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22화 (22/250)

제7장. 계획 수정 (1)

내 의견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먼저 드러낸 데이브를 보면서 든 생각은 딱 이거다.

저 투덜쟁이 금발 녀석이 웬일이지?

내가 하는 일은 전부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려고 했었던 놈이 갑자기 이렇게 순하게 나오니까 괜히 다 찝찝해졌다.

회의에 참가한 이들 역시 데이브의 태도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자네가 별일이군.”

“무조건 반대할 줄 알았는데.”

아마 데이브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무거운 한숨을 푹 내쉰 데이브가 왜 갑자기 사람들의 모든 예상을 뒤엎고 이런 말을 흘렸는지, 그 이유를 알렸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에 아예 설득력이 없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저 통계자료들도 신빙성이 있고요. 그리고 저도 헌터입니다. 몬스터들한테 헌터와 시민 들이 무의미한 희생을 당하게 놔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다면, 당연히 도입해야죠.”

자신의 적은 내가 아니다.

몬스터다.

결국 이런 뜻이었다.

하여간. 이래서 내가 녀석을 싫어할 수가 없다.

의외로 사고방식 하나는 제대로 잡혀 있는 녀석이니까 말이다.

다들 데이브의 의견에 크게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긴. 가장 좋은 방법은 자네나 태오처럼 실력 있는 헌터들이 직접 나서 주는 거겠지만, 자네들 몸이 여러 개도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전례가 아예 없던 것도 아니니까요. 이번 전투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강 헌터의 노래를 잘만 활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근데 일반인의 노래로는 불가능한 거지?”

협회 간부 중 한 명이 내게 추가로 물었다.

나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솔직하게 답변해 주기로 했다.

“제 추측으로는 그렇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실험을 해 본 건 아니지만, 일반인보다는 각성자의 노래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라고 말을 하면서.

나는 몬스터, 아이템 관련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이철민에게 바통을 넘기듯 시선을 돌렸다.

뿔테 안경에 더벅머리의 호리호리한 남자.

방구석 폐인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음침해 보이긴 하지만, 저렇게 보여도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손꼽히는 천재라고 불린다.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던 이철민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철민 소장을 지금 이 자리까지 올려 준 가장 큰 원동력은 따로 있다.

바로 지나칠 정도로 강한 호기심.

특히나 헌터들과 아이템 그리고 몬스터라는 분야에 관한 호기심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이 열정 덕분에 지금의 이철민 소장이 만들어졌다.

만약에 내가 아는 그라면.

“소장님이 벌써 실험해 보시지 않았을까 해서요.”

내가 특정 코드를 이용해서 세이렌과 머들린들을 유인하겠다는 작전을 세웠을 때.

이철민 소장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흐트러진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예, 말 그대로입니다.”

어설프게 숨기느니, 기왕 드러난 거 다 말하는 편이 낫다.

다행히도 이철민 소장 역시 나와 같은 생각으로 보였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 소장이 말을 빠르게 이어 갔다.

“일주일밖에 안 되긴 했지만, 헌터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몬스터에게 어느 정도 상태 이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직접 목소리로 실험을 해 봤습니다. 노래 형태는 아니었지만,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옥타브까지 모두 소화하게끔 했죠.”

실험에 강제로 참가했을 사람들에게 잠시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이철민 소장의 탐구심이라면, 아마 하루 내내 혹사당했을 것이다.

뭐, 그만한 보상은 줬겠지만 말이다.

“실험 결과, 아주 미약하긴 하지만 강태오 헌터의 말이 사실이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헌터가 노래를 하면, 정말로 몬스터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건가?”

“예. 다만, 헌터들 사이에서도 개인 편차가 상당히 컸습니다. 강태오 헌터가 보여 준 능력만큼 뛰어난 효과를 기록한 헌터는 당시 실험 참가자 중에선 아무도 없었고요.”

그것은 다시 말해서.

“강태오 헌터의 작전이 아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 소장, 나이스 어시스트.

차지후 협회장이 회의장에 있는 나와 더불어 연수하 대표를 번갈아 응시했다.

“협회가 자네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주면 되겠나?”

우리 협회장은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이어서 마음에 든다.

* * *

게이트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이 아직 이 지구상에 남아 있다는 것이 본격적으로 증명되었고.

덕분에 헌터협회뿐만 아니라 BOO 역시 철수하려고 했던 헌터 매니지먼트 관련 업무를 재개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바빠진 건 연수하 대표였다.

“협회장 말을 들어 봐선, 네가 연예인 관두고 예전처럼 헌터 업무에만 전념하기를 바라는 거 같은데.”

“에이, 그건 힘들죠. 레이드 시대 때처럼 게이트가 열려서 몬스터들이 쏟아지는 상황도 아닌데. 그랬다가 제 인생, 협회가 책임져 줄 것도 아니잖아요?”

“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제안한 것만으로도 훨씬 더 효율적인 전투를 펼칠 수 있을 거예요. 오히려 피해는 이전보다 더 줄어들걸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제가 계속 노래를 부르고, 앨범을 내야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데뷔를 하고, 노래를 부른다라…….”

연결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 두 가지가 알고 보니 중요한 알고리즘으로 묶여 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주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은.

“대표님,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약속이라도 있어?”

“없는데, 이제부터 만들려고요.”

그러면서 나는 마침 앞서 걸어가는 이철민 소장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이 소장과 할 이야기가 있었다.

“제 작전을 실행에 옮기려면, 이 소장의 도움이 무조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야기 좀 하고 오려고요.”

“나도 껴야 되나?”

“아니요. 이 소장 성격, 대표님도 잘 아시잖아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편해한다는 거.”

그래서 나는 오늘 회의에도 이철민 소장은 참석 안 할 줄 알았었다.

그런데도 그는 내 예상을 뒤엎고 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만큼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그랬겠지.’

호기심이 이 소장의 소극적인 성향을 이긴 것이다.

뚜벅뚜벅.

빠른 걸음으로 이 소장에게 다가갔다.

“이철민 소장님.”

내 말에 푹 한숨을 내쉬고서 걸음을 멈추는 이 소장.

마치 내가 먼저 말을 걸어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미리 말씀드리겠지만, 아까 말했던 그 실험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요?”

“원래 상부에서 허락도 안 했던 실험이니까요. 그걸 회의에서 다 까발렸으니, 시말서부터 미리 써 두는 게 좋겠죠.”

이철민 소장의 단점이 이거다.

호기심이 너무 넘쳐서, 가끔씩 꼭 해야 하는 절차를 무시해 버리고 독단적으로 연구를 추진할 때가 있다.

이번에도 그런 비슷한 경우겠지.

하지만 내겐 기회다.

“그거, 제가 커버 쳐 줄 수 있습니다.”

“태오 씨가요?”

“예. 협회장님이 저한테는 많이 너그러우시다는 거 소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알긴 합니다만. 굳이 저한테 그런 선행을 베푸실 필요가…….”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까지 천사가 아니다.

뭔가를 바라는 게 있으니까 선행을 베푸는 거지,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생각은 없다.

“제 노래가 몬스터들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 증명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이걸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주시면 더 좋고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 소장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겠다는 뜻이다.

늘 무표정하던 이 소장의 동공이 흔들리는 걸 얼마 만에 본 걸까.

그만큼 내 제안이 이 소장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겠지.

“제가 나서서 협회장님을 설득하고, 이번 기회에 아예 이 분야만 따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끔 팀을 만들게 하겠습니다. 확실하게 밀어드릴 테니까, 의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소장은 본인이 원하는 몬스터 연구를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어서 좋고.

나는 나의 가수 데뷔가 나라를 구하기 위한 필연적인 일임을 모든 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서 좋고.

이거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나.

뻗친 머리카락 몇 가닥을 손가락 끝으로 만지작거리던 이 소장이 낮은 목소리 톤으로 답했다.

“……어디까지 계산하고 계셨던 겁니까?”

“게이트가 닫혔는데도 몬스터가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는 저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발생했고, 저는 거기에 대응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했을 뿐이죠.”

“그렇군요.”

이 소장의 고민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먼저 내게 손을 내밀고서 이렇게 말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소장의 손을 마주 잡은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저야말로요.”

* * *

이 소장이 내게 협력함으로 인해서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더욱 속도를 더해 가기 시작했다.

BOO도 잠시 쉬고 있던 헌터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평화 속에서 무기를 내려놓았던 헌터들도 하나둘씩 현역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물론 나도 그렇다.

하지만 내 경우는 좀 특이했다.

조명 아래에 수많은 카메라들이 스튜디오 한쪽에 몰려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에 각각 자리를 잡은 토크쇼 MC가 차례로 내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강태오 씨도 이번에 다시 헌터로 복귀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예, 맞습니다.”

“가수 데뷔도 준비하고 계시지 않았나요? 그럼 그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데뷔도 같이 진행할 겁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노래 있지 않습니까.”

“세이렌하고 머들린들 퇴치할 때 틀었던 그 노래요?”

“네. 그게 제 데뷔곡이 될 거거든요. 아직은 미완성 단계라서 대중분들에게 완곡으로 들려드릴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지금도 열심히 앨범 작업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노래 이야기가 나오자, 좌측에 앉아 있던 MC가 중요한 질문을 건넸다.

“그…… 노래하고 몬스터하고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건가요? 제가 이해가 잘 안 돼서요.”

“간단합니다.”

잠시 숨을 골랐다.

중요한 멘트임을 강조하기 위한 나만의 연출이었다.

“제 노래가 몬스터와의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노래로…… 몬스터들을 막 조종하고 그럴 수 있는 겁니까?”

“그것까진 아니고요. 세이렌처럼 특정 음파로 잡몹들을 광폭화시킬 수 있는 몬스터를 방해하는 건 가능합니다. 이것만으로도 저희에겐 큰 득이죠.”

이후의 설명은 헌터협회에서 했던 브리핑과 거의 동일했다.

내가 방송에 출연해서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메인 MC가 직접 언급했다.

“정리하자면, 강태오 씨의 노래는 세상을 구할 노래다, 이거군요.”

“부끄럽지만,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대중에게 내 연예계 활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것.

이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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