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장. 처음은 화려하게 (4)
신원 불명의 거수자 세 명이 내가 겨눈 단검을 보고서 식겁했다.
숨어 있던 몬스터가 아니라서 다행이긴 한데.
“왜 여기 계신 겁니까?”
“그, 그게…….”
남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채굴이 금지되어 있는 날이다.
이 광산에서 광물을 캐내는 건 헌터협회의 입회하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출입까지 포함해서 이 모든 과정이 다 그렇다.
애초에 던전은 일반인들의 입장 허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철저한 관리와 통제. 이것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지, 무슨 꿍꿍이 때문인지가 궁금했다.
남자 중에서 리더로 보이는 자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저희가 여기 채굴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다음 주부터 처음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라서요. 광물 던전에 대해서 사전 정보가 너무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서 오늘 현장 답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자료가 부족하다 싶으면 협회 측에 요청하십시오. 그쪽에서 원하는 자료는 웬만하면 다 넘겨줄 겁니다.”
물론 극비 사항으로 취급되는 기밀문서의 경우는 예외다.
그러나 채굴 작업을 하는 데 기밀문서가 필요한 경우는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을 만큼 간단하고 보편적인 정보만 있으면 된다.
여기에 더 나아가 봤자 광물 던전에 대한 지도나 작업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에 관한 정보가 다일 것이다.
혹시 몰라서 남자들에게 말했다.
“허가는 당연히 안 받았겠군요.”
세 남자의 입에서 동시에 어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던전에 드나들 때에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무조건 헌터를 대동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남자들 중에서 그 누구도 각성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헌터도 대동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몰래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추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PD님, 잠시만 촬영 끊고 가도 될까요?”
“네, 그렇게 하죠.”
박 PD도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내 말대로 따르기로 했다.
아이리스와 나빈이, 준서가 이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사이.
나는 이쪽 헌터협회 지부에 연락을 취했다.
“수상한 거수자 셋 발견했습니다. 바로 오셔서 연행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내 말에 남자들이 기겁을 했다.
“여, 연행까지는 좀…….”
“마, 맞습니다! 저희는 그저 현장 답사를 왔을 뿐인걸요! 훔친 것도 없고, 여기서 뭔가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런 건 조사관 앞에 가서 이야기하세요.”
이들이 정식 허가도 없이 던전에 몰래 숨어 들어와 있는 것만으로도 사실상 중범죄에 속한다.
그만큼 던전, 몬스터, 게이트에 관한 사항은 굉장히 민감하다고 할 수 있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던전 내부에 또 다른 게이트를 열 수 있는 장치 같은 게 있을지도.
그리고 그 장치를 재미 삼아 몰래 던전에 숨어 들어온 사람이 발동시키기라도 한다면, 인류는 또다시 평화라는 두 글자를 잊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나부터 열까지 조심해야 하는 것투성이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엄격하게 일 처리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두 사람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지만, 이게 규칙이니까 어쩔 수 없다.
“지부 쪽에서 헌터들을 파견할 거라고 하니까, 그때까지만 잠깐 촬영을 멈추고 대기하도록 하죠.”
박민진 PD가 고개를 끄덕이고선 다른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나섰다.
출연자들은 오랫동안 걸어서 그런지 이 기회에 잠시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양성빈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네. 나는 또 저번처럼 몬스터 튀어나오는 줄 알고 얼마나 긴장했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헌터협회가 일반인 출입을 허가해 주기 전에 이미 던전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고, 검증이 완료된 곳만 허가를 내주기 때문이죠.”
한국에서 벌어졌던 네크로맨서 사건의 경우에는 굉장히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은 그런 경우가 잘 안 생기니까 말이다.
생겨서도 안 되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잠깐 숨 좀 돌려야겠다.
내가 메인 MC 자리를 맡아서 그런 걸까.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지난번 촬영 때보다 어째 더 힘이 드는 그런 느낌이다.
* * *
현지에서 활동 중인 헌터들이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서 미리 신병을 확보해 둔 거수자들을 붙잡고 던전 밖으로 향했다.
그제야 현장이 좀 정리되는 분위기였다.
박민진 PD가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우리들을 독려했다.
“저희, 촬영 허가받은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요. 오늘은 G 구역까지 가 봐야 하니까 슬슬 일어나도록 할까요?”
“네, 알겠습니다.”
달콤했던 휴식도 잠시.
이제 다시 일하러 갈 시간이 찾아왔다.
카메라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자, 우리는 방금 전에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태연하게 가던 길을 다시 갔다.
“자, 저를 따라오세요.”
나는 진행자가 아닌 가이드가 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면서 앞장섰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선두는 준서가 맡았었는데, 아까처럼 혹여나 예상치 못한 존재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까. 그런 일을 대비해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장 선두에 서기로 했다.
그래야 몬스터가 튀어나와도 즉각적으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령 앞이 아닌 옆, 뒤쪽에서 몬스터들이 갑자기 튀어나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만반의 대응이 다 되어 있었다.
나빈이하고 아이리스가 있으니까 말이다.
둘 다 S랭크 이상의 전투력을 보유한 헌터들이기 때문에 나는 두 사람에게 내 등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다.
준서는…… 뭐,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아마 엄청 화낼 테니까 그냥 입을 닫기로 했다.
앞서 걸어가던 나는 전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기 보이네요.”
“저기가 어딘데요?”
“앞으로 와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나는 절벽 아래에 넓게 펼쳐진 장소를 가리켰다.
출연자들이 나를 따라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기겁하는 반응이 먼저 튀어나왔다.
“히익!”
“이, 이게 다 뭐예요?”
마치 싱크홀처럼 커다랗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지옥으로 향하는 출입구처럼, 구멍 안쪽은 끝없는 어둠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여기가 조금 특이한 지역이거든요. 어디 보자…… 저쪽이 좋겠네요.”
나는 발판을 삼을 수 있을 만한 곳으로 조금 더 이동했다.
“잘 보시고, 제가 한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됩니다.”
출연자들에게 미리 어떻게 할지 알려 줬다.
몸을 살짝 뒤로 뺀 다음.
있는 힘껏 거대한 지하 구멍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나를 보자마자 출연진은 크게 놀라 외쳤다.
“태, 태오 씨!”
“미, 미쳤어요? 거길 왜 뛰어내리시는 거예요!”
발을 헛디딘 것도 아니고, 무게중심을 잃어서 의도치 않게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내 생각대로, 내 의도대로 거대 구멍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기를 잠시 뒤.
아무런 힘을 주지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형태만 취하고 있자, 내 몸이 마치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알아서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몸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무게중심을 잡았다.
출연자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공중 부양을 하고 있는 나를 바라봤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그거죠?”
당황하는 이아담을 위해서 내가 이 광물 던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공간에 대해 소개해 주기로 했다.
“여기는 무중력 공간입니다. 이 아래에 있는 구멍 위에 있을 때만 중력이 사라져요.”
“네?”
“저, 정말입니까?”
“예. 보다시피.”
TV에서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주선 안에서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장면을 몇 번 봤을 것이다.
그런 무중력 상태가 이곳에서 똑같이 재연되고 있었다.
어떤 원리로 이렇게 특정 지역만 무중력 상태가 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오늘 광물 던전을 조사하러 오면서 이철민 소장은 아마 여기도 같이 조사를 진행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추측이 들었다.
이철민 소장의 호기심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한편, 공중에 붕 떠 있는 내가 어떤 의미에서는 부럽게 보였는지 준서가 동참의 뜻을 밝혔다.
“형, 저도 뛰어들어도 돼요?”
“어. 여기는 인원수 제한 그런 거 안 걸려 있으니까. 나처럼 직접 무중력을 체험해 보고 싶다면 아까 했던 것처럼 힘껏 이쪽으로 뛰어내리면 돼.”
“한번 해 볼게요.”
준서가 아까 내가 뛰었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출연진이 걱정을 한가득 담아 준서에게 물었다.
“준서 씨, 정말로 뛰시려고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출연자들을 향해 준서는 싱긋 웃으면서 괜찮다는 뜻을 밝혔다.
“헌터 양성소에서 중력 훈련은 많이 받아 봤거든요. 이 정도는 어렵지 않아요.”
“아니, 중력 훈련을 받았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물어본 게 아니었는데…….”
중력보다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커다란 싱크홀 위로 뛰어내려야 한다는 상황 자체에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궁금해할 필요 없다.
일단 한번 뛰어내려 보고, 그다음에 이 현상을 몸소 체험해 보면 된다.
눈으로 보고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 본인이 직접 겪어 보는 게 가장 중요한 법 아니겠나.
“시청자들에게 보다 생생한 현장감을 전해 주려면, 여러분들도 저처럼 이곳으로 와서 광물 던전의 기이한 현상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니, 저는…….”
“어흠!”
“…….”
양성빈과 이아담, 신에리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헌터 출신들은 달랐다.
가장 먼저 준서가 몸을 날렸다.
아주 잠깐 바닥을 향해 떨어지나 싶더니, 이내 나처럼 다시 위로 몸이 붕 떠올랐다.
아이리스가 준서가 뛰었던 곳으로 향하면서 다음 타자가 되기를 자처했다.
“저도 갈게요.”
그 전에 나빈이가 아이리스를 말렸다.
“아이리스 씨, 치마요. 치마!”
아이리스는 우리 멤버들 중에서 유일하게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작게 웃으면서 괜찮다는 뜻으로 말했다.
“안에 속바지 입었으니까 보여도 상관없어요.”
“아…… 그래요?”
“네. 그럼 저 먼저 뛸 테니까 나빈 씨도 따라서 오세요.”
아이리스가 아름다운 금발을 흩날리면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나빈이도 곧장 뛸 준비를 마쳤다.
나빈이의 경우에는 아이리스처럼 치마가 아니라 레깅스를 입고 왔기에 속옷이 보일 걱정은 안 해도 됐다.
자체적으로 카운트를 센 나빈이가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이렇게 일곱 명의 출연자들 중에서 반절이 넘는 네 명이 직접 싱크홀 무중력을 체험하게 되었다.
남은 사람은 단 세 명.
나는 가장 먼저 양성빈을 꼬드겼다.
“형, 한번 와 보세요. 재미있다니까요?”
우주로 나가지 않는 이상, 어디서 쉽게 체험해 볼 수 없는 무중력 현상.
내 말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걸까.
“……알았어. 나도 뛸게.”
양성빈이 일반인 출연자 중 처음으로 도전을 앞두게 되었다.
그래, 이렇게 해야 방송에 쓸 만한 그림이 나오지.
이제 저 남은 두 겁쟁이를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 좀 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