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화
나는 아티스트팀이 있는 층을 오가느라 이사실 밖을 자주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그 덕분인지 소문이 돈다는 말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럼 작년에 뉴레인 나갈 때는…….”
“뉴마가…… 대표님이…….”
“아. 크흠.”
소리가 작아서 내용을 정확히는 듣지 못했지만, 언뜻 회사 이야기가 들린다 싶다가도 내가 옆을 지나가면 조용해지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요즘 들어 일부러 더 수군대는 건지, 아니면 내가 최근에야 의식하기 시작해서 그런 건지 자꾸 눈에 띄네.’
소문의 내용이 내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게 유쾌한 일로 변모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 큰 관심도 없는 타인이 나를 이야깃거리로 삼는 게 기분이 좋을 리는 없지. 경험이 있기에 잘 알고 있다.
예전엔 그런 일 하나하나에 상처를 받았다면 지금은 남의 불행에 말 얹기 좋아하는 사람의 습성에 진절머리가 났다.
‘내 멘탈이 단단해진 건가, 아니면 커뮤니티 글을 자주 봐서 그런가.’
커뮤니티란 온갖 루머, 소문의 온상지이기도 했다.
아이돌이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불특정 다수에게 별별 소리를 다 듣는 것을 보다 보니 무뎌진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름대로 성장한 게 아닐까?
화살을 내게 돌리는 것과 외부에 돌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도…… 자기 약점을 이렇게 이용해?’
거기에 배우팀도 그래. 결국 이 소문은 대표와 배우팀의 합작인 거잖아?
생각해 보면 배우팀이 이렇게 나오는 이유가 전혀 짐작 가지 않는 것은 또 아니었다.
이제 올해도 하반기에 들어섰다. 내년 사업 계획을 생각할 때인데 내가 신인 육성에도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장래의 일에 관해서는 영 소극적이었지.
그렇다고 모노크롬을 재계약시켜서 아티스트팀을 유지하는 것도, 배우팀이 보기에는 미묘하긴 매한가지다.
모노크롬이 회사에 많이 벌어다 주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이 쓰기도 했으니까.
‘예전의 모노크롬은 레이블이 분리되어도 못 따라갈 처지였는데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으니 뉴레인으로 가 줬으면 하는 건가.’
이런 추측은 윤희와의 대화로 더 확실해졌다.
“얘기를 들어보면 배우팀 직원들은 대체로 뉴마가 배우 회사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니, 모노크롬이 멀쩡히 소속되어 있는데…….”
뉴마는 내가 게임에서 아이돌 기획사로 만든 회사이다.
‘주객전도 아니에요?’라는 말을 덧붙이려다가 내가 회사 설립자라는 것을 밝힐 순 없었기에 말꼬리를 흐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 모노크롬 빼고 온전한 배우 회사가 되고 싶은 거죠.”
“그 배우팀이 어디 가지는 않네요.”
배우팀을 맡은 사장이나 권 실장이 보여 왔던 태도를 떠올려보면 고개가 끄덕여졌다.
배우팀 임원들에겐 모노크롬이 잘나가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아이돌 그룹의 수명이 짧으니 개인 활동을 우선하자던 그들 아닌가. 모노크롬도 활동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배우팀끼리 결속력을 다지려는 일환인지, 내년부터는 소속 배우들을 출연시킨 컨텐츠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자체 컨텐츠 제작은 저희가 훨씬 경험이 많잖아요?”
“그렇죠. 아이돌은 컨텐츠가 중요하니까.”
“그래서 배우팀에서도 아티스트팀에 촬영이나 제작 업체를 물어보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왔다나 봐요. 그런데 위에서는 물어보지 말고 자체적으로 진행하라고 했다나 뭐라나.”
“일 정말 불편하게 하네요…….”
“네. 직원들이 바로 옆에 도움 될 사람이 있는데 왜 빙빙 돌아가냐고 불평하고 있던데요. 따로 알아보는 것도 자기들 일이라고.”
역시 윤희는 함께 회사 욕을 하는 동료들을 둬서 그런지 유용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윤희 씨.”
“저희 일이기도 한데요, 뭐. 저한테도 모노크롬이랑 같이 뉴레인으로 옮겨가냐고 슬쩍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요.”
모노크롬에게 재계약 생각이 없다는 사실은 최대한 늦게 알리는 것이 좋다.
지금도 우리를 곧 퇴사할 사람들처럼 보고 배척하려고 하는데 확실시되면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지.
그 탓에 탈뉴마 계획을 알고 있는 직원들은 무어라 대답하기 곤란한 상황에 빠진 듯했다.
“다음에도 누가 물어보면 아티스트팀 거취는 전부 제 관할이라 잘 모르겠다고 해요. 저한테 문의하라고.”
“이사님이 문의 다 받아주시게요?”
“아뇨. 실장급 이상 아니면 저한테 찾아와서 문의할 사람은 없겠죠.”
“아, 그렇죠. 아티스트팀 아니면.”
아티스트팀 직원들은 필요하다면야 아무 때나 나와 독대할 수 있지만 배우팀 직원들은 아니다.
윤희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잠시 멈췄다.
“실장급 이상이 찾아오면요?”
“……그게 문제인데 말이에요.”
그게 바로 맹점이었다.
다행히도 배우팀과 아티스트팀이 다른 회사처럼 굴러가기에 임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일 일은 없었다.
그 때문인지 잘 마주칠 일 없는 그들이 나를 찾아올 땐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뿐이었다.
사장이나 권 실장이 찾아오면 뭐라고 대꾸하지?
‘하반기엔 날 찾을 일이 많을 것 같단 말이지…….’
모노크롬의 재계약 여부를 궁금해할 테고, 아티스트팀의 내년 계획도 물어볼 테고.
안 그래도 아티스트팀을 뉴레인으로 보내고 싶어 하는데 내가 미적지근하게 나오면 그 생각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모노크롬은 어차피 뉴마를 나갈 테지만, 뉴레인으로 가지 않으면 또 우리를 방해하려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음악대상 때문에 심란한데 그렇게 눈치 싸움 하면서 기력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내가 낸 결론은 이것이었다.
“고민하는 척만 하면서, 최대한 마주칠 일 없도록 노력해 봐야겠죠……?”
***
내가 배우팀을 피해 다니겠다고 말하자 윤희는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회사에 좀 더 붙어 있으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인걸.’
보일러가 고장 난 집이라도 찬바람 부는 바깥보다는 따뜻한 법.
갑자기 집이 무너지거나 물난리가 나는 게 아니라면 일단은 집 안에 있는 게 낫다.
그러니 대표나 배우팀이 원하는 대로 뉴레인으로 옮겨갈 것처럼 여지를 주면서 뉴마 안에서 독립을 준비해야지.
내가 아이리스의 일에 반쯤 발을 걸치고 있다는 사실도 도움이 될 것이다.
‘레이더 켜 놓고 살기도 쉽지 않네.’
녹음실, 연습실이 있는 층은 주로 아티스트팀이 사용하기에 안전지대였다.
문제는 이사실이 있는 사무실 층에서는 배우팀을 피해 다니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괜히 마주쳐서 대화하다가 실수라도 하면 곤란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모순이 생기거나 순간적인 질문에 대답을 못 했다가는 다른 일을 꾸민다고 의심받을 수도 있다.
애초에 다른 일을 꾸미는 게 사실이기에 말실수를 특히 조심해야 했다.
‘마주쳐도 대화를 피할 방법이라면…… 바쁜 척이 제일이야.’
그렇게 나는 한동안 바쁘게 갈 곳이 있는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다니기,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면서 걷기 등을 구사하며 ‘바빠 보여서 말 걸기 쉽지 않은 사람’처럼 다녔고…….
“요즘 아티스트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말이 돈다네요.”
정보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윤희는 회사에 도는 소문이 기정사실화되어간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내가 바쁜 척하며 다닌 것이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대표 빽만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안 되니까 여기저기 살길을 찾아다니고 있다고.
소문과 관련된 소리를 듣기 싫어서 피해 다니려던 게 오히려 소문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니.
“……기분이 좀 그렇긴 한데 딴마음 품고 있다고 의심받는 것보단 그게 낫네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다니시게요?”
“소문이 확실해지면 괜히 떠보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편하지 않아요?”
“저희야 그렇지만 사내에서 이사님 이미지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도 같고…….”
아무래도 윤희는 내게 자세히 말은 안 했지만 ‘신주인 이사’에 관해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은 모양이다.
‘지금 회사에서 내 이미지라……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줄 끊겨 버린 낙하산 정도려나?’
그런데 그거…… 나름대로 괜찮지 않나?
라인 잘못 타서 외딴섬 신세가 된 임원이라니, 그야말로 ‘말 걸기 쉽지 않은 사람’이잖아.
이 정도면 배우팀 임원들도 내년 계획을 내놓으라고 재촉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오히려 좋은 것 같은데요?”
“……좋으시다고요?”
소문 이야기를 하며 떫은 표정이던 윤희는 내 대답을 듣고 눈썹 사이를 좁혔다.
나를 소문을 즐기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잖아.
사내에서 내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은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도 윤희에게 내 이미지가 나빠지면 안 되었기에 나는 그녀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야 했다.
***
“어! 이사님. 일찍 나오셨네요.”
잠이 덜 깨서 모닝커피라도 마시고자 카페에 다녀오다가 우형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모노크롬도 마침 회사에 나온 참인 듯했다.
“응. 요즘은 조금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루틴으로…….”
내가 그렇게 말하다가 부자연스럽게 빙 돌아서 자리를 바꾸자 재민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벌레 있어요?”
재민의 말에 다른 멤버들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형과 준해의 고개가 특히 크게 돌아가는 것을 보니 멤버 중에서도 두 사람이 벌레를 가장 싫어하는 모양이다.
“아니. 옆에 배우팀 지나가길래. 배우팀에선 요즘 내가 잡담할 시간도 없이 엄청 바쁜 줄 알거든.”
멤버들은 내 말에 주변이 아니라 더 먼 곳을 바라봤다.
내 말대로 배우팀 직원들이 잠시 볼일이 있는지 회사 출구 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열심히 바쁜 척을 하고 다녔고, 덕분에 ‘지금은 바쁘니 중요한 일은 메일로 전해달라.’라면서 권 실장의 대화 요청을 떨쳐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모닝커피를 즐기며 멤버들과 잡담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는 좀 그렇지.
원래는 또 통화하는 척을 하면서 이사실로 복귀할 생각이었는데 모노크롬과 마주치는 바람에 스마트폰을 꺼낼 타이밍을 놓쳤다.
“그럼 이렇게 다니세요.”
재민이 해랑의 팔을 붙잡고 내 앞에 벽을 만들었다. 모노크롬의 특기인 보디가드 포지션이었다.
“으음…… 이건 그렇게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아.”
해랑과는 다르게 나는 좀 더 가려지긴 하겠지만, 멤버들이 진짜 보디가드도 아니고 매번 이렇게 다닐 수는 없잖아?
“저희는 작업실이나 연습실에 있어서 괜찮은데 이사님만 너무 불편해지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피해 다니시려면.”
준해가 효자 5호다운 걱정을 했다.
모노크롬도 소문 때문에 내가 배우팀을 꺼리고 피해 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숨어 다니는 것을 보니까 불편해 보인 모양이었다.
“아냐. 누가 와서 말 거는 게 더 불편하거든.”
“그럼 이사님이 피해 다니시지 말고, 다른 사람이 피해가게 만들면 안 될까요?”
한이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 걸기 쉽지 않은 사람’은 괜찮은데 ‘남들이 다 피해 다니는 사람’은…… 괜찮은가?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준다면 편하긴 하겠다.’
내 이미지가 이상해지는 것과 편리함을 저울질해 본 나는 판단을 마치고 자세한 내용을 물었다.
“어떻게?”
“회사 다니는 친구가 그러는데, 근처에도 가면 안 되는 게 있대요. 기분 안 좋은 상사랑 분위기 안 좋은 팀.”
“그렇지. 괜히 가까이 갔다가 자기도 휘말릴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보통 상사의 기분이 안 좋으면 팀 전체의 분위기도 안 좋기 마련이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그 ‘기분 안 좋은 상사’가 되라고?”
“따로 뭐 안 하셔도 돼요. 그냥 저희가 이렇게.”
그렇게 말하며 한이가 양손을 모으고 머리를 푹 숙였다. 그리고 충고라도 듣는 듯이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이 구도는…… 내가 한이를 혼내고 있는 것 같잖아.
옆에선 해랑이 희한하다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연기력을 이런 데에 낭비하다니.’
상황이 조금 웃겨서 웃음이 나오려는데, 방금 지나갔던 배우팀 직원들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멤버들과 내가 모여 있는 모습이 시선을 끌었는지 그들은 이쪽을 흘끔댔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화들짝 놀란 그들은 종종걸음으로 우리를 피해갔다.
“필요하시다면 눈물 연기까지…….”
한이는 연기 자판기처럼 서비스로 눈물 연기까지 내오려고 했으나 소속 아티스트를 울렸다는 타이틀까지는 필요 없었기에 거절했다.