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유대 (4)
일단은 네크로맨서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정보를 얻어 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차라리 잘됐다.
네크로맨서가 한국에 있다면,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나하고 데이브가 바로 출동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누가 부른 것도 아닌데.
통화가 끝나자마자 귀신같은 타이밍에 데이브가 야외 휴게실을 찾았다.
“뭐냐?”
데이브도 내가 먼저 와 있는 걸 보고 놀란 모양인지 반사적으로 차가운 말을 들려줬다.
“아니, 그냥. 통화 좀 할 게 있어서. 너도?”
“협회 측에서 연락 왔기에. 무슨 이야기라도 해 주려나 하고 전화 걸려고 왔지.”
“아, 그거면 굳이 그쪽에 전화할 필요 없어. 내가 알려 줄게.”
아무래도 내가 데이브보다 한발 먼저 정보를 들은 모양이다.
데이브의 표정이 짜증으로 물들었다.
“말해 줄 거면 둘 다 한꺼번에 일러 주든가, 아니면 나한테 먼저 연락을 주든가. 그렇게 하면 될 것이지, 왜 너한테 먼저 알려 준 거냐?”
“비상 연락 체계 시스템 규정에도 나와 있잖아? 연락을 할 때에도 랭크를 우선순위로 둬서 한다고.”
“쳇.”
데이브도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게 억울하면, 나보다 더 전투 능력을 올리면 된다.
물론 매우 힘든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협회한테서 연락받은 내용이 뭔데?”
“네크로맨서에 관해서.”
네크로맨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데이브의 행동이 일시 정지 되었다.
“그 녀석, 지금 한국에 와 있대. 이틀 전에 목격자가 있었어.”
“……그렇군.”
“동물 사체들로 무슨 짓을 할 생각인가 봐. 그나마 천만다행이지. 만약 세이렌, 머들린 사건이 벌어지자마자 네크로맨서 녀석이 나타났다면, 그날 지옥이 될 뻔했어.”
예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났다.
난간에 몸을 기댄 데이브는 주머니 속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확한 위치는, 아직 안 나왔겠지?”
“어, 협회 측에서 경로를 추정 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나도 들은 정보가 얼마 안 된다.
농가에서 목격되었다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다시피 하다.
“뭐, 이건 나중 일이니까.”
우선은 지금 일에 대해서 먼저 데이브와 상의하고 싶다.
“최 프로듀서가 그러더라. 노래는 나왔는데, 네가 아직 데뷔 일자를 못 정하고 있다고.”
“…….”
“내가 저번에 말해 줘서 알고 있지? 우리가 노래를 부를수록 그만큼 우리 헌터들의 전력이 올라간다고.”
노래로 싸운다.
예전 같은 경우에는 재미도 없는 농담하지 말라는 소리 듣기 딱 좋았겠지만, 이미 이철민 소장의 연구를 통해서 여러 차례 증명이 되었다.
“그냥 대충 부르면 안 되나? 굳이 데뷔까지 할 필요가 있어?”
“이철민 소장이 말했지? 헌터들이 우리 노래에 호감을 가져야 효과가 발생한다고. 그래서 일부러 데뷔 과정을 거치고, 방송에 출연하면서 우리 노래를 홍보하고 이러는 거잖아.”
원래는 나의 자기만족이 이유였다.
그러다 나같이 노래를 통해서 버프 능력을 줄 수 있는 헌터들이 더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제는 데뷔가 하나의 작전으로 통하게 되었다.
데이브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귀찮은 일 늘리는 건 여전하군.”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그래도 어찌하랴, 이미 이 능력들을 알아 버렸는데.
그렇다고 귀찮다고 모른 척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아까 헌터보이즈 데뷔곡 듣고 왔어.”
“……그러냐.”
“멤버들이 너를 두고 데뷔하는 거에 신경 많이 쓰고 있는 눈치더라.”
“그때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가자고 잘만 말하더니만.”
“원래 후회라는 건 시간이 지나고 나서 찾아오는 법이니까.”
“…….”
데이브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직 시간 남았어.”
“무슨 시간?”
“다시 네가 헌터보이즈로 들어올 시간 말이야.”
“너는 내가 혼자 움직이는 편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 텐데, 왜 굳이 나를 그룹 활동으로 엮으려고 하는 거지? 시간 낭비 아닌가?”
“네가 네크로맨서 토벌 작전에서 겪었던 아픈 기억이 뭔지 나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가만히 놔둘 수가 없는 거야.”
데이브는 말을 아꼈다.
아무리 강인해 보여도, 녀석도 결국은 사람이다.
“아무튼, 강요까진 하지 않을게. 대신에 마음이 내키거든, 언제든 나한테 말해라. 내가 최 프로듀서한테 잘 말해 둘 테니까.”
그렇게 데이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마치고 나는 다시 녹음실로 걸음을 옮겼다.
데이브라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다.
내가 아는 데이브는 여태껏 그래 왔으니까.
* * *
‘던전 탐험대’ 마지막 촬영지를 어디로 할지 고민하던 박 PD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촬영지는 연천 쪽 산골 속에 위치한 던전이었다.
우리가 첫 번째로 탐험했었던 DN-219처럼 던전 종류 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굴 타입이다.
여기도 협회가 사전에 여러 차례 몬스터가 숨어 있는지 어떤지 조사를 마쳐 둔 상태다.
안전이 확정된 곳이었기 때문에 나도 마음 편히 가려고 했지만.
그건 협회로부터 네크로맨서에 관한 연락을 받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네크로맨서가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과연 ‘던전 탐험대’ 촬영을 계속 진행해야 좋을지 고민이 됐다.
‘뭐,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니까.’
별일 없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던전 탐험을 나섰다.
출연진은 1회, 2회와 동일했다.
여기에 스케줄 문제로 인해서 나빈이만 빠지게 되었다.
나하고 아이리스, 둘만 있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나나 아이리스, 둘 다 1인분 이상은 하는 헌터들이니까.
무슨 일이 생길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만약의 상황을 생각해도 사람들의 안전은 확실하게 지켜 낼 수 있다.
던전 안으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리스가 갑자기 코를 틀어막았다.
아이리스의 행동에 출연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이리스 씨, 왜 그러시나요?”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요.”
“냄새요?”
출연자들이 후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킁킁.
“저한테는 아무 냄새도 안 나는데요?”
“저도요.”
“아이리스 씨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닐까요?”
아이리스도 방금 맡았던 고약한 악취가 계속 나는 게 아니라 아주 잠깐 나고 말았던 것인지 다시 코에서 손을 뗐다.
“그런가 봐요. 죄송해요.”
단순히 아이리스의 착각일까?
그러나 아이리스는 헌터들 사이에서도 감각이 상당히 예민하기로 알려져 있었다.
실제로 아이리스 덕분에 여러 차례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다.
아이리스는 단순히 자신의 오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방금 했던 그 말을 당분간 귀에 계속 담아 두기로 했다.
그리고 협회 측에서 흉흉한 정보를 듣기까지 했으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돌다리를 두들겨 보고 건너는 습관은 늘 옳다.
* * *
던전 탐험만 벌써 3회 차여서 그럴까.
처음에는 던전 입구에 발을 들이는 것만 해도 오들오들 떨었던 출연자들이 이제는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손전등을 들고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걸어 나갔다.
게다가 이 던전은 내부가 워낙 어둡기 때문에 이미 곳곳에 등까지 다 설치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따로 손전등이 필요가 없었다.
윤선규가 몸을 으슬으슬 떨면서 말했다.
“무슨 거대한 냉장고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네요.”
“여기 던전을 지키고 있던 몬스터들도 실제로 빙결 속성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온도가 꽤 낮은 편이죠.”
분명 대한민국 한가운데에서 몬스터들과 싸우는데, 당시에는 너무 추워서 남극에서 싸우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여름옷이 아니다.
옷장 안에서 아직 나오기 이른 시기에 외출을 하게 된 파카를 꺼내 왔다.
주머니 속에 핫팩도 두 개씩 들어 있었다.
“어흐, 추워라.”
“성빈 오빠, 핫팩 몇 개 남는데, 드릴까요?”
“괜찮아, 괜찮아. 그냥 너 써. 나도 많이 가지고 있어.”
출연자들은 처음에 내가 던전 내부로 들어가면 시베리아 한복판에 떨어진 것처럼 매우 추울 테니까 방한 대책을 단단히 하고 오라고 했을 때에는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8월. 한창 여름이니까.
이 여름에 혼자서 겨울인 곳이 있다?
만약에 내가 헌터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안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오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자칭 서바이벌 전문가 이아담조차도 몸을 와들와들 떨었다.
“이 추운 곳에서 몬스터들하고 대체 어떻게 싸우신 겁니까?”
“그러게요. 그때는 너무 싸우는 거에만 열중해서 여기가 이렇게 추운 곳인지 잘 몰랐습니다.”
얼어 죽은 헌터들도 있다고 들었다.
귀를 찢을 듯한 칼바람이 던전 안쪽에서 불어왔다.
그러자 아이리스가 다시 손으로 자신의 코를 감쌌다.
“또 그 냄새가 나서 그래?”
“네. 아까는 제가 잘못 맡았던 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틀림없어요. 안에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뭔가가 있어요.”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PD님! 촬영 접죠!”
“네?”
“아이리스가 뭔가를 감지한 모양인가 봅니다. 출연자들하고 스태프들 데리고 여기를 벗어나세요. 어서!”
“아, 알겠습니다!”
촬영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안전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아이리스, 네가 사람들하고 같이 가 줘.”
“오빠는?”
“난 여기 남아서 안에 대체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갈게.”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갈 수는 없다.
아이리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생기면 바로 저한테도 연락 줘요. 통신기 가져왔죠?”
“어, 여기.”
헌터들은 습관적으로 항상 연락 수단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블루투스 이어폰처럼 생긴 작은 통신기를 왼쪽 귀 안에 꽂았다.
그동안, 아이리스가 사람들을 데리고 빠르게 던전 밖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피신할 때까지 나는 당분간 입구를 지키고 있기만 했다.
혹여나 안으로 들어가면, 전투가 벌어질 수 있으니까.
그러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다칠 우려가 있다.
통신기에서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들려요?
“어, 잘 들려. 밖은 이상 없지?”
-네, 사람들이 많이 불안해하는 거 같아서, 일단 협회 쪽에 연락해서 지원 요청부터 할게요.
“알았어.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여기 던전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어. 위험하니까.”
-뭐가 있어요?
“아직은 몰라.”
한참을 망설이던 아이리스가 이내 내 요구에 알겠다고 답했다.
-조심하세요, 오빠.
아이리스도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다.
요즘 한창 조심해야 하는 시기임을 알고 있기에 나한테 이런 주의를 준 거였다.
“걱정하지 마. 녀석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드래곤보다는 약하겠지.”
아이리스와의 통신을 종료한 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던전 탐험대’ 촬영을 할 때마다 혹시 몰라서 촬영일에 항상 아이템을 챙겨 오길 다행이었다.
어떤 놈들이 저 안에서 몰래 숨어 있었던 건지.
‘확인해 보러 가실까.’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