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장. 전장을 누비는 아이돌 (1)
스웹을 상대하기 위해선 놈들끼리 소리로 공명하는 것 자체를 원천 봉쇄시켜야 한다.
공명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녀석들의 능력치는 계속해서 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웹이 능력치가 떨어지는 잡몹인 데도 불구하고 위험도로 치면 상위권으로 분류되는 이유가 이런 이유에서였다.
놈들의 소리 능력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역시 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면 사방에 오디오 장비를 설치해서 제 노래를 무한 반복시키면 되지 않나요?”
굳이 내가 가서 그곳에서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에 해 본 질문이었다.
협회장도, 연 대표도 당연히 그걸 생각 안 해 보진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말을 들어 보니 시도까지도 했었던 거 같다.
그런데.
“놈들이 독침으로 오디오 장비만 골라서 파괴시키더라. 원격으로 장비만 저격하니까, 그거 방어하는 것도 낭비겠더라.”
스웹한테 그런 공격 패턴이 있었군.
이건 나도 처음 알았다.
하긴. 인류가 몬스터에 대한 데이트를 100퍼센트 가지고 있었다면, 아주 수월하게 레이드 시대를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지금도 모르는 것투성이니까. 평화를 되찾기까지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린 것이다.
“그러면 제가 노래 부를 때에도 저한테 그 독침들이 쏟아지겠네요.”
“너는 충분히 피할 수 있잖아.”
협회장이 아주 간단하게 답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서 부정하진 않았다.
“미국 지부장이 그러더라. 너한테 잘 좀 말해 달라고. 만약에 스웹들, 이번에 토벌 못 하면 미국 주 단위 하나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말이야. 원한다면 대통령도 나서서 너한테 직접 부탁하려고 찾아올 수도 있대.”
“아니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전해 주세요.”
그건 내가 다 부담스럽다.
그리고 난 그런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 같은 건 딱 질색이다.
가서 스웹들의 능력을 봉인시킬 겸.
헌터들의 능력 상승 버프도 줘야 하니까 노래 하나만 반복해서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한 곡만 계속 듣게 만들면, 그건 고문이니까.
“세트 리스트 짜 봐야겠네요.”
미국에 와서 설마 두 번째 콘서트를 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 *
토벌 작전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직접 미국 지부장과 연락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난 언제든 준비 오케이니까, 바로 시작하자고.
이런 건 빨리빨리 끝내 둬야 나도 마음이 편하다.
현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 대신 운전대를 잡은 승훈이 형이 어제 협회장과 연 대표가 나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면서 어떤 의문 하나를 들려줬다.
“그런데 태오야, 네가 노래 부를 것 없이, 그냥 스웹 녀석들 둥지로 쳐들어가서 다 때려눕히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보기엔 그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 같은데.”
다른 헌터들의 피해도 막을 수 있고 말이다.
물론 나라는 비장의 카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승훈이 형이 망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스웹은 절대다수잖아. 내가 아무리 강해도 나 혼자서 그 수많은 몬스터를 한꺼번에 다 못 상대해.”
미친 듯이 강한 몬스터가 딱 한 마리 있는 것과, 더럽게 약한데 수십, 수백, 수천 마리의 잡몹들이 있는 경우. 둘 중에 어느 것을 상대하기가 껄끄럽냐는 질문이 들어온다면, 나는 일말의 고민 없이 후자를 고를 것이다.
말도 안 되게 센 놈은 내가 혼자서 맨투맨으로 마크하면서 상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다수의 몬스터는 나 혼자로 커버하기가 힘들다.
내 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미국 지부와 협회장, 그리고 우리 연 대표는 나를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지원 형태의 포지션으로 활용할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도 이 점에 대해서는 옳다고 본다.
나 혼자 놈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여러 헌터들의 능력치를 2단계씩 끌어올려서 몬스터 토벌 작전을 벌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갑작스럽게 두 번째 콘서트가 정해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장소가 전장 한가운데라는 점이겠지만 말이다.
헌터들의 반응이 어떨지도 신경이 쓰였다.
“한국에서는 라이브로 노래 부르면서 몬스터들 때려잡았던 적은 있었는데. 미국 헌터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데이브한테 아까 연락 온 거 들어 보니까 기대하고 있다던데? 데이브한테 HTB 단체로 노래 부르는 거 아니냐고 아쉬워하는 헌터들도 있다고 그러더라.”
원래는 나도 그럴 생각이긴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토벌해야 하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워낙 많은 편이기도 했고.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헌터가 전투에 나서는 게 좋아 보여서 내 단독 콘서트(?)가 결정된 것이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노래를 부르면서 전투를 이어 가는 것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지만, 데이브나 다른 헌터들에게는 익숙한 게 아니었다.
네크로맨서를 상대할 때, 그때가 거의 유일무이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반면이 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 MML 수치라는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부터 이미 노래를 무기처럼 사용하면서 활동했었으니까.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내가 혼자서 최대한 많은 곡들을 불러야 했다.
우리 HTB 그룹의 노래까지도 전부 다.
승훈이 형이 내게 현실적인 질문을 건넸다.
“그룹 노래 같은 경우에는 멤버들이 다 같이 부르는 곡이잖아. 너 혼자 부르기 쉽지 않을 텐데. 그건 괜찮겠어?”
“어. 이럴 줄 알고 앨범 작업을 할 때 전투용으로 솔로 곡 버전도 같이 작업해 뒀거든. 앨범에는 안 담겨 있는 건데, 그거 부르면 돼.”
“짜식.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춰 뒀구만.”
노래하는 헌터라는 이명에 맞게 행동한 것뿐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미국 도로의 경우에는 시야가 탁 트인 곳이 많다.
산도, 고층 빌딩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광활한 대지의 연속.
이 넓은 곳에 스웹의 둥지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하긴. 미국은 땅덩이가 워낙 넓으니까.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 있는 데도 바로바로 발견을 못 하는 거겠지.’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기 발견 확률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미국처럼 땅이 워낙 넓은 곳은 지금처럼 몬스터들이 아예 터를 잡고 나서 한참 뒤에 발견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토벌 작전을 펼치는 데에도 간혹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이번도 그런 경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저기에 다수의 차량들이 한곳에 몰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몇몇의 차량에는 헌터 협회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그쪽으로 차를 몰고 간 승훈이 형.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카우보이모자를 멋들어지게 착용한 중년의 남성이 내게 먼저 다가와서 악수를 권했다.
“미스터 강! 오랜만이구만!”
“잘 지냈어요? 지부장님.”
이 사람이 헌터 협회 미국 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는 알렉스다.
승훈이 형과 마찬가지로 헌터로 활동했었다가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하고, 지금은 지부장으로 지내면서 미국 헌터들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었다.
성격이 워낙 좋고. 그리고 본인도 현역으로 직접 뛰어 봤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헌터들에게 불편한 사항이 생기면 더 크게 번지기 전에 적시적기에 처리해 주는 모습을 보여 줬다.
그 덕분에 알렉스는 벌써 지부장 연임만 세 번을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 협회장보다도 더 오랫동안 일한 셈이었다.
“자네가 와 준다고 들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 거야. 신이 아직 미국을 포기 안 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니까.”
“제가 신은 아니지만요.”
미국인 특유의 감성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가끔씩 너무 오버하는 것 말고는 다 좋은 사람이다.
“스웹 녀석들의 둥지는 어디 있습니까?”
겉으로 봤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 알랙스가 갑자기 자신의 오른발을 무릎 높이까지 들어 올리더니.
이내 발을 쿵! 하고 내리찍었다.
그것을 세 차례 반복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발아래에 있지.”
음…… 그렇군.
하긴. 여기서 둥지를 틀 만한 장소는 지하 말고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우리 발밑에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승훈이 형이 기겁을 했다.
“괘, 괜찮은 겁니까?”
“뭐, 어때. 놈들이 땅을 뚫고 위로 올라오려는 모습은 아직까지 안 보이니까. 그리고 입구로 보이는 곳은 따로 있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알렉스가 저 멀리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이동하지. 가면서 내가 직접 작전을 설명하겠네.”
“예, 알겠습니다.”
알렉스와 같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시가 하나를 입에 문 알렉스가 입에서 긴 연기를 뿜어내면서 토벌 작전에 대해 알려 줬다.
“우리가 준비해 둔 폭발물로 입구를 터뜨려서 강제로 확장시킬 거네. 안에 불을 질러서 놈들이 밖으로 빠져나오도록 유인하고, 지상으로 나오는 놈들을 족족 없애 버리면 되는 거지.”
“거기서 저는 노래를 부르면 된다, 이거군요.”
“그렇지. 안 그래도 이철민 소장이 자네를 위한 선물 하나를 만들어서 보냈다고 하던데.”
“저한테요?”
이철민 소장한테서는 그런 연락이 일절 없었는데.
어떤 선물인지는 잠시 뒤에 확인해 보기로 했다.
작전이 펼쳐질 장소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데이브가 내게 슬쩍 눈길을 줬다.
데이브의 성격상 절대로 먼저 인사 안 할 걸 알기에 내가 나서기로 했다.
“고생한다, 데이브.”
“아직 고생은 시작도 안 했는데.”
“여기 발견하고 현장 통제하고. 그러는 것도 고생이지, 뭐. 그나저나 이철민 소장이 나한테 선물 하나 보내 줬다던데.”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던 찰나, 지부장이 나를 안내했다.
“이거네.”
임시 작전 본부 천막 아래에 검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보안도 굉장히 철저했다.
자물쇠를 열고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한 순간.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마이크 아닙니까?”
내가 무대에서 사용하는 마이크보다 약간 가볍고 작은 그런 마이크였다.
때마침 타이밍 좋게 이철민 소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네, 여보세요.”
―태오 씨, 제가 아이템 하나 보냈는데, 잘 도착했습니까.
“지금 막 확인했습니다. 근데 선물이라는 게 마이크입니까?”
뭔가 대단한 걸 바란 것은 딱히 아니지만.
그래도 이 철통같은 보안을 자랑하는 상자에 마이크 하나 딸랑 들어 있으니까 뭐랄까. 김이 새는 느낌이다.
이철민 소장이 마이크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단순한 마이크 하나가 아닙니다. 레이드 시대 때 쌓아 온 아이템 제조 기술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만든 하이테크놀로지의 결과물입니다.
“그래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써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오늘 토벌 작전에서 라이브로 노래 부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일반 마이크 대신에 그거 사용하시면 됩니다.
“효과가 뭔데요?”
―마법으로 태오 씨의 목소리를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반주도 세팅되어 있으니까 별도의 오디오 장비 없이 그거 하나만 있으면 알아서 미니 콘서트가 펼쳐질 겁니다. 게다가 전기가 아니라 마법이라서 지난번처럼 EMP 효과에 걸릴 일도 없고요.
한마디로 전장용 마이크인가.
헌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별별 아이템을 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