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화
질문이 마치 어린 아들이 엄마에게 ‘친구랑 놀다 와도 돼요?’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노크롬과 윤환의 관계는 특수하니 나한테 먼저 허락받으려는 것도 이해가 갔다.
“멤버들이랑 다 같이 만나려고?”
“네.”
하긴 단체 스케줄인데 일대일로 만나는 게 더 부자연스럽나.
‘그럼 다른 멤버들이 윤환이랑 만나는 게 대체 얼마 만인 거지…….’
윤환이 탈퇴한 이후로 처음 아닌가?
모노크롬은 1년 4컴백을 할 정도로 바쁘게 지냈지만 윤환과 활동 시기가 겹친 적이 없었다.
우리도 활동 시기를 잡을 때면 타 아티스트의 컴백 일정을 알아보고 신경 쓴다. 타 아티스트에는 윤환도 포함되고.
윤환이 솔로 아티스트로서 첫 앨범을 낸 게 우리의 활동 후였으니까, 그쪽에서도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조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엔 컴백 시기가 겹친 게 아니라 <가요차트>에서 모노크롬과 윤환을 동시에 불렀기에 만나게 되었다.
‘모노크롬 완전체와 윤환이라…….’
서로 같은 방송에 출연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일부러 피할 필요는 없겠지.
“스케줄 끝난 후면 저녁에?”
“네. 공연장에선 서로 바쁠 것 같아서요.”
“그래. 그땐 자유시간이니까, 뭐.”
한국도 아니고 외국이다. 주변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만나기에는 좋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현재 컬러즈와 윤환의 팬덤은 졸업 후 연락이 조금 뜸해진 동창 같은 사이였다.
사이가 나쁜 게 아니니까 모노크롬과 윤환이 같이 있었다는 목격담이 들려온다 하더라도 문제가 생길 일은 없겠지.
‘해외 스케줄이 잡힌 게 여러모로 타이밍이 좋았네.’
모노크롬과 윤환은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만나고. 여기서는 내가 칼부림을, 아니, 권력을 휘두르고.
멤버들은 이곳을 신경 쓰지 않고 윤환과 잘 놀다 오면 될 일이다.
“법인카드 쓸 수 있으면 들고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그리고 뭐 하고 놀게?”
대표의 퀘스트를 생각하면…… 얼마 안 되더라도 뉴레인 돈보다는 뉴마 돈을 쓰는 게 낫겠지.
법인카드 사용을 권장하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재민의 대답이 묘했다.
“음. 일단 밖으로 끌어내서요.”
“끌어내?”
끌어낸다는 건 안에 있는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밖으로 나오게 할 때 쓰는 말인데.
예를 들면 밖으로 안 나오려는 성운을 라솔이 데리고 나오는 상황에나 어울리는 표현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재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윤환이랑도 얘기한 거야?”
“만날 수도 있다는 건 알아요.”
“촬영 끝나고 놀겠다는 건……?”
“친구랑 노는 거 이상한 일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재민이 윤환과 연락하고 지내는 건 알고 있다.
이 정도 사이면 놀자고 찾아간다고 이상할 일은 없긴 하지만…….
내가 생각에 빠져 있자 재민이 걱정 말라는 듯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윤환이 저 되게 좋아해요.”
어디서 이런 자신감이 나오는 걸까.
아무튼 윤환에게 ‘놀자’라고 말하면 될 일인데, 굳이 당일에 서프라이즈를 하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재민이라면 나쁜 짓은 안 할 테니까 괜찮나.’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고. 대화 끝에 윤환이 더 좋은 길을 선택하도록 보내준 그들이니까.
“알았어. 나보다야 너희가 윤환이를 더 잘 아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놀아도 된다는 최종 허락을 받은 재민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자신만 믿으라는 듯 순수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혹시 윤환이네에 무슨 일 있는 것 같으면 나한테 연락해. 뉴레인 직통 연락처가 있거든.”
“네. 잘 감시하고 있을게요.”
“감시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뭐라도 일이 있으면 나한테 일러.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까.”
재민은 이번에도 머리카락이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바로 고자질하러 오는 멤버들이 있으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해외 일정은 믿음직한 멤버들에게 온전히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
아이리스는 일생일대의 전환점에 서 있었다.
회사와 협상 테이블에 앉아 원하는 것을 얻느냐, 혹은 무언가를 내주느냐.
그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회사 앞에서 조금은 비굴해지는 게 편할지도 모르겠지만, 한번 위기를 겪은 이들은 절대 양보하고 싶지 않은 선이 있었다.
“대표님이 처음으로 맡겨 주신 일인데.”
레드가 초조한지 무의식적으로 입술의 안쪽을 잘근잘근 씹으려 했다.
연습생 땐 손톱을 무는 버릇이 있던 레드는 스타일링의 일환으로 손톱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손톱 대신 이렇게 입술을 괴롭히는 버릇이 생겼다.
오렌지는 레드의 턱을 살짝 들어 주의를 분산시켜 그 행동을 막았다.
“나는 아직도 대표님을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시는 게 아니라, 시험해 보려는 거 아닐까?”
레드 나름의 생존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레드는 문제가 생길 때면 도와줄 사람을 찾아와서 그 위기에서 빠져나가고는 했다.
처음에는 너무 남에게 의존하는 것처럼 보여서 걱정되기도 했다.
그녀를 이용하려는 나쁜 사람이 접근해도, 그 사람 좋아하는 성미 때문에 속아 넘어가 버릴까 봐.
그러나 지금껏 그런 일은 없었다. 옆에서 레드를 계속 지켜본 오렌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눈썰미가 아니야. 이 정도면 통찰력이지.’
의지할 사람을 구분해내는 매의 눈.
매번 선의로 아이리스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오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레드와 달리 오렌지는 매우 신중한 타입이었다.
그래서 오렌지는 레드의 옆에 있으면서 이상한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지 감시했다. 이것이 아이리스 리더 라인의 구도였다.
활동을 마친 후 어느 날, 레드는 오렌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이 우리를 도와주실지도 몰라.]
[……너도 혹시 사이비 종교 전도 받은 건 아니지?]
[아니야!]
사이비 종교가 사람의 약한 마음을 잘 공략한다던데.
하필이면 이번에 레드가 집중하는 사람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대표였다.
오렌지는 ‘이번에야말로 레드가 속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레드의 통찰력은 인정하지만,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그녀에게 접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일단은 레드가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런데 레드는 정말 대표를 공략하더니 해결책을 구해왔다.
[우리도 전담팀을 만들 수 있으면 그렇게 진행해 보래.]
[윤환 선배처럼?]
[응.]
윤환은 아이리스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선배 그룹에 있었기에 아이리스는 지금도 선배 호칭을 떼지 않고 그를 불렀다.
윤환의 전담팀. 인원은 적지만 회사의 개입이 적고 조금 더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했다.
비유하자면 뉴레인이라는 레이블 아래 작은 레이블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현재 뉴레인은 후배 신인 그룹을 더 신경 쓰고 있었다.
예전의 뉴마도 그렇고 뉴레인도 한쪽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른바 멀티가 안 되는 스타일.
아이리스를 향한 관심이 소홀해진 지금, 아이리스도 윤환처럼 팀을 꾸려 일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대표가 개입했다고 모든 일이 순탄하게 해결되지는 않았고, 지금 이 상황에 이르렀다.
“뉴레인으로 오고 나서 기획실장님이 대표님한테 신뢰받는다고 얼마나 떵떵거렸는데. 대표님이 정말 실장님한테 전담팀을 맡기려는 걸 수도 있잖아.”
“그래도 저번에 기획실에 앨범 제작 맡기는 건 싫다고 하니까 들어주셨는걸.”
“그거랑 이 일은 다르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 사실 회사 일에 관심이 있으신지도 모르겠어. 뉴레인이 생긴 후로 한 번도 회사에 오신 적이 없잖아.”
오렌지는 뉴레인 창설 이후부터 항상 대표의 이야기를 남에게서 전해 듣는 입장이었다.
덕분에 사람이 대화하는 데 비언어적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는 중이었다.
표정도, 모습도 보이지 않으니 대표가 무슨 뉘앙스로 말하는 것인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전담팀을 만들라는 것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준다는 게 아니라, 관심을 끈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제 우리 일에 관여 안 하시려고…….”
“아니야.”
레드가 오렌지의 말을 끊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알고 있었으나 지금은 믿음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럼 대표님 말고 날 믿고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그러고도 안 되면 같이 다음 방법을 생각해 보자.”
오렌지는 레드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보다가도 이런 리더의 시선을 마주하면 꼼짝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렌지는 결국 레드의 판단이 옳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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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클 출국 걱정된다
비행기 타고 하늘 날아가다가 본인들이 천사인 걸 깨달아버리면 어떡하지
└출국 아니라 귀향이었냐고ㅠㅠㅠ얼른 돌아와ㅏㅏ
└근데 우리 출국 사진 처음 보는 거 맞나..? 입국 사진은 봤는데
└아 그러게? 작년에 미국 갔을땐 출국사진이 없네
└몬클이들 미국 간거 비밀이었잖어ㅎ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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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이 <가요차트> 해외 특집 녹화를 위해 싱가포르로 떠났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올라오는 출국 기사 사진들을 확인하며 출근했다.
‘그래. 이게 일반적인 아이돌의 출국일 광경이지!’
저번 LA 출국 날은 어땠던가.
옆엔 다른 아이돌 그룹을 기다리는 팬들과 기자들이 있었고, 우리는 시선을 잠시 받았을 뿐. 아주 원활하게 수속을 밟고 출국한 게 끝이었다.
오늘은 <가요차트> 싱가포르 특집에 출연하는 다른 가수들도 출국하기에 공항에 기자들이 몰렸고 모노크롬은 확실한 주목을 받았다.
모노크롬이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은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으로 올라오기도 했다.
이른 아침이라 자면서 이동했는지, 다들 차에서 내릴 땐 나른한 표정이다가 기자들의 수를 보고 잠시 흠칫하고는 눈을 반짝 뜨는 것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것도 모노크롬다워…….’
그리고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열심히 인사하며 이동하는 모습까지.
멤버들은 변함이 없지만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것이 동시에 느껴졌다.
공항에 있는 멤버들은 동행한 직원들이 잘 챙길 테고.
나는 이곳에 남은 이유가 있으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최 비서.”
“네.”
나는 뉴마를 빠져나와 뉴레인으로 향했다.
대표의 비서였던 최 비서까지 대동하니 정말로 내가 대표가 되어서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뉴마 대표실에는 대표의 뉴레인 출입 카드도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입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이미 아이리스 싱글 프로젝트 때 많이 들락날락했던지라 경비원도 나를 알아보고 인사할 뿐,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기획실로 올라갔고, 진명희 기획팀장은 느닷없이 나타난 나를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 이사님이 어쩐 일로……?”
“잠깐 허용석 실장님도 불러와 주시겠어요?”
나는 일부러 연락 없이 불시에 찾아왔다.
‘싸움은 기선제압이니까.’
아이리스의 매니저인 공다혜에게 전해 들어서 지금 시간에 바쁜 일이 없다는 것도 확인했고.
내가 용건을 말하지 않고 허용석 실장부터 데려오라고 하자 진명희 팀장은 의구심이 섞인 얼굴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실장실에서 나온 허용석 실장도 진명희 팀장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아무리 이사님이라 하셔도 이렇게 뉴레인에 막 출입하실 수는…….”
“제가 전할 말이 있어서요.”
나는 대표의 직인이 찍힌 권한 위임장을 보일 듯 말 듯 팔락이며 당당하게 말했다.
“30분 정도 드릴 테니까, 아이리스 전담팀 기획서 정리해서 대표실로 올라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