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5화 (25/250)

제7장. 계획 수정 (4)

베를린에서 벌어진 몬스터 침공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내 데뷔 쇼케이스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나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보컬, 안무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대한민국을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내 데뷔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쇼케이스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관심이라는 것은 결국 양날의 검이다.

이걸 최대한 잘 활용하기 위한 방법은 아까도 언급했던 것처럼 철저한 준비. 이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다.

D-1.

바로 내일, 내 인생 첫 데뷔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자정을 넘어 새벽이 가까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안무 연습실에 홀로 남아 있었다.

“하아, 하아…….”

몬스터와 몇 날 며칠 치고받고 싸워도 멀쩡했는데.

아무래도 데뷔가 주는 부담감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꽤 큰 모양인지, 슬슬 체력적으로 한계를 보였다.

“조금만 쉬었다가 할까.”

그대로 연습실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주저앉았다.

그러자 연습실 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쉬었다가 하는 게 아니라, 집에 들어가야지. 내일 아침부터 샵 들르고 해야 하는데.”

승훈이 형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충고했다.

매니저 입장에선 지금의 내 모습이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컨디션 조절도 매우 중요하니까.

“괜찮아, 형. 아직은 할 만해.”

“하여간 짜식. 자, 이거 마시고 해라.”

내가 좋아하는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땡큐, 형. 잘 먹을게.”

이 시간까지 나를 챙겨 주고. 역시 승훈이 형밖에 없다.

“연습 몇 시까지 하게?”

“1시간만 더 하고 들어가려고.”

그러면 한…… 새벽 2시 반쯤 되려나?

집에 들어가고, 씻고 잘 준비를 하면 한 3시 반쯤 될 거 같다.

“내일 6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눈뜰 수 있겠어?”

“혹시 모르니까 형이 모닝콜 좀 해 줘.”

“알았어, 인마. 영광으로 생각해라. 나, 전 여자 친구한테도 모닝콜 해 준 적 없는 사람이야.”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하는 승훈이 형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때 이후로 몬스터 소식은 없지?”

“어, 목격담은 있는데, 저번처럼 막 민간인들한테 위협을 가하는 일로는 번진 적 없어.”

“이철민 소장은? 베를린 갔다 온 이후로 통 연락이 없던 거 같은데.”

“글쎄.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도 통 알 수가 없으니까. 아마 협회장님도 모르실걸.”

연구소에서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아직 정확한 소식을 들은 게 없다.

쇼케이스 끝나고 시간이 나면 내가 직접 연락을 해 보든가 해야겠다.

“아, 그렇지. 형, 온 김에 내 연습이나 좀 봐줄래?”

“그래. 음악 틀어 줘?”

“응, 바로 시작할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나의 길’ 전주가 안무 연습실을 채웠다.

원, 투, 쓰리, 포.

팔을 수평으로 뻗은 뒤, 반주에 맞춰서 앞으로 내민 다음에 센터 자리를 유지하며 걸어 나갔다.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카메라 쪽으로 시선 처리를 하면서 노래 파트를 소화.

그리고 여기서 턴.

나의 첫 정식 무대인 만큼, 라이브로 진행할 예정이었기에 안무를 소화하는 와중에도 직접 노래까지 불렀다.

대충 백댄서들이 어느 위치에 있을지, 무슨 동작을 취할지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거기에 맞춰 움직였다.

허리를 살짝 숙이고, 오른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 몸 안쪽으로 접었다.

관중을 향해 크게 인사하는 듯한 동작을 선보이며 마무리.

숨을 죽인 채 내 개인 무대를 지켜보던 형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잘하네! 처음 봤을 때에 비해서 엄청 성장했어!”

“나, 처음부터 잘했는데.”

“잘하긴 개뿔. 그때는 자신감만 넘쳤지. 아무튼 고생했다. 이제는 어엿한 댄스 가수티가 나네.”

승훈이 형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일 긴장 최대한 덜하고, 실수만 안 하면 완벽하겠다. 하던 대로만 해.”

“그래야지. 근데 형은 언제 들어가게? 나야 이동하는 동안 차에서 자면 된다 치더라도, 형은 운전도 해야 하잖아?”

“안 그래도 이제 슬슬 들어가려고. 너 연습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나도 잠 못 잘 테니까.”

땀에 젖은 내 등을 툭툭 토닥여 줬다.

“나 먼저 간다. 힘내고. 언제나 응원하마.”

“고마워. 들어가, 형.”

내가 헌터로 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 쭉 호흡을 맞춰 왔던 사람이 이렇게 응원한다고 말해 주니까 없던 기운도 생기는 기분이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전신 거울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을 빠르게 훑었다.

“좋아, 한 번 더 해 보자, 강태오!”

인생 2막의 시작을 사람들 앞에서 화려하게 알리고 싶다.

* * *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출발하자는 승훈이 형의 판단은 그야말로 나이스였다.

만약 오전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서 출발했다?

그러면 출근길 러시에 딱 막혀서 도로 한복판에 갇힌 채 오도 가도 못했을 것이다.

새벽에 미리 예약을 해 둔 샵에 가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까지 받은 뒤, 우리들은 방송국에서 마련해 준 특설 쇼케이스 스튜디오로 향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화려한 조명과 무대.

사전 방문을 통해서 한번 미리 보긴 했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무대가 온전히 제모습을 갖춘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무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심장이 뛰었다.

“오셨습니까, 태오 씨.”

오늘 내 단독 쇼케이스를 책임질 류진국 PD가 밝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무대는 마음에 드십니까?”

“예, 제가 원하는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만들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태오 씨가 마음에 안 들어 하시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네요.”

단독으로 편성된 일회성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팍팍 썼다는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들었다.

하기야.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온갖 스폰서는 다 붙었으니까.

제작비야 차고 넘칠 것이다.

투자를 많이 받았으니까, 그만큼 써 주는 게 예의지.

쇼케이스 MC 역할을 맡아 줄 사람 역시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이로 섭외했다.

가수 겸 배우 출신, 유이빈.

마침 그녀가 본의상으로 갈아입고 스튜디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먼저 유이빈에게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이빈 씨.”

“어머머, 태오 씨! 벌써 오셨어요?”

“네. 그나저나 이빈 씨도 일찍 오셨네요.”

나야 최종 리허설이니 뭐니, 체크할 게 많다 보니 일찍 왔다 치더라도.

이빈 씨는 굳이 나처럼 이른 시간에 올 필요가 없었다.

대본 맞춰 보는 것 정도야 그녀에게는 간단한 일일 테고.

그럼에도 이빈 씨는 당연히 와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은 저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날이니까요.”

“그래요?”

“네, 사실 제가 예전부터 태오 씨 팬이었거든요.”

헌터들 중에 종종 연예인 못지않게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데이브도 거기에 속했다.

그런데 설마 이렇게 유명한 연예인이 내 팬임을 자처할 줄은 몰랐다.

“태오 씨가 출연했던 모든 프로그램들 다 챙겨 봤어요. 말씀을 너무 잘하셔서 놀랐어요.”

“헌터 생활할 때 브리핑 같은 걸 워낙 많이 해서 그런가 봅니다.”

가끔은 귀찮기도 한데, 협회장이 억지로 시키니까. 그래서 등 떠밀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는 싫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덕분에 멘트 치는 실력이 많이 늘었으니까.

이빈 씨와 조금 있다가 보자고 말하고서 헤어진 뒤.

의상실로 향한 나는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옷을 갈아입었다.

무대에 오르자 류 PD가 마이크를 들었다.

“태오 씨, 댄서들하고 같이 위치 체크해 주시고요. 조명은 어때요?”

“살짝 밝은 거 같습니다. 눈이 부셔서 시야에 방해가 되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조명 세기는 좀 줄이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마이크 볼륨 체크도 해 볼까요?”

“아아.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마이크 테스트.”

“네,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음향 체크하고, 바로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PD의 신호에 따라 ‘나의 길’ 반주가 흘러나왔다.

무대에 선 채 내 노래를 들으니까 뭐랄까.

‘나, 진짜로 데뷔하는구나.’

이제야 실감이 좀 난다.

* * *

오후 4시 55분.

데뷔 쇼케이스가 생방송으로 진행될 예정이었기에 현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남은 시간은 단 10초.

스태프들이 정신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대 뒤에 서서 어떤 식으로 대중과 가수로서 처음 인사를 건네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되풀이했다.

정각이 되자마자, 이빈 씨가 큐시트를 들고 세련된 블랙톤의 원피스를 차려입은 채 먼저 무대에 올랐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태오 씨의 데뷔 쇼케이스 무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진행을 맡은 유이빈입니다. 반갑습니다!”

역시 프로는 프로다.

앞에 수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무대를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빈 씨는 긴장하는 티조차 내지 않은 채 능숙한 솜씨로 멘트를 이어 나갔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오늘 이 무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채팅창이…… 예상대로 다양한 언어들이 보이네요.”

인터넷으로도 동시에 생중계가 되고 있는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접속해 있었다.

저러다가 막 다운되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좀 불안하긴 한데.

그래도 아직까진 멀쩡히 버티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여러분들이 보고 싶어 하시는 태오 씨를 먼저 만나 보실까요?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기자들이 관객들의 역할까지 같이 맡아 주는 모양인지 뜨거운 박수갈채로 나를 환영했다.

의상을 갖추고서 무대로 올라온 나.

이빈 씨의 신호에 따라 자기소개를 펼쳤다.

“안녕하세요. 오늘만큼은 가수 태오로 서게 된 강태오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수로 활동할 때에는 성을 떼고 이름만 사용할 생각이다.

의자에 앉은 나를 향해 이빈 씨가 질문을 건넸다.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아주 떨리네요. 헌터로 처음 데뷔할 때보다도 더요.”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가수 같은 경우에는 못다 이뤘던 내 미련이자 꿈이었으니까.

그래서인지 더 긴장이 된다.

이빈 씨도 내 이런 심정을 느꼈는지,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가벼운 농담 같은 것도 해 주는 등 노력을 많이 했다.

덕분에 조금은 긴장감이 풀렸다.

팬들에게 미리 받은 질문에 답해 주는 식으로 시간을 보낸 뒤.

“이제 태오 씨의 무대를 보도록 할까요?”

이빈 씨의 멘트에 따라 조명이 달라졌다.

기자들의 손도 바빠졌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역사적인 날로 남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리허설 때처럼 반주가 흘러나오면서 조명이 나를 비췄다.

댄서들의 동작이 넓은 무대를 꽉 채워 갔다.

노래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나는 무대 뒤에서 생각했던 멘트를 큰 소리로 외쳤다.

“세계를 구할 노래를 여러분들에게 불러 드리겠습니다! 들어 주세요!”

드디어 내 오랜 꿈이 현실로 펼쳐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