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16화 (16/250)

제5장. 수련이라는 이름의 연습 (1)

내가 막 헌터로 각성했을 때.

잠재력 랭크는 상당히 높게 나온 편이었지만, 당시 다른 헌터들에 비해 나는 꽤 늦게 각성한 편이었다.

경험 부족.

여기에 더해서 나이도 상당히 어린 축에 속했다.

그렇다 보니, 현장을 나가도 다른 헌터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남들한테 지고는 절대로 못 사는 그런 성격의 남자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내 잠재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힘을 개방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

몇 날 며칠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수련과 훈련을 반복했다.

죽을 뻔한 위기도 여러 차례 넘겼다.

하지만 계속해서 거친 파도들과 부딪친 덕분에 나는 훨씬 더 단단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인류의 구원자, SSS랭크 헌터 강태오다.

몬스터와 목숨을 걸고 치고받고 싸운 적도 있는데.

까짓것 노래 실력 하나 못 키우겠나.

그러나 이런 내 자신감 있는 태도와는 별개로, 우려 섞인 목소리 또한 계속 나오고 있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역시.

“데뷔 시기를 너무 빨리 잡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내 담당 보컬트레이너인 신유화가 앨범 준비에 들어가기에 앞서 열린 회의 때 이야기했다.

“저도 이사님 노래 실력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들어 보긴 했는데…….”

신유화 트레이너가 슬쩍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여타 다른 연습생들과는 신분이 다르다.

이 회사의 실질적인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세계를 구한 헌터이기도 하고.

그래서 직설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토로하기가 약간 어려운 듯해 보였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럴 때에는 오히려 가감 없이 말하는 편이 저한테 더 도움이 되니까요.”

신유화 트레이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다.

데뷔를 위한 밑밥을 다 깔아 놓은 상황에서 어설픈 실력으로 무대에 올라섰다간 오히려 욕만 먹을 테니까 말이다.

“이사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솔직히 저는 반년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사님도 잘 아시겠지만, K-POP이라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유행이잖아요. 이 말이 무엇을 뜻하냐면,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 사람들도 여기를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거든요. 그만큼 기대치도 자연스럽게 높을 테고요.”

모 SNS에서 통계를 낸 자료가 있다.

2010년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케이팝 관련 키워드가 인용되었을까.

자그마치 50억 건이 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음반 판매량과 콘서트 규모 역시 점점 세계화에 발맞춰 나날이 커져 가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음악 시장이 추구하는 가수의 콘셉트는 일본의 ‘성장형’과 달리 ‘완성형’이에요. 즉 데뷔 시점부터 모든 게 완벽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죠.”

그 말은 결국.

내 보컬 실력을 지금보다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의 기량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노래 실력이라는 건 단기간에 늘어날 수 없어요.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분야다 보니, 데뷔 시기를 좀 늦춰서 앨범을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신유화 트레이너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회의에 참가한 승훈이 형이 이번에는 댄스 담당인 마진수 트레이너에게 의견을 물었다.

“진수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노래에 대해서는 신유화 트레이너님만큼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감은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사님 댄스 실력만큼은 수준급이라는 점이겠네요.”

마진수 트레이너를 향해 나는 짙은 미소를 보냈다.

“제가 연습생 시절 때에 춤을 가장 잘 추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당시 데뷔조 오디션에 떨어졌다는 건, 그만큼 보컬이 불안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유화 트레이너가 우려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뷔 시기를 늦추는 건 가급적이면 지양하려고 합니다.”

나는 내 데뷔일을 뒤로 미룰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단순히 X고집 때문에 이러는 건 결코 아니다.

“지금 제 인지도가 한창 정점에 올랐을 때 앨범도 같이 내 줘야 그만큼 시너지 효과를 더 낼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긴 합니다만…….”

신유화 트레이너도 내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이 선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나, 본인의 의지다.

승훈이 형이 고민하는 트레이너와 프로듀서, 그리고 앨범 제작에 참여할 직원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결정은 태오한테 맡겨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원래 HT 엔터테인먼트의 방침이 ‘소속 연예인의 생각을 존중한다.’니까요.”

HT 엔터테인먼트를 창설할 당시 내가 정했던 운영 방침이다.

그래서 우준이와 계약서를 쓸 때에도 어떤 식으로 가수 활동을 이어 나가고 싶은지 먼저 물어봤던 것이다.

모두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다.

다시 한번 물어도, 내 대답은 똑같다.

“그대로 갑시다. 보컬 능력은 제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해 볼게요.”

* * *

HT 엔터테인먼트 내에 위치한 넓은 연습실을 찾은 나는 오랜만에 구슬땀을 흘리면서 댄스 홀릭에 빠져들었다.

마진수가 박자에 맞춰서 손뼉을 치며 외쳤다.

“크로스스텝을 밟을 때에는 균형을 잘 잡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른발과 오른손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도록 주의하시고요. 그러지 않으면 굉장히 어색해 보일 수 있거든요.”

“이렇게요?”

마진수가 알려 준 대로 스텝을 선보였다.

뒤이어 춤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기초 바운스와 암웨이브까지.

마진수가 만족스러운 듯이 힘껏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연습생 경험이 있으셔서 그런지 춤은 금방 감을 잡으시네요.”

“제가 말했잖아요. 저, 당시에 댄스 1등이었다고.”

“근데 이사님, 계속 댄스 가수로 활동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냥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첫 앨범 활동은 댄스곡을 위주로 하려고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땀 흘리면서 몸 풀겠습니까.”

예전처럼 몬스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시기도 아니고 말이다.

“이다음은 유화 씨하고 같이 보컬 연습하기로 하셨죠?”

“아니요. 오늘은 개인 연습 하는 날입니다. 조금 있다가 훈련장으로 가려고요.”

훈련장이라는 말에 마진수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 되었다.

“훈련장이요? 보통은 ‘연습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헌터 때 습관이 남아 있어서 말이 잘못 나온 거죠?”

“아니요. 제가 헌터 훈련을 받던 그 훈련장 맞습니다.”

“예???”

마진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증식했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할 헌터 가수만의 훈련법.

오늘부터 이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다.

* * *

최초의 게이트가 지구상에 출연하면서 레이드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열었을 때.

몬스터라는 존재와 동시에 각성자도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각성자. 우리는 이들을 ‘헌터’라고 부른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자들, 헌터.

이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특별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운동선수들과는 의미가 다른, 전투에 특화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는 조건을 타고난다.

대신, 이 신체 능력을 기르고 키우는 게 여간 보통 일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한계로 몰아붙이고, 이 한계점을 넘어섰을 때.

헌터로서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좀 더 직관적으로 나타낸 것이 바로 랭크 시스템이다.

가장 높은 랭크는 바로 SSS.

트리플 S를 달성한 헌터는 내가 유일하다.

한계에 부딪칠수록 나는 더더욱 강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도 난 현역 시절 때 사용했던 방법을 다시 꺼낼 생각이다.

대한민국에 위치한 몇 안 되는 헌터 아카데미.

전국에서 가장 큰 곳을 찾은 나는 이젠 휑해진 주차장에 내 차를 정차시키고선 넓은 건물 전경을 빠르게 훑었다.

“여기도 예전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었는데.”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고 난 이후부터는 나 같은 각성자가 등장하지 않게 되었다.

몬스터들과 함께 새로운 헌터들의 탄생 역시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아카데미의 존재 역시 자연스럽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어차피 잔여 몬스터들은 지금 있는 헌터들만으로도 충분히 없앨 수 있기도 하고.

새로운 각성자가 나타나지도 않는 판국이라 굳이 아카데미를 운영해야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에도 이곳을 찾은 이유는 딱 하나.

건물 입구에 들어서자, 나이 든 경비원이 놀라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태오 아니냐! 여긴 어쩐 일로 온 게야?”

“안녕하세요,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실제로 어느 업체의 사장은 아니고.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작은 중소기업을 운영했던 분인데, 몬스터들이 다 헤집어 놓고 간 탓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의 폐업 수순을 밟고 지금은 이렇게 아카데미 경비원 일을 하고 계신 분이다.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서 별명이 ‘사장님’으로 통했다.

내가 아카데미 과정을 수료할 때, 자주 뵈었던 분이기에 반가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사장님과 가볍게 포옹을 나누는 동안, 또 한 명의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123번 교육생, 강태오!”

우렁찬 외침에 나는 반사적으로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충성! 123번 교육생, 강태오!”

“짜식, 아카데미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목소리가 벌써 빠졌냐.”

고설중. 내가 아카데미에서 훈련병 신분이었을 때, 나를 케어해 주고 교육해 준 교관님이시다.

번쩍이는 민머리를 자랑하며 내게 다가오는 고설중 교관.

인류가 게이트를 통해서 차원을 넘어오는 몬스터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어도, 여전히 탈모와의 전쟁에서는 승리하지 못했음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었다.

본인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일부러 머리를 밀고 다니는 거라고 하던데. 글쎄.

고설중 교관이 나를 발밑부터 머리끝까지 빠르게 훑으면서 반가운 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TV 보니까 요즘 너, 굉장히 잘나가더라. 이제는 헌터가 아니라 연예인이야, 연예인.”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더라고요.”

“그 잘나신 연예인님께서 여긴 어쩐 일로 온 거냐. 아카데미에 볼일은 없을 텐데.”

“중요한 용무가 있어서요.”

“용무? 설마 나 보러 온 건 아니지? 스승의 날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는데.”

듣고 보니 지난 스승의 날 때 고설중 교관을 챙겨 주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졌다.

뭐, 그건 나중에 하면 되는 거고.

지금은 더 중요한 용무가 있다.

“훈련 시설 좀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

“몬스터들 때문에 그런 거지? 안 그래도 너 말고 다른 헌터들도 간만에 현장 감각 좀 살리고 싶다고 몇 명 오긴 했었는데.”

“아니요. 그거 때문에 아니라…….”

말을 할까 말까 순간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심을 굳히고서 고설중 교관에게 내가 이곳에 찾아온 진짜 목적에 대해 알려 줬다.

“노래 연습 좀 하려고요.”

내 말을 들은 고설중 교관의 표정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