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장. 지원사격 (1)
아슬아슬하게 1차 본선 무대에서 통과 판정을 받은 니암은 비교적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녹화가 한참 전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니암이 이제야 복귀를 하게 된 이유는 굳이 본인의 입을 통해 들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보자마자 풍기는 술 냄새 덕분이었다.
“술을 얼마나 마신 거냐.”
강원이가 술에 떡이 되어 버린 니암을 간신히 부축해 우리 숙소로 얌전히 데려고 와 줬다.
연예인이다 보니 이렇게 밖에서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건 위험한 일이다.
혹여나 말실수라든지,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만한 사소한 행동 같은 거라도 하는 즉시 그러한 모습들이 인터넷에 바로 올라와 퍼지기 때문이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연예인의 이미지에 굉장히 큰 타격을 준다.
그래서 나는 우리 멤버들뿐만 아니라 HT 엔터테인먼트에 속해 있는 아티스트들을 향해서 매번 입버릇처럼 술에 자신을 넘기지 말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내 조언도 오늘의 니암에게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물론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열심히 준비한 무대인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했겠지.
그러나 니암이 기대했던 것 이하의 결과가 나왔으니, 실망도 컸을 것이다.
원래 기대감이 클수록 실망도 더 커지는 법이니까.
강원이가 니암을 부축하며 들어오는 모습을 다른 멤버들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준서가 손으로 코를 집으면서 말했다.
“으악, 이게 무슨 냄새예요!”
“술 냄새지, 뭐겠어. 니암 방문 좀 열어 줘라. 강원이하고 같이 이 녀석 옮기게.”
“아, 알았어요. 잠시만요.”
오른쪽에 강원이가, 그리고 왼쪽에 내가 붙어서 꽐라가 되어 버린 니암을 침대 위에 얌전히 안착시켜 뒀다.
눕자마자 술기운으로 인해 두통을 느끼는지 니암이 살짝 몸부림을 쳤다.
“으으…….”
“그러니까 적당히 좀 마시지 그랬냐.”
니암에게는 닿을 리 없는 잔소리를 흘렸다.
그러자 옆에 멀뚱히 서 있던 강원이가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못 마시게 말렸어야 했는데.”
“됐어. 네가 말렸으면 오히려 더 안 좋았을 거야.”
오늘은 니암에게 술이 땡기는 날이었을 테니까.
강원이가 말렸다 할지라도 니암은 어떻게 해서든 술을 마시려 했을 것이다.
혼자서 마시는 것보다 차라리 강원이랑 같이 앉아서 마시게 하는 게 더 낫다.
그래야 니암이 허튼짓 못 하도록 감시하고 말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니암이 각성 능력을 발동하고서 주정을 부리기 시작하면, 아무리 강원이라 할지라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강원이가 아무리 일을 잘하는 우리 매니저라고 한들, 결국은 평범한 인간이니까 말이다.
“술, 얼마나 마신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병 개수 샐 틈도 없이 연거푸 마셔 대길래, 그럴 틈이 없었습니다.”
“너는? 보니까 너도 좀 마신 거 같은데.”
“저는 딱 한 병 마셨습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음주 운전은 안 했지?”
“안 했습니다. 대리 불러서 온 겁니다.”
“그래, 잘했어.”
연예인 본인이 음주 운전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사회적인 문제로 번진다.
그렇다고 그 연예인의 매니저는 면죄부라는 소리가 아니다.
매니저도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쌍으로 나락을 갈 수 있다.
“아무튼 고생했고, 오늘은 이만 들어가 봐. 대리비는 내가 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어, 오늘 하루 수고했고. 다음에 니암하고 같이 보자.”
“예? 같이……요?”
강원이가 왜 유독 ‘같이’라는 말을 내가 강조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가 있다.
하지만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기에 강원이한테 그 이유를 전부 털어놓기에는 애매했다.
강원이를 먼저 보내려고 배웅을 해 주는 사이, 준서가 냉수 한 컵을 들고 니암에게 가져다줬다.
“정신이 들었어?”
니암은 준서가 가져다준 물을 순식간에 비우고서 나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형이 저 잘되라고 열심히 도와주셨는데, 결과가 안 좋게 나와서요…… 면목이 없습니다.”
“야, 결과가 왜 안 좋게 나왔어. 탈락한 것도 아니고, 2차 본선 진출했잖아? 그거면 된 거지.”
과정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합격했으면 된 거지.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성과라고 본다.
경연 방식의 프로그램에서 합격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니암은 이런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하는 데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마음의 짐이 꽤나 컸던 모양인지 본의 아니게 고해성사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죄책감은 안 가지고 있어도 되는데.
내가 여기서 백날 말해 봤자, 술에 잔뜩 절어 있는 지금의 니암의 귀에 제대로 들릴 리가 없을 것이다.
“일단은 좀 쉬어라. 쉬고 난 다음에 내일 말하자. 너한테 제안할 것도 있으니까.”
“제안이라면…….”
“내일 말해 준다고 했잖아. 일단 자. 맨정신으로 일어나서 보자고. 알았지?”
니암은 무거운 고개를 끄덕이면서 얌전히 내 말을 수행하기 위해 이불을 덮었다.
불을 끄고 거실로 나란히 나온 나와 준서.
소파에 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쉰 준서가 아직 비어 있는 데이브와 딜런의 방을 보면서 말했다.
“두 형들 있었으면 엄청 놀랐겠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니암 형이 저렇게까지 꽐라가 될 정도로 술을 마셨다고 하면 절대로 못 믿을 거 같기도 하고요.”
“그러게.”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아예 예상을 못 한 건 아니었다.
녹화가 한참 전에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숙소로 복귀 안 하는 걸 알게 되자마자 ‘이 녀석, 오늘 술 땡기나 보네.’라는 생각을 아까부터 했었기 때문이다.
“근데 태오 형, 아까 말했던 그 ‘제안’이라는 게 뭐예요?”
준서는 우리 멤버들 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아니면 본래 성격이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해 달라는 재촉을 하는 준서였지만.
“궁금하면 너도 내일 니암이랑 같이 들어.”
“예? 저한테는 미리 말씀 안 해 주시는 거예요?”
“어.”
“왜요!”
준서가 강하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억울할 일도 없는데도 말이다.
왜 내일로 미루느냐.
이에 대한 내 대답은 뻔했다.
“스포일러잖아.”
영화 찍는 사람이 가장 피해야 할 것이기도 하다.
* * *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굳게 닫혀 있던 니암의 방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안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의 눈치를 살피는 니암을 보면서 나는 절로 어이가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와서 눈치 보면 뭐 하냐. 그럴 거면 어제부터 그랬어야지.”
“……죄송합니다. 어제 그렇게까지 마실 생각은 없었는데.”
“괜찮아. 술이야 뭐, 마실 수도 있지. 나도 그렇고. 대신에 사고만 치지 않으면 돼. 엎어진 물 함부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안 그래?”
니암이 우리나라에 와서 좋아하게 된 말 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방금 언급했던 말이었다.
그만큼 평소 행동을 조심하자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었기에 니암이 자신의 신념처럼 여기고 있기도 했다.
이 말대로, 니암은 술에 곯아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얌전히 숙소로 복귀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온전히 본인의 힘으로 그런 건 아니고, 대부분은 강원이 덕분이었지만 말이다.
“와서 물 좀 마셔라.”
“감사합니다, 형.”
꿀꺽, 꿀꺽, 꿀꺽!
차가운 냉수가 입안을 시작으로 전신에 쭉 흘러 들어가니, 조금씩 정신을 차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머리는 좀 어때?”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대답을 하는 니암의 손등에 새겨진 각성 문양이 은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각성 능력을 이용하면 신체를 강화시킬 수 있다.
이건 외형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내적 요소도 마찬가지다.
잘만 활용하면, 우리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신진대사라든지 이런 것들도 활발하게 만들 수 있다.
알코올 분해 능력도 강화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렇다고 각성 능력이 알아서 자동으로 이런 걸 해 주는 정도까지는 아니고.
우리가 의식해서 능력을 활성화시켜야 이런 것도 가능하다.
이제 막 눈을 뜬 모양인지, 니암은 뒤늦게나마 자신의 각성 능력을 발동시키면서 몸의 컨디션을 최선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좀 나아졌어?”
“많이 나아졌습니다. 걱정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어제 집에 들어온 이후부터 나한테 사과를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네.”
“예? 제가…… 그랬나요?”
아무래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한 모양인가 보다.
뭐, 그럴 수 있지. 충분히 이해한다.
“아무튼 어제 방송 고생 많았다. 술에 그렇게까지 취한 채로 들어온 거 보니까 장난 아니었나 본데.”
“압박감이 너무…… 말도 못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무대 많이 서 봤잖아. 그런데도 그래?”
“예. 경연 프로그램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우리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마침 어제의 일로 많은 호기심을 드러냈던 준서가 모습을 나타냈다.
“어? 니암 형 일어났어요?”
“방금. 내가 어제 너한테 실수한 거 없지?”
“저한테는 없죠. 강원이 형한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안 그래도 매니저님한테도 연락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화를 하려고 하는 니암을 향해 내가 대신 말렸다.
“강원이도 어제 늦게까지 고생했을 테니까, 당분간은 자게 놔둬. 전화 말고 그냥 톡이나 하나 보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피곤함에 가득 찌든 상태에서 한창 수면에 취해 있을 텐데, 괜히 전화해서 잠을 방해하면 좀 그렇지 않은가.
강원이를 위해서 입장을 대변해 준 나는 어제 말 못 한 것을 니암에게 해 주기 위해서 다른 이야깃거리를 꺼냈다.
“2차 본선, 다른 게스트도 데려와서 같이 무대 꾸며도 된다며.”
“네. 그래서 어떻게 할지 고민을 좀 해 보려고요.”
혼자 할 수도 있지만, 모처럼 이런 특권이 생겼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날려 버리는 건 아깝다.
니암의 무대를 심사위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인상 깊게 남기기 위해서는 깜짝 게스트에게 피처링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여기서 내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거, 내가 맡아서 해 줄게.”
“예? 형이요?”
“왜, 싫어?”
“아, 아니요! 싫을 리가 없죠! 형이 피처링 맡아 주신다면야 전 무조건 좋긴 한데……. 근데 괜찮으시겠어요? 요즘 많이 바쁘시잖아요.”
멤버들 중에서 가장 바쁜 멤버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입을 모아 나라고 말할 것이다.
데이브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가수와 배우 활동을 겸직하고 있는 나에 비하면 아직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그래도 나는 딱히 상관없었다.
“그 정도는 시간 낼 수 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네가 잘되어야 우리 HTB도 잘되는 거니까.”
대신 목표를 더 크게 잡기로 했다.
“무조건 우승하자. 알았지?”
“네, 형!”
니암의 눈빛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