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56화 (156/250)

제41장. 시위 (1)

HTB가 음방에 나설 때에는 방송국 채널, 방송 플랫폼 등을 불문하고 항상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늘 하이라이트 무대를 장식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요즘 가장 핫한 보이 그룹이니까. 이런 이유로 인해서 우리를 가장 주목받을 만한 위치에 배치해 주곤 했다.

굳이 승훈이 형이나 회사 차원에서 영업을 하지 않아도 스태프들이 알아서 이렇게 조치를 해 줬다.

그 덕분에 오히려 회사 직원들 입장에서는 편했다.

워낙 인기가 높은 그룹이니까. 굳이 PD나 방송 작가들을 따로 만나서 ‘우리 애들, 잘 좀 봐주세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역시, 연예계에서 인기가 높으면 확실히 편해진다.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 내가 원하는 작품 등. 다양한 곳에서 불러 주니까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크게 두각을 드러낸 덕분에 드라마, 영화 부문에서도 러브 콜이 실시간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승훈이 형이 요즘 전화기를 하루 내내 붙들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오늘 중으로 제작사에서 대본 하나 보내 준다고 하니까, 너한테 따로 파일로 보내 줄게. 아니면 출력해서 줄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근데 형, 나 곧 무대 올라가 봐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꼭 지금 해야겠어?”

“지금 아니면 네가 잊어버릴까 봐. 저번에도 내가 했던 말 몇 번 깜빡했잖아.”

내가 기억력이 안 좋은 편이 절대로 아닌데.

워낙 요즘 정신없이 활동을 이어 가다 보니 헷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내 모습을 승훈이 형이 몇 번 봐서 그런지 생각이 날 때 아예 그냥 이야기를 해 주기로 작전을 바꾼 모양이다.

뭐, 오히려 이게 더 좋을 수도 있다.

자주 말해 줘야 나도 까먹지 않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상기시킬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무대 의상의 옷매무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던 준서가 내게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형, 좋겠네요. 그런 출연 제의도 다 받으시고.”

따지고 보면, 우리들 중에서 영화나 드라마 쪽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멤버는 내가 아닌 준서다.

나야 처음부터 가수 겸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데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준서의 경우에는 달랐다.

처음에 연예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계기는 드라마였다고 한다.

아버지, 어머니 둘 다 드라마를 워낙 좋아하셔서 준서도 어렸을 때부터 두 분을 따라 같이 드라마를 보는 게 일상생활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드라마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너도 나하고 같이 출연할래?”

“나중에요. 그래도 어느 정도 연기 실력은 갈고닦은 다음에 출연해야죠. 안 그러면 민폐잖아요.”

드라마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까진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관심만 가지고 있었을 뿐.

연기는 아직 정식으로 배워 본 적 없는 준서였기에 쉽게 내 제안을 받아들이진 않았다.

사실 이런 태도가 맞다.

어중간한 연기 실력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간 욕을 바가지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멤버들에게도 늘 해 주는 말이지만, 대중은 냉정하다.

본인의 눈으로 봐서 이건 아닌데 하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등을 돌린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며 활동해야 한다.

오늘의 무대도 마찬가지다.

계단을 오르기 전에, 리더인 내가 멤버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늘 긴장하고. 무대에 오를 때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거 잊지 말자. 알았지?”

“네!”

“좋아, 한번 크게 파이팅 외치고 가자고.”

“HTB, 파이팅!”

스태프들도 기합을 넣는 우리들을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 줬다.

음방 진행자가 우리를 소개할 때까지 무대 아래에서 대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 젊은 MC가 우리 HTB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요즘 이분들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돌 정도죠?”

“나라를 구한 아이돌 그룹, HTB의 무대를 함께 만나 보시죠!”

무대 준비를 모두 마친 우리들은 각자 포지션에 서서 장안의 화제로 거듭난 노래, ‘세비올라’의 무대를 펼쳤다.

엄청 오랜만에 서 보는 무대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낯설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몸이 이미 무대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큰 지장은 없었다.

오늘도 우리들을 응원하기 위해 많은 팬들이 모여들었다.

곳곳에서 각자 응원하는 멤버들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꺼내 우리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러나 중간에 굉장히 신경이 쓰이는 내용의 문구를 담은 플래카드가 보였다.

[HTB는 연예계에 필요 없다!]

[헌터 OUT!]

두 사람이 무표정으로 플래카드를 들고서 우리들을 대놓고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스태프들이 급하게 두 사람을 끌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에 잡히진 않았지만, 우리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다행히 무대가 거의 끝나기 직전이었고, 팬들도 구석 쪽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특별히 그쪽에 관심을 쏟지 않았다.

우리하고 음방 스태프들만 아는 일.

어차피 저 장면이 방송으로 나가진 않을 테니까 딱히 상관은 없는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무대를 마치고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니암이 가장 먼저 그 이야기를 꺼냈다.

“아까 오른쪽 구석 쪽에 있던 두 남자 있지 않습니까. HTB는 연예계에 필요 없다고 말했던 거 같던데.”

“맞아.”

니암이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긴 했나 보다.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정확하게 문장을 해석해 냈으니 말이다.

데이브는 노골적으로 불쾌하단 반응을 보였다.

“그자들, 뭐지? 우리 안티팬이라도 되나?”

헌터 활동을 할 때부터 우리의 존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은 많았다.

각성 능력을 얻게 되고, 일반인과는 다른 초월적인 힘을 가지게 된 순간부터 우리를 게이트에서 넘어온 괴물과 같은 취급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내가 각성 능력자가 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헌터라는 존재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좋게 본다는 말까진 절대로 아니다.

결국 헌터들 덕분에 평화의 시대가 찾아왔는데, 여전히 이런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것도 아마 제이커 때문이겠지.’

특수 범죄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린 탓에 요즘 들어서 다시 이런 식의 부정적인 시각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음방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는 PD가 우리 대기실을 직접 찾아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미리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그런 것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다 신경을 쓸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저희는 예전부터 이런 비슷한 일을 많이 당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진 않습니다.”

단지 조금 놀랐을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연예계에서 데뷔한 이후로 오랜만에 그런 시위 피켓을 봤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이 그냥 기사로만 안 나갔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 * *

음방 도중에 우리를 향해 부정적인 문구를 보여 준 관객들에 대한 이야기는 기사로 다뤄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뉴스가 방송을 탔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특수 범죄율이 증가하면서 각성 능력자들의 활동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해 달라는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시위는…….

예전부터 늘 있어 왔던 시위지만, 요즘 들어서 점점 그 규모가 커져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언론 매체들도 최근에 시위에 관한 기삿거리를 앞다투어 다루기 시작했다.

각성 능력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이럴 때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곳은 헌터협회와 BOO, 그리고 그 자회사인 HT 엔터테인먼트다.

이 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쪽은 바로 우리처럼 헌터 겸 연예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이게 음반 판매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입장에선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이게 앞으로도 계속 규모가 커지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딜런도 뉴스 내용을 보면서 걱정이 든 모양인지 본인이 알고 있는 미국 사정에 대해 들려줬다.

“미국에서도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나도 들었어.”

“협회 측에서 이야기해 줬나요?”

“아니.”

나는 뉴스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자 방금 딜런이 말해 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 내용이 막 나오고 있었다.

“뉴스 보고 알았지.”

내 말에 딜런이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벌써 해외에까지 소식이 전해지고 있네요.”

굳이 헌터협회를 통해 소식을 접하지 않아도 이렇게 쉽게 반(反)헌터 시위에 대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협회장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뭐, 뭐라고 하고 자시고 할 게 없지. 사람마다 각자 이념이라는 게 다르니까. 그걸 우리가 강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여기서 공권력을 동원해서 탄압하는 모습을 보이면 역풍이 발생할 수 있다.

일단은 지켜보자.

이런 태도를 고집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거실에서 물을 받고 온 데이브가 우리 뒤에 서서 뉴스를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참 이기적인 사람들이구만. 레이드 시대 때에는 우리 눈치 보면서 쥐 죽은 듯이 있더니만. 이제 게이트가 닫혔다고 저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니까 말이야.”

역시 데이브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토해 낸다.

그래서 가끔씩 나는 체할 것 같으면 소화제 대신 데이브의 이런 면을 떠올리곤 한다.

물을 한 컵 들이켠 데이브가 짜증을 내면서 본인의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딜런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데이브 형도 짜증 많이 나나 봐요.”

“그렇겠지.”

시위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데이브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몬스터와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한테 저렇게 ‘물러가라!’ 하고 시위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당연히 아니꼽게 보일 수밖에 없다.

서로 간의 입장이 다르다 보니 이게 참…… 어렵다, 어려워.

이런 현상이 벌어지기까지,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마 제이커가 아닐까 싶다.

승훈이 형이 내일 있을 스케줄을 알려 주기 위해 우리가 있는 숙소를 방문했다.

“안녕, 얘들아……. 뭐야, 분위기가 왜 이래?”

“저 뉴스 때문에 그래요.”

딜런이 손으로 TV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승훈이 형도 뉴스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인지 쓴 미소를 지었다.

“너무 저런 거에 연연하지 마. 저번에도 그랬잖아. 안티팬은 소수고, 너희를 응원하는 팬들은 절대다수라고. 회의감이 들고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너희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늘 기억해.”

연예계에서 활동하려면 멘탈 관리도 상당히 중요하다.

우리 매니저답게 승훈이 형이 좋은 말을 들려줬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 분위기를 바꿀 만한 계기가 필요하긴 하지.’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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