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유대 (5)
레이드 시대에는 몬스터가 근처에만 있어도 알아서 촉이 왔는데.
요즘은 몬스터의 존재를 접할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예전의 그 촉도 다 죽은 느낌이다.
이렇게 보면, 아이리스의 감각이 참 대단하다.
사실 나도 입구에서 그 악취를 맡긴 했었다.
그러나 나는 아이리스보다는 아주 짧게 맡았던 것에 불과했기에 수상하다는 느낌조차 받지 않았다.
하지만.
던전 안쪽으로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아이리스가 느꼈다던 그 악취가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알 것 같았다.
점점 심해지는 냄새.
확실한 건, 살아 있는 생물의 것은 아니었다.
내 예상대로, 네발 달린 짐승 여럿이 터벅터벅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살점이 다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가스로 인해 배가 빵빵하게 부른 돼지들이었다.
‘협회장이 말했던 그 살처분되었다는 돼지들인가.’
일반 동물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다.
어려울 일도 아니다.
하지만 네크로맨서의 표식에 의해 언데드로 부활한 돼지들이라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세이렌이 머들린에게 노래로 버프를 주는 것처럼, 네크로맨서는 죽어 있는 사체를 되살림으로써 강한 전투 능력도 같이 부여해 준다.
그래서 네크로맨서가 무서운 것이다.
1인 군단이라는 별칭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어디 보자…….”
돼지들의 숫자가 꽤 많아 보였다.
어림잡아도 20마리 정도 되는 것 같다.
자기들을 살처분시킨 인간을 원망이라도 하듯이, 붉은 눈을 번뜩이면서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놈들이 움직일수록 악취가 진해졌다.
가방 안에서 검 손잡이를 꺼냈다.
내가 마력을 주입하자, 갑자기 없던 날이 퉁! 하고 튀어나왔다.
“휴대용이라서 내구도는 별로 안 좋은 아이템이긴 한데…….”
돼지 녀석 한 마리가 내게 달려들었다.
끝까지 녀석을 주시하고 있다가 들고 있던 검으로 스윽 가볍게 베어 버렸다.
깔끔하게 잘려 나가는 돼지 한 마리.
“보니까 너희들 몸이 이것보다 더 내구도가 안 좋아 보이네.”
내 도발이 먹힌 걸까.
나머지 돼지들이 나를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래, 어디 몸이라도 좀 풀어 보자.
* * *
아이리스로부터 연락을 받자마자 헌터협회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볼일이 있어서 강태오와 함께 촬영장이 오지 못했던 매니저 이승훈 역시 헌터들과 함께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소환수들이 나타났다는 현장으로 출동했다.
던전과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홀로 사람들을 지키고 있던 아이리스가 이들을 반겼다.
“여기예요, 협회장님!”
“태오는?”
“던전 안에 혼자 남아 있을 거예요.”
“아무리 태오가 강하다고 해도, 네크로맨서를 혼자서 상대하는 건 힘들 텐데…… 다들 아이템 챙기고! 현장으로 바로 들어가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이들이 한창 준비에 돌입할 때.
차량 한 대가 빠르게 다가왔다.
차에서 데이브가 내리자, 아이리스가 친오빠를 불렀다.
“오빠! 곧 진입한다니까 오빠도 준비해, 어서!”
“됐어. 그럴 필요 없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빠는 안 들어가려고?”
“그럴 필요도 없어.”
데이브가 고갯짓으로 던전 입구를 가리켰다.
“안에 강태오 있다며.”
“어, 오빠 혼자 남았어.”
“그러면 됐지, 뭘 더 바라는 거야.”
데이브는 강태오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가 지닌 강함만큼은 인정한다.
데이브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먼치킨 같은 존재.
이건 데이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드래곤도, 네크로맨서도.
둘 다 강태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데이브가 말한 대로, 강태오가 파카를 거칠게 털어 내면서 멀쩡한 모습으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태오야!”
협회장과 아이리스, 이승훈, 그리고 진입을 앞두고 있던 헌터들이 강태오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이승훈이 강태오에게 먼저 물었다.
“어떻게 된 거냐, 태오야?”
“저번에 감쪽같이 사라졌다던 그 돼지 사체들, 역시 네크로맨서가 가져간 거였어. 안에 완전 보쌈 파티야.”
단지 먹을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협회장의 지시에 따라 헌터들이 던전으로 진입했다.
강태오가 말한 것처럼, 네크로맨서에 의해 언데드 몬스터로 재탄생하게 된 돼지들은 마치 요리처럼 잘게 다져진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녀석들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외관상 좀 보기 그래도 저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불로 아예 태워 버리거나.
이것 말고는 언데드 몬스터를 완전히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이들을 조종하는 네크로맨서를 찾아서 없애는 것이다.
그러나 강태오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그 녀석은 여기에 없습니다.”
협회장이 오늘 들은 보고 중 제일 안 좋은 소식이었다.
알겠다고 말한 협회장은 박 PD를 향해 미리 말을 해 뒀다.
“아무래도 ‘던전 탐험대’ 3회는 결방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건 방송에 내보내면 안 된다.
협회장은 이 말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박 PD와 스태프들, 그리고 출연자들은 이견이 없다는 뜻을 밝히듯 고개를 연달아 끄덕였다.
* * *
이로써 네크로맨서가 공식적으로 살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죽은 돼지를 살려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는 네크로맨서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대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마침 승훈이 형이 협회에 도착하자마자 이에 대해 물었다.
“근데 네크로맨서는 어떻게 살아난 거냐? 네가 분명 놈의 심장을 파괴했다고 들었는데.”
“어, 확실해.”
“자기 자신도 되살릴 수 있나?”
“그게 가장 확률이 높지.”
이전부터 누차 말을 했지만, 우리는 이세계에서 넘어온 존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네크로맨서라는 존재도 마찬가지다.
일단은 네크로맨서도 ‘몬스터’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몬스터라고 해도 죽었는데 계속 살아나야 한다는 법은 없다.
네크로맨서가 이례적이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처음으로 네크로맨서의 존재가 확인되자마자 헌터협회는 대한민국에서 활동 중인 모든 헌터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오랜만에 울리는 재난 경보음.
작전과 소속 직원이 협회장과 우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급하게 뛰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협회장님!”
“또 왜?”
큰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다.
“지, 지금 서울 지역 전체에…… 네크로맨서들이 되살린 돼지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망할!”
네크로맨서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혼자서 여러 몬스터들을 부릴 수 있다 보니까 이런 끔찍한 동시다발 공격도 가능했다.
“일단은 출동할 수 있는 모든 헌터들은 다 출동하라고 전해! 그리고…….”
협회장이 나와 승훈이 형, 그리고 데이브와 아이리스를 응시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크로맨서를 찾아서 없애도록 해.”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 * *
서울 도심 한복판에 등장한 괴물 돼지들.
대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돼지 사체들을 모았는지, 헌터들이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끝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네크로맨서가 레이드 시대에서 처음으로 존재감을 알렸을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이게 다 나와 헌터걸스의 노래 덕분이었다.
헌터걸스도 헌터 활동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슬혜를 제외하고 나머지 셋도 스케줄을 급하게 중단하고 괴물 돼지들을 제거하기 위해 출동했다.
회사에서 레코딩 연습을 하던 헌터보이즈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열 마리째.
괴물 돼지를 썰어 넘긴 내게 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오 형! 저희 왔어요!”
“어, 왔냐.”
비록 랭크는 낮지만, 나와 헌터걸스의 노래 덕분에 전투력 상승 버프를 등에 업고 괴물 돼지들을 무난하게 상대해 가는 우리 멤버들.
본인들도 이런 경험은 매우 낯선 모양인지 스스로의 능력에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데이브와 아이리스도 남은 괴물 돼지들을 제거하면서 주변을 살폈다.
네크로맨서라고 만능은 아니다.
언데드 몬스터로 만든 돼지 사체들은 그 숫자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들을 이렇게 밖으로 이끌어 냈으니.
네크로맨서 본인이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
내 예상대로.
네크로맨서가 돼지들의 사체를 엮어 만든 거대한 언데드 괴물을 타고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이전과 비슷한 모습……은 아니었다.
군데군데 앙상한 뼈가 드러나 보이는 것으로 추측컨대.
“너도 죽다가 살아났냐?”
네크로맨서가 웃음을 흘렸다.
“죽다가 살아난 게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
“그러네.”
반쯤 썩은 시체가 되어 있으니, 딱 그렇게 보이긴 한다.
아무튼 잘됐다.
우리의 목적은 네크로맨서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는 거였다.
녀석이 우리의 의도대로 나타났으니까.
이제 쓰러뜨리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네크로맨서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녀석이 타고 있던 거대 사체 괴물이 갑자기 퍼어엉! 하고 풍선처럼 터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체에서 튀어나온 뼈들이 나를 감옥처럼 가뒀다.
“뭐야, 이거?”
검으로 감옥을 베어 버리려 했지만.
퉁! 소리만 날 뿐, 뼈 감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직 나 하나를 가두기 위해서 저 많은 사체를 소모한 거였다.
“데이브! 얘들아!”
나는 나머지 헌터들을 향해 엄지를 추켜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니들이 나 대신 쟤 없애 줘야겠다.”
데이브가 코웃음을 쳤다.
“순식간에 끝내 버릴 테니까, 거기서 얌전히 보고나 있어라.”
이어폰을 통해서 나와 헌터걸스의 노래를 재생하는 데이브.
그러나 이때.
네크로맨서가 갑자기 오른손에 쥐고 있던 마나 폭탄을 터뜨렸다.
넓게 퍼지는 검은 마나.
지지직! 소리를 내더니, 이내 모든 기계들이 먹통이 되었다.
당연히 우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이어폰도 망가지고 말았다.
‘EMP 같은 거라도 되나 보네.’
이러면 곤란하다.
네크로맨서는 데이브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존재다.
그래서 노래 버프를 이용해서 단숨에 놈을 제압하는 게 베스트였는데.
네크로맨서는 이미 그걸 알고 있는 듯했다.
“너희가 노래로 전투 능력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정보는 이미 입수했다. 그리고 노래가 끊기고 버프로 축적한 힘을 모두 소모하면, 버프 효과가 풀린다는 것도 알고 있지.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듣도 보도 못한 기술까지 익혔더군.”
“언제 그런 걸 다 조사했냐?”
내가 시비조로 묻자, 네크로맨서는 코웃음을 쳤다.
“너희를 확실하게 없애기 위해서, 이 정도 준비는 당연히 해야지.”
대단한 집착이다.
저것이 복수의 힘인가?
하지만 우리 쪽에도 놈에게 복수해야 할 사람이 한 명 존재한다.
불의 힘이 깃든 창을 들고 빠르게 네크로맨서에게 접근하는 데이브.
네크로맨서는 시간을 끌려는지 그 앞에 언데드들을 잔뜩 보냈다.
또한 네크로맨서 주변에 뭉친 검은 연기가 데이브를 방어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브는 버프의 힘을 잃고 말았다.
원래의 데이브 능력으로는 네크로맨서를 단숨에 없앨 수가 없다.
지금 수준의 불의 창으론 녀석의 흑마법을 쉽게 뚫을 수 없었다.
노래 버프가 있다면 가능할 텐데.
어쩔 수 없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을 수 없다면.
‘라이브로 부르는 수밖에!’
세이렌, 머들린과 싸울 때를 떠올리면서 내가 직접 노래를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노래를 부르려고 할 때마다 검은 연기가 튀어나와서 내 목소리를 지워 버렸다.
말하는 건 상관없는데, 노래만 커트해 버린다.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
그러면 최후의 수단이다.
“준서하고 딜런, 니암! 내 말 잘 들어라!”
우리 멤버들을 불러 세우고서 이렇게 외쳤다.
“여기가 너희들의 데뷔 무대다! 노래해!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