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0화
앵콜 무대에는 생수와 함께 수건을 넉넉히 준비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한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가수의 공연에서 앵콜 무대는 워터파크 개장 시간이었다. 물을 뿌리며 놀면 닦을 수건도 필요하니까.
현장 스태프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수건을 잘 비치하나 확인하고 있는데, 옆에서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 앞엔 수건 많이 챙겨놔. 맨날 울잖아.”
“무대 내내 펑펑 우는 거 아니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니까.”
“전에 보니까 펑펑 울던데.”
우형의 누나가 우형이 우니 마니 하며 민형과 대화 중이었다.
멤버들은 앵콜 무대 입장을 위해 이미 이동했고, 우형의 누나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만만한 사람이 민형이라 그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걱정할 만큼 수건이 부족한 건 아니었기에 나는 직원 보호차 그녀에게 다가갔다.
“우형이 요즘은 많이 안 울어요.”
아예 안 우는 건 아니라 ‘많이’라고 부사를 덧붙였다.
그래도 요즘 눈이 그렁그렁해지는 건 감동하거나 기쁠 때고, 슬퍼서 우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 우형의 누나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깊게 기울였다.
“걔가요? 사회생활 한다고 지 나름대로 참고 있는 거겠죠.”
우형은 우는 게 디폴트라는 확신에 찬 말투.
‘아차. 내가 가족 앞에서 아는 척을.’
우형은 본가보다 회사와 숙소에 있는 날이 더 많으니 자주 보는 건 나지만, 진솔한 본모습을 더 많이 보는 건 가족일 텐데.
그렇다는 건 최근에도 우형이 뒤에서 울었단 소리였다.
티는 안 났는데 남모를 마음고생이라도 있었나?
“얼마 전에도 영화 보면서 슬프다고 펑펑 울던데요.”
“아, 영화.”
모노크롬의 영화 매니아는 재민이지만 다른 멤버들도 영화는 자주 보는 편이었다.
우형은 특히 창작에 도움이 되어서인지 명작은 꼭 챙겨 보는 편이었다.
집에선 여전히 눈물 많은 막내라서 숨기지도 않고 펑펑 울었던 모양이다.
우형의 이야기가 나오자 우형의 어머님도 대화에 참여했다.
“팬분들 앞에서 우는 거 보면 어릴 때랑 다를 게 없어요.”
모녀는 울보 막내의 이야기를 하다가 핸드폰에 저장된 우형의 어릴 적 사진까지 꺼냈다.
나도 멤버들의 어릴 적 사진은 공개된 사진밖에 못 봤기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갔다.
“앗, 진짜 이때 모습이 남아있네요.”
“그쵸? 볼은 빨개지고 막 팅팅 불어서. 십 년 후에도 똑같을 것 같다니까.”
가족의 눈에는 아직도 이 다섯 살 우형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해랑이도 어릴 적엔 많이 울었다던데.’
동생이 없고 외동일 때 말이지…….
해랑의 부모님은 준해의 부모님처럼 공연 전에 꽃다발을 전달해주고 먼저 귀가하여 지금은 안 계셨다.
어릴 때 사진을 모아서 보여주면 컬러즈도 좋아할 텐데. 어린이날을 노려볼까?
역시 남는 게 사진이라는 생각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멤버들은 앵콜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다.
남은 체력을 쏟아부었으나 땀도 눈물도 아니라 생수에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우형뿐만 아니라 멤버들이 모두.
“뷰이라이브도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니까 머리 더 말려야겠다.”
남는 게 사진인데 이렇게 축축한 채로 찍을 순 없지. 여기가 정말 워터파크는 아니니까.
“나 수건 좀…….”
“으이그. 손도 참 많이 간다.”
우형의 누나는 수건을 받아 우형의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조금 거칠어도 애정이 담겨 있는 손길이었다. 우형은 아픈 것 같았지만…….
“그런데 재민이 머리는 왜 이렇게 뽀송뽀송해?”
“순발력으로 목 위로 오는 물을 피했어요.”
“그게…… 가능해?”
“저 댄서니까.”
해랑의 ‘저 래퍼라서’를 자주 오마주하는 재민이었다.
해랑은 키 때문인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에 비해 머리는 비교적 양호했고.
준해는 젖어도 곱슬머리가 축 처지지 않아서 젖은 느낌이 덜했고.
우형과 한이만 유달리 쫄딱 젖은 느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헤어스타일이 얼추 수습되었을 때, 공연의 진짜 마무리를 위해 스태프들이 한자리로 모였다.
오늘은 특별히 사장님이 된 송준오 피디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모노크롬의 첫 공연은 아니지만, 스튜디오 어스의 첫 공연인데. 이렇게 무사히 잘 마칠 수 있게 힘을 보태 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그의 말대로 이번 공연은 스튜디오 어스의 첫 공연. 첫걸음을 무사히 뗐다는 의미에서 특히나 의미 있는 날이었다.
“앞으로도 새롭고 다양한 시도가 있을 텐데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기쁜 날에 한마디 하고 싶은 사람?”
“저요!”
한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한이에게 손목을 잡혀서 같이 손을 들게 된 준해가 손에 든 것을 내밀며 말했다.
“저희 아까 사장님 식사권 얻었는데 이걸로 다 같이 회식하면 안 돼요?”
사회에는 회식을 기피하는 회사원도 많지만, 스튜디오 어스의 회식은 밥 먹고 빠르게 해산하는 게 기본이라 큰 부담이 없었다.
아티스트실 직원들뿐만 아니라 소속 프로듀서들도 업무 일정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그런 회식 스타일이 정착되었다.
그러니까 회식은 남의 돈으로 먹는 밥. 제일 맛있는 법이지.
송준오 피디는 기대하는 얼굴의 멤버들과 스태프들을 쭉 훑어보고는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사장실에서 합의해 보자고.”
“메뉴 의견 받습니다!”
주변에서 소고기와 각종 해산물의 이름이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사장님을 탈탈 털어먹어서 회사가 휘청대는 일은…… 없겠지?’
회사가 망하든 말든 앞일 생각 안 하고 낭비하던 누군가가 있었는데 말이야…….
“저, 이사님…….”
잠시 옛 추억이 떠올라 상념에 잠겨 있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형, 그리고 멤버들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에선 스태프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서 자리를 잡는 중이었다.
“사진…… 안 찍으세요?”
이렇게 조심스레 묻는 이유는…….
‘내가 항상 뒤에 물러나 있었지.’
공연이 끝나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난 제삼자처럼 구경하기만 했다. 카메라가 영혼이라도 뺏어가는 줄 알던 옛날 사람처럼.
멤버들의 눈을 보니 ‘회사 첫 공연인데. 의미 있는 날인데.’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와 멤버들이 잠시 대치하는 것처럼 서 있자 민형이 우형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빚쟁이가 많아서 신상이 드러나시면 안 된대.”
“헙, 그래서…….”
팬미팅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기분이 좋아 보이던 우형이 갑자기 슬픈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한, 무어라 위로라도 하고 싶은 얼굴인데…….
“빚 없고 빚쟁이도 없어요.”
탕진하는 바람에 많이 모으진 못했지만 월급이 사이버 머니가 되지 않았고 자가도 생겼다고.
‘저렇게 뻔뻔한 표정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다니.’
농담이란 걸 깨달은 우형이 황당하단 얼굴로 민형을 돌아봤다.
바로 믿은 우형도 그래. 내가 불법적인 일에 손을 댄 줄 알던 엄마도 그렇고. 내 평소 행실이 믿음직하지가 못한가……?
‘떳떳하지 못할 일은 한 적 없고. 지금은 굳이…… 피할 이유는 없지?’
사장님도 행차하셨고, 기념할 만한 스튜디오 어스의 첫 공연인데.
내가 슬그머니 스태프들 옆에 가서 서자, 멤버들은 그제야 웃으며 맨 앞에 가서 앉았다.
주변을 슬쩍 둘러보니 모두가 뿌듯한 얼굴. 하나같이 주인 의식으로 일하는 이들의 얼굴이었다.
스튜디오 어스 직원들이 모이자 공연기획사 스태프가 카메라를 잡았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내 손에 망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