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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외전-29화 (429/430)

외전 29화

대표가 이 세상에 있다면 그들의 튜토리얼 비서 캐릭터도 현실에 있을까?

몇 년 동안 여행은커녕 휴가계를 낼 생각도 못 하고 대표가 하는 일을 전부 처리하며 착취당하던 유능한 부하 직원이 말이다.

‘하지만 마이 엔터 출신으로 보이는 가수들은 다들 기존 소속사와 완전히 연을 끊었다고 하니까…….’

도준결도 회사가 사라져서 계약이 소멸되었고, 트웬티스퀘어는 회사가 공중 분해한 후 멤버들끼리 따로 모였다고 한다.

유일하게 쁘띠파티가 기존 매니저와 함께 일하는 중인데, 매니저는 게임 플레이로 조작하는 인물이 아니다.

민형도 내가 플레이하던 시절의 뉴마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나가기도 했으니.

“내 생각엔 최 팀장 같은 사람이 더 있지는 않을 것 같아.”

플레이어는 자신이 대표인 줄 모르고, 그들이 키운 아이돌도 대표의 소재를 모르고.

‘만일 비서까지 현실로 나왔다면 대표나 아이돌에게 어떻게든 연락이 닿았을 거야.’

마이 엔터는 의외로 아이돌 친화적인 게임이었고, 퀘스트도 아이돌의 성장을 위해 작용했다.

대표인 내가 마이 엔터 세계를 인식하고 현실화 퀘스트를 진행한 것이 특이 케이스.

유저들의 ‘대표의 자아’는 게임 속에 남아 있을 테니, 그들의 비서 캐릭터 또한 게임 속에 남아있다고 보는 게 가장 그럴싸했다.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우리가 있었던 곳 같은, 그런 이상한 세상에서 살아가지 않을까…….”

아마도 이 세계로 나온 건 마이 엔터 아이돌 중 극히 일부.

이 세계가 모든 평행세계를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게임의 모든 요소가 현실로 나온다고 생각해 봐.’

착취당하던 아이돌뿐만 아니라 초능력에 마법, 괴물까지. TV에 나오는 건 엔터 업계가 아니라 헌터 업계가 되겠지.

팬들이 가끔 말하는 소속사와 방송국 폭파, 혹은 아이돌을 너무나 사랑해서 지구가 쪼개지거나 반으로 접히는 현상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정말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이 정도로 끝나서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니 소름이 돋아서 팔을 쓸었다.

최 팀장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얼굴로 보다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전 이사님을 만나서 굉장히 운이 좋았군요.”

“으음. 그런가? 그 반대일지도…….”

모노크롬과 아이리스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뉴마의 아이돌들은 가끔 위화감을 느꼈을 뿐이지, 그 세계가 이상하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이상한 걸 느끼고 자신의 정신 상태까지 의심했던 건 당시의 최 비서뿐.

그래서 대표의 비서로 취업한 게 그의 인생 최대의 불운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이 세상에 제 상식과 벗어나는 무언가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말입니다.”

“쉬러 간 게 아니라 그런 걸 알아보고 다녔다고?”

이게 무슨 방학에 공부하러 유학 가는 소리야.

자신에게만 본체가 보이는 대표라는 존재에 큰 충격을 받았던 걸까.

아니면 저에게 이상한 존재를 탐지하는 능력이라도 있는지 시험해 보러 다닌 걸까.

내 생각보다 대표가 그의 인생에 심각하게 영향을 미친 모양이었다. 아직도 세계가 정상인지 확인하고 다닐 정도로.

“제가 돌아다니면서 본 세상은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그, 그렇지. 평범한 세상이지.”

“이 평범한 세상에서도 역시 이사님은 특별한 분 같습니다.”

왜 결론이 그쪽으로 튀는 거지.

마이 엔터 속이 아닌 이 세상은 나한테도 평범한 세상이고, 평범한 세상 속의 나도 지극히 평범하다.

“태풍의 눈 같다고 할까요. 어떤 운명이, 이사님을 중심으로 도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태풍의 눈. 내가 해랑이나 모노크롬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었다.

‘최 팀장은 내가 모노크롬을 보듯이 나를 보고 있나……?’

대체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알면 알수록 종잡기가 힘든 사람이다.

알쏭달쏭해하는 나를 두고 최 팀장은 말을 이어 나갔다.

“스튜디오 어스가 일반적인 아티스트 기획사가 아니라, 이런 회사가 된 것도 말입니다.”

스튜디오 어스가 프로듀싱 회사가 된 게 운명처럼 느껴진다, 라…….

“이사님의 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더 있지 않을까요.”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최 팀장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나만이 인식할 수 있는 게임 속의 아이돌들.

대상을 받은 모노크롬과 프로듀싱 회사인 스튜디오 어스는 이런 후배들을 도울 여유가 있다.

마치, 내가 내 손에 망했던 아이돌을 키운 것처럼.

***

“바쁘신 줄은 알지만 이렇게 뵙기가 어려워서야. 사실은 저 피하신 거 아니에요?”

뜨끔.

여기가 만화 속이었으면 내 옆에 이런 효과음이 붙었을 것이다.

모노크롬이 바빠지고 나도 여러 방송국을 오가다 보니, 위험인물 임주미 PD도 종종 마주치곤 했다.

여전히 아슬아슬하면서도 결국은 선을 넘는 소리를 잘해서 개인적으로 만나는 건 웬만하면 피하고 있었는데.

‘회사가 새로 세워져서 바쁘단 핑계를 대기에는 스튜디오 어스가 세워진 지도 반년이 훌쩍 넘어서…….’

변명을 대며 미루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빈말 같은 인사였기에 큰 부담 없이 우선순위를 뒤로 미뤄뒀는데, 이번엔 꼭 만나 달라고 해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엔 이사님이 먼저 절 찾으셨잖아요. 동맹 맺었을 때 참 재밌었는데 말이에요. 그렇죠?”

“으음. 그랬죠. 네…….”

대표는 임 PD를 만나 베터 엔터테인먼트를 들쑤시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걸 나중에야 전해 들었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런데 나였어도 그런 선택을 했을 것 같긴 해. 아니, 나라서 그런 짓을 한 건가.

“임 PD님도 요즘 바쁘지 않으세요? 계속 프로그램 맡고 계시잖아요.”

“<상상 카페> 때 보셨잖아요. 장소 이동이 없어서 그렇게 바쁘지 않아요. 김 작가는 좀 바쁘겠지만.”

현재 임주미 PD는 <상상 카페>의 배우 버전과도 같은 프로그램을 담당 중이었다.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배우 팬들에게는 호평을 받고 있다는 듯했다.

‘징계도 당연하게 여기면서 방송국을 들쑤시고 다니던 분이 시청자들에게 힐링 전문 PD로 불리고 있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지금도 임주미 PD는 뭔가 또 일을 벌이고 싶은 표정이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임주미 PD가 마시던 음료를 탁 내려놓고 운을 뗐다.

“아시죠? 요즘 활동하는 망돌이 늘었잖아요.”

“쿨럭.”

망돌이란 단어는 커뮤니티에서나 자주 보지, 육성으로 듣는 건 영 적응되지가 않았다.

임 PD는 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그 팀들이 모노크롬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세요?”

“책임감을 느낀다고 저희가 책임질 수나 있나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요즘 많이 생각하던 바였기에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마이 엔터 출신 아이돌 말고도, 모노크롬의 사례에 희망을 얻고 준비해서 나오는 팀도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선배로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정도였다. 그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임 PD는 솔깃한 제안을 하듯이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음악 방송을 하나 만들어 보려고요.”

“모노크롬을 섭외하시게요?”

“아뇨. 제가 섭외하고 싶은 건 스튜디오 어스예요.”

회사를 섭외한다고?

음악 방송이라면 곡과 안무는 전부 각자 회사에서 준비할 텐데 스튜디오 어스가 끼어들 자리가 있나. 우리는 무대 연출이나 디자인까지는 안 하는데.

의문을 떠올리자 임 PD가 설명을 덧붙였다.

“무명 아이돌만 나오는 음악 방송이요. 아시다시피 지금 음악 방송이 다섯 개나 있지만 방송 출연 기회도 못 얻는 팀이 많잖아요?”

“그렇죠.”

“그런 팀이라고 방송 안 나가고 싶고 멋진 무대 안 해 보고 싶겠어요? 기회도 없고 회사 여력도 없어서 그렇지.”

무슨 말을 할지 걱정했는데, 임 PD는 의외로 맞는 소리만 했다.

모노크롬은 다행히 케이블 음악 방송엔 바로 출연할 수 있었지만 지상파 음악 방송엔 못 나간 적이 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부족한 부분을 방송이 보조하는 거죠. 편곡이나 안무 수정이 필요하면 도와주고, 준비 과정도 보여주고.”

설명을 들어보니 스튜디오 어스를 지목한 게 확실히 이해되었다.

스튜디오 어스는 작곡부터 안무까지 전반적인 아이돌 기획이 가능하니까, 이런 기획엔 이보다 더 적임일 수가 없지.

‘임 PD님은 이상하게 본인 성격과 다른 프로그램을 많이 기획한단 말야.’

그냥 나와서 무대 하고 가라는 게 아니라, 비인기 아이돌에게 주목받을 기회를 주는 자리였다.

“간절한 만큼 뭐라도 그림이 나오겠죠.”

……속마음은 이렇다는 게 문제지만.

“아, 물론 프로듀서가 1순위로 필요하단 것뿐이고, 모노크롬을 섭외하고 싶기도 해요.”

“말씀하시는 방송 기획에 모노크롬 출연이 맞을까요?”

“당연히 일반 출연자로 필요하다는 건 아니고요. 인기 없는 아이돌만 나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보겠어요?”

“음…….”

씁쓸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기존 아이돌의 스페셜 무대도 섞으려고요. 그런 거 있잖아요. 음악 방송 강제 소환.”

강제 소환. 활동기가 아닌데 어떤 곡이 갑자기 화제가 되는 등 계기가 있을 때 방송국에서 출연을 요청하는 것을 말한다.

“팬들도 모른 척 다시 컴백해달라는 곡이나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무대는 항상 있으니까 수요가 있겠네요.”

물론 그 아이돌이 다시 안무를 숙지하고 준비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게 쟁점이지만.

팬들이 프로그램 출연을 원한다면 소속사로서는 무시하기가 어렵다.

“네에. 바로 그거예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MC랑, 제작발표회 참석이랑, 후배들한테 멘토 같은 것도…….”

모노크롬이 아니라 회사를 섭외하고 싶다더니 점점 모노크롬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잖아.

“어려워도 첫 화 정도는 꼭 나와주셨으면 해요. 처음에 대상 아이돌이 나와줘야 다른 아이돌 섭외하기도 수월하죠. 특히 모노크롬 라인 그쪽.”

말투 때문에 이게 우릴 추켜세워주는 건지, 써먹고 싶다는 건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임 PD가 우리를 아주 잘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일단 저희도 앨범 준비를 해야 해서…….”

“아이, 그 정도야 당연히 기다릴 수 있죠. 방송일도 다 맞춰드릴 거 생각하고 연락한 거예요.”

어디처럼 염치없이 고자세로 우릴 부를 생각은 아닌 듯했다. 그것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방송 이름에 ‘엔터테인먼트’가 들어가진 않죠?”

“예를 들면요?”

“마이 엔터테인먼트 같은…….”

게임 공포는 극복했지만 마이 엔터 공포는 남아 있었기에 이건 확인해야 했다.

마이 엔터가 돌고 돌아 자꾸만 내게 돌아오는 것 같단 말이지.

“거기까진 생각 안 해 봤는데, 좋은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비꼬시는 거 아니죠?”

“에이. 설마요.”

말투를 보니 방송 타이틀이 ‘마이 엔터’가 되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 중이신 팀 중에 트웬티스퀘어랑 쁘띠파티도 포함돼 있나요?”

“어떻게 아셨어요?”

임 PD는 ‘역시 우리는 마음이 잘 맞는 것 같다’라면서 기뻐했지만 나는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역시 최 팀장 말대로 운명이 움직이고 있는 걸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우리가 앞으로 갈 길을 비추고 있었다.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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