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7화 (17/250)

제5장. 수련이라는 이름의 연습 (2)

“노래 연습하러 왔다고? 여기로?”

“네.”

너무 당당하게 말한 탓일까.

고설중 교관은 한참을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그런 뒤, 고개를 돌려 아카데미의 간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사장님, 저, 오늘 아카데미로 제대로 출근한 거 맞죠?”

“맞지. 그럼 여기가 아카데미가 아니고 어디겠어?”

“그렇죠? 제가 착각한 거 아니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고설중 교관은 내가 한 말의 모순을 지적했다.

“노래 연습을 하려면 노래방을 가야지, 왜 여길 온 거냐. 설마 내비 주소 잘못 입력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

“여기 맞아요.”

제대로 찾아왔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단기간에 노래 실력을 끌어내려면, 극한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 바로 이곳, 헌터 아카데미다.

내게 있어선 군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최악의 장소.

여기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몇 번이나 무너질 뻔한 걸 다시 억지로 일으켜 세웠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교관님, 4주 차 각개전투 훈련 때 사용되었던 코스들, 아직 그대로 있죠?”

“있긴 한데…….”

“그거, 며칠만 좀 이용할 수 있을까요?”

“그거야 상관없긴 한데. 진짜로 노래 연습 때문에 그러는 거냐?”

“네.”

진심이다.

고설중 교관은 확신에 가득 찬 내 대답을 듣고서 푹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만…… 그래, 알았다. 시설관리 측에는 내가 잘 말해 두마.”

“감사합니다, 교관님.”

이제 본격적으로 ‘노래 연습’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 * *

강태오의 1집 데뷔 앨범에 실릴 곡 작업이 한창 기획되는 사이.

그의 보컬 트레이닝을 담당하는 신유화 트레이너는 집을 나온 순간부터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회사도 아니고, 왜 헌터 아카데미로 오라고 하신 거지?”

오늘은 보컬 레슨이 있는 날이다.

그러면 당연히 HT 엔터테인먼트 내에 마련되어 있는 연습실에서 보컬 레슨을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강태오는 그녀를 HT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그가 다녔던 헌터 아카데미로 초대했다.

한때는 민간인 출입 금지 구역이기도 했던 헌터 아카데미.

그러나 레이드 시대가 종결된 지금은 일반인들의 방문도 허용하고 있었다.

“각개전투 훈련장으로 오라고 했는데…….”

누구한테 물어볼까 하고 두리번거리던 찰나.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민머리의 남성이 그녀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혹시 신유화 씨입니까?”

“예? 아, 네. 혹시 누구신지…….”

당연히 신유화는 처음 보는 남자다.

그는 호쾌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짧게 자신을 소개했다.

“여기서 태오를 가르쳤던 고설중이라고 합니다. 태오가 신유화 씨 오시면 분명 헤맬 테니까 저한테 안내를 부탁해서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이사님이 그런 부탁을 하셨어요?”

“예. 자, 가시죠. 저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건물이 워낙 넓기도 하고.

고설중의 말대로 초행길인 사람은 헤맬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유화는 군말 없이 고설중 교관의 뒤를 따랐다.

여기저기서 보이는 헌터 양성 시설들.

그러나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신유화는 일반인이다 보니 이런 풍경 자체가 굉장히 진귀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고설중은 이게 일상이라는 것처럼 편안한 표정으로 그녀를 목적지까지 안내했다.

“여기입니다.”

문을 열자마자 신유화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각개전투 훈련장, 수중 훈련 구간.

다양한 지형지물들 한가운데에 투명한 벽으로 꾸며진 깊은 수조가 있었다.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물속 한가운데에 둥둥 떠 있는 한 남자.

오늘 신유화와 만나기로 예정되어 있던 강태오였다.

아카데미에서 지급되는 훈련용 슈트를 입은 채 양반다리를 하고서 앉은 자세를 취한 강태오의 모습에 신유화는 커다란 눈을 여러 차례 꿈뻑였다.

“지금 저게…… 뭐 하는 거예요?”

“태오가 말하길, 노래 연습이랍니다.”

“예에???”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자세히 보니, 강태오의 입이 여러 차례 뻐끔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뭔가 주문 같은 걸 외우는 줄 알았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넌 내 마음속에서 늘 빛이 나…….

미세하게 들려오는 남자의 노랫소리.

“잠깐만요. 지금 이거, 혹시 이사님이 부르시는 거예요?”

믿을 수가 없었다.

물속인데, 그것도 두꺼운 수조 벽을 끼고 있는데,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강태오는 그 말이 안 되는 일을 직접 현실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눈을…… 아니, 귀를 의심하던 신유화는 혹시 몰라서 고설중에게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지금 이 노랫소리, 저만 들리는 거 아니죠?”

환청일까?

고설중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그녀의 추측을 부정했다.

“저한테도 확실하게 들리고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신유화는 그동안 수많은 가수들을 가르치고 배출한 베테랑 보컬트레이너다.

그녀 본인도 레이드 시대가 열리기 전에는 유능한 솔로 가수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역으로 활동할 때에도, 그리고 보컬트레이너로 일할 때에도, 물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당황하는 그녀를 위해 고설중이 친절히 설명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수중에 사는 몬스터들 중에서 음파로 통신기를 마비시키는 몬스터가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헌터들끼리 의사소통하는 걸 포기하면, 작전 수행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헌터들은 물속에서도 저렇게 소리를 전달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게이트나 몬스터의 존재 자체가 비과학적이지 않습니까?”

“하긴…… 그러네요.”

이들과 마찬가지로 헌터들이 지닌 각성 능력 역시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 능력을 설마, 자신의 보컬 실력을 키우는 데에 활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 *

헌터들은 한계에 부딪칠수록, 그리고 자신을 극복할수록 신체 능력치를 올릴 수 있다.

일부러 내 자신을 극한의 상황에 놓이게 만든 후.

이 생존 본능을 온통 내 목에 집중시켰다.

그래서일까.

노래 연습이라는 이름의 훈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째.

나는 다시 한번 우리 회사 관계자들 앞에서 보컬, 댄스 중간 점검을 받게 되었다.

빠르게 흘러나오는 비트에 맞춰서 나는 즉석에서 프리스타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은 예전부터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분야이기도 하고.

이전에도 춤에 한해서만큼은 상당히 고평가를 받았었기에 이번에도 무난하게 합격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보컬 파트인데.”

승훈이 형이 걱정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나를 응시했다.

선곡으로 픽한 노래는 바로 유정의 ‘Be, Love you’였다.

내 선곡을 듣자마자 승훈이 형의 걱정은 더욱 심해졌다.

“그 노래, 부르기 꽤 힘들 텐데. 괜찮아?”

“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키는?”

“원키로 부르겠습니다.”

노래방에 가도 원키는 진리요 법칙 아니겠나.

신유화 트레이너가 직접 키보드를 연주하면서 반주를 깔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깔리는 저음.

시작은 밑에서지만, 후렴구에 치달을수록 음은 점점 위로 향한다.

남자들이 따라 부르기 가장 어려운 곡 중 하나가 바로 이 ‘Be, Love you’라고 할 수 있다.

연습생 시절 때의 나라면 엄두도 못 냈을 곡.

하지만.

You are my sunshine

내 인생의 태양 빛은 바로 너

네가 없으면 난 잠시라도 살 수가 없어

You are my sunshine

You are my Life

평소처럼 편안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것처럼.

최대한 안정적으로 곡조를 뽑아냈다.

노래 자체가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편하게 불러야, 듣는 사람도 편하게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심 수십 미터 아래에서도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이 정도는 껌이지.’

1절을 넘어.

2절 도입부에 막 들어서려고 하던 찰나.

갑자기 신유화 트레이너가 반주를 멈췄다.

“이 정도만 들어 봐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승훈이 형을 포함해서 연 대표, 앨범을 총괄하는 프로듀서, 그리고 양석정 팀장과 다른 중요 직책들에 있는 임직원들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 대표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실력을 끌어올렸어?”

연 대표의 말대로 ‘고작 일주일’이다.

이 안에 거의 프로 가수에 근접할 정도의 보컬 능력을 얻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헌터라면 가능하다.

“아카데미에 가서 훈련받았거든요.”

내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연 대표는 충분히 이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한때는 승훈이 형처럼 헌터로 활약했었으니까.

내가 어떤 식으로 내 보컬 능력을 끌어올렸는지, 아니 내 신체 능력을 끌어올렸는지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역시 전직 헌터답네. 헌터다운 방법이야.”

“기껏 얻은 각성 능력인데, 이렇게라도 요긴하게 써먹어야죠.”

“그렇긴 하지.”

반면 승훈이 형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여간 너란 녀석은 진짜. 어떻게 헌터 훈련 과정을 노래 연습에 접목시킬 생각을 다 했냐. 진짜 잔머리는 끝내주는 놈이라니까.”

“형, 잔머리가 아니라 정당한 작전이에요.”

“그래, 그래. 어련하실까. 아무튼 조금만 더 하면 보컬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될 거 같은데. 유화 씨도 그렇게 보시죠?”

아마추어인 승훈이 형과 달리, 신유화 트레이너는 프로다.

그녀는 승훈이 형의 물음에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네, 제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성과가 좋아서, 큰 문제 없을 거 같아요. 데뷔일도 예정대로 진행하셔도 돼요.”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가죠.”

일이 훈훈하게 마무리되어 가기 직전.

마케팅 담당인 유현민 팀장이 다른 안건을 꺼냈다.

“홍보 쪽으로도 슬슬 계획을 잡아야 할 거 같습니다만. 구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대충 어떤 전략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갈지, 뼈대라도 미리 세워 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준이처럼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홍보라.

“가장 어려운 문제네요.”

양석정 팀장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고개를 연달아 끄덕였다.

이미 내 존재 자체가 세계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헌터 강태오지, 가수 강태오가 아니다.

가수로서 내가 데뷔했다고, 앨범을 낼 예정이라고 제대로 홍보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당사자인 나도 아이디어를 내 보려고 했지만.

‘쉽게 안 떠오르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좀 더 생각에 잠기려고 할 때.

삐이이익-!

강한 사이렌 소리가 우리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이건…….”

몬스터가 출연했음을 알려 주는 ‘긴급재난문자’ 신호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