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유대 (7)
네크로맨서는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그 감옥에 한번 갇힌 존재는 내가 살아 있는 한, 두 번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넌 거기서 평생을 썩게 될 운명인데, 뭐가 끝나? 내 목숨이? 웃음도 안 나올 만큼 재미없는 농담은 집어치우는 게 좋을 거다.”
“너, 원래부터 그렇게 말이 많았었냐?”
“…….”
네크로맨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 말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네크로맨서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내가 괜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녀석에게는 참 미안한데.
“허세 아니거든.”
들고 있던 검을 거꾸로 들어서 그대로 지면에 꽂아 버렸다.
그리고 맨주먹을 쥐고서 뼈 감옥을 그대로 부숴 버렸다.
“어……?”
네크로맨서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보 같은 탄식을 흘렸다.
“왜, 나를 평생 가둘 감옥이라며? 그런데 이렇게 쉽게 부서져도 괜찮은 거냐? 엉?”
“그, 그럴 리가…… 영원의 감옥이 이렇게 쉽게 부서질 리가 없다……!”
“근데 부서졌잖아. 왜, 또 보여 줘?”
그렇게 말을 한 나는 이번엔 발을 크게 휘둘러서 영원의 감옥인지 갈비뼈의 감옥인지 모를 뼈 감옥의 다른 한쪽을 박살 내 버렸다.
뼈 감옥의 잔해가 사방에 흩어졌다.
네크로맨서뿐만 아니라 녀석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헌터들마저도 놀란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준서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뼈 감옥을 가리키며 물었다.
“혀, 형! 대체 어떻게……? 아까는 못 부쉈잖아!”
“그거? 아이템을 들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다른 헌터들에게는 아이템이 전투력을 높이는 가장 빠른 수단으로 통한다.
하지만 등급이 낮은 아이템은 나에겐 그저 억제기에 불과하다.
내 전투력을 아이템이 오롯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이템을 들면 오히려 전투력이 내려가는 이상한 상황이 가끔씩 벌어진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뼈 감옥을 부숴 보려고 노력했을 때에는 아이템을 들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아이템을 내려놓은 나는 드래곤을 때려눕히던 시절, 무적의 포스를 자랑하던 그대로의 나다.
네크로맨서는 자기 심장을 파괴해야 전투력이 올라가지만.
나는 아이템을 포기하는 것만으로도 내 원래의 잠재 능력을 개방시킬 수 있다.
게다가 데이브와 헌터보이즈의 버프까지 있었으니까, 뭐 이건 식은 죽 먹기다.
네크로맨서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읊조렸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되냐.”
뼈 감옥에서 당당히 내 두 발로 나온 나는 가볍게 몸부터 풀었다.
우둑, 우두둑.
나름 오랫동안 좁은 공간에서 갇혀 있으니까 그새 몸이 굳어 버린 것 같다.
아니면 저 영원의 감옥인지 뭐시기인지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네크로맨서 못지않게 데이브 역시 나를 경악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설마 너, 처음부터 나올 수 있었던 거냐?”
“그건 비밀.”
괜히 ‘어.’라고 답하면 데이브의 원망 가득한 소리를 들을까 봐.
데이브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일단은 비밀로 하기로 했다.
자유를 되찾았으니.
이제 할 일은 하나밖에 없다.
네크로맨서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덤벼, 시체 녀석아.”
아직까지 네크로맨서는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나와 겨뤘을 때, 나를 포함해서 다수의 헌터들을 혼자서 상대했는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우리를 몰아붙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자신의 심장까지 희생하면서 힘을 강화시켰으니까.
무조건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보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네크로맨서의 남은 왼쪽 팔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팔에 뼈 가시들이 돋아나면서 채찍처럼 내게 휘둘러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맨손으로 가볍게 붙잡았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네크로맨서의 반쯤 썩은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야, 인마. 그때의 나랑 지금의 내가 똑같은 줄 아냐?”
녀석의 팔을 붙잡은 채로.
뽀각!
그대로 뼈째 부러뜨려 버렸다.
남은 팔 한쪽도 같이 뽑아 버린 나는 음식물 썩은 냄새와 똑같은 악취에 손을 내저었다.
네크로맨서는 이런 내 모습에 열 받은 모양인지, 다시 한번 신체를 변형시켰다.
등에서 솟아난 여섯 개의 팔.
이번에는 팔 채찍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나를 향해 쏟아졌다.
닿기만 해도 고층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아스팔트 도로가 갈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아까보다도 더 침착하게 놈의 팔을 하나하나씩 뽑아내 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네크로맨서는 기도 안 차는지 하려던 말도 못 한 채 금붕어처럼 입만 여러 차례 뻐끔거렸다.
“이제 알겠지? 니가 알던 그 옛날의 내가 아니라고.”
나는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강해졌다.
레이드 시대를 종결시킨 남자라는 수식어는 어디 가서 쉽게 구할 수 없다.
“네가 숨어 있던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물론 내가 가장 많이 변하긴 했지만.”
네크로맨서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내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는 네크로맨서.
놈이 반응하기 전에, 내가 먼저 녀석의 남은 심장 하나를 움켜쥐었다.
“잘 가라.”
콰직!
별로 좋지 않은 감각이 내 손을 타고 전신에 퍼졌다.
마지막 남은 심장이 터지자, 네크로맨서의 몸이 축 늘어졌다.
털썩.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의 시체에 파란 불이 붙었다.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머지않아 이 세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 손에 묻어 있던 검은 피 역시 놈과 함께 사라졌다.
데이브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게 확인차 물었다.
“이제 진짜로 끝났겠지?”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이렇게 답했다.
“어, 끝이야.”
만약에 또 나타난다고 하면.
그때는 내가 다시 죽이면 되니까.
* * *
네크로맨서가 대대적으로 살처분된 돼지들의 사체를 이끌고 대한민국 서울을 침공했지만,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한 채로 끝났다.
이미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서 네크로맨서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한 농민의 제보 덕분에 네크로맨서가 한국에 몰래 들어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미 네크로맨서의 행적을 쫓고 있었던 동시에 대비까지 어느 정도 되어 있었기 때문에 성공적인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대한민국 헌터들의 위상이 다시 한번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지게 된 영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헌터보이즈 멤버들과 데이브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내 예상대로, 이 영상은 사람들에게 많은 화제가 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에도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나 말고도 버프를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헌터들이 여럿 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다.
하지만 실전에서, 그것도 라이브를 통해서 헌터들에게 버프를 주는 영상은 굉장히 희귀한 축에 속했다.
우리가 올리지 말라고 해도 이미 대다수의 민간인들이 이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에 동영상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협회 입장에선 곤란할 수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좋은 현상이었다.
‘애초에 내가 이걸 바랐으니까.’
기사를 쭉 훑어보던 나는 이내 노트북을 덮었다.
타이밍에 맞춰서 누군가가 내 사무실을 노크했다.
“네, 최 프로듀서님,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마자 최 프로듀서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저라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걷는 소리만 들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역시, 헌터 랭킹 1위는 다르시네요.”
“새삼스럽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사님께서 이번에 그 시체 다루는 괴물 녀석을 처리하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봤거든요. 이사님이 이렇게 무서우신 분이었지 하고 다시 깨닫기도 했고요. 앞으로 절대로 까불지 않겠습니다, 이사님.”
최 프로듀서의 말에 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실제로 최 프로듀서가 나한테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하게 장난을 친 것도 없는데.
알아서 이런 태도를 보이니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살짝 헷갈릴 정도였다.
“저하고 콩트 하려고 여기까지 오신 건 아니죠?”
“당연하죠. 긴히 드릴 말이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데이브 씨하고 헌터보이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슬슬 나올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예상대로였다.
“이번에 헌터보이즈 멤버들하고 데이브 씨가 같이 노래 부르는 장면이 대중한테 크게 관심받고 있는 거, 이사님도 아시죠?”
“네. 안 그래도 관련 기사를 쭉 몰아서 보고 있었습니다. 양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다 보는 데 하세월이 걸릴 것 같습니다.”
페이지를 넘겨도, 넘겨도.
온통 헌터보이즈와 데이브 이야기뿐이었다.
물론 내 이야기도 있었다.
네크로맨서를 끝장낸 헌터가 나라는 식으로 여러 기사가 올라왔지만, 누가 몬스터를 퇴치했느냐보단 나 이외의 헌터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버프를 주는 진귀한 장면에 다들 주목했다.
그 주인공이 데이브였다는 것 때문에 이번 일이 더 크게 퍼져 나간 것 같았다.
데이브는 외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으니까.
“아까 헌터보이즈 멤버들이 저를 찾아왔더라고요.”
“최 프로듀서님을요?”
“예.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이번에 그 네크로맨서 관련 일 때문에 저한테 상의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합니다.”
몬스터에 관한 상의는 나나 승훈이 형한테 하면 되는데, 왜 최 프로듀서한테 했는지 모르겠다.
이 이유는 머지않아 밝혀졌다.
“데이브 씨하고 같이 그룹 활동을 하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오호, 갑자기?
“좀 의외네요. 데이브하고 다른 멤버들이 서로 성향이 많이 다른 거 같다고 해서 분리해 데뷔하는 걸로 했는데.”
“사실 저는 얼추 이렇게 될 거 같긴 했습니다.”
“왜요?”
“이사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멤버들이 데이브 씨 이야기를 생각보다 자주 했거든요.”
“그랬군요.”
그런 낌새가 보이긴 했었다.
그러나 최 프로듀서처럼 멤버들과 가까이 일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들었다든지 하는 그런 계기는 없었다.
“데이브 쪽은 뭐라고 하던가요?”
“아직 안 만나 봤습니다. 오늘 멤버들하고 같이 데이브 씨를 찾아가 볼까 하는데, 그 전에 이사님한테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 같은 걸 듣고 갈까 해서요.”
“구체적으로 어떤 거요?”
“이사님이 데이브 씨하고 오랫동안 아시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문제는 아직 저도 그 녀석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많다는 거지만요.”
“음…… 그렇습니까.”
실망한 듯한 최 프로듀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입이 근질거린다.
어쩔 수 없지.
“그러면 저도 같이 갈까요?”
“네? 이사님도요?”
“저도 헌터보이즈의 멤버입니다. 제 그룹에 관한 일이니까, 제가 도와드려야죠. 안 그렇습니까?”
최 프로듀서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이사님이 같이 가신다면 저야 당연히 좋죠! 그럼 바로 가실까요?”
“예? 지금 당장요?”
“네.”
아, 나는 나중에 시간을 따로 잡은 다음에 갈 줄 알았는데, 지금 바로였구만.
우리 최 프로듀서님, 이럴 때 보면 참 행동력이 넘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