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라를 구한 톱스타-3화 (3/250)

제1장. 백수가 된 헌터 (2)

촬영 시작 시간까지 앞으로 5분이 남았을 때였다.

“느, 늦어서 죄송합니다!!”

헐레벌떡 뛰어온 젊은 여성이 김 PD를 비롯해 제작진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숏컷이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다.

그녀가 바로 도정수의 보조 역할을 맡을 이진주였다.

‘TV에서 얼핏 봤었는데, 실물이 더 예쁘네.’

가벼운 메이크업만 받았을 뿐인데도 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은 장난이 아니었다.

미안한 감정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 그러나 김 PD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지각한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그보다 촬영 바로 들어갈 테니까 준비 서두르고.”

“네!”

매니저와 함께 빠르게 이동하는 이진주. 그 순간, 스튜디오에 자리 잡은 나를 바라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강태오 씨 맞죠?! 안녕하세요! 이진주라고 해요!”

나를 바로 알아보는구나. 하긴, 여기 오기 전에도 이미 숱하게 겪었으니까.

“안녕하세요. 그보다 바쁘실 텐데 준비부터 먼저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어멋, 죄송해요! 바로 준비 마치고 올게요!”

다시 후다닥 자리를 떴다.

우리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도정수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진주 양, 귀엽지 않습니까? 가끔 덤벙거리긴 하는데, 매번 촬영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착한 아이죠. 무명이라는 게 조금 아쉽지만요.”

도정수의 시선이 이진주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정되었다.

“뭐랄까요. 이 방송이 시청률이 엄청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토크쇼 프로그램 중에선 잘 나오는 축인데도 불구하고 이진주 양하고 그녀가 속한 해피모드의 인지도는 잘 안 오르더라고요. 영상 댓글 보면 아직도 ‘누구야, 저 여자?’라는 게 간간이 보입니다.”

“그렇군요.”

그건 당연했다.

이진주는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예능감이라고 할까,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필할 줄 아는 그런 스킬이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 편집을 많이 당한다는 티가 확 났다.

도정수의 미팅 타임 전편을 최소 세 번 이상 돌려 본 나였기에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전 저런 아이가 좋습니다. 능력이 부족해도, 그만큼 노력하고 또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가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게끔 응원해 줘야지요.”

“그건 저도 공감합니다.”

옛날의 나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든 아니든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응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진주를 오늘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관심이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목표는 하나였다.

‘시청률 좀 확 끌어올려 줄까.’

데이브 녀석한테 갚아 줘야 할 것도 있고.

결정했다.

이번 촬영은 내가 하드 캐리 하기로.

* * *

출연진을 비롯해 모든 스태프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이후 큐 사인이 떨어짐과 동시에 도정수의 미팅 타임 오프닝곡이 흘러나왔다.

“금요일 밤의 재미와 감동을 책임집니다! 도정수의 미팅~ 타임!”

메인 MC 도정수의 오프닝 멘트와 함께 방청객들의 우렁찬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오프닝에 들어갈 때에는 도정수와 이진주, 두 사람이 서로의 근황을 묻는 간략한 토크가 시작된다.

아직 나는 무대 위에 등장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물론 입을 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푸르르르르르르.”

녹화라 할지라도, 너무 자주 말이 꼬이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니까.

녹화 예정 시간은 대략 5시간 정도로 잡혀 있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토크쇼 순서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이진주가 내 프로필을 대신 소개한다.

이다음, 프로필과 연관된 질의응답을 한다.

후에 방송 작가들이 뽑은 이야깃거리 리스트들을 중심으로 계속해서 토크를 이어 나간다.

이게 1부고, 2부는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질문을 답하는 시간으로 꾸려진다.

온라인을 통해 사전에 접수받은 질문과 시청자와 전화 연결을 통한 질문, 이렇게 두 가지 코스로 나뉜다.

‘죄다 질문뿐이네.’

하기야. 헌터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궁금했을까.

헌터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지만, 비밀이 많은 존재들이기도 했다.

이계의 틈과 몬스터, 던전, 그리고 헌터.

기본 상식들은 대중도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깊이 있는 지식은 철저한 정보 통제로 감춰져 있었다.

그것들이 지금, 90% 이상 해금되었다. 그러니 헌터들을 필요로 하는 방송 매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승훈이 형에게 말해 줘도 되는 부분과 말하면 안 될 부분에 대해서 미리 말을 맞춰 뒀다.

허용된 범위 내에서라면 내가 재량껏 말해도 된다고 하니, 기밀 부분에 대해선 적당히 입만 털 생각으로 왔었다.

그러나 오늘, 이진주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스테이지에 선 그녀를 응시했다. 무대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이진주 특유의 긍정 파워는 여전했다.

‘귀엽네.’

무심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지 트레이닝도 끝났고, 스트레칭도 마쳤다. 할 일이 없어 무대 위를 관람할 때, 스태프가 나에게 다가왔다.

“강태오 씨, 준비해 주세요.”

“예.”

슬슬 내 차례인가.

이미 준비는 끝난 상태였다. 마이크를 착용하고 무대 앞으로 나서자, 수많은 박수갈채들이 나를 반겼다.

스태프가 호응을 유도하는 명령어를 써 뒀지만, 방청객들은 거짓이 아닌 진심으로 내 방문을 환영하고 있었다.

눈빛만 봐도 안다.

도정수와 이진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러분, 인류의 구원자! SSS급 헌터, 강태오 씨입니다! 다시 한번 큰 박수로 환영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강태오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번 뉴스라든지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다 보니, 이런 건 신선했다.

확실히 예능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분위기라든지 이런 것들 말이다.

자리에 앉자 도정수가 곧장 멘트를 날렸다.

“레이드 시대가 종결된 이후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집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쉬셨나요? 여행이라든지 영화 보기, 이런 건가요?”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기, 소파에 누워서 TV 보기, 늦잠 자기요.”

“오호! 인간적이시네요.”

도정수가 나에게 들려주는 질문 멘트들은 이미 대본에 나와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뭐, 몬스터와 목숨 걸고 싸우는 것보다야 앉아서 편하게 질문받고 대답하는 편이 훨씬 편하지.

드래곤을 쓰러트린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근황을 나눴다.

그 후에 이진주가 내 프로필을 간략하게 읊기 시작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한 헌터! 부동의 헌터 랭킹 1위! SSS급 헌터! 그리고 용을 사냥한 남자! 드래곤 슬레이어 등등! 온갖 수식어가 붙어도 부족할 만큼 대단하신 분이에요!”

“그렇게까지 엄청난 사람은 아닙니다. 그냥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 같네요.”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별칭까지 붙었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점점 별명이 가짓수를 늘려 가는 것 같았다.

이어서 나의 세부 약력 등이 소개되었다. 이때 도정수가 추가 질문을 해 왔다.

“혹시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 같은 게 있나요?”

대본에 없던 질문이었다.

어디 보자,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

“어느 게 마음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냥 많은 분들이 불러 주시는 별명이 제일 좋지 않을까요?”

“그럼 인류의 구원자군요.”

“하하하, 그게 또 그렇게 되나요.”

이런, 한동안은 공식적으로 ‘인류의 구원자’라 불리겠군.

프로필 소개 후의 진행은 도정수의 몫이었다.

“저희가 영상을 준비한 게 있습니다. 드래곤과 3일 밤낮으로 싸울 때의 장면인데요. 편집본을 보시고 말씀 나눠 보도록 하죠.”

붉은 비늘로 뒤덮인 드래곤이 여기저기 불을 뿜어 댔다. 그 사이로 검을 든 내가 안쪽으로 파고들어 드래곤의 오른쪽 발에 크게 상처를 입혔다.

“저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십니까?”

“전투 시작하고 난 이후에 이틀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정확하시네요. 이후에 하루가 더 지난 다음입니다. 강태오 씨가 여기서 쐐기를 박죠.”

드래곤의 머리에 검을 내리꽂는 장면이 나왔다.

그렇지. 저 때가 싸움의 끝을 알리는 공격이었다.

쿵! 소리와 함께 지면이 흔들렸다. 마침내 드래곤이 쓰러졌다.

“저 시점을 기준으로 모든 이계의 틈이 닫히고, 레이드 시대가 종결되었습니다. 듣자 하니 저 때 사용했던 무기를, 오늘 이 현장에 직접 가지고 나오셨다고요?”

“네.”

무대 뒤쪽에서 승훈이 형이 천에 감긴 내 검을 들고 나왔다.

천을 벗겨 내자, 내가 주로 사용했던 무기가 공식으로 처음 모습을 뽐냈다.

오랜 세월 동안 나와 함께했던 파트너.

가수가 되기를 꿈꿨던 내가 마이크 대신 쥐고 다녔던 바로 그 아이템이다.

스르릉!

푸른빛을 뽐내는 도신은 모든 걸 벨 기세였다.

도정수가 놀라움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뒤이어 이진주가 슬그머니 질문을 꺼냈다.

“신기하네요. 혹시 이 아이템은 시가로 얼마인가요?”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런 유의 아이템이 없었으니까요. 아마 아이템 평가사들도 제대로 가격을 측정하기 힘들 겁니다.”

“이걸로 드래곤을 쓰러트릴 정도이니, 몇백억 정도는 할 거 같은데요. 세계를 구한 검이잖아요?”

기회라는 듯이 도정수가 또다시 대본에 없는 질문을 해 왔다.

“파실 생각은 없으시죠?”

“몇백억을 주든, 몇조를 주든 안 팔 겁니다. 이건 어차피 제가 기념으로 계속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저는 돈만 보고 좇는 데이브하고는 다릅니다.”

참고로 데이브는 레이드 시대가 끝나자마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이템들을 자산가들에게 억대에 팔아치웠다.

노골적으로 데이브를 겨냥한 멘트에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도정수였으나 이내 웃음으로 무마했다.

“하하! 그렇군요. 아이템 수집가들한테는 안 좋은 소식이겠네요.”

아이템 소개 후 시청자들로부터 받은 질의응답 코너로 돌입했다.

헌터로 생활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라든지 인상 깊었던 사건 등등. 이런 질문들이 들려왔다.

사실 온라인 접수로 받은 질문 내용은 이미 알고 있었다. 덕분에 질문에 답하는 건 딱히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다음부터였다.

전화 연결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코너가 시작되었다.

“시청자 한 분과 전화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텐션이 굉장히 낮은 목소리였다.

성별은 여성. 나이는…… 40대 초반? 그 정도로 예상되었다.

도정수, 김청호 PD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마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했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코너 진행은 이어 가야 했다. 도정수가 고정 멘트를 들려줬다.

“강태오 씨에게 묻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그때였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여성이 충격적인 발언을 선사했다.

-전 당신 같은 헌터들이 정말 싫어요……!

울분을 터뜨리는 소리가 출연진, 제작진 모두를 당황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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