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그 결과.

‘바로 앞이군.’

몸을 뒤로 빠르게 뺐다.

다시 한번 ‘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내가 서 있던 바닥이 움푹 파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를 여러 번 놓친 게 약이라도 오른 모양인지, 녀석은 계속해서 나를 쫓아오면서 무기인지 꼬리인지 팔인지 모르는 것을 마구 휘두르며 위협을 가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휘두르기만 하면 내가 맞아 줄 거라고 생각했냐?”

들고 있던 검을 뽑은 뒤에 그것을 바닥에 꽂아 넣었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 파란 피 한 줄기가 주룩 흘러내렸다.

원래의 경우에는 머리를 잘라 버린다든지 심장을 도려내는 일격으로 몬스터를 즉사시킬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끝난 건 아니었다.

피로 인해 녀석의 대략적인 생김새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보니까 특이한 피부 덕에 자기 모습을 감출 수 있는 거 같은데.’

피가 묻은 피부 쪽은 투명화되지 않았다.

이러면 오히려 공략법이 간단해진다.

다시 한번 검을 바닥에 찔러 넣자, 여러 차례의 보이지 않는 칼질이 녀석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놈의 피부가 투명화에 단단하기까지 한 모양인지 내 예상보다 큰 상처들을 입히진 못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녀석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대충 윤곽만 알아낼 수 있으면 되니까.

여기저기 묻은 피로 인해서 녀석의 투명화는 무의미해졌다.

점점 놈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가 쓰러뜨렸던 잡몹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약간 덩치만 더 큰 정도. 그게 다였다.

아니지.

‘근력이 훨씬 세다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되겠지.’

어느 정도일지는 직접 맞받아쳐 보지 않아서 어떤지 잘 모른다.

뭐, 사실 알 필요까진 없었다.

“어차피 나한테 죽을 목숨이니.”

내 도발이 먹힌 모양인지, 녀석의 눈빛이 변했다.

들고 있던 몽둥이를 높게 추켜올렸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절로 혀를 찼다.

“그런 건 네 모습이 안 보였던 시절에나 통하는 거지.”

쿵!

다시 한번 헛스윙이 이어졌다.

“지금은 안 통해, 인마.”

들고 있던 검을 직접 녀석을 향해 겨눴다.

이번에는 땅에 꽂아서 원격으로 공격을 퍼붓는 형태가 아니라 직접 검을 휘둘러서 녀석의 팔을 잘라 내 버렸다.

이렇게 직접 물리적인 공격도 가할 수 있는 만능 아이템이다. 그래서 내가 주로 사용하는 메인 무기이기도 했다.

물론 레이드 시대가 끝난 뒤에는 한동안 사용 안 했었지만 말이다.

팔을 잃은 녀석의 입에서 비명, 아니 괴성이 흘러나왔다.

덩치가 큰 만큼 소리도 참 우렁차다.

듣기 싫을 정도로 말이다.

“입 좀 다물어라.”

스윽.

내가 휘두른 검의 궤적이 놈의 목을 정확히 노렸다.

일말의 저항 없이 녀석의 거대한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몸통과 머리가 분리되어 데굴데굴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방송국 위에 생성되어 있던 게이트가 크게 흔들거렸다.

점점 희미해지더니, 게이트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게이트가 소멸되었음을 확인한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한 차례 털어 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여유롭게 한숨 따위를 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 드래곤 녀석이 남았다.

* * *

방송국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건물 안에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진하게 풍겨 오는 피비린내.

몬스터의 피 냄새와는 전혀 달랐다.

인간의 피 냄새가 사방에서 풍겼다.

“…….”

방송국 안의 풍경을 보고서 나는 그대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생존자가 있을까 봐 아까처럼 마나를 옅게 퍼뜨려서 생존자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사람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다.

드래곤으로 추정되는 여자가 방송했던 스튜디오로 향했을 때.

녀석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스태프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시체만 널려 있었다.

아마 방송국에 들어온 순간부터 사람들을 전부 없애 버린 듯했다.

만약에 여기에 우리 누나가 있었더라면.

아마 누나도 이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망할.”

대부분 나와는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이 처참한 광경을 보고 무덤덤하게 반응할 자신까진 없었다.

* * *

대한민국의 한 대형 방송국 안에서 벌어진 참극.

나의 누나는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다수 잃었다는 충격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누나는 승훈이 형하고 누나 친구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마음 같아선 나도 누나 옆에 남아서 괜찮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드래곤 녀석의 학살이 언제 또 이어질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바로 협회로 향해서 협회장과 함께 차후 대책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데이브를 포함해서 S랭크 이상의 등급을 보유한 헌터들, 그리고 협회 관계자들이 하나둘씩 빠른 속도로 자리를 채워 가기 시작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하나같이 다 어두워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총 2백여 명의 희생자들이 나왔는데, 밝은 분위기를 형성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마지막으로 협회장이 이철민 소장과 함께 회의실에 모습을 나타냈다.

협회장 역시 무거운 표정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오늘 벌어진 참극에 대해서는 이미 다들 알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가자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브도, 나빈이도, 그리고 아이리스도. 모두가 다 침통한 표정으로 협회장의 말에 그렇다고 작게 답했다.

협회장이 작전본부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방송에서 테러를 자행했던 그 여자는 여전히 추적 중이긴 한데,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일단은 주변국들에 여자를 수색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요청을 넣은 상태고, 조만간 대답이 올 거라고 기대 중입니다.”

“이 상황에서 협조 안 할 수는 없겠지. 다음 타깃은 자신들의 나라가 될 수도 있으니까.”

협회장의 말이 맞다.

그 여자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존재다.

그런 존재의 행적을 아예 놓치고 있는데, 어느 누가 발 뻗고 가만히 잘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협회장이 다음으로 나를 불렀다.

“현장에 직접 도착했을 때 자네가 봤던 것들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나?”

“일단은 여태껏 본 적도 없던 두꺼운 마나 배리어가 돔 형태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제가 장담하는데, 지금까지 여러 마나 배리어들을 접해 봤지만, 그렇게 두꺼운 건 본 적이 없습니다.”

마나 배리어의 두께와 강도는 시전자의 역량에 따라 결정된다.

어찌어찌 내가 힘으로 박살 내 버리긴 했지만, 꽤나 애를 먹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아주 시기적절한 타이밍에 게이트까지 나타나더라고요.”

마나 배리어는 둘째 치고, 오늘 열린 세 번째 게이트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틀림없다.

그 여자는 드래곤이다.

여기서 하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왜 제가 첫 번째 드래곤을 쓰러뜨릴 때 가세하지 않고 조용히 있기만 했는지, 이건 잘 모르겠네요.”

만약 그랬다면 그 드래곤이 토벌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여자의 속내를 끝까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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