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29화 (129/250)

제33장. 복귀 (4)

마침내 우리 HTB의 컴백일이 다가왔다.

컴백 쇼케이스 방송은 저녁 7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준비 자체는 이른 새벽부터 개시되었다.

우리를 픽업하러 승훈이 형과 서브 매니저인 강원이가 숙소를 방문했다.

“얘들아, 나갈 준비 다 끝났지?”

승훈이 형의 힘찬 목소리에 멤버들은 반쯤 감긴 눈으로 그렇다고 답했다.

나도 오늘은 피곤해서 그런지 목소리에 영 힘이 담기지 않았다.

승훈이 형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들을 쭉 훑으면서 물었다.

“어제 다들 잠 안 잤냐?”

“안 잔 게 아니라 못 잔 거지.”

내가 정확하게 사실을 알려 주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신경한 데이브조차도 저녁 11시에 침대에 누워서 4시간을 뒤척이고 새벽 3시에 겨우 잠들었다고 하니까.

컴백에 대한 부담감이 우리들에게 만만치 않은 압박을 심어 주고 있음을 뜻했다.

“너희는 그렇다 치고. 태오, 넌 긴장할 거 하나 없잖아.”

“나는 긴장해서 그런 게 아니라, 피곤하니까 오히려 잠이 더 안 오더라고.”

어제만 하더라도 던전 탐험대 사전 녹화를 위해 현장을 방문했었다.

정식 촬영은 아니었고, 내 포지션이 출연자이자 동시에 헌터 가이드 아니겠나.

그래서 다른 출연자들보다 먼저 현장으로 가서 우리가 둘러볼 던전 내부가 안전한지 어떤지를 미리 살피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화 방영될 때 앞부분에 인트로로 짧게 잘라서 영상을 넣을 거라고 들었다.

결국은 촬영 일정인 셈이었다.

그거 끝내고 늦은 밤에 오니까 온몸이 피곤했다.

그래서 빨리 잠들 줄 알았는데, 몇 시간 뒤에 스케줄이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니 잠의 요정들이 식겁을 한 모양인지 전부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거의 잠을 못 자다시피 했다.

그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몇 날 며칠 밤새워 가면서 작전 수행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이 정도는 뭐, 웃으면서 견딜 수 있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일반인이 아니다.

헌터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력은 일반인 기준을 아늑히 뛰어넘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웬만한 멘탈 가지고는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자신감을 드러내는 우리를 보면서 승훈이 형이 피식 웃었다.

“그래, 니들 잘났다. 잘난 거 잘 알겠으니까 후딱 나갈 준비 해라. 샵 예약해 둔 거 캔슬 안 되게 빨리빨리 움직여.”

“알았어.”

대충 옷 몇 벌만 걸치고 나가면 된다.

어차피 메이크업에 헤어까지 다 받을 예정이니까.

의상 같은 경우에는 무대 의상이 따로 있으니까 사복에 신경을 많이 안 써도 된다.

……라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아, 잊어버릴 뻔했네.”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멤버들에게 내가 방금 깨달은 사실을 공유해 주기로 했다.

“방송국 갈 때 옷 너무 후줄근한 걸로 입지 마.”

“왜요?”

준서가 멤버들을 대표해서 내게 물었다.

그냥 한 말은 아니고,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기자들이 출근길 사진 찍으러 오잖아.”

“아, 그랬죠.”

너무 오랜만에 무대에 서는 날이라서 그런 걸까.

예전에는 출근길 사진, 영상 촬영이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시되곤 했었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나야 어제도 촬영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금방 떠올릴 수 있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아예 깜빡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옷을 다 갖춰 입은 채로 승훈이 형이 운전할 차에 한 명씩 올라탔다.

샵으로 향하는 길.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한산하지 않았다.

일찍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모는 차들로 가득했다.

딜런이 창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서울의 아침은 여전히 부지런하네요.”

“우리나라만큼 부지런한 곳도 별로 없을 거야.”

빨리빨리 문화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그래도 차가 많이 안 막혀서 다행이었다.

정 심하게 막힌다 싶으면 혹시 몰라 챙겨 온 이동속도 버프 아이템을 사용해서 몸만 직접 이동해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이 새벽 시간부터 도심 한복판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면 좀 그렇지 않은가.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귀신인 줄 알고 크게 놀랄 수도 있다.

그래서 웬만큼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이렇게 차로 이동하려고 한다.

“도착했다.”

승훈이 형이 샵 바로 앞에 잠시 차를 정차시키고서 우리들에게 내려도 좋다고 말을 꺼냈다.

“강원아!”

“예!”

“나, 근처에 주차시키고 올 테니까, 네가 얘들 데리고 샵에 먼저 들어가 있어라.”

“네, 알겠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강원이가 우리들을 직접 안내했다.

사실 안내할 것도 없었다.

여기 샵은 우리가 첫 번째 앨범 활동을 한창 이어 갈 때 자주 들락날락했던 곳이었기에 알아서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원장이 우리 다섯을 보고서 손뼉을 크게 마주쳤다.

“어머머! 드디어 다 모였네! 내가 이 장면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세요?”

여기 원장뿐만 아니라 직원들 대다수도 HTB의 팬들이다.

심지어 어떤 메이크업아티스트는 우리가 이 샵을 주로 애용한다는 말을 듣고 대형 샵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도 걷어차고서 이곳으로 이직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 직원에게는 우리가 고마움을 담아 같이 사진을 찍어 주고 직접 친필 사인까지 남겨 줬다.

오늘도 우리의 팬임을 자처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여럿 보였다.

아니, 우리 메이크업과 헤어를 담당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시간에 자처해서 출근을 한 것처럼 보였다.

물어보고 싶긴 하지만, 너무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것도 실례일 거 같아서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내 헤어스타일의 경우에는 원장이 직접 만져 주기로 했다.

“태오 씨, 머릿결이 갈수록 좋아지는 거 같아. 각성 능력을 얻으면 막 피부가 좋아지는 효능 같은 거 있어요?”

“글쎄요. 이철민 소장님한테 물어보면 자세히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왜, 나빈 씨도 그렇고, 아이리스 씨도 그렇고. 둘 다 엄청 미인이잖아. 그 둘뿐만 아니라 얼굴 반반한 헌터들도 꽤 있고. 그래서 나는 분명 각성 능력하고 외모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 우리 태오 씨도 이렇게 멋지니까.”

“저 칭찬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떡밥 깔아 둔 거 아니죠?”

“에이, 내가 왜. 나는 느낀 거 그대로, 아주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에요. 알잖아요?”

알지, 그래서 내가 그룹 활동을 하든, 솔로 활동을 하든 이 샵을 주로 애용한다.

뭐가 잘 안 됐으면 솔직하게 오늘은 영 아니라고 직설적으로 말을 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기 때문이다.

오늘의 메이크업과 헤어는 어떨까?

컴백 쇼케이스 무대가 있는 날인 만큼, 잘되어야 할 텐데.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심정과 함께 나는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기로 했다.

* * *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1시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던 것도 기억이 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연예인들을 상대로 이런 메이크업, 헤어스타일링을 해 본 경험이 꽤 있는 모양인지 깔끔하게 잘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원장이 내 뒤로 바짝 다가와 물었다.

“어때요, 태오 씨?”

“평소보다 메이크업이 더 잘된 느낌인데요?”

“그래요?”

“원장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피부 컨디션이라는 것도 있어서인지 그날그날의 메이크업 상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원장이 판단하는 오늘의 나는 과연 어떨까?

원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태오 씨 말대로 오늘 엄청 잘됐어요. 다른 멤버분들도 다 괜찮게 됐고요. 오늘 컴백 무대 잘 풀리려는 징조인가 봐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활동을 마무리하는 무대는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반대로 데뷔나 컴백을 기념하는 무대의 경우에는 늘 긴장감이 든다.

나답지 않게 말이다.

그렇게 샵에서 받을 거 다 받고, 방송국으로 바로 이동했다.

새벽에 내가 멤버들에게 미리 경고했던 것처럼, 우리들의 출근길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기 위해 수많은 기자들과 팬들이 모여들었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태오 씨! 여기 한 번만 봐 주세요!”

“이쪽도 손 한 번만 흔들어 주세요!”

여기저기서 말 그대로 난리가 났다.

기자들과 팬들이 여기저기 뒤엉켜서 각자 손에 쥔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난 그들에게 다가가서 주의를 줬다.

“그러다가 서로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하세요. 좋은 날인데, 괜히 안 좋은 소식 들리면 안 되잖아요.”

팬들의 안전까지 신경 쓰는 내 모습에 사람들은 작은 감동을 받았는지 알겠다고 답하면서 서로 간의 질서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했다.

컴백 쇼케이스 무대는 지난 데뷔 무대 때보다도 더 넓고 화려했다.

무대를 보자마자 멤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딜런이 헛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거, 누가 보면 콘서트장에 온 줄 알겠는데요.”

“연 대표한테 들어 보니까, 이번에 업체들이 꽤 많이 모였다고 그러더라.”

우리의 데뷔 무대 방송만 하더라도 한국을 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대다수 사로잡았다.

여기에 업체명, 혹은 해당 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을 한 번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게다가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지 않은가.

업체라면, 이 마케팅 효과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날이 활동을 할수록 우리에게 투자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업체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미 광고 모델 계약까지도 다 완료된 상황이다.

나중에 컴백 쇼케이스가 끝나면, 여기저기 다니면서 광고 촬영도 계속 이어 갈 예정이다.

이에 따른 수입도 어마어마하다.

나와 데이브에게는 그렇게까지 큰돈이 아니었지만, 헌터 랭크가 낮았던 준서나 니암, 딜런에게는 말 그대로 인생 역전인 셈이었다.

니암이 나를 바라보면서 이런 말을 흘렸다.

“형 안 만났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직도 아찔하네요.”

“내 말 믿고 따르길 잘했지?”

“예, 제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 생각은 앞으로도 쭉 이어질 것이다.

* * *

저녁 7시.

정각이 되자마자 이빈이가 마이크를 들고 힘차게 외쳤다.

“두 번째 앨범으로 돌아온 화제의 보이 그룹! 다시 한번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기 위해 컴백한 HTB의 무대부터 먼저 만나 보시겠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우리 컴백 무대를 먼저 보여 주기로 했다.

초반부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함이었다.

타이틀곡인 세비올라의 반주가 무대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중독성 있는 비트에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몸이 절로 들썩이는 게 보였다.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 분위기, 이 흐름을 그대로 노래로 표출하기로 했다.

“다들 즐길 준비 되셨습니까!”

객석에서 힘찬 대답이 들려왔다.

HTB 멤버들 역시 신이 난 모양인지 연습할 때보다도 더 크게 동작을 이어 갔다.

솔로 활동도 좋긴 하지만.

역시 그룹 활동이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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