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복귀 (3)
내가 마진수 트레이너에게 제안했던 대로 결정한 덕분일까.
그날부터 일이 다 수월하게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기분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되어 가고 있었다.
새롭게 들어온 안무 시안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마진수 트레이너와 최 프로듀서 그리고 나와 우리 HTB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자리가 꽉 찼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시선은 오직 모니터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안무 시안들을 보면서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두 번째 타이틀곡인 ‘세비올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특히나 우리들이 직접 춰야 하는 춤이었기에 더욱 신경을 써서 볼 수밖에 없었다.
들어온 시안은 총 다섯.
전부 다 한 번씩 안무 시안을 본 뒤,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어땠습니까?”
마 트레이너가 우리들의 생각을 물었다.
나는 최 프로듀서부터 먼저 이야기해 보라고 제스처를 취했다.
“저는 세 번째 시안이 가장 나아 보이더라고요. 후크송이라는 게 원래 중독성 있는 파트가 가장 큰 장점이잖아요? 그만큼 안무도 대중의 뇌리에 박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으면서도 가사에 딱 맞는 그런 거 말이죠.”
최 프로듀서의 의견에 준서도 몇 마디를 보탰다.
“저도 세 번째 시안이 가장 좋았어요. 요즘에는 뭐시기 뭐시기 챌린지라고 하면서 쇼트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게 유행이잖아요?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안무가 들어가 있으면, 그런 챌린지 영상도 많이 도움이 될 테고. 그리고 이런 게 그 앨범의 성적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알고 있거든요.”
준서의 기나긴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반응을 보고서 준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래요, 형? 혹시 제가 이상한 말 했나요?”
“어, 너답지 않게 너무 똑똑한 말을 해서.”
“……이 형이 진짜. 제가 다른 건 몰라도 가수 활동에 대해서만큼은 엄청 진지한 사람이라구요.”
“그래, 알아. 알고 있어.”
준서가 누구보다도 가수 활동에 열심히 임했었다는 건 나도 잘 안다.
그 진심은 알지만, 그래도 가끔씩 이렇게 똑똑한 준서를 보면 뭐랄까, 준서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적응이 안 된다.
마치 모든 사람들에게 상냥하고 착한 데이브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데이브가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
“뭐냐, 갑자기 왜 날 보면서 웃어?”
“아무것도 아니야. 어쨌든…… 저도 세 번째 시안이 좋았습니다. 이유는 아까 최 프로듀서님이 말한 것과 동일합니다.”
다른 멤버들도 세 번째 시안이 제일 좋았다는 의견을 남겼다.
서로 선호하는 시안이 달랐으면 이런저런 장점을 따져 가면서 어떤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릴지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을 텐데.
우리 모두의 의견이 일치해서 다행이었다.
이런 식으로 요즘 앨범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문제라는 게 거의 없이 순항을 이어 가고 있었다.
안무 시안을 결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시안 그대로 채용하진 않았다.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마진수 트레이너가 시안을 보내온 댄스 팀과 협업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우리 멤버들은 최 프로듀서가 작곡한 두 번째 앨범 수록곡을 들어 보기로 했다.
두 번째 앨범에 들어갈 수록곡은 총 일곱 곡이다.
최 프로듀서가 음원을 재생시키면서 어떤 콘셉트로 수록곡들을 작곡했는지 사전에 간단한 설명을 들려줬다.
“타이틀곡인 ‘세비올라’가 후크송으로 작곡되었으니까 나머지 곡들은 비교적 평이하게 만들어 봤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세비올라’에 비하면 평범하게 느껴질 뿐이지, 이미 발표된 다른 대중가요들을 비교 대상으로 놓고 본다면, 이 곡도 대중에게는 약간 신선하게 느껴질 겁니다.”
최 프로듀서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노래를 듣자마자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비트 자체가 특이했다.
이전에 발매했던 우리 HTB와 내 솔로 앨범은 모범적인 댄스곡이라 부를 정도로 기본에 충실한 곡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HTB의 두 번째 앨범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변화무쌍한 곡들로 가득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빠른 템포로 치고 들어오는 구간도 있고.
생소하지만, 최 프로듀서가 말한 것처럼 신선하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최 프로듀서가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기왕이면 앨범 전체적으로 이런 독특한 분위기를 내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개인적인 욕심도 조금 들어가 있기도 하고요.”
“어떤 욕심인가요?”
“예전부터 이런 실험적인 곡들을 몇 곡 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전 소속사에서는 아무래도 상업성과 대중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해 오던 곡들만 계속 써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사님께서 제 마음껏 해 봐도 된다고 하셔서 질러 버렸죠.”
질렀다.
오늘따라 최 프로듀서의 표현이 상당히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그래도 나는 나쁜 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가이드곡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멜로디만 들어 봤을 때에는 난 꽤 마음에 든다.
멤버들도 ‘세비올라’를 들어서인지 오히려 수록곡들도 이 정도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야 앨범의 전체적인 콘셉트를 유지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의견을 보탰다.
“그럼 일단 가이드곡 나오고 난 다음에 다시 들어 보는 쪽으로 하죠.”
“네, 컴백 일자도 슬슬 잡아야 하니까, 최 프로듀서님이 당분간 고생 좀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믿고 맡겨 주세요!”
기운이 넘치는 최 프로듀서의 반응.
이번 앨범은 아무래도 우리들보다 최 프로듀서가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보였다.
* * *
레코딩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오늘은 첫 안무 연습이 있는 날이다.
연습실에 우리 노래 ‘세비올라’가 무한히 반복되고 있었다.
이렇게 귀로 듣고 머릿속으로 기억해 둬야 한다.
이유가 있다.
나중에 무대 위에 올라가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주로 우리 멤버들처럼 아직 무대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신인 가수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뇌시키다시피 해 두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도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경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결된다.
나 같은 경우에는 무대 경험이 많이 쌓인 덕분에 그렇게까지 긴장감이 들 때가 요즘엔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이 문제지.
멤버들도 이에 대해 잘 아는 모양인지, 쉬는 동안에도 ‘세비올라’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후크송이라서 그런지, 특히 하이라이트 구간이 멤버들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 것이다.
지금도 쉬는 시간인데, 멤버들의 입에서 ‘라 비타윤 세비올라’라는 문장이 계속 반복되어 흘러나왔다.
노래를 듣던 와중에 니암이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이런 걱정을 드러냈다.
“노래가 너무 중독성이 있어서 헌터들이 몬스터들하고 싸우는 데 제대로 집중이나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이 한 곡만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세트리스트를 만들어서 들으면 별로 상관없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노래, MML 버프 그리고 몬스터와의 전투.
아직 이에 관한 연구 자료나 데이터가 많이 쌓여 있지 않은 탓에 나도 이렇다 할 확신을 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헌터들의 전투력 상승에 도움이 될 만한 노래를 계속해서 발매하고 또 발매하는 것이다.
헌터들 전체가 강해져야 앞으로 남은 몬스터들을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 낼 수 있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제이커 같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우리들끼리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무렵, 마 트레이너가 댄서들을 소개했다.
“여기, 이번에 우리한테 안무 시안 보내 줬었던 크루. 서로 인사해.”
실제로 만나 보는 건 처음이었다.
댄스 팀이라 그런지, 복장부터가 상당히 힙해 보였다.
그들이 우리를 향해 허리를 90도 각도로 숙이면서 과도할 정도로 예의를 차렸다.
“안녕하십니까!”
“유명하신 분들을 직접 눈앞에서 뵙게 되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오면서 너무 떨려 가지고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습니다!”
설마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거니 생각했는데.
팀원들의 목소리가 상당히 떨리는 걸 들어 보니, 우리들 기분 좋으라고 하는 거짓말처럼 들리진 않았다.
평소에도 우리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없었으면, 아직도 몬스터에게 시달리면서 살아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태오 씨가 레이드 시대를 종결시켜 주신 덕분에 저희도 공연 의뢰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관뒀던 춤도 다시 출 수 있게 되었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보내 주신 시안, 마음에 들어 하셨다는 소식 들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레이드 시대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본업으로 복귀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몬스터의 습격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유통이나 무역 쪽도 그렇고.
크루들이 말했던 공연 쪽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이렇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레이드 시대 당시에는 강제로 각성 능력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낸 적도 있었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름 뿌듯함을 느낀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서로에 대한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마진수 트레이너가 손뼉을 두세 번 치면서 마침 내가 하려던 말을 꺼냈다.
“컴백까지 기간이 많이 빡빡하니까 바로 안무 연습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죠.”
다시 열심히 춤춰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 * *
노래와 안무 연습에 매진하는 사이, 컴백 일자가 바로 코앞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여태껏 그래 왔듯이, 이번에 있을 컴백 무대도 지난 데뷔 때처럼 따로 쇼케이스 프로그램을 편성해서 대중에게 대대적으로 우리의 복귀를 알릴 예정이었다.
이번에도 진행자는 이빈이가 맡아 주기로 했다.
요즘 영화 촬영 때문에 많이 바쁠 텐데도 불구하고 선뜻 우리의 쇼케이스 진행을 맡아 주기로 결심해 줬다.
“그러고 보니…….”
나도 영화 관련 행사 일정들이 차츰 생겨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행사도 아니고 해외 시상식에서 ‘그날, 우리’가 좋은 성적을 거둠으로 인해서 점점 내 출연을 바라는 팬들의 목소리가 커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컴백 무대부터 먼저 신경 써야겠지.”
거실에 앉아서 혼자 스케줄표를 확인하던 나는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우리 집이 아닌 HTB의 숙소다.
빼곡하게 적혀 있는 우리 HTB의 방송 일정표를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스케줄 좀 줄여서 잡을 걸 그랬나.”
스타의 숙명이란 녀석은 늘 귀찮음과 피곤함을 동반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